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흑인 여성 작가는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이다. 그녀가 쓴 소설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흑인 여성의 경험과 관념이 반영된 페미니즘 이론을 논의한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을 통해서 그녀의 작품 세계를 간접적으로 접했다.

    

 

 

 

 

 

 

 

 

 

 

 

 

 

 

* [2018년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 [절판] 앨리스 워커 더 컬러 퍼플(청년정신, 2007)

* [절판] 앨리스 워커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이프, 2004)

* 앨리스 워커 사랑의 힘(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04)

    

 

 

토니 모리슨과 함께 현대 흑인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는 앨리스 워커(Alice Walker)가 있다. 그녀의 대표작 더 컬러 퍼플(작가정신)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워커는 이 소설에서 흑인이 미국 사회에서 소수민족이기 때문에 겪는 아픔, 특히 그중에서도 여성이 받는 상처와 경험을 이야기한다. 1980년대에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과 함께 페미니스트 저널 <미즈(Ms.)>의 편집인으로 활동했지만, 백인 중산계층 중심의 서구 페미니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3세계 페미니즘또는 흑인 페미니즘이 새롭게 대두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워커는 피부 색깔로 페미니스트를 분류하는 것을 거부하는 의미로 흑인 페미니스트라는 용어 대신에 우머니스트(womanist)를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그녀는 또 모든 종류의 차별에 저항하면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 성소수자 모두가 공존하는 인간성을 회복하자고 주장한다. 워커를 포함한 흑인 여성주의자들은 인종과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등 다중적인 억압을 경험하는 흑인 여성의 문제에 저항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폭력과 착취를 받는 피해자로 머무르는 흑인 여성 담론에 치우쳐 있는 건 아니다. 혹자는 흑인 여성주의자들(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남성 인권 운동가들도 해당된다)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은 자신들의 경험만 줄기차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정말로 그녀들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면 자신들이 추구해온 다양한 춤 장르와 음악(특히, 재즈)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고, 문화를 통한 저항 운동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워커는 가장 차별받고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지만, 할머니와 어머니로 이어지면서 공유되는 흑인 여성의 정체성과 예술적 경험도 주목한다. 그녀는 산문집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이프)사랑의 힘(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할머니와 어머니를 회상한다. 그러면서 할머니와 어머니를 예술가라고 부르면서 강인한 생명력의 중요성을 구전 민담이나 전통 노래로 표현하여 자신에게 전달해준 그녀들을 예찬한다(두 권의 책에 실린 워커의 산문과 시는 감동적이며 독자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는 좋은 글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의 번역은 썩 좋지 않다. 재출간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새 번역으로 다시 나오길 바란다).

    

 

 

 

 

 

 

 

 

 

 

 

 

 

 

* 조라 닐 허스턴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문예출판사, 2014)

* 조라 닐 허스턴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문학과지성사, 2001)

 

    

 

1960년대 흑인민권 운동이 일어난 이후로 흑인 여성 작가와 역사가들은 망각 속으로 사라진 흑인 여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적 능력을 발굴하기 시작한다. 특히 워커는 흑인 문학계에서 완전히 잊혔던 흑인 여성 작가 조라 닐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을 재발견했다.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에 수록된 글 조라의 무덤을 찾아서는 묘비명조차 없는 조라 닐 허스턴의 무덤을 찾아다닌 워커의 여정을 보여준다.

 

 

 

필리스 위틀리에 관한 내용이 있는 책들

    

 

 

 

 

 

 

 

 

 

 

 

 

 

 

 

 

 

 

 

 

 

 

 

 

 

 

* 줄리아 피어폰트, 만지트 타프 그림 페미니스트 99(민음사, 2018)

* 재키 플래밍 여자라는 문제(책세상, 2017)

* 미셸 로엠 매칸, 아멜리 웰든 세상을 뒤흔든 10대들: 소녀 편(라의눈, 2014)

* 차리스 코터 세상을 놀라게 한 아이들(아카넷주니어, 2012)

* 정길화 편역 영미시의 이해 그리고 한국시(신아사, 2007)

* [절판] 벤자민 콸스, 미국 흑인사(백산서당, 2002)

 

    

 

미국 문학사뿐만 아니라 미국 흑인문학에서조차 많이 거론되지 않은 여성 작가가 있는데 최초로 시집을 발표한 흑인 시인 필리스 위틀리(Phillis Wheatley, ‘필리스 휘틀리라고도 표기한다)다. 그녀는 노예제도를 당연하게 여기던 18세기 중반에 태어났다. 출생 연도는 1753년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하지 않다. 위틀리는 감비아 혹은 세네갈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일곱 살이 되던 해에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노예선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온다. ‘필리스 위틀리는 이 아프리카 소녀가 태어나면서 가지게 된 이름이 아니다. 그녀의 성()은 자신을 사들인 재단사 존 위틀리(John Wheatley)에서 따온 것이고, 필리스는 아프리카인들이 타고 온 노예선의 이름이다[1].

