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우정에 관하여 - 자매애에서 동성애까지, 그 친밀한 관계의 역사
메릴린 옐롬.테리사 도너번 브라운 지음, 정지인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랑의 형태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에로스(Eros)이다.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이다. 두 번째는 필리아(philia). 친구 간의 정신적인 사랑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아가페(agape)이다. 성스럽고 은총에 가득 찬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필리아는 ‘우정’, ‘동료애’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동등한 인격체들 간의 배려와 인정을 기초로 한 사랑이다. 따라서 필리아는 사회적 관계들을 떠받치는 유대감이다. 필리아는 오직 인간의 인격 안에서만 생길 수 있는 사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정을 인간의 고귀한 감정이라고 예찬하면서도 ‘여성의 우정’을 애초에 있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 남성들은 여성을 열등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간주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여성이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미성숙하고 열등한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는 새로운 생명의 잉태 과정에서 완벽한 생명체를 만드는 것은 남성이며 여성은 단지 그 생명체를 담아주는 그릇 역할만 할 뿐이라고 했다. 그리스 여성의 지위는 초라했다. 그들에게는 시민권이 부여되지 않았고, 정치적 결정권을 갖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여성은 집안에만 지내야 했고, 사람을 만나면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고대 로마의 문필가 키케로(Cicero)『우정에 대하여』라는 글에 우정을 신들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썼다. 그는 이 글에서 우정의 가치, 우정이 지켜야 할 원칙 등 우정과 관련된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 · 로마 남성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우정을 논하고, 우정의 미덕을 공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인식했다. 그동안 ‘남성 중심의 우정’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았고, 외면되어 온 다양한 형태의 ‘여성의 우정’을 시대별로 소개한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남성이 만든 우정의 정의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이다. 나는 이 번역본 제목을 아주 잘 정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는 남성 중심의 우정만을 다룬 『우정에 대하여』와 배치되는 반어법적 표현이다. 이 책은 여성과 여성, 나아가 여성과 남성의 우정까지 온전히 그려낸다. 각 시대의 사회적 환경과 대중의 인식에 따라 우정의 성격은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 여성의 우정도 점점 주목받게 되었다.

 

여성들은 15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 소중하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15세기 이전에 살았던 여성들이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경험을 하지 않았거나 그러한 기회조차 누리지 못했던 건 아니다. 비록 제한적이긴 했지만, 중세의 수녀원은 여성에게 허락된 유일한 배움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여성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이 형성되는 여성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수녀들의 우정 이외에 다른 계층 여성들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15세기 무렵에 유럽 상류층 여성들은 공적인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른 여성들과 공개적으로 유대 관계를 맺는 일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귀족 여성들을 중심으로 살롱 문화가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당시 ‘사교 공간’이자 ‘문화 공간’의 역할을 했던 살롱에서는 귀족들이 모여 독서와 토론, 공연 등 여가 생활을 즐겼고, 예술이나 정치, 사회, 종교 등 각 분야의 문제를 논하며 새로운 문화 경향이나 사상을 꽃피우기도 했다. 이 시기에 여성은 ‘우정’을 기반으로 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문화의 주체가 될 수 있었고, 사회적 · 문화적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여성 중심 사교 모임과 살롱 문화의 등장은 여성들의 배움 자체가 금기시됐던 풍토에서 일어난 중대한 변화였다. 그러나 지식인 여성들이 일으키는 ‘여풍’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남성들은 여성 사교 모임을 경멸하는 뜻으로 ‘블루스타킹’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때부터 ‘블루스타킹’은 똑똑한 여자들을 비하하는 말이 됐고,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비하하는 말로도 쓰였다. 그러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남성들의 편견 섞인 차별과 비난에 굴복하지 않았고, 그들의 생각을 이어받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우정’에 연대 의식을 불어넣음으로써 ‘자매애(sisterhood)로 확장했다.

 

오늘날의 우정은 SNS를 통해 유지된다. 현대인들 대다수는 1인 가구이며 관계 맺는 일을 어려워한다. 이제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지 않고, 집에 머무르면서 친구의 근황을 알 수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끈끈한 유대감을 몸소 느끼지 못한다. 또 온라인상에서 만난 친구와의 관계를 ‘친구 취소’나 ‘차단’ 기능만으로 끝낼 수 있다. 아마도 미래에는 또 다른 형태의 우정이 유행하면서 세상을 바꿀 것이다. 우정의 형태가 다양하게 변하는 건 좋다. 그렇지만 이 우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점점 변할수록 같은 예전의 끈끈한 유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예민하게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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