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뱀파이어’와 ‘레즈비언 뱀파이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두 존재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전에 ‘여성 뱀파이어’의 계보를 살펴보면서 이들에게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콜리지 시선》 (지만지, 2012)

* 존 키츠 《키츠 시선》 (지만지, 2012)

* [품절] 존 키츠 《빛나는 별》 (솔출판사, 2012)

* 괴테 《괴테 시 전집》 (민음사, 2009)

 

 

 

 

우리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 이미지는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에 나오는 드라큘라(Dracula) 백작과 이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드라큘라 백작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뱀파이어에 관한 각종 전설이 전해 내려왔고 낭만주의 문학이 꽃 피던 시대에 뱀파이어는 ‘죽은 연인’ 또는 ‘이승의 남성을 유혹하는 유령 신부’로 묘사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서사시 『크리스타벨(Christabel), 존 키츠(John Keats)의 시 『라미아(Lamia)『무정한 연인』, 괴테(Goethe)의 담시 『코린트의 신부』 등이 있다.

 

 

 

 

 

 

 

 

 

 

 

 

 

 

 

 

 

 

 

 

 

 

 

 

 

 

 

 

 

 

 

 

 

 

* 박선경 엮음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 (나래북, 2014)

* 테오필 고티에 《고티에 환상 단편집》 (지만지, 2013)

* [품절] 민경수 엮음 《클라리몽드: 아홉 개의 환상기담》 (작품, 2013)

* 이탈로 칼비노 엮음 《세계의 환상 소설》 (민음사, 2010)

* 이규현 엮음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창비, 2010)

* [품절] 정진영 엮음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06)

 

 

 

 

프랑스의 소설가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의 단편소설 『죽은 연인』에 나오는 클라리몽드(Clarimonde)는 남자를 유혹해 피를 빠는 매춘부다. 이 소설은 여러 권의 단편 선집에 수록되었는데 제목이 다양하다. ‘클라리몽드’, ‘사랑에 빠져 죽은 여인(《고티에 환상 단편집》)’, ‘죽은 여인의 사랑(《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죽은 여자의 사랑(《세계의 환상 소설》) 등이 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에 묘사된 여성 뱀파이어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사악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남성 앞에 성적 매력을 발산하며 그들을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 르 파뉴 《카르밀라》 (초록달, 2015)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함께 뱀파이어 고전으로 손꼽히는 레 파누(Le Fanu)《카르밀라(Carmilla)는 여성 뱀파이어가 등장한 작품으로 분류된다. 카르밀라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레즈비언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나는 카르밀라를 ‘여성 뱀파이어’가 아닌 ‘레즈비언 뱀파이어’라고 생각한다. 여성 뱀파이어와 레즈비언 뱀파이어는 다르다. 카르밀라는 여성 뱀파이어의 계보에 속할 수 없다.

 

 

 

 

 

 

 

 

카르밀라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정체성을 설명하려면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모니크 위티그(Monique Wittig)의 명제를 가져 와야 한다. 위티그는 1980년에 발표한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다(On ne naît pas femme)라는 글에서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파격적인 명제를 제시한다.

 

 

 

 

 

 

 

 

 

 

 

 

 

 

 

 

 

 

 

* 조현준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 (행성B, 2018)

* [품절] 케티 콘보이 외 엮음 《여성의 몸,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한울아카데미, 2001)

 

 

 

 

 

 

 

 

 

 

 

 

 

 

 

 

*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을유문화사, 1993)

* 변광배 《제2의 성: 여성학 백과사전》 (살림, 2007)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다』 번역문은 《여성의 몸, 어떻게 읽을 것인가》(한울아카데미)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레즈비언을 가부장 및 이성애 중심 사회를 전복하는 새로운 주체로 규정한 선언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글이 수록된 책이 절판되었다.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행성B)에 위티그의 이론을 소개한 내용이 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위티그는 보부아르(Beauvoir)의 영향을 받은 페미니스트다. 위티그는 보부아르의 명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를 재해석하고 이를 변용한다. 보부아르가 말한 ‘만들어지는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여성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젠더(gender)’의 여성이다. 그러나 위티그는 그녀의 명제를 동의하면서도 ‘만들어지는 여성’이 이성애 여성에 더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위티그는 보부아르의 명제를 확장하여 ‘만들어지는 여성’은 레즈비언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강제된 젠더 역할, 즉 ‘남성’과 ‘여성’으로 설명하는 성의 범주는 ‘이성애적 계약(heterosexual contract)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다』에서 보여준 위티그의 문제의식은 ‘이성애 중심 사회 및 문화 비판’이다.

