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보다 기분이 좀 나아져 있었다.
넓은 창에 커튼을 치지 않고 야경을 그대로 둔채로 잠들어서 새벽에 깰 때마다 바깥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창 앞에 서 풍경을 바라보았다.


역시 창은 크고 봐야돼.
당연한 말이겠지만, 좋은 룸을 찾으려고 애를 쓰다보니 가격이 점점 더 올라갔고, 그렇게 좋은 룸을 찾고나니 당연히 좋은 단지에 위치했다. 이 집에 들어오고나서야 아, 내가 나름 부촌으로 왔구나 싶었다. 좋은룸은 그래, 필연적으로 부촌으로 이어지겠지. 한국에 있을때도 부촌에 살아본 적 없던 나는 이렇게 잠깐이나마 싱가폴 부촌을 경험하겠구나.
단지에 외부인이 들어오면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겨야 한다. 단순히 차만 그런게 아니라 개인도 그렇다. 보안이 매우 철저하다. 싱가폴에 6개월간 살면서 단지내 수영장도 한 번 이용해봐야겠다.
오늘 아침엔 드디어 집에서 밥을 해먹었다!!
급하게 장 보느라 필요한 걸 모두 살 순 없었지만 쌀은 샀다! 그래서 전자렌지에 밥을 하고 냉동하려고 또 다 담아두었다.
반찬은 초라했지만, 싱가폴에 와서 그동안 밥 먹은것보다 더 잘먹은 것 같다. 그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로 밥을 잘 먹지는 못했던 터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초라하지만 맛있게 먹었다.

히- 밥 해서 쌓아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하나는 앤드류가 먹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 앤드류가 왔었다.
앤드류 오기 전에 장봐서 나름 잡채랑 카레랑 해야지 생각했는데 점심 전에 이걸 장을 다 보고 요리를 하려니 시간이 없다. 그리고 마트에서 장 볼 때 줄이 길기도 하지만 정말 계산이 느리다!! 사람 아주 초조해져버려. 직원들이 천천히 바코드 스캔도 하고 봉투에 넣어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느려가지고 줄이 빨리 줄지를 않아. 나는 아직 재료도 다 준비 못했는데 점심 먹을 시간은 다가오고.. 에라이 모르겠다. 한국음식인데 알게 뭐냐, 나는 밀키트 떡볶이를 사서 만들고 만두를 전자렌지에 쪄서 밥이랑 같이 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로망중 하나가 혼자 사는 집에 친구 초대해서 와인 있고 맥주 있어 뭐 마실래? 였는데, 오늘 앤드류가 왔을 때 앉으라고 한 후에 와인도 있고 맥주도 있고 물도 있어 뭐 줄까? 했더니 맥주 달라고 해서 맥주 줬다. 개꿀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두 잘 익었는지 내가 먹어보느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앤드류가 만두도 너무 좋아했고 밥에다가 떡볶이 비벼서 잘 먹었다.ㅋㅋㅋ 잘 먹는거 보니까 내가 또 깔깔 웃게돼. 그래서 나는 니가 한국음식 잘 먹는게 왜이렇게 즐겁지?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왜 이런거 좋아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바람돌이 님 말씀대로 사실 외교관 자질인가...
여튼 얘기를 겁나 많이 했는데 사실.. 어휴 .. 못알아들은 것도 많아가지고... 진지한 얘기도 한 것 같았는데. 하여간 얘기가 여기에서 저기로 막 이어지다가 중간에 내가 못알아들어서 다시 말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앤드류, 너가 했던 일이 뭐라고 했지? 했더니, 수학과 과학 에듀케이션 프로그램 만드는 거라고 했다. 지금은 일을 그만두고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그래서 와 너 수학 잘해? 했더니 수학 잘한단다. 그리고 취미로 그림 그린다고 보여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 뭐지.... 나에게 너는 어때? 라고 물어서 나는 읽고 쓰는걸 좋아해, 했다.
