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Susan Sontag)『해석에 반대한다』라는 글에서 “해석은 해방 행위다. 거기서 해석은 수정하고, 재평가하는, 죽은 과거를 탈출하는 수단이다[1]라고 썼다. 그녀가 새롭게 제시한 ‘해석’의 의미는 예술뿐만 아니라 학문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학문의 진리는 끊임없이 연구되고 재해석된다. 칼 포퍼(Karl Popper)의 철학은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서 출발한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행태는 ‘닫힌 사회’의 전형적인 속성이다.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이면서도 불완전하므로 상호 비판이 허용돼야 하며 절대적 지식 추구는 위험하다. 포퍼가 지향하는 학문 접근 방식은 ‘비판이 가능한가?’라는 점이다.

 

 

 

 

 

 

 

 

 

 

 

 

 

 

 

 

 

 

*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2002)

* 이한구 《칼 포퍼의 『열린사회의 그 적들』 읽기》 (세창미디어, 2014)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은 각자마다 다르다. 사람들은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이 절대적 진리라고 여긴다. 그들은 대화와 토론을 거부한 채 자신이 알고 믿고 있는 것만이 절대적이라 여겨 ‘닫힌 사상’을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간다. ‘진리의 소유화’는 어느 사람도 예외일 수 없다. 새로운 지식과 앎에 대해 열려 있는 사람이 훌륭한 지식인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게일 루빈(Gayle Rubin)이다.

 

 

 

 

 

 

 

 

 

 

 

 

 

 

 

 

 

 

* 게일 루빈 《일탈 : 게일 루빈 선집》 (현실문화, 2015)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꾸리에, 2016)

 

 

 

게일 루빈은 스물다섯 살에 『여성 거래 : 성의 ‘정치경제’에 관한 노트』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그녀는 이 논문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젠더 불평등을 ‘계급’ 또는 ‘가부장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성 거래』가 발표된 연도는 1975년이다. 미국의 70년대는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의 시대였다. 신좌파 내 고질적인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루빈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퍼지는 ‘제2 물결 페미니즘’의 지적 양분을 흡수한다. 1970년에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성의 변증법》을 발표하여 성별 자체가 권력 관계를 내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발표했을 때 파이어스톤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재미있게도 《성의 변증법》이 발표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에 루빈의 논문이 나왔다. 《성의 변증법》의 첫 문장은 이렇다.

 

 

성적 계급(sex class)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2].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자체에 이미 권력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성적 계급을 ‘가장 오래되고, 가장 견고한 계급’이라고 말한다. 여성 억압은 아버지가 권력을 독점하는 가부장제와 더불어 작동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계급과 권력은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지만, 여성의 지위는 몸과 성별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나 루빈은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여성 억압 분석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는 ‘가부장제’ 대신에 ‘섹스/젠더 체계’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여성 억압의 원인을 분석한다. 섹스/젠더 체계는 여성을 ‘선물’인 것처럼 거래(또는 교환)하는 문화를 설명하는 개념적 도구이다.

 

루빈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계급 사회를 설명한 마르크스(Marx)와 엥겔스(Engels), 프로이트(Freud)에서 라캉(Lacan)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 레비스트로스(Levi Strauss)의 구조주의 인류학이 침묵한 젠더 불평등에 주목한다. 그녀는 여섯 명의 남성 지식인들이 구축한 사상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마르크스는 여성 억압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엥겔스는 사적 소유에서 파생된 가족제도(일부일처제)의 기원을 추적하여 여성 억압을 읽어냈지만, 루빈은 그의 분석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지 엥겔스의 대표작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실망스러운 저작’이라고 평가한다[3].

 

 

 

 

 

 

 

 

 

 

 

 

 

 

 

 

 

 

* 장-다비드 나지오 《정신분석의 근본 개념 7가지》 (한동네, 2017)

* 김석 《프로이트 & 라캉 : 무의식에로의 초대》 (김영사, 2010)

* 김석 《에크리 :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 2007)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2009)

*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도서출판 숲, 2008)

 

 

 

프로이트는 아버지에 대한 원초적 적대심을 소포클레스(Sophocles)의 고대 비극에서 빌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로 이름 붙인다. 남자아이는 어머니와 자신이 페니스가 달린 똑같은 사람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어머니를 독점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지만, 아버지가 자신의 페니스를 거세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거세 공포)을 느낀다. 남자아이는 거세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자아이는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하게 되고 남자로서의 성 정체성을 획득한다. 남자아이의 성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자주 언급된다.

