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레벨의 쓰기 선생님 수업은 지루하고, 첫번째 글쓰기를 봐준다고 학생들을 죄다 한 명씩 옆에 앉혀두고 지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업시간에 자유시간이 생겨버렸다. 선생님은 이 시간을 게임하거나 sns 를 하며 보내지말고, 너네 온라인 숙제를 하거나(아! 나 안했네? ㅋㅋㅋㅋ), 나눠준 프린트물을 하라고 했다. 어차피 해야 할거, 투안과 나는 옆자리에 앉아서 서로 이거 했냐 저거 했냐 물어보다가 어제는, 지루했는지 투안이 내게 한 사이트를 알려주며 이거 해보라고 했다. 보니까 타이핑 속도 체크하는 웹사이트였는데, 하하하하, typing.com 이었다. 응 해볼게, 하고 일단 영어로 했는데, 총 일곱단계의 업적중 세번째가 나왔다. skilled 라는데, 이걸 보고 뚜안과 안이 환호하면서 엄청 빠르다고 하는거다. 뚜안은 두번째 단계가 나오고 안은 첫번째 단계가 나오는 것. 하하하하하. 아니 이게 그렇게 박수칠 일이야?
나는 영어로 몇 번 해보고 뚜안과 안이 호들갑을 떨길래, '내가 한국어로 해볼게' 했다. 뚜안은 '나는 베트남어로 해도 느려' 했다. 하.. 너네, 내 한국어 타자 실력 볼래...
그리고 한국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치자마자 뚜안이 놀라서 환호를 하고 안을 톡톡 치면서 이것보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그러더니 투 패스트 투 패스트 하면서 갑자기 둘다 내가 타자 치는걸 촬영하기 시작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넘나 웃김. 나는 한글 타자에서는 네번째 단계가 나왔다.

촬영하니까 좀 긴장되잖아 ㅋㅋㅋ 아무튼 별것도 아닌데 친구들이 엄청 환호하고 박수를 쳐서 ㅋㅋㅋ 내가 또 해볼게 이러고 한글타자 계속 침 ㅋㅋㅋㅋㅋㅋㅋㅋ 뚜안은 나한테 뭔가 말하려고 막 시도하다가,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모르겠는지, 번역기를 통해 한국어로 이렇게 썼다.
"나 이렇게 타자 빨리 치는 사람 처음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이십년이상 회사 생활했다고...얘기하지 않았다.
예들아, 나 이십년간 직장생활 했어... 그리고, 나 인터넷에 오랫동안 글썼어, 근무시간에.......... 그러면 정말 타자 실력이 미친듯이 늘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뚜안과 안이 박수치며 환호하는게 너무 웃겨서 깔깔 웃었는데,
그러다보니 뚜안은 베트남어로 왜 영어보다 더 느린지 얘기해줬다. 베트남어는 알파벳 위나 아래에 점을 찍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키보드에서 단순히 철자를 타자하는 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그 후의 작업들이 필요했다. 위에 찍는 점이냐 아래에 찍는 점이냐에 따라 다르고, 그걸 모두 외운다고 생각하니 너무 힘들겠더라. 그런데 뚜안은,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해서 그걸 타자하는게 어렵지는 않아, 그런데 영어보다 시간은 더 걸려, 라고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글에 대해서도 얘기하게 됐다. 우리는 그냥 타자치면 되는데, 라면서 얘기하다가 결국 한글을 설명해주기에 이르렀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한글은 정말 쉬워! 하면서 노트에 적어서 급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거랑 이거랑 믹스해서 글자 만드는 거고, 한글은 이것만 외워두면 다 돼! 하면서 설명해줬다.

그렇게 설명하다가 네 이름 써볼게, 하고 '투안'의 이름을 썼는데 뚜안(내가 부를 때는 뚜안이라고 부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너무 좋아하면서 내가 한 번 써볼게, 해가지고 저 밑에 '투안'은 투안이 직접 쓴거다. 그러면서 한글이 베리 인터레스팅 이라고 자기가 practice 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자기가 한글로 써본 투안을 번역기로 사진 찍어서 베트남어로 투안이라고 나오니까 오!!!! 막 이러면서 좋아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가지고, 나도 막 즐거워졌다. 그래서 깔깔 웃으면서 어제는 헤어졌다.
