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미옥 옮김 / 챕터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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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자유에 있다. 원하는 직업을 자유로이 선택하고, 사용자와의 교섭에 의해 노동조건을 협정하는 권리가 인정된다. 시장경제는 간혹 오류가 없는,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치장되곤 한다. 정부의 정책 실패 이후에는 시장의 논리를 무시한 탓이라는 진단이 내려진다. 이러한 진단은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이론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원래 신자유주의는 복지병과 생산성 저하로 몸살을 앓던 영국과 미국에서 1980년대에 대처리즘(Thatcherism),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등의 이름으로 등장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주요 내용은 규제 완화, 공기업의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부지출 축소, 감세를 통한 기업경쟁력 제고, 산업구조조정 등이다.

 

경제적 및 정치적 자유가 신장된다 하더라도 먹고사는 것이 힘겹다면 인간다운 삶이라고 볼 수 없다.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가난에 허덕이는 이른바 ‘노동하는 빈곤층’, 비정규직 문제는 오랫동안 계속 미뤄진 난제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체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다. 정규직들은 살아남기 위해 신자유주의의 허구적 차별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만, 비정규직을 무시하는 만큼 자신의 존엄성도 파괴된다.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상황은 공포 그 자체이다.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서는 숨 쉬는 자유조차 허락받지 못할 것처럼 지친 일상의 문화가 계속되고 있다.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증가는 질적 저하를 대가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그 심각성이 있다.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은 바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양산을 통해 그 경쟁력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 노동의 대다수는 비정규직의 얼굴을 하고 있다. ‘노동의 유연화’가 여성 노동자들을 점점 더 조직적으로 주변부 노동예비군으로 이용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국가는 재생산노동(가사, 양육)의 책임을 여성에게 일차적으로 부여하면서 여성 노동력을 비정규직의 형태로 노동시장에 흡수하려는 정책을 추진한다. 국가는 여성을 한낱 아이 낳는 기계로 본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통스러운 여성의 현실을 바꿔낼 희망적인 전략은 있는가?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젠더 평등 정책’이 답인가? 여성 노동이 존중되고 고용환경이 개선되는 노동정책. 참 좋은 정책이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여성 평등’으로 포장된 신자유주의 정치는 여성을 기만한다. 마치 붕어빵 속에 붕어가 없듯, ‘여성 평등’ 속에 ‘여성’이 없는 격이다. 여성 노동자들조차 신자유주의 전략에 포섭되는 이유는 젠더 평등 정책, 여성 할당제 등을 절호의 ‘기회’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上野 千鶴子)는 여성의 고용 참여를 환영하고, 페미니스트 못지않게 ‘여성 평등’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정권의 전략을 의심한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일본은 1985년에 ‘남녀고용기회균등법(균등법)을 제정했다. 1991년에 육아휴직법, 2001년에 가정폭력방지법이 만들어졌다. 우에노 지즈코는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본 여성의 삶이 좋아졌는지 팍팍해졌는지 되돌아본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Yes or No’다.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선택을 강조한다. 여성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게 됐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는 다양해졌다. 그렇지만 정부가 이야기하는 여성의 의제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맞물려 이뤄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은 여성을 가족 내 보살핌의 일차적 책임자로 규정한다. 가족 중에서도 여성이 돌봄 노동 영역을 부담하고 있다. 여성의 재생산 노동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되는 젠더 평등 정책은 가부장적 성차별 구조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신자유주의는 여성의 생산, 재생산 노동의 이중 부담과 희생을 강요하고 성적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정규직 여성 노동자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간의 양극화(여여 격차)가 고착하고 있다.

 

우에노는 ‘기이한 관계’라는 표현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여성 혐오 현상이 내셔널리즘과 뒤엉킨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비기득권층으로 전락한 사람들(남성)이 내셔널리즘에 기대려 한다.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내부에 적을 만드는 전략으로 ‘여성 혐오’, ‘혐한’을 조성한다. 정치권에 향해야 할 일본인의 분노가 여성, 한국인에게 쏟아지고 있다. 우에노는 혐오를 부추기고 방관해온 고이즈미, 아베 정권을 비판한다. 신자유주의는 ‘성공한 여성’을 앞세워 성차별 해방 분위기 조성과 여성을 경제적 주변부로 몰아내는 ‘여성 빈곤화’를 동시에 달성한다. 그런데 내셔널리즘은 결혼하지 않는 ‘성공한 여성’과 페미니스트를 저출산 문제의 주범으로 몰아세워 공격한다.

 

우에노는 페미니즘이 대응하기 어려운 상대가 신자유주의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장벽은 그렇게 견고할까? 신자유주의 사회의 여성 문제는 복합적인 원인이 중첩된 골치 아픈 문제이다. 그녀는 여성 친화적인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페미니즘의 비약적 발전이라고 이야기하는 반응에 냉정한 시선을 던진다.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는 과정이 신자유주의의 흐름과 겹치기 때문이다.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는 페미니즘의 대중화와 신자유주의 시대에 마주하는 일본 여성 문제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우에노는 이 책에서 ‘여여 격차’와 여성 분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페미니즘의 투쟁 방식을 지적하면서, 그 원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진지하게 성찰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페미니스트들은 지금 바닥을 향한 경쟁을 강요하는 비정규직화에 맞서 자신을 저항주체로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될, 힘겹지만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려운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페미니스트가 먼저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신자유주의의 벽을 무너뜨리게 될 작은 구멍을 뚫으려면 ‘연대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인간은 연대를 통해 발전하고 인간다워진다. 연대는 거대한 장벽을 깨는 힘인 ‘집단성’과 ‘상호신뢰’를 회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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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3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9-03 18:24   좋아요 1 | URL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분석해야 하는데, 일부 남성들은 저출산과 비혼 문제의 원인을 무조건 여성 탓으로 돌립니다. 이런 적대적인 반응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어요. 여성이 아니라 사회에 분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