앤드류한테 어제였나 내가 쓴 글 몇 개 링크 보내줬다. 번역기 돌리면 잘 전달될지 모르겠어, 했더니 천천히 읽겠다고, 왜냐면 번역을 해가면서 읽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great writer 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이렇게 내 글이 세계에서 읽히고.. (응?)
내가 '너 호주 돌아가면 너에 대해 쓴 글도 보내줄게, 지금은 좀 샤이해' 했다. 그랬더니 알았다고, 이해한다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자기 형은 엄마 절반 닮고 아빠 절반 닮았다고 하면서 나는 어떻냐길래 나는 캐릭터는 엄마 닮고 피지컬은 아빠 닮았는데, 아이 돈 라이킷 했더니 웃으면서 와이? 하더니
You're pretty You're beautiful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내가 나 얼굴 마음에 안든다는 건 아니었는데. 나도 내 얼굴에 만족해. 다른 신체적 특징들이 마음에 안드는 거였는데. 내가 내 얼굴 싫어한다고 생각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야 인생 진짜 살아볼만하다. 흰머리가 점점 많아지고 화장도 안하고 숏헤어인 나한테 ㅋㅋ 앤드류는 긴머리 여성을 좋아한다는데 ㅋㅋㅋ 나는 베리 숏헤어 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가지고 결론적으로 친구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다.
밥 먹고 창밖을 한참이나 나란히 보았던 순간들은 참 좋았다.
고마운 사람이다. 집에 벌어진 일 때문에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아있던 내 우울을 순식간에 잊게 해줬다.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 내게 있다니, 하면서 앤드류랑 같이 있지 않을 때에도 즐거웠다. 오늘 내 승모 만지면서 와 이거 뭐야, 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응 그거 내 스트레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했다. 내가 너무 힘드니까 분위기 좀 바꿔보라며 신께서 보내주셨던게 아닌가 싶다. 나는 다음주부터 아마도 본격적으로 학교생활 시작할텐데, 그전까지는 사실 싱가폴에 아는 사람 하나 없어서 정신적으로도 좀 힘들었다. 친구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고 하나하나 다 스스로 힘겹게 해결해가야 하는게 심적으로도 부담이었고 매일매일 내가 할 수 있나, 이걸 해결해야 하는데, 해결이 될까, 어떻게 해결하면 되지, 하는 생각에 골몰하다가 앤드류를 만나서 다 잊고 깔깔 웃을 수 있었다. 앤드류랑 얘기하면서 집안일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학교에 가면 학교생활을 할 수 있고, 또 친구도 사귈 수 있겠지만, 그전까지는 매일 혼자여야 할텐데, 그 시간에 바로 앤드류가 있었다. 그래서 지난번 만남 때 나는 앤드류에게 말했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집에 일이 좀 생겨서 매우 디프레스 했고, 그 후에 싱가폴에 와서도 여전히 디프레스 했다고. 그리고 너를 만났다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더랬다.
You change my mood.
앤드류는 나의 그말에 베리 스윗하고 베리 로맨틱하다고 했다. 오늘은 나에게 '너는 나보다 로맨틱한 사람이야' 라고 했다. 나는 네가 폴라이트 퍼슨이라서 매력을 느껴, 라고 말했다.
헤어지면서 나는 그에게 굿바이 라고 말했고 그는 내게 굿 럭 이라고 말했다.
좋은 만남이었고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외국인과 둘이서 이렇게 몇차례나 만날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만나기 전에는 '하, 오늘은 할 영어가 더이상 없지 않을까' 했는데 또 막상 만나면 이렇게 저렇게 뭐가 어떻게든 된다. 사실 내가 그의 말을 백프로 이해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쩌면 중요한 걸 놓쳤을 수도 있지만, 내 인생의 이 시점에 이 만남이 있다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내게 하는 말들이 하나하나 다 스윗해서 또 좋았다.