 

다행히도 존 위틀리 가는 미국 북부에 위치한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에 살고 있었다(예나 지금이나 보스턴은 진보적인 성향이 가장 강한 곳이다). 왜냐하면 노예제를 옹호하는 미국 남부에서는 노예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존 위틀리의 딸 메리(Mary)는 필리스가 영리한 소녀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녀에게 영어와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필리스는 열두 살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녀가 쓴 시 몇 편이 신문에 실리게 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러나 흑인의 지적 능력을 믿지 않았던 백인 남성 지식인들은 필리스의 재능을 의심했다. 필리스가 직접 시를 쓰는지 검증하기 위해 열여덟 명의 백인 남성 지식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녀를 관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북부의 백인 독자들은 필리스의 시를 호평했고,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흑인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남부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필리스의 시를 자주 인용하기도 했다[2].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흑인들은 그녀의 시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흑인들은 노예제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시를 쓰지 않은 필리스에 불편함을 느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필리스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았고, 영어로 시를 썼다. 흑인들이 보기에는 필리스가 백인에 동화된 흑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필리스도 자신의 몸과 정신을 죄어오는 거대한 사슬과 같은 인종 차별의 위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스무 살인 1773년에 쓴 시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실려 옴에 대하여(Being Brought from Africa to America)[3]는 흑인에 대한 백인의 부정적 편견과 부당한 차별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흑인들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흑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내 이교도 땅에서 날 데려와, 내 어두운 영혼에게

하느님이 있음과 구세주 또한 있음을

이해하도록 가르쳐준 것은 축복이었어요.

한때 나는 구원을 찾지도 알지도 못했어요.

어떤 이들은 우리 흑인을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지요.

저들의 피부색은 악마의 색이야.”

명심하세요. 기독교인들이여, 흑인들은 카인처럼 검지만

세련될 수 있어, 천사의 행렬에 합류할 수 있음을.

 

 

(정길화 옮김, 190)

 

 

노예제가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지만 흑인에 대한 시선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은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이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시키는 일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저임금 노동에 투입되고, 빈곤의 늪에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선입견은 착한 노예는 순종적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노예제를 옹호하던 미국 남부인들의 사고방식과 겹쳐져 있다. 바뀐 게 없는데도 흑인을 차별하는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건, 주류인 백인의 시선으로 흑인을 포함한 다른 인종을 한 단계 아래로 규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인종을 차별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인의 가면을 쓰고 있다.

    

 

 

 

 

 

 

 

 

 

 

 

 

 

 

 

 

*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문학동네, 2014)

* 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인간사랑, 2013)

* 프라모드 K. 네이어 프란츠 파농, 새로운 인간(앨피, 2015)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이 말했던 바로 그 하얀 가면을 우리도 쓰고 있다. 피부가 하얗지도 않은 이들이 스스로 하얘지고 싶어서 쓰는 그 가면을 말이다[4]. 누구나 하얀 가면을 쓸 수 있으며 그 사람은 우월한 주인또는 지배자()이 된다.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하얀 가면은 민족 정체성에 대한 열등감을 감추는 동시에 우월한 주류처럼 행세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것은 인종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자들의 허무한 명품이다. 억압과 착취 속에서도 독립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온 흑인들의 문화적 유산과 비교하면 너무나 초라하기 짝이 없다.

 

 

      

 

[1] 차리스 코터, 세상을 놀라게 한 아이들, 아카넷주니어, 2012. 14~18.

 

[2] 벤자민 콸스, 미국 흑인사, 백산서당, 2002. 112.

 

[3] 우리말로 번역된 시는 영미시의 이해 그리고 한국시(신아사)에 수록되어 있다.

 

[4] 파농이 언급된 글 마지막 내용이 글의 주제(흑인 여성 작가)에 완전히 이탈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쓴 이유가 있다. 휘틀리의 시에 나오는 구절(저들의 피부색은 악마의 색이야.”)이 파농이 들었던 백인 아이의 말과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나오는 일화에 따르면, 백인 아이는 파농을 보자마자 엄마, 저 검둥이 봐요. 무서워요!”(문학동네, 109)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백인 아이의 말을 듣게 된 파농은 흑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고, 이 사건은 의사인 파농을 탈식민주의 사상가로 변모하게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었다(프라모드 K. 네이어, 프란츠 파농, 새로운 인간, 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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