 

라캉은 생물학적 성차에 주목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론을 ‘상징적 차원’으로 재분석한다. 그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두 어머니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라캉에 따르면 아이의 욕망은 결여로 인해 발생한다. 남자아이는 ‘페니스가 없는 어머니’를 욕망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자신을 ‘상상적 팔루스(Phallus)로 간주한다. 아버지의 거세 공포에 직면한 남자아이는 어머니의 결여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팔루스를 모방한다. 이 위기 과정을 통해서 남자아이는 자신의 팔루스를 아버지의 팔루스와 동일시하고(이때 ‘상상적 팔루스’는 거세된다), 자신의 결여를 채우기 위해 욕망의 대상을 아버지로 변경한다. ‘상상적 팔루스’에서 ‘상징적 팔루스’로 전환하면서 페니스는 타자, 즉 아버지의 욕망을 나타내는 기표(記標, signifier: 주체를 구성하고 재현하는 역할을 하는 요소)[4]가 된다. 라캉은 욕망의 대상이 되는 상징적인 아버지를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말한다. 남자아이의 욕망은 주체적 욕망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남자아이는 팔루스를 인식한 과정에서 타자인 아버지의 욕망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남아 있다. 팔루스가 없는 여자아이는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가. 라캉은 여자아이도 남자아이처럼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를 팔루스의 소유자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실제 페니스(프로이트), 상징적 팔루스(라캉)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여자아이는 ‘자신에게 팔루스를 줄 수 있는 아버지’를 욕망한다. 팔루스를 원하는 여자아이는 자신을 여성으로 인정하고, 아버지를 통해 팔루스를 소유하고자 한다. 루빈은 프로이트와 라캉 정신분석학의 ‘남근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왜냐하면, 남근 중심주의는 여성의 수동적인 정체성을 강조하고,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 앨런 바너드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한길사, 2016)

* 최협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풀빛, 2014)

 

 

 

레비스트로스는 『친족의 기본구조』에서 ‘여성의 교환’이 친족 체계와 족외혼 문화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원시 씨족사회의 기본 구조는 근친상간 금기에서 시작된다. 가부장이 자신이 속한 부족의 여성들을 다른 부족에게 '교환'함으로써 족내혼을 금지하고, 동시에 다른 부족과 혈연관계를 맺는다. 여성 교환의 기본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풍습이 결혼이다.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를 건네주는 관습이 결혼의 '교환' 행위를 보여준다. 신부의 아버지는 ‘성적 주체’ 또는 ‘교환 주체’인 반면 신부는 가족을 형성하기 위해 교환되는 ‘선물’이다. 루빈은 ‘여성 교환’ 구조가 여성을 억압하는 심층적 구조라고 비판한다.

 

루빈의 『여성 거래』는 남성 중심적 학문과 문화에 기인한 ‘해석을 수정하고, 재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종속이 묵인되었던 ‘(여성이)죽은 과거’에서 탈출하기 위한 ‘해방적 사유’을 펼친 역작이다. 다만, 루빈이 지향하는 ‘여성 해방’은 ‘남성 또는 가부장제의 제거’가 아니라 섹스/젠더 체계로 작동되는 사회구조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1] 《해석에 반대한다》 25쪽

[2] 《성의 변증법》 13쪽

[3] 《일탈》 『여성 거래』 99쪽 : 루빈은 엥겔스를 비판하지만, 그의 통찰은 주목할 만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4] 《일탈》에서는 ‘상징적 증표’가 ‘기표’와 같은 의미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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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1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11 16:18   좋아요 1 | URL
결혼과 출산에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살 수 있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어요. 순결과 도덕을 엄청나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만남이 풍기문란을 조장한다면서 반대할 것입니다. 비혼 족이 늘어도 여전히 혼자 사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이 남아 있어요.

2018-07-11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11 16:34   좋아요 0 | URL
일하면서 몰래 제 글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제가 ‘상상적 팔루스’의 의미를 잘못 소개했어요. 루빈의 <여성 거래> 번역문을 읽으면서 역자가 페니스와 팔루스를 서로 비슷한 의미로 쓰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성 거래> 번역문을 읽기 전에 정신분석학 자료를 참고했고, <여성 거래>를 읽었을 때 본문에 있는 프로이트와 라캉 정신분석학 개념을 정확히 구분해가면서 읽었어요. 그런데도 라캉의 이론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고, 이렇게 글로 정리해도 쉽지 않네요.. ^^;;

제가 봐도 팔루스를 받아들이는 여자아이에 대한 설명이 매우 빈약하게 느껴졌어요. 글을 쓰다 보니 엉뚱하게도 프로이트의 이론을 언급해버렸네요. 단기간에 야매로 라캉을 공부하니까 이 글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노출되었습니다. 제 글을 꼼꼼하게 읽고, 문제점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syo님. 퇴근하고 나서 글을 고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