그리고 오늘.
오늘은 수업시간에 프린트물 풀어보자, 이러면서 뚜안하고 나하고 3 해서 같이 채점하고 4해서 같이 채점하고 5까지 하고 같이 채점하는데, 모르는 단어 수천개에 해석이 잘 안되고, 해석 했다고 생각해도 문제 죄다 틀려버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앞에 앉은 중국인 친구 '이페이' 에게, 어제부터 너도 2 풀어봐, 이랬고 오늘도 3 풀면서 너도 풀어봐 이래가지고 ㅋㅋ 갑자기 애들 공부모드 만들어버리고, 그러다 생각난 김에 벌떡 일어나서 로이드에게 가가지고, 야, 너도 풀어 이래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놋북으로 게임하던 로이드가 알았어, 이래서 3 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서로 몇 개 맞혔나 공유하고 -나포함 다들 형편없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뚜안과 내가 4 풀 때, 내가 다시 '이페이!' 불러가지고, 4풀어보자 이래서 알았어, 하고 '로이드!' 하고 불러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이드가 게임하다가 쳐다보길래 '4 풀어봐!'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래서 또 같이 스코어 공유했다. 너 몇 개 맞음? 나는 다섯개중 두 개 맞고 뚜안 한 개 맞고 로이드 두개 맞고 이페이 한 개 맞고 ㅋㅋㅋㅋㅋㅋㅋ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갑자기 애들 공부시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그냥 혼자 안하고 다 하라고 시키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시키니까 애들이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세 개 하고나니 와 진이 빠져버려. 시간도 걸리고 에너지도 너무 쏟아서,
오늘은 저 노트에 적힌걸 새로 다시 좀 잘 적어가지고 뚜안에게 '사랑해' 알려줬다. 뚜안은 여자친구가 있고 여자친구랑 결혼하고 싶어해서 그거 알려주고 그러니까 뚜안이 안을 불러서 이거봐 이거봐 하고 또 알려주고, 안은 I like you 도 이렇게 말하면 되냐고 해서, 아니야 그건 '좋아해' 야 이러면서 설명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뚜안은 자음과 모음 내가 써놓은 거 보면서, 어 이건 여기에서 왔네, 이건 이거네 하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엄청 좋아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되게 신나했다. 한글이.. .우수하다!
아무튼 그렇게 수업 끝나고 집에 가면서 해피 뉴 이어! 하는데, 뚜안이 '우리(뚜안과 안)는 오늘 영어를 배우지 않았고 한국어를 배웠어'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글 자음과 모음 알려주고 씐나하는거 보니까 나 또 너무 즐거웠네. 그리고 뚜안과 안은 내가 오늘 새로 적은 노트를 사진 찍어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었다.
음, 내가 여기 와서 깨달은건데, 내가 제일 재미있고 행복했던 시간은, 앤드류에게 삼겹살이랑 소주 먹는거 알려줄 때랑, 뚜안에게 한글 알려줄 때인 것 같다. 이거 뭔가.. 이런 어떤 성향이 ... 있을 것 같고, 이 성향으로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모르겠다.
아, 물론 싱가폴인 에릭과 존을 만난 것도 좋았고, 그들과 세시간 동안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것도 신났다. 오늘은 혼자 와인 마시러 갔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기가 마트에 있는 곳이라서 와인 주문하고 계산하기 전에 '너 멤버야?' 물어본다. 그러면 멤버십 바코드 보여주고 스캔하고 적립하는 거다. 그런데 내가 싱가폴 폰에 멤버십이 있어서 ㅋㅋ 귀찮아서 그냥 스킵할게, 하고 넘어갔었는데 ㅋㅋㅋㅋ 오늘은 딱 준비해가지고 가서 멤버십 큐알을 보여줬다. 그런데 캐셔에다 바텐더인 직원이 빵터져서 웃으면서,
"너 드디어 멤버십 가져왔네, 항상 스킵했잖아!"
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같이 웃었다. 아니, 그런 것도 기억하심? 하여간 어제 오늘 재미있었다.
2025년의 12월 31일이다.
올해는 내게 큰 변화가 있는 해였다.
내가 싱가폴에 와있으니까.
