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철학자들은 여자의 지적 능력을 남성보다 취약한 것으로 간주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자신의 책을 통해 선천적인 남성의 우월함과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여성은 영혼의 원리가 없는 불완전한 남성이었다. 여성에 대한 종교의 입장도 철학자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옐토 드렌스 마이 버자이너(동아시아, 2017)

* 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열린책들, 2008)

 

 

 

추의 역사(열린책들)을 쓴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악마와 마녀를 추하게 묘사된 도상에 인간의 어두운 본능을 억압하여 인간을 종교적으로 일깨우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중세에는 성기가 수치심을 유발하는 대상으로 간주했는데, 이런 사회에선 출산과 무관한 성행위를 하는 여성은 마녀로 의심받았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클리토리스를 마녀의 증표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악마에게 젖을 물린다는 마녀의 유두가 여성의 은밀한 부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 [품절] 기 베슈텔 신의 네 여자(여성신문사, 2004)

 

 

 

신의 네 여자(여성신문사)는 서구를 지배한 가톨릭이 어떻게 여성의 정체성을 조작하고 왜곡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성경에서 여성 차별적 요소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경 곳곳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묘사돼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가톨릭에서 여자는 마녀, 매춘부, 성녀, 바보 등 네 범주로 분류된다. 가톨릭이 생각하는 마녀는 악마와 결탁하여 사악한 주술을 부리는 존재이다. 지배자의 종교가 된 가톨릭은 마녀사냥을 통해 다른 종교적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교황청은 문서까지 만들어 마녀사냥을 허용했다. 매춘부는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하는 음란한 여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성의 음란함은 사악함을 상징하는 마녀로 연결된다. 가톨릭에서 여성은 마녀와 성녀로 구분되는 대립적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 뿌리는 인류 타락의 기원인 하와(Hawwāh)와 인류 구원의 어머니 마리아(Maria)에 있다. 문제는 마녀와 성녀를 구분하는 교회의 기준이 자의적이었다. 이렇다 보니 성녀로 추앙받던 사람이 마녀로 몰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바보는 가톨릭이 선호하는 부류의 여성이다. 태어날 때부터 짊어진 하와의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희생할 준비가 돼 있고, 똑똑하지 않으며, 집안일에 충실한 정숙한 여성이다. 여자에게 구원은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순결로써 단정한 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게 교회의 가르침이었다.

 

 

 

 

 

 

 

 

 

 

 

 

 

 

 

 

 

 

* 슐람미스 샤하르 4신분, 중세 여성의 역사(나남출판, 2010)

 

 

 

슐람미스 샤하르(Shulamith Shahar)는 중세 전성기인 12세기부터 마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5세기 중후반에 이르는 기간의 여성을 조사함으로써, 중세 여성에게 적용된 위계적 질서와 그 기준이 무엇인지 살핀다. 샤하르는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위계적 질서와 기준에 따른 차별과 억압이 중세 여성에게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중세 여성 내부에서도 계층 및 신분에 의해 다른 경험을 하므로 각각의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차별의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수녀가 될 수 있는 여성은 귀족 출신의 여성이었으며 수도원장이 되면 수녀원에 속한 땅을 소유하는 특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중세 여성은 자신이 속한 위치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왔음에도 중세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대접받지 못했다. 여전히 중세 여성의 삶을 제약하는 걸림돌은 많이 남아 있었고, 상층 계급의 여성들도 제한된 권리를 누렸다. 그래서 샤하르는 중세의 모든 여성을 성직자, 전사, 농민다음 아래에 놓인 4신분으로 본다. 그녀의 책 4신분, 중세 여성의 역사(나남출판)여성신분/계층으로 이중 차별받는 중세 여성의 삶을 재구성한다.

 

 

 

 

 

 

 

 

 

 

 

 

 

 

 

 

 

 

* [품절] 거다 러너 왜 여성사인가(푸른역사, 2006)

 

 

 

거다 러너(Gerda Lerner)는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계 유대인 출신 역사학자이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은 늘 타자였고 '주변인'이었다. 그녀는 유대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억압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포함한 여성을 주변인으로 지칭하면서, 여성사를 젠더, 인종, 계급 등 모두가 얽혀 유기적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여성이 겪는 차별은 다중적이고 다양하게 얽혀 있다. 여성사의 재구성에서 역사가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거대 서사의 정교한 재구성이다. 여성 사이의 차이, 그래서 생겨날 수 있는 서로 다른 정체성과 억압 문제 등 결국 여성사는 이런 복잡한 차이들을 어떻게 역사로 기록해야 할 것이냐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해야 한다. 나는 여성사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사는 젠더는 물론 인종, 계층, 섹슈얼리티, 장애 등 다양한 기준에 의해 억압받은 주변부의 여성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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