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검둥이 삼보(Little Black Sambo)라는 제목의 동화를 아시는가? 스코틀랜드 여성 헬렌 배너만(Helen Bannerman, 1862~1946)이 1899년에 발표한 동화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헬렌은 남편과 함께 의료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배너만 부부의 어린 두 딸들도 인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헬렌은 피서지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이 있는 동화 ‘꼬마 검둥이 삼보’를 썼다.

 

 

 

 

 

 

 

 

 

 

 

 

 

 

 

 

 

 

* 헬렌 배너만 《꼬마 깜둥이 삼보》 (동서문화사, 2005)

* 헬렌 배너만, 허문선 엮음, 홍선지 그림 《꼬마 삼보 이야기》 (계림닷컴, 2004)

* [e-Book] 헬렌 배너만, 플로렌스 화이트 윌리엄스 그림 《꼬마 삼보 이야기》 (바로이북, 2017)

 

 

 

 

‘꼬마 검둥이 삼보’는 1980년대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동화다. 동화 내용을 들려주면 “아! 기억 나, 본 적이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삼보는 아빠 점보(Zambo)와 엄마 맘보(Mambo)에게 빨간 코트, 파란 바지, 초록 우산, 보라색 신발을 선물로 받는다. 기분이 좋아진 삼보는 코트와 바지를 입고, 보라색 신발을 신고, 초록 우산을 들고 밀림을 산책한다.

 

 

 

 

그런데 삼보는 밀림에서 호랑이를 만난다. 겁에 질린 삼보는 살기 위해서 코트를 벗어 호랑이에게 넘겨준다. 계속해서 밀림을 지나던 삼보는 다른 호랑이들을 한 마리씩 만나면서 바지, 신발, 우산 순으로 빼앗긴다. 네 마리의 호랑이들에게 선물을 다 빼앗긴 삼보는 벌거숭이 상태가 된다. 호랑이들은 각자가 빼앗은 물건으로 멋을 부리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멋진 호랑이라고 생각한다. 호랑이들은 누가 가장 멋진 호랑이인지 따지면서 싸우게 된다. 삼보는 으르렁거리면서 서로를 공격하는 호랑이들이 자신을 잡아먹는 줄 알고 야자나무 위로 올라간다.

 

 

 

 

 

 

삼보는 야자나무 위에서 호랑이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한다. 호랑이들은 삼보가 올라간 야자나무 주위를 서로 꼬리를 잡으려고 빙빙 돈다. 호랑이들은 그렇게 계속 꼬리를 물고 뱅뱅 맴돌다가 결국에는 몸이 녹아버려 버터가 되어 버린다. 호랑이가 녹아서 생긴 버터의 맛에 감탄한 삼보는 항아리에 버터를 담아 집에 돌아온다. 맘보는 버터로 팬케이크를 만들고, 배가 고픈 삼보는 팬케이크 169개를 먹어 치운다. 

 

 

 

 

 

 

 

 

 

 

 

 

 

 

 

 

 

 

 

* 요네하라 마리 《미식 견문록》 (마음산책, 2017)

* [구판 절판] 요네하라 마리 《미식 견문록》 (마음산책, 2009)

 

 

 

이 동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호랑이들이 버터로 녹아내리는 모습이다. 버터를 넣어 만든 팬케이크도 잊을 수가 없다. 러시아어 통시 통역사이자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米原万里)《미식 견문록》에서 어렸을 때 읽은 ‘꼬마 검둥이 삼보’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이 동화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을 들려준다. 그녀는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를 볼 때마다 동화에 나온 팬케이크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어른이 되면서 ‘꼬마 검둥이 삼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기억한 동화 속 삼보의 모습은 곱슬머리에 두꺼운 입술을 가진 아프리카 원주민의 외모이기 때문이다. 사실 배너만이 그린 삼보의 모습은 인도인의 외모에 가깝다. 그런데 ‘꼬마 검둥이 삼보’가 미국과 일본에서 번역되면서 삼보의 모습은 흑인의 외모로 그려지게 된다. 대부분 사람은 흑인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곱슬머리와 두꺼운 입술을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이러한 인종적 특징은 흑인을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인종차별적인 이미지다.

