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럼번 달섬 세계고전 8
제시 레드먼 포셋 지음, 박재영 옮김 / 달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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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반도에 살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종 문제’이다.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고 배워 왔고, 이것을 또한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하지만 한국인이 외국에 가면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인종 차별을 당한다. 우리나라가 몇 년 전부터 다문화 국가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인종 차별이 심각하지 않다고 낙관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학교에서 차별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한다. 피부색으로 인한 (동급생과 교사의) 놀림, 타민족 및 문화에 대한 교사의 편견 등이 그 원인이다. 한국인도 아시아계 유색인인데 우리나라에 이주해온 다른 아시아계 유색인들을 무시하고 차별한다. 예를 들면 3D 업종에서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건강 위험성이 큰 분야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의료적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임금 체불과 인권 유린 등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는다. 한국인의 유색인 차별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교묘하게 작용하고 있다.

 

유색인을 차별하는 우리 사회에서 백인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비(非)백인에게 인종 차별적 시선을 보낸다. 특히 흑인이나 동남아 출신 사람들에게 그렇다. 이들이 지하철을 타면 옆자리에 앉는 것조차 꺼린다. 반면 백인에게는 유독 친절하게 대한다.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 방송 프로그램에 유럽 백인 여성이 출연했다. 그녀는 지하철 좌석에 앉았고, 옆에 있던 할머니는 그녀에게 영어로 말 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흰 피부의 여성을 ‘미국 여성’인 줄 알고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유럽인 여성은 할머니에게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대답하면서 자신은 미국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활동한 혼혈 연예인 또는 그들의 가족은 대부분 백인 출신이다. 백인계 혼혈인은 선망의 대상이다. 이들은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대부분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영어 콤플렉스’가 있는 ‘토종’ 한국인을 오히려 주눅 들게 한다. 미국의 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10대’에 포함된 한국인 최초 흑인 모델 한현민은 학창 시절에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너, 혼혈이냐?”고 놀림 섞인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유럽계 백인과 아프리카계 흑인이 만나서 태어난 혼혈인은 ‘혼혈인 차별’과 ‘흑인 차별’이란 이중 차별을 겪는다. 이 혼혈인이 여성이라면, ‘여성 차별’까지 겪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보인 제시 레드먼 포셋(Jessie Redmon Fauset)의 장편소설 《플럼 번(Plum Bun)미국에서 태어난 유색인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제시 포셋은 듀보이스(W. E. B. Du Bois)[주]를 만나 흑인 민권 운동에 참여했다. 그녀는 듀 보이스가 만든 잡지의 편집장을 맡아 흑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고, ‘할렘 르네상스(Harlem Renaissance, 미국 뉴욕의 흑인 지구 할렘에서 유행한 흑인예술문화 부흥 운동)로 알려진 1920년대 흑인 문학의 탄생과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플럼 번은 마른 자두가 발라진 구운 빵을 말한다. 플럼 번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유색인 여성 안젤라 머레이(Angela Murray)의 성격을 상징한다. 안젤라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외모의 유색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닮은 하얀 피부지만, 그녀의 동생 버지니아(Virginia)는 까만 피부다. 안젤라는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닌 자신의 어중간한 유색인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면서 성장한다. 그녀는 벌써 어린 나이에 ‘백인 정체성’의 장단점을 파악한다. 안젤라가 생각하는 백인 정체성의 장점은 하얀 피부색 덕분에 백인으로서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다. 반면 단점은 남들 앞에 백인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혼혈 유색인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공개해선 안 된다. 그래서 안젤라는 뉴욕에서 생활할 때 유색인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스페인 출신 백인 여성을 떠올리게 하는 가명을 쓴다. 그 당시에 유색인도 흑인과 같이 차별받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린 안젤라는 시장을 가다가 흑인 아버지와 동생을 만날 뻔했는데, 그녀는 아버지와 동생에게 아는 척하지 않는다. 이러한 안젤라의 태도는 자신을 흑인과 상종하지 않는 백인인 것처럼 철저하게 행동하기 위한 의도적인 ‘패싱(passing)이다.

