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장애를 극복하여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많다. 들을 수 없는 가운데 총 9곡의 교향곡을 만든 음악가 베토벤(Beethoven), 소아마비를 앓았던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루 게릭 병(Lou Gehrig’s disease)’으로 알려진 근위축성측색경화증으로 인해 전신이 마비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던 이 위대한 인물들에게 많은 사람이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2005년에 상영된 영화 <말아톤>은 다섯 살 지능을 가진 스무 살 자폐 청년이 마라톤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배우 조승우가 연기한 초원은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하고 아무 데서나 막춤을 추는 종잡을 수 없는 면모를 가졌지만 달릴 때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듬해에 나온 영화 <맨발의 기봉이>는 지적장애 1급인 엄기봉 씨의 실화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놓은 것이다. 기봉 씨는 팔순의 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시는 효자로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다. 그는 어머니의 틀니를 사드리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하지만, 지병인 협심증의 위협과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달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두 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장애를 가졌지만,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역경을 헤쳐 나간다. 그들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영화 밖으로 나와 우리 곁에 있다면 어땠을까. 스크린 속에만 있는 그들은 적어도 낯선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에 친근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아톤>, <맨발의 기봉이>와 같은 영화로 인해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은 ‘착하고 순수한 존재’로 이해된다. 문제는 이러한 이해가 장애인을 특정 이미지로 고착시킨다는 점이다. 영화와 현실 사이의 벽이란 이런 것이다. 영화가 아닌 우리 주변에 볼 수 있는 장애인이라면 ‘비장애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불행한 존재’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애인에 대해 대부분 비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이미지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데 일부 언론이 큰 몫을 했다. 신문과 방송에서 개인의 능력을 통해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들을 마치 한 편의 영웅담을 들려주는 것처럼 보도하는 방식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언론과 영화가 만든 ‘장애인 영웅 서사’를 보고 듣고 자란 비장애인은 장애를 ‘장애인이 극복해야 할 삶의 일부’이며 반드시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장애인 영웅 서사’는 장애인들이 직접 겪고 있는 장애의 진정한 모습을 가린다.

 

 

 

 

 

 

 

 

 

 

 

 

 

 

 

 

 

 

* 해릴린 루소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책세상, 2015)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해릴린 루소(Harilyn Rousso)는 장애인 인권운동가이자 여성 운동가이다. 루소는 사람들에게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Don’t Call Me Inspirational)고 말한다. 이 메시지는 그녀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루소는 이 책에서 한 개인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인식이 장애인들을 어떻게 타자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의 삶은 자신을 ‘대단한 영웅’ 또는 ‘불쌍한 괴물’로 보는 사회적 편견과 맞서는 투쟁의 과정이다. 그녀는 자신을 ‘생긴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주길 바란다.

 

 

 

 

 

 

 

 

 

 

 

 

 

 

 

 

 

 

* [절판] 앨리슨 래퍼 《앨리슨 래퍼 이야기》 (황금나침반, 2006)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는 발과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예술가다. 그녀의 두 팔은 아예 없고 다리는 자라다 말았다. 래퍼는 팔과 다리가 짧은 해표지증(海豹肢症)이라는 희소병을 진단받았다. 생후 6주 만에 거리에 버려져 복지시설에서 자랐다. 20대에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9개월 만에 헤어졌다. 그녀는 장애인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의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낳았다. 래퍼는 자신의 벗은 몸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 그녀는 자신의 몸, 즉 장애인 여성의 몸을 작품 소재로 삼음으로써 자신을 기형이라고 여기는 비장애인들에게 정상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물음을 던져준다.

 

해릴린 루소와 앨리슨 래퍼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비장애인들은 그녀들을 볼 때마다 ‘불쌍하다’ 혹은 ‘대단하다’라는 양가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반응에 저항하면서 분투하는 삶은 절대 쉽지 않았으리라. 장애인에게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는 것마저도 왜 이리 깐깐하게 구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겠지만(또 어떤 분은 내가 ‘정치적 올바름’에 너무 몰입하고 있다면서 말할 것이다), 사소하면서도 익숙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장애인을 막 대하게 만드는 편견으로 굳어진다. 그러한 편견은 너무나도 투명해서 쉬이 제거하지 못한다. 장애인은 투명한 공기와 같은 세상의 온갖 편견들을 마시고 걸러내면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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