 

 

 

 

 

 

 

 

미국 출신의 삽화가 플로렌스 화이트 윌리엄스(Florence W. Williams, 1895~1953)가 그린 맘보의 외모를 보라. 미국 남부 백인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후덕한 흑인 유모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미국 남부 지역에서는 흑인 유모를 비하하는 의미를 가진 ‘매미(mammy)라는 단어가 거리낌없이 사용되었는데, 못생기고 뚱뚱한 흑인 여성을 가리킬 때 쓰이기도 한다.

 

‘꼬마 검둥이 삼보’의 줄거리를 보자마자 이 동화 속 장면들이 어색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인도를 배경으로 쓴 동화에 인도에 자라지 않는 야자나무와 인도인들이 먹지 않는 팬케이크가 나오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팬케이크 대신에 인도의 전통 빵 ‘난(Naan)’을 만들어 먹는다. 동화에 나오는 호랑이 버터는 유럽식 버터가 아니다. 소의 젖으로 만든 인도식 버터인 ‘기(ghee)와 유사하다. 아마도 동화 원작자인 헬렌은 인도 음식이 낯선 아이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을 만한 음식이 무엇일지 고민했을 것이고, 그래서 간식으로 자주 나오는 팬케이크로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꼬마 검둥이 삼보’는 영국과 미국 아이들에게 사랑받은 동화였으나 인종차별적인 묘사가 문제가 되어 추천 도서 목록에 빠지게 되었다. 동화 주인공을 단지 흑인이라고 문제가 된 것이 아니다. 흑인의 인종적 특징을 ‘과장되게’ 묘사한 것이 문제다. 그런데 어째선지 국내에 번역된 동화 속 삼보의 모습은 과거에 흑인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에 만들 법한 흑인의 외모와 비슷하다. 이 책을 번역한 동서문화사는 요즘에 사용하면 안 될 ‘껌둥이’라는 표현을 버젓이 책 제목으로 내세웠다. 책 앞표지에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책’이라는 홍보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꼬마 검둥이 삼보’를 읽고 쓴 독자 서평 내용이다. 어떤 독자는 “흑인들의 지질한 열등감 때문에 한동안 빛을 보지 못한 동화”라고 쓰면서 별 다섯 개를 줬다. 왜 이 동화가 인종 차별을 조장하는 책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 2018)

 

 

 

미국의 시인이자 페미니스트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는 어린 시절에 도서관 사서가 ‘꼬마 검둥이 삼보’를 읽어주는 장면을 회상하면서 인종 차별에 무관심한 사서가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잊지 못한다.

 

 

 도서관에서 이야기 시간을 진행하는 사서가 『꼬마 깜둥이 삼보』를 낭독한다. 그녀의 하얀 손가락이 까맣고 번들거리는 얼굴에 크고 붉은 입술, 돼지 꼬리 같은 곱슬머리의 소년과 버터 한 무더기가 그려진 동화책을 들고 있다. 내 마음에 상처를 줬던 그림들. 이번에도 내가 잘못된 거겠지 하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왜냐하면 나 말고는 모두가 깔깔거리고 있고, 게다가 시내 도서관이 이 책에 특별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도서관 사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체 뭐가 문제니?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서로의 눈동자를 보며: 흑인 여성, 혐오, 그리고 분노』 중에서, 287쪽)

 

 

 

‘꼬마 검둥이 삼보’를 문제 삼는 내 글을 보는 이들도 오드리 로드가 만났던 도서관 사서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대체 뭐가 문제예요?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아요!” 그렇다면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서 ‘째진 눈을 가진 민족’이라고 놀림 받으면 화를 내면서 우리나라 사람이 흑인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에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반응이 괜찮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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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1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6-24 07:07   좋아요 0 | URL
어떤 민족이나 인종에 대해서 설명할 때 간혹 발화자의 편견과 선입견이 들어갈 때가 있어요. 사실 이 편견과 선입견을 철저히 배제한 채 민족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래도 편견과 선입견이 왜 심각한 문제가 되는지 알아야하고, 경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