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 - 털보 과학관장과 함께라면 온 세상이 과학 ㅣ 저도 어렵습니다만 2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9년 3월
평점 :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리뷰를 썼는데도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변명을 해보지만,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과학책을 읽고 있을 때, 그 책 속에 있는 과학 지식이 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자신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책을 덮고 난 후부터 문제가 생긴다. 과학책에 있는 내용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새하얘지고 말문이 막혀버린다. 누군가가 나에게 불쑥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차이가 뭐예요?”라든가 “이기적인 유전자가 무슨 뜻이에요?”라고 질문한다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히 똑똑한 애서가들이 있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나 같은 헛똑똑이는 책 읽는 것 자체를 즐기기만 하는 딜레탕트(dilettante, 호사가)에 가까운 독자이다. 즉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아는 게 많지 않은 사람이다. 이 말은 겸손의 표현이 절대 아니다.
최근에 책의 내용을 쉽게 잊어버리는 문제의 원인을 알아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칼럼 모음집인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에 첫 번째로 실린 글은 암기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독일에 유학 생활은 한 이정모 관장은 자신을 가르친 독일인 교수가 내는 구두시험에 어려움을 느낀다. 구두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교수가 가르쳐준 내용을 암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암기를 잘하지 못한 이정모 관장, 아니 학생은 외워야만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시험 방식에 불만을 가진다. 이정모 학생은 교수에게 직접 찾아가 암기 중심의 교육에 문제 있다는 식으로 따진다. 그러자 교수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대답한다.
“아니,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가! 학습은 암기일세. 자네 머릿속에 있어야지 책 속에 있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책이 아니라 자네 머리에서 나와야 하네. 그러니 열심히 암기하게나.”
그리고 덧붙였다.
“이해는 완전한 암기를 위한 준비과정이지.”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가』 중에서, 13쪽)
이정모 학생은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과학관장이 된 이정모 학생은 교수의 죽비 소리를 들었던 그 날을 회고하면서 창의성보다 더 중요한 게 암기라고 강조한다. 혹시 지금까지 나온 내용만 보면서 이정모 관장이 주입식 암기교육을 옹호한다고 단정하지 마시길 바란다. 이 글의 전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정모 관장은 암기와 주입식 암기 교육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이정모 관장도 그렇고, 나도 주입식 암기교육을 반대한다. 이정모 관장이 말하는 ‘좋은 암기’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기본기다. 독일인 교수는 스무 번 외우고 스무 번 잊어버리면 저절로 외워진다고 말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 있는 내용을 확실하게 건져서 내 머릿속에 담으려면 일회성 독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외워야 할 내용은 무조건 외워야 한다. 그러려면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 꼭 위편삼절(책을 엮은 가죽끈이 3번씩이나 끊어질 정도로 읽어야 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잊을 때가 되었다 싶으면 책을 읽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외워진다.
이정모 관장이 말했듯이 과학은 어렵다. 그런데 과학이 어렵다는 이유로 과학 공부를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잖은가. 정말 재미있고, 쉽게 풀어쓴 과학책은 많다. 이정모 관장이 쓴 과학책이 재미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요즘에는 만화로 된 과학책이 나오고 있다. 읽을거리가 많다. 과학책을 반복해서 읽고, 알아야 할 내용을 암기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어렵게 느껴지던 과학이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포기하지 않고/그래도) 과학책을 읽어야겠습니다.
※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권이 전작과 다른 점: 부록으로 이정모 관장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