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읽다 만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시리즈’를 다시 읽고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셜록 홈스 시리즈 읽기는 여러 명의 번역가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전투적인 독서’였다. 내가 결투에 사용한 무기는 번역기와 영어사전이 전부다. 하지만 번역가들은 내 결투에 응하지 않았다. 하긴 이런 조용한 블로그에 전문적으로 글 쓰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자주 접속할 일은 없다. 언젠가 우연히 검색하다 내 글을 보고 딴죽을 걸겠지.

 

이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책이 내 심기를 건드린다. 문제의 번역본이 절판되었으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책은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 코난 도일, 정태원 옮김 《셜록 홈즈 전집 8: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시간과공간사, 2002)

 

* 코난 도일, 정태원 옮김 《셜록 홈즈 전집 7: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시간과공간사, 2013)

 

* 코난 도일,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승영조 옮김 《주석 달린 셜록 홈즈 4》 (현대문학, 2013)

 

 

 

 

《셜록 홈스의 마지막 인사(His Last Bow)는 1917년에 발표된 단편집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코난 도일세 편의 단편집(《셜록 홈스의 모험》, 《셜록 홈스의 회상록》, 《셜록 홈스의 귀환》)을 썼다. 그는 홈스 시리즈를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서 홈스가 사망하는 이야기(『마지막 사건』, 《셜록 홈스의 회상록》에 수록)를 끝으로 홈스 시리즈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홈스 시리즈 마지막 단편소설이 발표되자 엄청난 파문이 일어났다. 영국과 미국의 홈스 팬들(홈 동생들)은 ‘우리 홈(스)을 살려내라’면서 항의하는 내용의 편지를 도일에게 보낸 것이다. 홈 동생들의 성화에 못 이긴 도일은 장편 소설 《바스커빌 가의 개(The Hound of the Baskervilles)을 발표했지만, 이 작품은 『마지막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홈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홈 동생들은 ‘우리 홈의 생전 모습’이 아닌 ‘(죽지 않고) 살아있는 우리 홈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결국 도일은 홈스 시리즈를 다시 쓰기로 했고, 1905년에 홈스가 부활하는 단편이 실린 《셜록 홈스의 귀환》을 발표했다. 홈 동생들은 살아 돌아온 홈스를 격하게 환영했지만, 정작 도일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홈스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래서인지 《셜록 홈스의 마지막 인사》는 전작에 비하면 작품의 질이 좋지 못하다. 전작에서 이미 썼던 서사 전개와 약간 유사한 작품(『붉은 원』, 『프랜시스 카팩스 여사의 실종』)이 있으며 작품 곳곳에 ‘설정 오류’로 보이는 내용도 있다. 그리고 전작과 달리 홈스가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는데, 용의자의 정체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거나(『브루스 파팅턴 호 설계도』) 자신이 맡은 사건의 유력한 범인을 놓치기도 한다(『프랜시스 카팩스 여사의 실종』).

 

내가 읽은 《셜록 홈스의 마지막 인사》 번역본은 故 정태원 씨가 번역한 것이다. 2002년에 나온 이 번역본은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데, 이상한 점은 ‘개정판’과 같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정판이 나왔으면 당연히 구판은 절판되어야 한다. 2002년 초판 번역본은 ‘구판’이다. 구판은 양장본이고, 개정판은 반양장본인데 가격은 같다. 그렇다면 이 두 권의 번역본 중 무엇을 골라야 할까? 그런데 굳이 두 권 중에 무조건 골라야 하나? 나 같으면 두 권 모두 고르지 않겠다. ‘완역본’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 코난 도일, 바른번역 옮김 《그의 마지막 인사》 (코너스톤, 2016)

 

 

 

구판에 왓슨(John H. Watson) 박사의 서문이 누락되어 있다. 왓슨 박사는 ‘홈스의 (약간 머리가 둔한) 조수’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홈스가 해결한 사건들(해결하지 못한 사건들도 포함된다)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기록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당연히 왓슨 박사의 서문을 실제로 쓴 사람은 도일이다. 개정판에도 왓슨 박사의 서문이 없다. ‘서문이 없는 완역본’은 완역본이라 할 수 없다. 다른 번역본을 살펴보니 추리소설 전문가 박광규 씨가 감수한 ‘코너스톤’ 판본에도 서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오역으로 보이는 문장이 있다. 다음 문장은 『위스테리아 로지(Wisteria Lodge, ‘등나무 별장’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에서 홈스가 자신의 수사에 만족감을 드러내면서 하는 말이다.

 

 

 전보를 읽고 수첩에 넣어 두려던 홈즈는 내가 궁금해 하는 모습을 보고는 웃으면서 전보를 건네주었다.

“일이 아주 재미있게 되어 가는군.” 홈즈가 말했다.

 

(정태원 옮김, 구판 30쪽)

 

 Holmes read it and was about to place it in his notebook when he caught a glimpse of my expectant face. He tossed it across with a laugh.

“We are moving in exalted circles,” said he.

 

 

‘exalted’는 ‘상류층’ 또는 ‘너무나 기쁜(행복한)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다. 아마도 정태원 씨는 후자의 의미에 맞춰서 문장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홈스는 기이한 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하는 것을 즐기는 괴팍한 인물이라서 사건을 수사하는 내내 기분이 들떠 있고 즐거워한다. 그렇지만 “We are moving in exalted circles”는 홈스 본인의 시점에서 말하고 있는 문장이 아니다. 이 문장의 주어 ‘We’는 홈스와 왓슨을 의미한다. ‘exalted circles’는 서로 비슷한 이해관계나 직업, 계층 등을 이유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우린 상류사회를 파고들 거야”(승영조 옮김, 주석판 33쪽)라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합하다.

 

 

 

 

 

 

 

 

 

 

 

 

 

 

 

 

 

* 박상우 《박상우의 포톨로지》 (문학동네, 2019)

*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20세기북스, 2018)

* [절판] 콜린 비번 《지문》 (황금가지, 2006)

 

 

 

『붉은 원』의 역주(구판 108쪽)지문 식별 시스템의 기초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인 ‘프랜시스 갤턴’이 언급되어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쓴다면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이다. 골턴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외사촌 형이며, 그는 인종 분류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시작한 연구는 특정 인종을 촬영한 합성사진으로 지구에서 우수한 인종, 즉 ‘평균인’에 부합하는 인종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골턴은 범죄자의 얼굴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고 범죄자의 특징을 알아내기 위해 합성사진을 이용해 인체를 측정했다.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이 따로 있다는 그의 생각은 ‘우생학(eugenics)이라는 학문이 발전하게 만든 씨앗이 되었다. 골턴이우생학의 아버지’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너무 많이 알려진 탓에 대부분 사람은 그가 지문 식별 시스템을 고안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범죄학의 역사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 골턴이다.

 

골턴과 그 밖의 여러 인물들이 지문 식별 시스템을 고안하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는 책으로는 절판된 《지문》(황금가지)이 있다. 범죄 수사의 기초 증거로 사용되는 지문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평균의 종말》(20세기북스)《박상우의 포톨로지》(문학동네)는 과학(전자의 책은 통계학, 후자의 책은 사진술)이 인종 차별 담론을 형성하는 데 어떻게 개입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사이비 이론이 학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의 중심에 골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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