싱가폴에 오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민하는 시간이 분명 있었고, 그건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다. 이십년 이상 일한 직장을 떠난다는 의미였고, 돈을 더이상 벌지 못한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러나 영어 어학연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으로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나는 여기에 와있다. 퇴사하고 싱가폴에 오기전까지 2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은 집에 문제가 생겨서 힘들게 보내야 했다. 어떤 날들에는 변호사랑 상담받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길바닥에 주저 앉아 울기도 했다. 내가 집에 있어서 이걸 해결하러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다가도, 왜 나는 꼭 이렇게 어디서든 일을 해야만 하는건가 라는 생각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했다.
지금은 어쨌든 소송이 걸려있고, 변호사를 선임했고, 재판을 지켜보는 일이 남아있다. 지금은 그 때처럼 힘들지 않다. 싱가폴에 오고나서도 한동안 변호사랑 통화도 해야했고 수습을 위해 계속 동동거렸는데, 어쨌든 진행중이고 지켜볼 일이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일이 내 삶에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다. 이게 생각하지도 못한 나쁜일이었고, 이것 때문에 너무나 우울했다면,
싱가폴에 와서 영어를 공부하기로 한 건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다. 물론 현재 진행중이지만, 사실 한달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벌써부터 이것이 끝나는게 아쉽다.
지금은 앤드류랑 잘 연락하며 지내지도 않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앤드류를 만난 것도 너무 즐거웠다. 시절인연 이라 불러야 하는걸까,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앤드류에게도 말햇지만, 한국에서 엄청 고생하고 마음 끓인 상태로 왔다가(싱가폴 오기 직전까지 변호사를 만났다), 앤드류를 만나는 동안 영어 하느라 완전히 집중해서 ㅋㅋㅋ 내가 힘든 것도 잊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는 선물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고, 그건 진심이었다.
내가 싱가폴에 있기 때문에, 그동안 해외를 나가보지 않았거나 나간지 오래됐던 친구들이 나를 만나러 싱가폴에 오기도 했다. 8월에 와서 지금 4개월동안 있으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국에서 친구가 네 번 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달에 한 번씩 친구들 온 셈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것 역시 즐거웠다. 아니, 얼마나 좋은 기회야? 해외에서 혼자 거주하는 친구가 있다니, 너무 가보고 싶지 않나. 다음다음주엔 여동생 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와서 처음에 이것저것 해야할 게 많고, 그런데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그래서 해결해야 했고, 그런데 혼자였고, 그래서 너무나 힘들었지만.. 지금은, 어휴 그때 왜그렇게 힘들었냐.. 한다.
올해는 소송 때문도 그렇고 여기와서 적응하느라도 그렇고 책을 너무 못읽어서.. 고작 97권 읽는데 그쳤지만, 그게 좀 아쉽지만, 아주 특별한 해였다.
아, 올해 마지막으로 읽은 책, '클레어 키건'의 [남극]은, 지난주에 싱가폴에 와서 나랑 크리스마스를 함께 지낸 친구들이 주고간 책이다. 친구들이 간 다음날 이걸 읽어볼까, 하고 책을 펼쳤던 나는, 그 안에서 다정한 메모와 함께 현금을 발견한다.


사실, 싱가폴에 왔던 친구들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갈 때면 본인들이 환전한 돈을 다 나를 주고 갔다. 이걸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고 싶었지만, 괜히 다음에 올 친구가 '나도 그래야 되나' 라고 생각할까봐 언급한 적 없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들 돈 다 나를 주고가. 친구는 메모와 함게, 환전했던 돈을 책에 꽂아서 나에게 주고갔다.
지금 이렇게 쓸 수 있는건, 이제 올 사람은 내 동생밖에 없기 때문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여러가지로 특별한 한 해였다. 이제 잠시후면 맞이하게 될 새로운 해도, 역시나 특별한, 더 특별한, 좋은 의미로 특별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더 깨닫고 싶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다. 나는 모르는게 너무나 많고 알아야 할 게 너무나 많다. 아주아주 힘든 시간들이 분명 있었지만, 그렇지만 그 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대체적으로 아주 즐겁고 행복했다.
현재시간 2025 년 12월 31일 23:33
중심지에서 파티가 있는것 같다.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빌딩이 번쩍거리고, 내 방에서 그게 보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혼자 있으면서, 웃었다.
나는 한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한여름에 새해를 맞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