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충남 당진의 한 제철소에 설치된 섭씨 1,600도가 넘는 용광로 속에 29살 청년이 추락하여 사망했다. 추락 방지 장치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설치되었어도 청년 노동자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청년 노동자의 비참한 죽음을 보도한 기사에 ‘제페토’라는 이름의 누리꾼이 조시(弔詩) 형식으로 된 댓글을 남겼다. 그 댓글이 바로 『그 쇳물 쓰지 마라』다.

 

 

 

 

 

 

 

 

 

 

 

 

 

 

 

 

 

 

* 제페토 《그 쇳물 쓰지 마라》 (수오서재, 2016)

 

 

 

 

 

광염(光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냐.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그 쇳물 쓰지 마라』 전문, 25쪽)

 

 

 

 

이 시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고, 누리꾼들은 청년 노동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시를 공유했다. 그러나 제페토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용광로는 여전히 뜨겁다.

 

 

 

 

 

 

 

 

 

 

 

 

 

 

 

 

 

 

 

*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돌베개, 2019)

 

 

 

하루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많은 노동자를 만난다. 그리고 우리가 늘 보는 일상용품이나 건물 속에도 노동자들이 있다.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흔적, 즉 우리가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뼈와 피와 살이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노동을 미화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만든 일상용품 속에 그들의 ‘피, 땀, 눈물’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말이 노동자들의 숭고한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의 말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쉬지도 않고 일하는, ‘살아있는’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 대다수는 힘든 노동을 해본 적이 없는 인텔리에 속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노동은 이상적이다. 그러므로 노동을 미화하는 말은 현재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노동을 미화하는 인텔리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침묵한다. 기업은 노동자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덜 흘리면서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을 만드는 일에 소극적으로 나선다. 이러면 노동자들이 주로 투입되는 작업장의 개선은 더디고, 그들의 노동은 위험한 상태로 진행하게 된다.

 

 

 

 

 

 

 

 

 

 

 

 

 

 

 

 

 

 

 

 

* [e-Book] 하야마 요시키 《단편을 맛보다, 하야마 요시키 편》 (책보요여, 2018)

* 하라 겐이치 《하야마 요시키로의 여행》 (어드북스, 2010)

 

 

 

 

노동자의 시선으로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바라보고 묘사한 작가가 있다. 그는 바로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1894~1945)다. 그의 문학을 ‘일본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야마는 일본의 명문대인 와세다 대학에 입학했으나 화물선 수습 직원으로 일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한다. 그 후 시멘트 공장에 일하게 되는데, 그 공장에서 노동자가 화상을 입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 일을 계기로 하야마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했으나 해고당하는 바람에 노동조합 결성이 무산된다. 그러나 하야마는 노동조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19년 이후 일본에 확산한 노동조합주의 운동의 선봉에 서는 프롤레타리아 작가로 인정받는다.

 

하야마의 소설은 ‘노동자’로서 살았던 작가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하야마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단편소설 『시멘트 통 속의 편지』‘알지 못하는 노동자의 죽음의 흔적’을 처음으로 언급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댐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는 일하다가 우연히 시멘트 통 속에 들어있는 작은 나무 상자를 발견한다. 나무 상자 속에 누군가가 입었던 낡고 헤진 작업복과 편지가 들어 있다.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저는 N 시멘트 회사의 시멘트 자루를 만드는 여공입니다. 재 애인은 분쇄기에 돌을 넣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0월 7일 아침, 커다란 돌을 넣다가, 그 돌과 함께 분쇄기 속에 빠져 버렸습니다.

 

동료들이 구해 주려고 했지만, 재 애인은 물속에 잠기듯 돌 더미 아래로 사라졌습니다. 돌과 애인의 몸은 함께 부서져 붉은 조각돌이 되어 컨테이너 벨트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벨트를 따라 분쇄 통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속에서 강철 탄환과 같이, 잘게 잘게, 저주와도 같은 격한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런 다음 불구덩이로 들어가 훌륭한 시멘트가 되었습니다.

 

뼈도, 살도, 영혼도, 완전히 가루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 날, 이 편지를 써서 이 통 속에 살짝 넣어 두었습니다.

 

당신은 노동자인가요? 당신이 노동자라면, 저를 불쌍히 여겨 답장해주세요.

 

이 통 속의 시멘트는 어떤 곳에 쓰였나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곳에 쓰였나요? 당신은 미장이인가요, 건축가인가요? 저는 제 애인이 극장 복도나 커다란 저택의 담벼락이 되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신이 노동자라면, 이 시멘트를 그런 곳에 쓰지 마세요.

