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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없는 페미니즘 - 제주 예멘 난민과 페미니즘의 응답
김선혜 외 지음 / 와온 / 2019년 9월
평점 :
전쟁이나 자연재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람을 ‘난민’이라고 한다. 1951년에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 협약’은 난민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國籍國: 배나 비행기 따위의 국적이 등록되어 있는 나라)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주]
지난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주도 난민수용 거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약 17만 명의 동의를 받았으나 공개된 지 사흘 만에 갑자기 삭제됐다. 한번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은 작성자가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없으며 관리자의 삭제만 가능하다. 청와대 측에서 별다른 언급 없이 글을 삭제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는데 비슷한 내용의 청원이 계속 나왔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난민은 ‘가짜 난민(難民)’이고 ‘미래의 난민(亂民)’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이 늘어난다는 소식에 공포를 느낀 사람들은 난민이 무리 지어 다니면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난민을 둘러싼 가짜 뉴스까지 확산하면서 난민 문제에 대한 국내 여론은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에서 불거진 이슬람 공포증(Islam phobia)과 이슬람 혐오를 그대로 따라갔다.
당시 사람들이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했던 가짜 뉴스는 ‘이슬람은 여성을 혐오하는 최악의 종교다’와 ‘여성 차별과 여성 혐오 문화에 익숙한 무슬림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다’라는 내용이다. 여성억압을 이슬람과 동일시하는 가짜 뉴스는 난민수용 반대 여론에 불을 지폈다. ‘무슬림 남성 난민이 한국 여성을 성폭행할 것’이라는 주장도 퍼졌다.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사람 중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여성들도 있었다. 그녀들은 무슬림이란 단어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남성’과 그 피해자인 ‘여성’의 구도로 난민 문제를 바라봤다. 과연 여성 혐오는 이슬람만의 특징인가? 무슬림 남성이 가해자라면 무슬림 여성은 남성에게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인가? 그렇다면 예멘 난민은 잠재적 가해자인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난민(難民)을 ‘난민(亂民)’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은가? 1992년 세계 난민 협약에 가입한 이후로 난민 보호국이 된 우리나라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난민 수용 반대 여론과 가짜 뉴스가 이어지는 동안 한쪽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고민하는 페미니스트와 인권 운동가들이 모여 페이스북 페이지 ‘경계 없는 페미니즘’을 만들었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인도 출신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Chandra Talpade Mohanty)의 동명 저서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총 37명의 필자가 참여한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페이스북 페이지 ‘경계 없는 페미니즘’에 연재된 글과 언론에 게재된 칼럼을 포함해서 총 40편의 글이 수록되었다. 페미니즘의 난민 혐오 담론을 줄기차게 비판해온 여성학 연구자 김보명, 성과재생산포럼 소속 활동가 나영, 퀴어 활동가 나영정, 여성학자 정희진, 문화평론가 손희정,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등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그동안 남의 집 불구경 보듯 다뤘던 무슬림 혐오와 난민 혐오 담론이 ‘우리의 문제’임을 환기한다. 동시에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갇혀 있는 페미니즘을 경계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구 사회가 이슬람에 가진 오해와 편견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이슬람 혐오와 페미니즘』이라는 글을 쓴 대학생 페미니스트는 실제로 무슬림을 만나면서 자신이 무슬림을 바라보는 눈이 지나치게 서구적이라는 사실을 지각한다. 그녀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여성 혐오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페미니즘을 ‘근거 없는 오만’이라고 비판한다. 『수상한 페미니스트 투사들』은 여성 인권을 위한다는 핑계로 난민 반대를 외치는 수사를 비판한 글이다. 여성을 ‘국민’으로 소환해서 여성 인권을 앞세운 난민 반대 수사는 이방인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재생산한다.
단지 ‘한국 여성’들만 위하려 한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축소된다. 난민 문제는 너무나 많은 형태(성차별, 인종 차별, 종교 차별, 성소수자 차별)의 억압의 교차 지점에 있다. 그러므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은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국적, 종교, 세대 등과 같은 다양한 정체성 범주들이 서로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위계적으로 얽혀 있는 현실을 해석하기 위해 등장했다. 『“여성혐오자 이슬람 난민을 추방하자”고 외치는 당신에게-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의 여섯 가지 반론』과 『인종, 젠더, 교차적 페미니즘』은 난민 문제를 ‘무슬림 남성 대 한국 여성’으로 단순화하여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를 제기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난민 인권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을 같이 하면 힘들다고. 그리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페미니즘 운동에 매진할 거라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을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페미니스트가 있다면 지금 필요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경계 없는 페미니즘》을 권하고 싶다. 그러면 타자를 구분 짓고 배척하게 만드는 ‘내 안의 경계(境界)’를 확인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로서 정말 경계(警戒)해야 할 것은 페미니즘이 타자를 절멸하고 부정하고 추방하는 혐오 담론의 근거로 변질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사회를 바꾸는 이론이자 주변화된 타자와 연대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가는 실천이지 적을 생산하는 혐오 담론을 합리화하는 폭력이 아니다.
진부하고 당연하며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교훈일 수 있지만, 다시 한번 말해 보려고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이 말하고 살아가는 시대적 조건을 비판적으로 읽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의 이름으로 타자의 삶의 기회를 박탈하는 모순과 폭력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김보명, 『젠더 폭력과 인종주의』 중에서, 67쪽)
[주] 전국지리교사연합회, 《살아 있는 지리 교과서》, 휴머니스트,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