 

안젤라는 행복한 삶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그녀가 원하는 ‘행복한 삶’이란 ‘백인 중산층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안젤라는 백인 남자와 결혼하여 풍족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녀의 욕망은 달콤하다. 《플럼 번》의 역자에 따르면 ‘플럼 번’은 안젤라의 달콤한 욕망을 뜻한다. 이 소설에서 안젤라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그녀는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그녀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는 흑인을 경멸하는 백인이다. 안젤라는 이 백인 남자가 보는 앞에서 ‘백인 여성’으로 행동하기 위해 또다시 동생의 면전에 대고 무시(패싱)한다. 이처럼 《플럼 번》은 하얀 피부색의 순수혈통 백인을 선호하는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혼혈 유색인의 위태로운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백인’이 아닌 혼혈 유색인은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백인과 함께 극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등 여러 부당한 차별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안젤라는 하얀 피부색만 믿고 백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백인인 척하는 자신의 패싱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자신이 추구한 행복한 삶은 결국 백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안젤라가 백인 행세를 하면서 바라본 거울은 깨끗하고 참된 거울이 아니라 얼룩이 묻은 더러운 거울이다. 그래서 여기에 자신을 비추더라도 그녀가 보게 되는 것은 하얀 피부가 아니라 ‘백인 정체성’이다.

 

이야기 곳곳에 그 당시에 일어날 법한 인종 차별 상황들이 묘사되어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화가 났던 장면은 미술학교에 다니던 안젤라가 ‘아웃팅(outing, 다른 사람이 당사자 동의 없이 성소수자 또는 차별받는 특정 대상임을 밝히는 행위) 당하는 상황이다.

 

 

 

 모델 그리기 수업이 있는 오후였다. 모델이 들어왔다. 살짝 예쁘면서 심술궂은―다소 음산하고 비열한 기질이 넘치는―얼굴에 키가 작고 늘씬한 편에 속하는 젊은 여자였다. 모델은 안젤라와 시선이 맞닿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집요하면서 회의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일찍이 안젤라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에스더 배일리스였다.

  에스더가 표독스럽게 웃었다. “저기 유대인 여자 옆에, 안젤라 머레이 아닌가요?”

  쉴즈(미술학교 강사-cyrus 주)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여자는 유색인이에요. 비록 그녀가 말하지 않았겠지만, 그렇지만 나는 알아요. 지금 받는 것보다 열 배를 준다면 모를까, 저 애를 위해 포즈를 취하지는 않겠어요. 네가 무슨 백인 숙녀라도 되는 것처럼 거기 앉아서 나를 그려!

  어이없고 당혹스러웠던 쉴즈 씨는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안젤라가 정말 유색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매이블. 생긴 것도 그렇고 행동하는 것도 딱 백인 숙녀거든. 글쎄, 안젤라가 유색인일 리가 없어. 내가 유색인 여자를 몰라볼 것 같아?”

쉴즈 씨에게는 그것이 민감하면서도 수치스러운 문제 같았다.

  “유색인이었다면, 나에게 말을 했어야지.”

쉴즈 씨가 옹색하게 말을 불쑥 뱉었다.

  “하지만 머레이 양, 당신이 유색인이라는 말을 나에게 하지 않았지.”

안젤라는 친숙한 연극의 한 장면을 리허설하는 것 같았다.

  “유색인요! 당연히 내가 유색인이라고 말하지 않았죠. 왜 말해야 하죠?”

 

 

(77~79쪽, 밑줄 친 문장은 글쓴이가 강조하기 위해 한 것임)

 

 

 

에스더 베일리스는 안젤라와 같은 학교에 다닌 백인 여성이다. 학생 시절 에스더는 안젤라를 무시한 백인 학생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안젤라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그녀가 유색인이라고 공개해버린다. 이 장면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 독자가 과연 있을까?