 

[중략]

 

그이는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막 26살이 된 젊디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이에게 하얀 수의를 입히는 대신, 시멘트 자루를 입히네요! 그이는 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회전 가마 속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중략]

 

만약 당신이 노동자라면, 제게 답장해 주세요. 그 보답으로 제 애인이 입은 작업복 조각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감싸고 있는 천이 그 조각입니다. 이 조각에는 돌가루와 그이의 땀이 배어 있습니다. 그이가 이 작업복을 입고 저를 얼마나 꼭 껴안아 주었는지 모릅니다. 부탁합니다. 이 시멘트를 쓴 날짜와 상세한 주소, 어떤 곳에 썼는지, 그리고 실례가 아니라면 당신의 성함도, 꼭꼭 알려주세요. 당신도 부디 몸조심하세요. 안녕히.

 

 

(박소정 옮김, 『시멘트 통 속의 편지』 중에서, 11~14쪽, 밑줄은 글쓴이가 한 것임)

 

 

 

하야마는 편지에 있는 여공의 목소리로 죽으면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고발한다. 그러면서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당신이 노동자라면, 이들을 기억해달라고. 여공의 편지는 노동자가 아닌 독자들도 노동 문제에 공감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편지의 여운을 느낀 독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애인, 가족, 친구도 ‘세상이 알지 못하는 (죽은)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 [절판, No Image] 정태원 편역 《공포 특급 6: 일본 편》 (한뜻, 1996)

 

 

 

 

90년대에 『시멘트 통 속의 편지』가 일본 공포 문학 선집에 수록된 적이 있다. 아마도 죽은 노동자의 몸이 기계에 분쇄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내용 때문에 공포 문학으로 분류된 것 같은데, 엄연히 말하면 공포 문학으로 볼 수 없다. 『시멘트 통 속의 편지』의 장르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다.

 

하야마 요시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에서 하야마에 대판 평가가 엇갈린다. 한때 ‘좌파 작가’라는 이유로 하야마의 작품들이 외면당했고, 한편으로는 만주를 통치하려는 일본 국가 정책에 지지한 작가라고 비판받았다. 하야마는 일본의 만주 통치 정책(일본은 자신들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에 일본인들의 이민을 추진하는 ‘만주 개척단’을 만들었다)에 지지하여 자신의 외동딸과 함께 만주로 향했다. 일본이 패전하면서 하야마는 딸과 함께 일본으로 귀국하지만, 귀국하던 중 열차에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하야마 요시키로의 여행》(어드북스)여행기 형식으로 된 ‘하야마 요시키 평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작가는 하야마의 흔적이 있는 장소들을 찾아가는데, 직접 하야마의 외동딸을 만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생소한 하야마의 삶과 노동문학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이다. 《단편을 맛보다, 하야마 요시키 편》 (책보요여) 는 하야마의 단편소설 다섯 편이 수록된 선집이다. 하야마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시멘트 통 속의 편지』와 함께 추천하고 싶은 단편은 『만복추상(万福追想)이다. 일본에 강제로 연행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겪는 아픔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한국인인가? 당신이 한국이라면 『만복추상』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 Trivia

 

* 《하야마 요시키로의 여행》 155쪽 역주루쉰(魯迅)의 출생연도가 ‘1981’로 잘못 적혀 있다. 그는 1881년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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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14 17:35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언제 생길지 모르는 산업재해를 가볍게 여기는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안전 불감증은 고용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노동자들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레삭매냐 2019-08-1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인터넷 언론을 통해 본 청년들을
위험한 노동의 최전선에 내모는 현실
에 대한 기사를 읽어서 그런지 더 와
닿는 포스팅이었습니다.

소수의 자본가 계급을 제외하고는 거
의 모든 이들이 노동자일 텐데, 자신
의 본질 혹은 본성을 부인하는지 이해
가 되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하야마 요시키라는 작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네요.

cyrus 2019-08-14 17:37   좋아요 0 | URL
‘노동’은 힘든 일을 떠올리게 하고, 좌파들이 선호하는 용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사실 저도 그렇고 대부분 사람은 ‘노동’보다는 ‘근로’라는 말을 선호하죠. 그래서 노동자의 처우 문제를 남 일처럼 생각하기 쉬워요.

blanca 2019-08-14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로 읽은 기억이 나요. 감정을 이입하면 너무 괴로워서... 오늘 엘리베이터 사고로 또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 자꾸 미국 이야기 하는 것 안 좋아하지만 상대적으로 육체 노동을 경시하는 풍조가 유교 문화권엔 팽배한 것 같아요. 어쩌면 가장 존중받고 대우 받아야 할 직업군인데 말이에요. 시로 죽어간 익명의 청년의 영혼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기를 기원합니다.

cyrus 2019-08-15 10:51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대로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풍조에, 노동자의 건강권과 재해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겹쳐져서 육체노동을 기피하는 구직자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노동자가 사망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죽은 노동자를 추모하는 마음보다는 저런 일은 위험하고 힘들다고 생각하기 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