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스몰토크’에 가면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을 볼 수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작품인데 진품은 아니다. 종이에 복사한 복제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간결하면서도 특이하다. 『구상 8(composition Ⅷ)이다. 칸딘스키는 ‘구상’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추상화를 여러 점 그렸다. 특히 『구상 8』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누구든 알 수 없는 도형과 기호들로 채워진 칸딘스키의 그림 앞에서 난감한 심정을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그림 속에서 형체를 찾으려 가까이 보고 멀리 봐도,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이며 왜 그렸는지 알아내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그런 후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면서 내린 결론이 ‘도대체 이게 무슨 그림이야?’다.

 

전시장에 있는 그림 중 초보 관람자들을 난처하게 만들며 가장 인기 없는 회화 장르 대부분은 추상미술에 속한다. 추상미술의 정의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자연물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작가의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한 그림이다. 추상미술은 기존 정물화나 풍경화, 초상화 즉 구상화가 갖는 재현적인 요소를 거부한다. 애초부터 추상미술은 대상을 재현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비(非)대상 미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어떤 대상을 의도적인 왜곡으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를 ‘비구상 미술’이라고 한다.

 

추상미술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견이 있지만, 이것을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화가가 바로 칸딘스키다. 그렇다면 칸딘스키와 그의 추상미술을 이해하려면 어떤 책을 참고하면 좋을까? 이제 막 서양미술 공부에 입문(입덕)하는 독자들이 보면 좋은 책에는 어떤 책이 있는지, 필자가 직접 고르고 읽어봤다.

 

 

 

 

 

 

 

 

 

 

 

 

 

 

 

 

 

* 노르베르트 볼프 《표현주의》 (마로니에북스, 2007)

* 하요 뒤히팅 《표현주의, 어떻게 이해할까?》 (미술문화, 2007)

* 슐라미스 베어 《표현주의》 (열화당, 2003)

 

 

 

칸딘스키는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창시자다. 그러므로 ‘표현주의’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 ‘표현’이라는 용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표현주의의 특징을 요약하면 ‘강력한 색채’와 ‘주관적 양식’이다. 표현주의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시작된 회화 양식이다. 이때 당시 독일 미술의 중심지는 뮌헨(München)이었다. 인상주의가 유행하기 시작한 프랑스 파리에 건너갈 수 없었던 독일, 러시아 출신 화가들은 뮌헨에서 터를 잡아 새로운 미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칸딘스키도 화가가 되기 위해 독일로 건너 온 러시아 출신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뮌헨 미술계는 젊고, 타지에서 온 화가들이 활동하기가 어려운 보수적인 분위기였다. 특히 1870년대부터 뮌헨 미술계를 주름 잡고 있었던 프란츠 폰 렌바흐(Franz von Lehnbach)는 황제나 수상과 같은 유명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뮌헨에 렌바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렌바흐의 그림을 보면 칙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렌바흐는 옛 거장들이 선호했던 갈색 물감 위주로 그리는 것을 고집했다. 만약 당신이 렌바흐가 그린 독일의 수상 비스마르크(Bismarck)의 초상화를 보자마자 ‘저 그림은 너무 칙칙해서 별로야. 비스마르크가 저렇게 생기 없는 모습으로 보이는 건 처음이야’라고 느꼈다면, 당신도 표현주의 미술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칸딘스키를 포함한 젊은 화가들은 생기 없고 칙칙한 렌바흐의 화풍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은 렌바흐의 화풍을 가르치는 미술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았다. 칸딘스키는 도유망한 젊은 화가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자신이 직접 미술학교를 세웠다. 칸딘스키의 미술학교는 뮌헨의 미술학교와 다르게 개방적인 분위기였고, 전문 화가가 되려고 하는 여성들도 입학할 수 있었다. 칸딘스키가 가르친 제자였던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unter)는 훗날 그의 아내가 된다.

 

 

 

 

 

 

 

시대를 앞서 간 칸딘스키와 그의 동료 및 제자들의 작품들은 비평가들의 조롱을 받았지만, 젊은 화가들은 여전히 ‘색채만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리하여 칸딘스키는 뮌터, 그리고 러시아 출신 화가이면서 부부로 연을 맺게 되는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마리안네 폰 베레프킨(Marrianne von Wereffkin) 등과 함께 ‘뮌헨 신미술가협회(Neue Künstler-vereiningung München, NKV)를 결성했다. 이 협회장은 칸딘스키였고, 그는 독일 전위미술의 대부가 되었다.

 

열화당 출판사의 《표현주의》, 마로니에북스 출판사의 《표현주의》, 그리고 《표현주의는 어떻게 이해할까?》, 이 세 권은 독일 표현주의 미술이 탄생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다. 이 중에서 필자가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은 《표현주의는 어떻게 이해할까?》이다. 이 책의 장점은 핵심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표현주의 회화에 중점을 둔 책들과 다르게 조형 미술과 건축미술에까지 영향을 준 표현주의도 소개하고 있다.

 

 

 

 

 

 

 

 

 

 

 

 

 

 

 

 

* 지벨레 엥겔스, 코르넬리아 트리슈베르거 《칸딘스키와 청기사파》 (예경, 2007)

* [절판] 토마스 다비트 《프란츠 마르크: 무지개의 색을 훔친 화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독일 표현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면, 이제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가 함께 결성한 ‘청기사파(Blaue Reiter)의 그림들에 주목해보자. ‘청기사’는 마르크와 칸딘스키가 어느 날 함께 커피를 마시다가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조어이다. 마르크는 말을 좋아했고, 칸딘스키는 기사를 좋아했다.

 

 

 

 

 

 

 

 

 

 

두 사람은 신비로운 내면의 세계를 통찰하고, 이를 색채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마르크는 인간의 눈으로 동물의 마음을 읽기를 원했고, 동물이야말로 생명력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칸딘스키와 청기사파》는 청기사파의 이상을 공유한 당대 화가들의 삶과 주요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남성 화가들의 활동에 가려진 여성 화가들(가브리엘레 뮌터,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의 재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프란츠 마르크: 무지개의 색을 훔친 화가》는 마르크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당연히 이 책의 주인공은 마르크와 그가 좋아했던 동물들이다. 절판된 게 너무 아쉬운 책이다.

 

 

가브리엘레 뮌터가 칸딘스키의 작품들을 보관하지 않았으면, 칸딘스키와 표현주의는 현대미술의 문을 본격적으로 연 화가와 예술사조로 평가받지 못했을 것이다. 뮌터는 칸딘스키에 버림받아 실연의 아픔을 겪었지만, 그녀는 세계 대전의 위험 속에서도 남편과 동료 화가들의 작품을 잘 간수했다. 뮌터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표현주의 및 청기사파 화가들의 작품들을 뮌헨 시에 기증했다. 언론은 감동적인 찬사와 함께 그녀의 기부 소식을 대중에게 알렸다.

 

 

“뮌터 부인 앞에 우리 모두 모자를 벗어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칸딘스키와 청기사파》, 124쪽)

 

 

칸딘스키가 표현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의 시대를 열었다면, 뮌터는 그 찬란했던 시대의 유산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녀의 노력을 생각한다면, 현대미술을 공부할 때 막연하게 어렵다고 느꼈던 표현주의를 대충 훑고 지나갈 수 없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표현주의 미술이 많이 주목받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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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7 0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6-07 18:33   좋아요 0 | URL
표현주의 미술을 공부하면서 표현주의 미술 작품에 있는 색채를 다시 보게 됐어요. 특히 마르크와 가브리엘레 뮌터의 그림에 있는 색들이 정말 좋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