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들이 노래한다 - 숀 탠과 함께 보는 낯설고 잔혹한 <그림 동화> 에프 그래픽 컬렉션
숀 탠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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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동화는 사실 알고 보면 잔혹하고 무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 형제(Jakob Grimm, Wilhelm Grimm)헨젤과 그레텔은 굶주림에 지친 부모가 자녀를 숲속에 갖다 버린, 당시 유럽에서 비일비재했던 실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 18세기 말 독일에서 태어난 야곱과 빌헬름 그림은 입으로 전해지던 민담과 설화를 채집해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 책 제목에 있는 이야기는 독일어로 메르헨(Mrchen)이라고 한다. 이것이 전 세계 어린이들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그림 동화의 출발이다. 이 초판본에서 전체 줄거리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근친상간이나 살해, 성적인 묘사 등이 있어서 어른들조차도 읽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그림 형제는 18577판을 낼 때까지 잔혹한 내용을 여러 차례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호주 출신의 미술가, 삽화가 숀 탠(Shaun Tan)은 오랜 세월 살아남은 그림 형제의 메르헨에 색과 형태를 붙였다. 숀 탠은 종이 반죽과 점토로 중심 뼈대를 잡은 뒤 아크릴 물감, 밀랍, 구두약 등 다양한 채색 도구를 활용해 동화 속 인물과 장면을 조각으로 구현했다. 75개의 조각품으로 빚어낸 그림 형제의 메르헨을 모은 뼈들이 노래한다는 열여섯 살부터 공포소설과 환상소설에 삽화를 그린 경험을 살린 책이다. 동화 속 한 장면을 인용한 텍스트와 숀 탠의 조각 작품을 책 좌우에 배치되어 있어서 독자는 이야기와 조각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읽은 빨간 모자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빨간 모자를 쓴 어린 소녀가 생각난다. 숀 탠은 늑대와 첫 대면을 한 빨간 모자를 표현했는데, 빨간 모자보다 더 크게 만들어진 늑대는 흉악한 모습은 아니지만, 원작에 묘사한 것보다 더 위압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숀 탠이 묘사한 백설 공주의 왕비는 의붓딸에 향한 질투와 증오를 얼굴로 뿜어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빨간색은 위험 신호이다. 왕비의 뾰족한 턱과 이빨, 그리고 가시처럼 돋친 왕관(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한 지붕이 특징인 중세 고딕 양식의 건물이 연상된다) 백설 공주에 대한 공격성을 상징한다.

 

 

사실 손 탠의 조각 작품들은 잔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몇몇 작품은 음산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하다. 이야기를 조각 작품으로 빚어낸 시도는 좋았으나 뼈들이 노래한다에 소개된 이야기 대부분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내용이라서 상당한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니까 아무리 훌륭한 조각 작품을 만들었어도 그 작품 속에 함축된 이야기를 알지 못하면 제작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책 뒤에 75편의 이야기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 있지만, 원작보다 더 짧아진 내용만 가지고는 이야기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이야기의 줄거리를 책 뒤편에 배치하는 편집 방식은 이야기와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된다. 차라리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만 골라서 조각 작품을 만들고, 완전한 형태의 텍스트를 곁들어 편집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백설 공주를 비롯한 몇몇 숀 탠의 조각 작품은 원작의 전형 속에 갇혀 있다. 뼈들이 노래한다는 이미 익숙한 동화의 세계들을 입체로 구현한 수준에 그쳐 있다. 전혀 낯설지 않다. 4점 이상의 평점을 받을만한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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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4 15:09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나온 조각품을 실제로 보면 색다른 느낌이 들 거예요. 그런데 종이책으로 조각품을 보니까 삽화를 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어요. ^^;;

2019-01-14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4 16:25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검색해보니까 <오싹오싹 당근>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이군요. 그런데 2013년에 나온 책인데 품절되었네요... ^^;; 지금도 애들이 봐도 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두운 그림책, 동화책이 나오고 있어요.

2019-01-14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