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 - 여성의 생물학과 건강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
그라지나 자시엔스카 지음, 김학영 옮김 / 글항아리사이언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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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피트니스 센터는 운동만 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 수영장, 사우나, 라운지 등 여러 가지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런 곳에서 열심히 운동하면 몸이 더욱 건강해질 것만 같다. 우리나라에서 ‘피트니스(fitness)는 흔히 ‘체력’ 또는 ‘건강 상태’와 같은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피트니스는 원래 ‘적합성’, ‘적응도’를 뜻하는 단어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말하는 적합성과 적응도는 어떤 개체가 환경의 변화에 맞춰 적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성질 또는 적응하는 능력을 뜻한다. 사실 진화론에서 ‘적응’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원문은 ‘adaptation’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적응해 진화된 모습으로 지구 곳곳에 오랜 세월을 버텨 살아왔다.

 

그렇다면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진화해온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생물인가? 왠지 이런 말을 들으면 마치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승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인간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인간이 진화상 가장 성공한 존재라는 당연한 믿음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안다.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은 인간은 성공의 축배를 들 자격이 없다.

 

진화는 늘 예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변하는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다. 아직도 당신이 진화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진화’를 ‘진보’의 동의어로 보고 있는 것이다. 진화가 모두 진보는 아니다. 다윈이 생각한 진화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할 뿐이다. 그런데 다윈의 후계자로 자처하는 진화론자들은 진화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하는 일관된 과정인 것처럼 설명했다. 이러한 진화의 의미에 대한 오해는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만든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용어가 퍼지면서 시작됐다. ‘적자생존’이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사회학자가 제시한 진화론이 생물학자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자연 선택과 성 선택)을 완전히 제쳐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적자생존을 뜻하는 원문에 ‘fittest’가 들어 있다. ‘적자(適者)’는 ‘적당한 사람’ 또는 ‘적합한 사람’을 뜻하지만, 종종 적자생존을 ‘약육강식’의 동의어로 보는 사람들은 ‘적자’를 ‘환경에 잘 적응하는 능력을 갖춘 강력하고 우수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 탓에 대부분 사람은 환경 적응도가 높은 강력한 존재는 반드시 살아남으며 그렇지 않은 존재, 즉 환경 적응도가 떨어지는 존재는 퇴보하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고 오해한다. 적자생존 이론은 인간을 ‘진화에 성공한 고등 생물’로 등극시켜준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지금도 다윈주의자들은 ‘진화=진보’라는 잘못된 등식을 해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진화=건강’이라는 등식도 해제해야 한다. ‘진화=건강’ 등식을 믿는 사람은 현대인이 과거 선조들보다 몸이 더 튼튼하며 건강하게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이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의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건강’과 진화적 ‘적응도(fitness)’는 동의어가 아니다.  (10쪽)

 

 

저자의 말이 맞다. 진화는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진화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겪어야 하는 경험이다.

 

《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은 여성의 몸과 생식(reproduction) 활동을 진화생물학 관점으로 설명한 책이다. 흔히 생식을 ‘암수가 만나 짝짓기를 해서 자손을 낳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생식을 ‘번식’과 같은 의미로 보기도 한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너무 단순한 설명은 생식의 의미를 협소하게 보게 만든다. 이 책에서 살펴보는 여성의 생식은 임신과 출산까지 보는 것이 아니라 ‘출산한 아이를 돌보는 일’까지도 포함한다. 여성의 몸은 자손의 출산과 양육에 초점이 맞춰진 채 진화해왔다. 그러나 여성이 아이 한 명을 낳고 키우기 위해 할당할 수 있는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다. 여성은 생식과 생존,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진화한 여성의 몸은 건강 상태가 나빠지기 쉽다. 따라서 저자는 여성에게만 특정 질환(자궁암, 유방암, 산후우울증 등)이 일어나는 이유를 진화의 결과에서 찾는다. 과거의 여성은 한평생 적어도 평균 잡아 3회 이상 임신을 경험했다. 임신과 수유 중에는 배란 과정이 중단되고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나오지 않는다. 과거 여성보다 임신 횟수가 적은 현대 여성은 여성 호르몬에 더 많이 노출된다. 호르몬에 과도하게 노출된 여성의 생식기관 세포들은 변이를 일으키고 암세포로 변형될 수 있다.

 

여성의 몸과 생식 활동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은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낡은 편견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가 아니다. 이 글에 있는 “여성의 몸은 자손의 출산과 양육에 초점이 맞춰진 채 진화해왔다”라는 문장을 보면서 내가 ‘여성을 아이만 낳는 기계’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또 여성의 몸이 건강이 나빠지기 쉽다고 해서 ‘여성은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약한 존재’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혹시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진보’를 생각하지 말고, ‘진화’의 진짜 의미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진화’에 겹쳐진 ‘진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라는 말이다.

 

우리 몸은 현대인의 생활방식보다는 과거 원시인의 삶의 방식에 맞추어져 있다. 선사시대 이래 20세기 직전까지도 보통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루 끼니 걱정하고 농사짓고 아이들 키우며 고되게 살아왔다. 산업혁명과 근대화 이후 인간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너무나 빠르게 변화시켰다. 그러나 우리 몸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진화의 과정은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생활습관을 원시인의 생활방식에 근접하게 맞추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며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우리 몸은 늘 건강한 상태로 완벽하게 유지하면서 진화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이 자명한 진리를 접한 사람들은 삶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게 만드는 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몸에 대한 진실이 오히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삶을 행복과 성공의 필요조건으로 삼는 건강 중심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몸’은 없다. 완벽한 몸은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화된 개념에 불과하다. 현실의 몸은 변화하는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위태로운 몸(precarious body)[주]이다.

 

 

 

[주] ‘위태로운 몸’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쓴 글의 제목 ‘위태로운 삶(precarious Life)’을 변용해서 만든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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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 16: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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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7-24 06:01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을 자주 사용하게 되면 목, 허리에 변형이 생긴다고 해요. 몇 십년 후에는 거북목 아닌 사람 찾기가 힘들거예요.. ^^;;

2019-07-24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