 

위티그는 생물학적 여성의 존재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모성과 재생산 기능을 강조하는 사회적 인식뿐만 아니라 가모장을 중심으로 한 여성사까지 반대한다. 이러한 설명들이 결국은 이성애에 초점에 맞춰져 있으며 이성애 중심주의는 ‘헤테로 여성의 레즈비언 차별’의 원인이 된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라는 정상성의 여성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카르밀라는 ‘이성애적 계약’에 저항하는 레즈비언이다. 그녀는 결혼과 모성, 재생산을 중요시하게 여긴 빅토리아 시대의 견고한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다. 위티그는 이성애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여성은 레즈비언이라고 주장한다. 이성애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결국 남자나 여자 되기를 거부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위티그는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도출한 것이다. 위티그가 말한 레즈비언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위티그는 생물학적 · 사회적 남녀 성별 범주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하고도 특별한 존재가 레즈비언이라고 주장한다.

 

카르밀라는 이성애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레즈비언 뱀파이어’다. 카르밀라는 소녀에게 접근하여 밤마다 그녀들의 목을 노린다. 남성들이 카르밀라의 악행을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다. 특히 소설에 나오는 슈필스도르프(Spielsdorf) 장군은 카르밀라 때문에 목숨을 잃은 조카딸의 복수를 꿈꾼다. 카르밀라를 퇴치하기 위해 결성된 ‘남성 십자군’의 임무는 가사 및 재생산 노동을 전담하는 헤테로 여성이 되어야 하는 소녀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결국 카르밀라는 ‘남근’을 상징하는 말뚝에 박혀 죽는다.

 

 

 

 

 

위티그의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은 남성 가부장, 이성애 중심의 정치 및 문화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면서 성적 자율성을 가진 레즈비언 정체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가부장 및 이성애 중심 사회에 저항하는 위티그의 입장에 공감하면서도 레즈비언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 위티그의 명제를 비판한다.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

* 조현준 《젠더는 패러디다》 (현암사, 2014)

 

 

 

버틀러도 레즈비언이다. 그러나 그녀는 강제적 이성애 중심 사회에 대항하는 유일한 존재가 레즈비언뿐이냐고 반문한다. 레즈비언이 아무리 특별하고도 주체적인 존재라고 해도 레즈비언이 중심이 되는 여성운동은 헤테로 여성과의 연대를 단절하게 만드는 전체주의적 권위로 작동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위티그는 보부아르의 선언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에 응답하면서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대신에 사람은 (누구나?) 레즈비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이라는 범주를 거부하면서 위티그의 레즈비언-페미니즘은 모든 종류의 이성애 여성과의 연대를 단절하는 것으로 보이며, 은연중에 레즈비언이야말로 논리적이거나 정치적으로 필연적인 페미니즘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분리주의적 규정주의는 확실히 더 이상은 존속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젠더 트러블》, 324쪽)

 

 

나는 버틀러의 문제 제기가 여성주의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즉 정체성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낸시 프레이저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돌베개, 2017)

* 철학아카데미 엮음 《처음 읽는 영미 현대철학》 (동녘, 2014)

 

 

 

미국의 여성주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 등의 단일 정체성을 강조한 좌파의 사회운동 노선을 비판한다. 그녀는 정체성이 ‘물화(reification)’되는 현상이 어떤 개별 존재를 특정한 정체성에 고정해버린다고 주장한다. 레즈비언이 헤테로 여성을 여성운동 연대자로 보지 않는 것, 그리고 ‘일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 여성을 여성운동 연대자로 보지 않는 것은 ‘레즈비언’ 또는 ‘여성’이라는 단일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나오는 입장이다. 분리주의식 여성운동은 권위주의, 전체주의의 양상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정체성 인정’으로 일관된 여성운동은 단일 정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여성을 차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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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6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26 15:5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무성애자 여성이 있으니까요. 레드스타킹 모임에 참석한 이후부터 성소수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실이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