I want to see youuuu
막 이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확실히 외국인 친구 사귀면 외국어가 늘기는 하는 것 같다. 내가 허벅지를 씨프라고 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앤드류가 싸이라고 알려줌. 그거 스펠링이 뭔데? thigh 어 내가 아는 그게 맞는데 싸이라고 읽는거였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나 졸라 귀여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외국인과 단둘이 만나 데이트 하는 시간들을 인생에 갖게 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그러니까 외국어에 서툰 내가 상대에게 더 호감을 줄 수밖에 없을 거라는 그런 생각. 왜냐하면 모국어가 아니고 또 내가 외국어 숙련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면 잘 들어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게 온전히 집중하는거다. 완전 포커싱해가지고 쳐다보고 듣고 그래야만 그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보통 모국어라면 사실 내가 집중을 안해도 상대의 물음에 대답할 수가 있다. 내가 이렇게 노트북으로 글 쓰다가도 옆에서 말하는 소리들이 다 들린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에는 잠깐만 정신을 놓으면 그 뒤가 다 사라져버린다. 그러니 아직 서툰 영어로 영어생활자와 대화를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포커싱을 해야하는거다. 상대는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집중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만 보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고. 내가 영어를 더 잘했으면 이렇게까지 페이 어텐션 하지 않았을텐데, 그러나 잘 못하기 때문에 나는 앤드류와 같이 있을 때면 온통 그에게 집중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이걸 앤드류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너랑 얘기할 때면 너에게 온통 집중해야만 하는데, 그 뒤가 영작이 잘 안되는거다. 그래서 기다려보라고, 챗지피티한테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화면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 화면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알겠다면서, 너는 얘기하는 내내 눈을 마주치니까 이 말이 뭔지 이해하겠다고. 그런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두번째에 가까울 것 같다고 했다. 위에꺼는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거고 밑에꺼는 자기가 나를 좋아하는거라고, 두번째가 더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런게 재미있다. 내가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걸 느끼는 것이.
무작정 영어를 잘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못해도 대화가 되고 못하는채로 대화를 하다보니 상대에게 집중하는 걸 보여주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이런거 너무 재미있지 않나.
생활이 다 영어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12층인데, 어제 11층인 남자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키를 대지 않고 그 덕분에 들어올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나는 오늘 move in 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오 그러냐고 이곳은 살기에 매우 나이스하다고, 캄하다고 하면서 자신은 11층에 산다고 했다.
오늘은 무지에 갔다가 직원에게 담요 있냐고 물어봐서 담요를 구입했는데 영어로 대화하다가 마지막에 직원이 일본어로 얘기하는거다. 하. 내가 일본 사람인줄 알았나. 그래서 내가 아 임 낫 저패니즈, 아임 싸우스 코리안 했다. 그러니까 뭔가 나의 반응 속도가 좀 더 빨라진 느낌적 느낌? ㅋㅋ
여전히 무섭고 두렵기도 하다.
내가 학교 수업을 잘 못따라가면 어떡하지?
매일 밤마다 외로움을 느끼면 어떡하지?
어느날 밤에는 야경이 위로가 되지 않기도 하겠지?
이 집을 깨끗이 쓰지 못해서 계약을 위반하면 어떡하지?
전기료, 수도세가 많이 나오면 어떡하지?
다음 레벨로 넘어가는 거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돈을 너무 많이 쓰면 어떡하지?
16일 안에 학생비자 카피본 집에 제출해야 되는데 그전에 안나오면 어떡하지?
앤드류 못만나도 나는 즐거울 수 있을까?
진짜 돈 때문에 대환장 되시겠다. 그래서 얼른 유료 플랫폼으로 가야되는데... 그래도 오늘은 저렴한 슈퍼마켓 발견해서 다진 마늘도 사고 세탁기용 세제도 사고 그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나는 이제 앤드류 없는 싱가폴을 살아야 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앗. 지금 깨달았는데, 앤드류 내 집에서 화장실 사용했는데 변기 시트가 내려져있네? 너,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