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귀퉁이 그림자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 5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 지음 / 올푸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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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올푸리 출판사‘빅토리아 호러 컬렉션’ 다섯 번째 시리즈가 공개되었다.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Mary Elizabeth Braddon)의 단편소설 《귀퉁이 그림자(The Shadow in the Corner)다. 브래든은 국내 독자에게 생소한 작가이지만, 생전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1862년에 연재한 《오들리 부인의 비밀(Lady Audley’s Secret)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정직하게 그린 브래든의 대표작이다(《귀퉁이 그림자》가 나온 지 5일이 지난 후에 《오들리 부인의 비밀》 번역본이 정식 출간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들리 부인은 순종적인 ‘남편의 아내’로 나타나는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그녀는 남자들의 유혹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들리 부인의 비밀》과 같이 바람피우는 여주인공, 간통, 살인 등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대중소설을 ‘선정소설(Sensation Novel)이라고 부른다.

 

《귀퉁이 그림자》는 1879년에 나온 소설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자연과학 교수인 마이클 베스컴은 23년 동안 ‘와일드히스 그랜지’라는 저택에서 혼자 지낸다. 저택에 그와 함께 사는 혈육은 없지만, 베스컴의 시중을 드는 부부(직책은 집사와 하녀)가 살고 있다. 연로한 하녀가 집안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집사는 베스컴에게 젊은 하녀 한 명을 고용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새로운 하녀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저택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도’인 베스컴은 저택과 관련된 흉흉한 소문을 가볍게 넘긴다.

 

베스컴은 타지에서 고아로 자란 젊은 여성을 새로운 하녀로 고용하고, 하녀가 지낼 곳으로 ‘저택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큰 방’을 배정한다. 그런데 하녀가 저택에 들어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 그녀의 외양은 마치 악몽에 시달려온 사람과 같았다. 베스컴은 하녀가 걱정돼서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그녀는 망설인 끝에 저택에 생활하면서 느꼈던 심정을 솔직하게 밝힌다.

 

 

“나리. 제가 자는 방이 무서워요.” (22쪽)

 

 

하녀는 자신의 방 귀퉁이에 있는 ‘흐릿하고 형체 없는 그림자’를 목격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베스컴은 하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는 그녀가 최근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적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신경이 쇠약해졌다고 생각한다. 또 그녀가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다고 지적한다.

 

《귀퉁이 그림자》는 이렇다 할 반전이 없고,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공포소설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이성’과 ‘감성’을 철저히 분리하고, 위계적인 이분법의 관계로 보는 남성 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보여준다. 베스컴은 ‘과학 연구를 사랑하는 광신도’이다. 그는 하녀의 진술을 마치 과학자가 분석하듯이 받아들인다. 즉, 철저하게 따져보는 태도이다. 하녀를 대하는 베스컴의 시선은 ‘과학자’의 시선이기도 하며, 더 넓게 보면 ‘이성’을 중시하는 남성적인 시선이다. 이 시선이 뿌리 깊게 박힌 서양철학은 ‘이성’과 ‘감성’의 관계성을 ‘남성’과 ‘여성’으로 설명하고, 여성(감성)에 대한 남성(이성)의 우위를 도식화해왔다. 서양 철학은 남성과 여성을 둘로 나누면서 이 둘을 수평적인 둘이 아니라, 위계적인 둘로 구분하였다. 서양 철학에 의해서 남성과 여성은 남성이 여성의 위에 있는 위계적인 이분법으로 구분되었다. 이러한 위계적인 이분법의 의미가 은폐된 철학의 근본 개념들이 바로 이성 대 감성, 합리성 대 상상력이다.

 

계몽주의 시대에 공상과 심령 현상은 비이성적인 감성으로 규정 받으면서 피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인간’은 경험과 과학을 바탕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이다. 당연하게도 남성 지식인들에 의해 강제로 ‘감성’과 동일한 존재가 된 여성은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에 속하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은 계몽주의 시대가 끝나고, 한 세기 지나서 나타난 근대적인 빅토리아 시대에도 여전했다. 역사적으로 이성이 감성보다 우위를 점하던 시기는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귀퉁이 그림자》에서 묘사된 이성은 감성에게 승리하지 못했다. 이성의 무기력한 패배를 암시하는 듯한 이 소설의 결말을 꼭 보시라.

 

 

 

 

※ Trivia

 

* 3쪽에 ‘계급’의 오자가, 21~22쪽에 뜻을 알 수 없는 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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