서기 1000년과 서기 2000년 그 두려움의 흔적들
조르주 뒤비 지음, 양영란 옮김 / 동문선 / 1997년 6월
평점 :
절판


 

 

 

서기 1000년과 서기 2000년 그 두려움의 흔적들은 프랑스 주간지 르 익스프레스(L’Express)에 게재되었고, 라디오 방송 유럽 1(Europe 1)에서 전파된 대담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조르주 뒤비(Georges Duby)가 대담자로 참석했다. 책은 1995년에 출간되었다(국내 번역본은 1997년에 나왔다). 뒤비는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뒤비는 서기 1000년 유럽 중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두려움과 2000년 밀레니엄(millennium)을 앞두고 있던 그 당시 사람들의 두려움을 비교했다. 그는 과거에만 얽매이지 않고 자기 시대의 문제를 끈기 있는 성찰하는 일이 역사가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래서 대담 주제는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현대사회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들(세기말에 들어서면서 부각된 문제들, 예를 들면 환경오염, AIDS, 종말론 등)을 현명하게 대처할 방안을 고민해보는 것이다.

 

엄청 철 지난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흥미롭다. 책은 다섯 장으로 이루어졌다. 이 다섯 장의 제목은 인간이 살면서 느끼는 두려움이다. 궁핍에 대한 두려움, 타인에 대한 두려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폭력에 대한 두려움,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 지금부터 천 년 전에 살았던 중세 사람들도 현재의 우리만큼이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그들은 생존 문제에 고통을 받았다. 사나운 이방인들의 침입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 비참하게 살았다. 2020년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근으로 허약해진 중세의 유럽인들은 순식간에 흑사병의 포로가 되었다.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은 혼란과 공포를 부추겼다. 중세 사람들은 흑사병의 발병 원인을 신이 내린 형벌로 간주했고, 유대인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중세 사람들이 흑사병에 무기력하게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산 사람들은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가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생명마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환자를 간호하고, 사망자를 매장했다. 그리고 시 의회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행동 강령을 제시했다. 성벽 안으로 생활 반경을 줄이고, 외지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세상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현 지도자의 능력을 의심하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과거에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지도자를 소환한다. 어떤 사람은 만약 지도자가 ○○○였다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면서 현 지도자가 무능하다고 비판한다. 현 지도자의 능력을 비판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과거 지도자와 현 지도자의 능력을 비교하는 일은 소모적인 논쟁이다. 아무리 훌륭한 과거 지도자들도 현재 우리나라를 이끌었다면 비판적인 여론을 비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뒤비는 한 사회에 불안감이 감돌고 있으면 과거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그들은 과거를 생각하면서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하려고 한다. 최근 야당은 구치소에 있는 수감번호 503번의 옥중 편지를 공개하면서 수구세력을 결집하려고 한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사람들은 현재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다. 지금 우리는 알게 모르게 두려움의 흔적들을 남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