 

혹자는 이 소설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흑인이 오래전부터 차별받으면서 살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인을 파렴치한으로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으나 《플럼 번》은 단순히 ‘백인 대 흑인(유색인)’으로 나누어지는 이분법적 인종 구분에 사로잡힌 사회 문제만 비판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장면이라 독자들이 지나칠 수 있는데, 소설 후반부에 유색인이 가난한 백인을 무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안젤라는 파리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았던 옛 집을 둘러본다. 그 집에 유색인 여자가 살고 있다. 그녀는 집 안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었고, 유색인 여자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으나 유색인 여자는 “가난뱅이 백인 쓰레기와는 볼 일이 없어”라고 투덜거린다.

 

(387~388쪽, 밑줄 친 문장은 글쓴이가 강조하기 위해 한 것임)

 

 

 

인용한 문장의 원문을 직접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백인 쓰레기’의 원문은 ‘White Trash(화이트 트래쉬)일 가능성이 있다. 화이트 트래쉬는 미국의 북부 백인들은 자신들보다 가난한 남부 백인을 낮춰 부를 때 쓰는 속어다. 백인 중심 사회에 차별받는 유색인 여자가 자신보다 가난하고 못사는 백인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장면은 흑인과 유색인은 ‘항상 차별받는 피해자 또는 사회적 약자’라고 고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정체성 문제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가끔 인종 문제에 접근할 때 우리는 ‘언더도그마(underdogma)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언더도그마는 힘의 차이를 근거로 선악을 판단하려는 오류이며 맹목적으로 약자는 착하고, 강자는 악하다고 인식하는 현상이다. 흑인과 유색인을 사회적 약자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만 보게 되면, 흑인/유색인보다 못사는 백인이나 또 다른 흑인/유색인이 차별받는 상황을 외면하게 된다. 일상적인 차별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따라 ‘나’라는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차별받는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때로는 누군가를 차별하는 가해자도 될 수 있다. 《플럼 번》은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중산층 중심주의가 어떻게 혐오를 작동시키며 한 인간의 내면을 분할시키는지를 정교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소설이다.

 

 

 

 

 

[주] 필자가 쓴 듀보이스의 저서 《니그로》(삼천리, 2013) 서평에 듀보이스의 업적을 간략하게 소개된 내용이 있다.

https://blog.aladin.co.kr/haesung/10098157

 

 

※ Trivia

 

 

* “으응, 내가 하께요.” (41쪽)

 

→ “내가 할게요.”의 오식.

 

 

 

* “행복을 거의 잡았었는데, 앙젤, 혹시 브라우닝의 <로마 캄파냐 평온의 두 사람> 읽어 봤어?” (153쪽)

 

→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시 『로마 캄파냐 평원의 두 사람』의 오식.

 

 

 

* “끝까지 사는 거야.” 혹독한 운명이 참으로 명랑한 삶, 그 속에서 부닥치는 힘든 일들을 생각했다. 어머니 아버지의 인종, 흑인들을 생각했다. (331쪽)

 

→ ‘어머니 아버지’라고 고쳐 써야 한다.

 

 

*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플럼번』과 같은 시기에 출간된 넬라 라슨(Nella Larsen)의 『패싱(Passing)』이라는 소설일 것이다. (작품 해설, 412쪽)

 

→ 『플럼번』은 1928년에, 『패싱』은 1929년에 발표되었다. 플럼번』과 같은 시기에 나온 넬라 라슨의 소설은 『퀵샌드(Quicksan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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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0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22 11:59   좋아요 0 | URL
네,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접근할 때 ‘사회적 약자=차별 및 불평등 피해자’라는 공식에 끼워 맞추면 안 됩니다. 역차별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현재 차별과 불평등 문제는 과거에 비해 복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