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o have (just a little bit)

A little respect (just a little bit)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작은 존중뿐이에요.” 미국의 가수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 부른 Respect는 문자 그대로 존중에 관한 노래다. 이 노래는 민권운동에 뛰어든 흑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대표곡이 되었다. 사실 프랭클린이 부른 Respect는 리메이크 곡이다. 리메이크 버전 Respect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프랭클린의 뛰어난 가창력 이외에 구체적인 메시지가 있는 노랫말에 있다. 프랭클린은 Respect를 애원하듯이 부르지 않는다.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인 흑인여성으로서 살아온 프랭클린은 존중받을 권리에 대해 소리 높여 노래한다. 따라서 Respect인종의 다양성과 페미니즘을 아우르고 있는 노래라 할 수 있다.

 

 

 

 

 

 

 

 

 

 

 

 

 

 

 

 

 

 

 

*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이론문화연구소, 2009)

* [절판] 앨리스 워커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이프, 2004)

 

 

 

아프리카계 미국인 출신의 소설가 앨리스 워커(Alice Walker)는 자신의 글에서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아레사 프랭클린의 목소리에 평생 재갈이 물려 있다고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녀들은 오랜 억압에 가로막혀 질식당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신적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주체적 인간으로 변모해 가는 흑인여성들의 자립적인 삶이 주목받지 못한다. 흑인여성의 목소리는 백인 중심 사회에 의해 배제되거나 지워진다. 그렇지만 흑인여성은 할머니에서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대대손손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을 소중히 여겼다. ‘정신적 유산이란 흑인여성이 즐겨 부르던 구전 노래들에 표현된 흑인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이다.

 

 

 

 

 

 

 

 

 

 

 

 

 

 

 

 

 

 

 

* [읽을 예정인 책] 조라 닐 허스턴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문예출판사, 2014)

* 조라 닐 허스턴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문학과지성사, 2001)

 

 

 

조라 닐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은 미국 남부 흑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수집한 민속학자였다. 그녀는 사람의 의식은 한번 깨우면 다시 재울 수 없다고 했다. 그녀가 찾고자 했던 원초적인 흑인 민중의 언어와 문화는 백인 앞에서 말문을 닫고 순응하면서 지내도록 강요한 통제적 이미지에 저항하는 수단이 된다. 특히 흑인여성은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개인적 목소리를 표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흑인여성은 백인이 부여한 통제적 이미지를 거부하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인간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회복하게 된다. 변화된 의식을 가진 흑인여성은 다시 재울 수 없다. 그들이 모이면 유대감으로 똘똘 뭉친 공동체가 나오게 되고, 하나의 집단으로 형상화된 목소리는 사회를 바꾸려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것이야말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강조하는 집단적 힘 기르기.

 

 

 

 

 

 

 

 

 

 

 

 

 

 

 

 

 

 

 

 

 

 

 

 

 

 

 

 

 

 

 

 

 

* 마커스 레디커 노예선(갈무리, 2018)

* 에릭 홉스봄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PHONO, 2014)

* 김진묵 흑인 잔혹사(한양대학교출판부, 2011)

* [절판] 벤자민 콸스 미국 흑인사(백산서당, 2002)

 

 

 

흑인 역사를 논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음악이다. 흑인 영가는 미국의 노예 흑인들이 만들어 부른 기독교 복음성가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이 음악의 원류는 아프리카의 전승 음악이다. 아프리카 흑인이 미국으로 끌려가지 않았으면 흑인영가뿐만 아니라 재즈와 블루스, 도 없었을 것이다. 흑인에게 음악은 어떤 예술양식보다도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행동이다. 노예로 팔려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처참한 상황에서 음악은 그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보듬어주는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종종 소설이나 영화에 보면 노예선에 갇힌 노예들은 꿈도 희망도 없는 무력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노예선 내부 모습과 분위기를 증언하는 자료를 수집한 역사학자 마커스 레디커(Marcus Rediker)는 흑인들이 노래를 통해 자신들이 직면한 절망에 대항하는 집단적인 힘을 길러냈다고 주장한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노예선은 바다 위에 움직이는 거대한 감옥이면서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창의성이 발현된 장소로 볼 수 있다. 레디커가 발견한 기록들은 흑인여성이 저항과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예선에서는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때로는 선원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지만, 보통은 아프리카인들이 밤낮으로 노래를 불렀다. 때로는 강제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어떤 노래는 자발적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이전에 노예선 선장이었던 어떤 사람의 설명에 따르면 남자들은 고향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고향 문화에 관해 이야기했고 남자아이들은 거기에 맞춰 춤을 추며 즐겼다.” 모든 기록에서는 노예선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항상 여자가 맡았다. (마커스 레디커 노예선338)

 

 

재즈 비평가로도 활동했던 역사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재즈를 과거와 현재에 걸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Uncommon People, 그가 쓴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의 원제이기도 하다)의 신념과 행위가 반영된 음악으로 봤다. 재즈는 미국 흑인들의 척박한 현실과 삶의 애환 속에서 탄생된 음악이다. 재즈를 만들거나 즐겨 부른 흑인들, 특히 빌리 홀리데이와 아레사 프랭클린 등과 같은 거장들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인간이다. 그녀들이 가수가 되지 못했더라면 노래를 잘 부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되었을 것이고, 무대에 올라서도 무명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다. 홀리데이와 프랭클린이 거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노래에 응답한 평범한 사람들’, 즉 흑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 음악은 백인이 설립한 레코드 회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지만, 그 속에는 백인 사회가 외면하고 배제한 평범한 흑인의 삶이 표현되어 있다. 흑인 음악에는 구체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메시지 없는 흑인 음악은 노래 속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흑인의 삶이 없을뿐더러 그 노래를 듣는 청자인 흑인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흑인 음악에 고통스러운 삶을 산 흑인들의 한()의 정서가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의 정서는 흑인 음악의 정의가 될 수 없다. 한의 정서만으로는 다양한 언어와 음색, 음률로 표현할 수 있는 흑인 음악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인 음악에서 표현된 의 의미를 어설프게 접근하면 흑인을 아픔과 부침이 많은 민족으로 상정하고, 흑인 음악을 피해자의 목소리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흑인을 타자로 대상화하면서 일어나는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구구절절 드러내는 구슬픈 흑인 음악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들도 소중하며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인간임을 당당하게 말하는 흑인 음악도 있다. 프랭클린의 Respect처럼 말이다. 흑인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서 느꼈던 것은 좌절과 포기가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뜨거운 자유에의 열망과 인간다운 삶에의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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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28 15:56   좋아요 2 | URL
요즘 흑인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유튜브에 찾아 듣고 있습니다. 빌리 홀리데이, 니나 시몬즈. 그녀들이 부른 곡들은 정말 최고입니다. 흑인 가수들이 부른 재즈라고 하면 우울한 가사와 선율로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프랭클린의 <Respect>처럼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노래도 있어요. 저항적인 메시지를 유쾌한 음악으로 전달하는 그들의 예술적 능력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