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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 머릿속엔 죽을 때까지 껌딱지처럼 달라붙어있는 개 두 마리가 있다. 개의 이름은 ‘편견’과 ‘직감’이다. 두 마리 개는 주인의 이성적 사고력을 핥고 또 핥는다. 두 마리 개의 애정공세(?)에 헤어 나오지 못한 주인은 현상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인지심리학 용어로 ‘인지 도식(recognition schema)’이라는 것이 있다. 인지 도식이란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형성되고 견고해진 개인의 신념체계다. 인지 도식은 어떤 대상이나 관념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인지 도식에 따라 즉각적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신처럼 전지전능하지 못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편견과 직감에 의지해서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을 해석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의 좁은 경험 세계의 한계가 너무 분명하므로 우리는 정확한 정보보다는 부정확한 남들의 말에 더 솔깃해진다. 문제는 내가 막연하게 믿고 있는 생각과 왠지 정확할 것 같은 남들의 말이 그렇게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팩트풀니스》는 내가 그렇게 믿고 있었던 나의 경험과 확신, 그리고 우리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는 잘못된 정보를 어떻게 피해야 할지 지침을 주는 책이다. 책의 제목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우리말로 옮기면 ‘사실충실성’이다. 말 그대로 사실에 충실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습관이다.
고정 관념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있다. 수많은 정보와 변화 속에 노출되어 판단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일정하고 고정된 틀에 의존할 수 있다면 안정된 삶을 사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고정 관념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뒤죽박죽일 것이다. 그러나 고정 관념의 이 같은 긍정적인 효과도 적정수준이어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고정 관념은 ‘편견’의 또 다른 말이 되어 우리 삶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다. 고정 관념에 지나치게 매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해석하고, 언어로 말하면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무언가 불확실하고 무질서하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좀 더 단순하고 일관된 생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전쟁, 자연재해, 테러, 범죄, 빈곤 등 인간에게 고통을 가중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 지옥처럼 느껴질 수 있다. 《팩트풀니스》의 저자인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은 모든 대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고정 관념을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쓸데없이 불안해하고 혼자서 속을 태운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사람들은 왜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쉽게 믿고, 부조리한 편견과 직감에 의존하는 걸까. 사람들은 복잡한 정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순한 정보를 선호한다. 사람들이 단순한 정보에 익숙해지고 나면, 나중에 그 정보가 옳지 않거나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도 쉽게 예전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익숙함’과의 결별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저자는 잘못된 고정 관념과 믿음은 ‘세상에 대한 무지’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이 만든 무지와 싸운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기관 ‘갭마인더 재단(Gapminder Foundation)’을 세웠다. 저자의 신념은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 즉 사실충실성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2017년에 사망할 때까지 명확한 데이터와 통계로 가지고 세상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전 세계를 돌면서 강연을 했다.
《팩트풀니스》의 부제는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이다. 저자는 인간이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이유를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편견이라고 말하고 있다. 편견은 지식이 빈곤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생기는 본능(instinct)이다. 저자는 세상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다면서 10가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서 좀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부정적인 고정 관념으로 채워진 세계관은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스스로 고통이란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원인을 나열한 목록에 ‘편견’이라는 항목을 추가해야 한다.
세상이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려면 고정 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가듯이 내가 믿고 있는 지식도 함께 늙어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젊고 신선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처음에는 누구나 젊은 지식을 접하는 과정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새로운 정보와의 거리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겸손과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새로운 정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호기심이 생긴다고 말한다. 겸손과 호기심은 우리의 한계와 사고의 맹점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정신에 해로운 세계관이 불러일으키는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몰아내기도 한다. 세상은 천천히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데 ‘부정적인 과거’에만 얽매여 있다면 ‘긍정적인 미래’를 꿈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