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내기 Mystr 컬렉션 58
안톤 체호프 / 위즈덤커넥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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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Anton Chekhov)가 남긴 수많은 단편소설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걸작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1888년에 발표된 내기(The Bet, 러시아어 원제: Пари).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은행가와 변호사는 사형제와 종신형 중에 어느 형벌이 더 나쁜지에 관해 토론한다(이 소설에서 두 사람의 실명은 언급되지 않는다). 변호사는 사형과 종신형 모두 부도덕한 제도라고 비판하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종신형을 선택할 거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한 번뿐인 생명은 소중하므로 죽지 않고 삶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은행가는 변호사가 거짓말하고 있다면서 그에게 황당한 내기를 제안한다. 처음에 은행가는 변호사가 감옥에 5년 동안 살지 못한다는 데에 200만 루블을 건다. 그 당시 200만 루블은 어마어마한 돈이다(현재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3,764만 원이다). 그런데 패기로 뜨겁게 타오르던 변호사는 5년이 아니라, 15년을 감옥에서 살 수 있다면서 은행가가 제안한 내기를 받아들인다.

 

변호사는 은행가의 저택 정원 안쪽에 있는 작은 건물에 수감 생활을 한다. 그의 수감 생활은 1870111412시부터 시작되어 1885111412시에 종료된다변호사는 15년 동안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없으며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모든 수단(편지와 신문)을 금지한다. 이를 어길 시 은행가는 내기의 승자가 된다. 변호사가 생활하는 독방은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다. 그래도 건물에 쪽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작은 창문이 달려 있는데 이것은 변호사가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다.

 

작품은 수감 생활에 점차 적응하는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진행된다. 해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호사의 생활 패턴이 다양하게 변한다. 수감 생활 첫해에 변호사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두 번째 해에 그는 고전 작품을 읽다가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글을 쓴다. 여섯 번째 해가 끝날 무렵에 변호사는 언어와 철학, 역사를 공부한다. 열 번째 해가 지나자 변호사는 책상에 앉아 신약 성서를 읽는다.

 

18851114일 전날에 은행가는 15년 전에 자신이 먼저 내기를 제안한 것에 후회한다. 다음 날이 되면 변호사가 어처구니없는 내기의 승자가 되고, 은행가는 전 재산인 200만 루블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은행가는 내기뿐만 아니라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쓸쓸한 말년을 보내야 한다. 파산에 이르는 내기의 결과에 두려워한 은행가는 변호사를 죽이기로 한다. 변호사를 죽이면 내기는 무효가 된다. 은행가는 15년째 자유를 포기한 채 살아온 변호사를 죽이기 위해 직접 독방에 들어간다. 은행가는 빈사 상태에 빠진 변호사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불쌍한 영혼이라고 말한다. 은행가는 변호사가 종이에 쓴 글을 읽는다. 그 글을 읽고 난 후 은행가는 독자의 예상에 벗어난 행동을 한다.

 

내기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의 단편소설이다독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주게 만드는 결말은 체호프 단편소설의 특징이. 이 작품은 처음에 우화(Fairy Tale, 러시아어 원제: Сказка)라는 제목으로 잡지 <Novoye Vremya>에 게재되었다. 이야기는 3로 이루어졌는데, 소설의 제목이 바뀌면서 3부는 삭제되었다. 3부가 있는 원고는 사라져서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체호프는 1903년에 쓴 편지에 결말이 너무 냉소적인데다가 잔인하게 느껴져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서 3부를 삭제한 이유를 밝혔다.[] 체호프 본인이 생각하기에 나름 충격적인 결말을 구상했던 것 같은데 그게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만약 내기두 개의 결말로 이루어진 이야기로 만들어졌으면 어땠을까? 그렇게 되면 내기는 체호프의 대표작으로 거론되지 못하더라도 체호프 연구자와 독자들의 뇌리에 잊지 못하는 독특한 작품으로 남았을 것이다.

 

내기는 별 네 개를 주고 싶은 작품이지만, 오역이 있어서 별 하나를 뺀다. 수감 생활 중인 변호사가 은행가에게 보내는 편지 속 내용에 번역이 잘못된 문장이 있다.

 

 

 나의 경애하는 간수님, 지금 이 글은 6개의 언어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에게 보여 주세요.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이 글을 큰소리로 읽게 하세요. 만약에 그들 중 한 명이라면 실수를 발견한다면, 정원에서 총알을 발사하도록 하세요. 그 폭음이 들리면, 내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겠죠.” (TR 클럽 옮김)

 

 

 친애하는 나의 간수님! 당신에게 이 문장들을 여섯 개의 언어로 쓰겠습니다. 이것을 전문가들에게 보여주고 읽어보라고 하세요. 만약에 그들이 틀린 곳을 한 군데도 찾아내지 못할 경우에는 간청하건대 사람을 시켜 정원에서 총을 한 발 쏘도록 해주세요. 그 총소리는 나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나에게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박현섭 옮김, 체호프 단편선, 139)

 

 

두 번째 인용문은 민음사에 나온 체호프 단편선의 문장이다. 내가 러시아어를 잘 몰라서 내기》 영문판[주2]을 참고했다. 인용한 문장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My dear Jailer, I write you these lines in six languages. Show them to people who know the languages. Let them read them. If they find not one mistake I implore you to fire a shot in the garden. That shot will show me that my efforts have not been thrown away.”

 

 

민음사의 번역문이 맞다. ‘그들 중 한명이라면 실수를 발견한다면(문장 형식도 잘못되었다)이 아니라 그들이 실수 하나라도 발견하지 못한다면으로 고쳐야 한다. 그 다음 문장인 ‘내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겠죠’는 ‘내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겠죠’로 고쳐야 한다. 원문에 나온 ‘mistake’실수보다는 틀린 곳’, ‘잘못된 곳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들 중 한 명이라는 표현을 영어로 쓰면 ‘one of them’이다.

 

 

 

 

[1] 위키피디아 영어판 내기항목에 있는 원문: “As I was reading the proofs, I came to dislike the end, it occurred to me that it was too cold and cruel,”

 

 

[2] The Bet, translated by Constance Garnett in The Schoolmistress and Other Stories(1918).

링크: https://en.wikisource.org/wiki/The_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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