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직톤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를 욕보인 죄로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시달리는 저주를 받았다. 그가 워낙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다 보니 나중엔 음식 구할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자 자신의 딸을 팔아 식탐을 채웠다. 그러고서도 배고픔을 억제하지 못해 자신의 몸을 뜯어먹었다.

 

에리직톤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고민에 빠진 사람이 많다. 그들은 땀이 비 오듯 내릴 정도로 뛰기도 하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굶기도 한다. 그래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나 자신과의 전쟁. 아마도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름다움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보통사람들이 동시대가 규정하는 아름다움의 조건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특히 TV 브라운관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영상에 나만의 빛깔로 대항하기란 역부족이다. 개성에 주목하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외모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것이 변함없는 사실이다.

 

음식과 여성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여성들은 먹는 것 앞에서 환호하고 먹는 것 앞에서 절망한다. 음식과 여성은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다.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다. 처음에는 배가 고파 허기진 듯이 먹었고, 그다음에는 많이 먹고 기운을 차려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먹었으나 이제는 먹고 싶어서 먹는다. 먹고 또 먹다가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만이 되었고, 비만이 되다가 보니까 끝없이 음식이 당겨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끔 됐다. 한때 끊임없는 자기혐오로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낸 록산 게이가 그러했다. 그녀는 과거 몸무게가 261kg까지 나간 적이 있다. 《헝거》(사이행성, 2018)는 사람들의 쏟아지는 시선에 고군분투하는 자신의 몸에 확대경을 들이댄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몸을 저주받은 몸뚱이로 훑지 않는다. 그녀는 몸과 허기진 욕망을 덤덤하면서도 진지하게 고백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자신을 ‘당당한 여성’으로 보듬는다.

 

 

이 책을 쓰는 건 고백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가장 추하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헐벗은 부분을 드러내겠다는 말이다. 나에겐 이런 진실이 있다고 털어놓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내) 몸에 대한 고백이라고 말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대체로 내 몸과 같은 몸의 이야기들은 무시되거나 묵살되거나 조롱받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몸과 같은 몸을 보고 쉽게 단정해버린다. 왜 저 사람이 저런 몸이 되었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들은 모른다. 나의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말해야만 하고 더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다. [1]

 

 

그녀는 왜 뚱뚱해졌는가? 따지고 보면, 비만은 그녀의 잘못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열두 살에 성폭행을 당했다. 그녀는 그 끔찍한 기억이 할퀴고 간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 인생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별로 깔끔하지 않지만 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비포’가 있고 ‘애프터’가 있다. 몸무게가 늘기 전. 몸무게가 늘어난 후. 강간을 당하기 이전. 강간을 당한 이후. [2]

 

 

‘애프터(after)’가 된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어린 게이는 홀로 상처를 감당해야 했다. 학교에서 거의 매일 놀림을 당했다. 결국, 친구보다 ‘적’이 더 많아졌고, 늘 혼자였다. 그녀는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른이 돼서도 치유의 시작도 못 한 영혼은 여전히 열두 살에 머물렀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절망과 공허감에 외로웠다. 그 허기를 자연스레 먹는 것으로 채웠다. 그녀는 스트레스를 식탐과 폭식으로 메웠다.

 

식탐은 마음의 허기가 원인이다. 일부에선 살찐 사람을 단순히 절제력이 없다며 힐난한다. 그러나 세상살이의 억울함, 분노를 외부로 발산하지 못한 채 먹는 것으로 푸는 경우도 많다. 게이는 자신의 몸을 ‘감옥’ 또는 ‘성벽’으로 비유한다. 몸이 비대해지면 다른 사람들의 공격적인 시선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살을 찌우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으며 인정받을 수 있는 진심 어린 애정을 포기한 적도 있다.

 

《헝거》는 비만을 혐오하거나 동정하는 시선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저자가 고통을 무릅쓰고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되는 경위를 독자에게 털어놓는다.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며 덜 지적으로 여겨지는 반면 몸매 좋은 사람을 그 반대로 본다는 건 타인의 몸을 바라볼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고정관념이다. 그러고 보면 뚱뚱한 사람을 힘겹게 만드는 것은 무거운 체중만이 아니다. 사회적 편견과 냉대는 더 무서운 칼이 된다. 여성은 무수히 쏟아지는 음식 광고, ‘먹방’ 등 식탐을 조장하는 환경 속에 살면서 미디어로부터 날씬하기를 요구받는다. 끊임없이 자기 몸을 검열하며 다이어트에 몰두하고, 호시탐탐 몸을 찢고 보형물을 삽입할 궁리를 해야 하는 여성은 괴롭다. 록산 게이는 이런 모순된 환경 속에서 여성들은 삶의 무게를 가중하는 우울증에 짓눌리고,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록산 게이의 꿈은 소박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대로 먹고, 옷을 입고, 글을 쓰면서 활동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 그녀에게는 꼭 하고 싶은 꿈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몸을 자기만의 감옥이나 성벽에 가둘 필요가 없다. 나만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선 그것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남의 눈에 평생이 좌우되는 삶보다는 내 몸과 내 운명에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그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움으로써 열두 살 이후로 잊어버린 ‘목소리’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인간의 실체를 외모지상주의와 성적 대상으로서의 가치만 바라보는 세상 속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너지지 않는 나’를 찾는 일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몸에 눈뜨는 일, 그리고 더 나아가선 나의 세계를 건강하게 짓는 일이다. 그 세계를 보게 만드는 거울이 바로 이 책, 《헝거》이다.

 

 

 

 

 

[1] 23쪽

[2]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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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17 18:49   좋아요 0 | URL
허기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는지 고민해야겠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허기를 잊으려고 하는데요, 이 방법만으로는 안 되겠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