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를 통틀어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는 여성의 순결과 금욕을 강조한 성적으로 가장 엄숙했던 시기다. 하지만 성에 대한 호기심이 수많은 포르노그래피 서적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낸 시대이기도 하다. 그 시대에 발행된―소아성애(pedophilia)를 연상케 하는―어린아이들의 알몸 사진이 있는 엽서는 성에 대해 보수적이었다는 빅토리아 시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진보와 개혁을 추구하면서도 여전히 보수적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개인에게는 가정에 대한 의무와 함께 절제, 금욕, 순결과 같은 도덕적 규범이 엄격히 요구됐다. 그 표면적인 고상함의 이면에는 허영과 위선이 있었다.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미술이 어떻게 양면적인 사회상과 만났는지 짚어보면서 그림 속에 반영된 영국인의 은밀한 속내를 보여준다.

 

 

 

 

 

 

 

 

 

 

 

 

 

 

 

 

 

 

* 이주은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이봄, 2016)

 

 

 

억압과 규제가 더욱 강해질수록 인간의 욕망이 멈추지 않듯이,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매춘과 성병이 유독 기승을 부렸다. 국가는 매춘을 필요악으로 규정했고, 매춘을 ‘관리’하는 것으로 정책을 내세웠다. 국가가 통제하지 않으면, 매독을 각종 성병이 온 유럽을 집어삼킬 것이란 두려움이 널리 퍼졌다. 금욕을 강조했던 시대에 매춘부들은 멸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자살하거나 평생 숨어 지내는 일도 많았다. 물에 떠 오른 익사한 여성의 시신이 많이 그려진 것도 그 때문이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2016)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2006)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당시에는 거리의 여자가 강물에 빠져 죽는 장면이 그림이나 대중잡지 삽화에 자주 등장했다. 이 시대의 여자는 늘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지내면서 남편을 기다리고, 만일 버림받으면 갈 곳 없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집 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는 집안일을 관장하며 남편과 자식을 보살피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 여성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자기만의 방》에서 모든 여성에게 ‘집 안의 천사’라고 불리는 내면의 유령이 있다고 단언한다. 내면의 유령에 사로잡힌 여성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울프는 ‘집 안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집 안의 천사’가 되지 못한 여성들은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처벌을 스스로 선택했다.

 

 

 

 

 

 

 

 

 

 

 

 

 

 

 

 

 

 

* [절판] 노르마 브루드 외 《미술과 페미니즘》 (동문선, 1994)

 

 

 

미국의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는 자신의 논문 『실종과 발견: 19세기 영국의 타락한 여성상』에서 가정적인 행복이 상실되고, 빈곤의 밑바닥까지 몰린 여성들의 비참한 결말을 묘사한 빅토리아 시대의 미술 작품에 주목한다. 이 논문은 《미술과 페미니즘》에 수록되어 있다. 노클린은 이 그림들에 안타까운 죽음에 이른 ‘타락한 여성’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을 부각하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았거나 매춘부가 된 여성들을 ‘타락한 여성’이라고 비난했던 냉담한 사회적 분위기와 대조된다. 그러나 ‘타락한 여성’을 바라보는 이 기묘하고도 양면적인 시선은 정조와 금욕을 강조하던 빅토리아 시대가 가진 이면이었다.

 

 

 

 

 

 

 

 

 

 

 

 

 

 

 

 

 

* 정진영 엮음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책세상, 2005)

 

 

 

빅토리아 시대의 남성 화가들은 자살을 선택하는 여성들의 비참한 운명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그녀들을 아름답게 묘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림에는 흔히 고상하고 우아한 아름다움과 함께 타락, 절망, 허무, 죽음과 같은 퇴폐미가 공존한다.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작가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Mary Elizabeth Braddon)이 186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차가운 포옹(The Cold Embrace)은 물에 빠져 자살하는 여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공포적인 분위기로 연출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여인은 약혼한 남자로부터 버림받아 다리 밑의 강물에 몸을 던진다. 약혼을 파기한 남자의 직업은 화가다. 남자는 산책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여인의 시체 한 구가 놓인 관이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관을 운반하고 있던 인부를 멈춰 세운 뒤에 죽은 여인의 모습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부탁한다. 인부는 죽은 여인이 아주 예쁘게 생겼다고 말하고, 화가는 인부의 말에 동조하면서 자살한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화가는 죽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는 천을 걷어내는데, 죽은 여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도망친다. 죽은 여인의 정체는 약혼녀였기 때문이다.

 

천사 같은 아내, 가족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와 며느리, 현모양처라는 ‘집 안의 천사’는 남편, 아버지, 곧 남자들을 편하게 하기 위한 관념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이 관념은 여성의 주체적인 활동을 가로막는 유령이다. ‘집 안의 천사’가 되지 못하거나 이를 거부하는 여성은 ‘낙원(가정)’에서 추방된 ‘타락한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채 살아간다. 한 번 낙원에서 추방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아늑한 낙원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추방당한 ‘타락한 여성’이 낙원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마’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그녀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낙원의 사람들은 그녀들이 죽고 나서야 연민의 손길을 내밀었다. 존재감을 상실한 여성들이 보기에 세상은 ‘집 안의 천사’가 너무나 많은 지옥이었다. 그들을 죽일 수 없으면 내가 죽어야하는, 기묘한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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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3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6-03 16:36   좋아요 1 | URL
잘 사는 사람들이 술집이나 룸살롱에 가서 돈을 펑펑 쓰는 모습을 보면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젊었을 때 실컷 노는 것도 좋지만, 유흥에 너무 맛들이면 나이 들어서 허전함이 더욱 많이 밀려올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정신이 피폐해질 거예요.

2019-06-05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6-04 12:42   좋아요 1 | URL
노라를 주제로 연구하신다니,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혹시 연구 결과가 논문으로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

제가 글을 일기처럼 쓰는 편인데다가 제 관심사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성격이라서 블로그에 등록되는 글 대다수는 재미없어요... ㅎㅎㅎㅎ 글이 별로라고 생각하면 친구 관계를 해제하셔도 좋습니다. 실제로 그런 분들이 계시거든요.

여름이 2019-06-10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방문했어요. 페미니즘 문학작품 토론에 참여하려고 하는데, 블로그에 써 주신 여러 서평들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블로그 글에 대한 고마움에 답글 남깁니다. 자주 오게 되다 못해 한동안 상주...하게 될른지도 모르겠네요. 글들 감사합니다~

cyrus 2019-06-10 16:58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어설픈 글을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다시 처음부터 공부하는 심정으로 페미니즘 독서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어요. 저도 배우는 입장이랍니다.

편하실 대로 제 글을 보시면 됩니다. 제가 매일 규칙적으로 글을 써서 공개하는 성격이라서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정기 구독하듯이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혹시 제 글을 보시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나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셔도 좋습니다. ^^

여름이 2019-06-10 1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일 규칙적으로 글 쓰신다니....고맙습니다.~~~!!!^^

cyrus 2019-06-10 17:13   좋아요 1 | URL
알라딘 서재에 저 말도고 매일 글 한 두 편 정도 쓰는 분들이 더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