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은 아내와 함께 아들 영재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 삼 년 동안 서로를 보지 못했다. 영재는 호주 남서부 끝에 있는 퍼스라는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인천에서 그곳까지 가는 직항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싱가포르를 거쳐가기로 했다. 그는 조금 더 편안한 자세를 찾기 위해 몸을 뒤척였다. -우리[畜舍]의 환대, 장희원, p.301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가장 나중 실린 단편, 장희원의 <우리[畜舍]의 환대>는 위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재현과 아내가 호주 퍼스에서 워킹홀리데이로 가있는 아들 영재를 만나러 가는 장면. 시작은 이토록이나 평범했다. 그러니까, 워킹홀리데이를 가있는 사람도 또 가고자 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고 대한민국에서만 공부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주변에만 해도 공부며 어학연수로 미국에, 캐나다에, 호주에, 스페인에 다녀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이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가족들과 가끔 연락하며 안부를 주고받고 어쩌다가 시간을 내어 가족들을 만나기도 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이야기도 아니다.


재현과 아내가 아들 영재를 만나러 가는 것도 그러니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아들 영재가 호주에 가기전 고등학생때 포르노를 본 것도, 재현은 웃어넘겼다. 뭐, 아들은 그럴 때도 있지. 그러나 재현이 평소보다 일찍 귀가했을 때, 그런데 아들 영재가 헤드폰을 끼고 남성들간의 포르노를 보고 있었을 때, 그 때 재현은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넘기지 못하고 아들을 흠씬 두들겨팼다. 그것은 안될일이어서 팼다. 포르노를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남자와 남자가 발가벗고 뒤엉켜 안는 포르노는 안되는 거라서 팼다. 이것이 재현이었고 이것이 영재의 아버지였다.


한 가족 안에서 이런 일들은 칼로 물베기 같은 것이었을까. 그들 부자와 그들 가족은 그 뒤로도 별 일 없이 아들이 대학에 진학을 하고 또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고 하는 걸 보내주면서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아들이 호주, 퍼스에 간지 2년째 되던해, 재현 부부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예의 아내는 아들에게 필요할 것 같은 것들을 바지런히 챙겼고 그렇게 먼 길을 날아 아들이 머무는 곳에 도착했다. 아들은 자신이 머무는 집의 집주인인 흑인 노인과 마중을 나와 있었다. 숙박은 호텔로 정햇지만 그전에 잠시 아들이 사는 곳에 들러 한끼 식사를 함께 하는데, 흑인 노인이 집주인인 곳에서 셰어하우스를 하는 자신들의 아들 말고도 스무살 한국 여자애가 있었다. 다리에 문신을 한 발랄한 여자아이.


이들 부부는 불편하고 불쾌하다. 재현은 재현대로 아들과 흑인 노인을 바라보기가 불편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아들과 스무살 소녀를 바라보기가 불편하다. 정작 흑인노인과, 아들과, 소녀 사이는 친근하고 다정하기만 한데, 이 부부가 보기에는 아들이 자기들로부터 떠난 것 같고, 그리고 저 낯선 사람들에게 안착한 것 같다. 그들은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같이 살았던것처럼 가족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그리고 아들이 자신들에겐 털어놓지 않았던 자신이 간직한 상처-아버지로부터 연유한-도 이들에겐 털어놓았다는 것도 역시 알게 된다. 아들은 이곳에서 오히려 편안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데, 그러나 이들 부부는 자신이 이제 아들과는 더 멀어졌다는 걸 느낀다.



호주 퍼스에 있는 아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집을 셰어해서 살고 있다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전화로 종종 안부를 전했었다. 또한 이들은 가족이다. 한국에 있는 영재의 부모는 아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고 공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자주 통화했다. 물리적 거리가 멀긴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사랑하는 아들을 둔 부부였고 그리운 마음을 가득 안고 그곳으로 출발하지만 도착하고 나서는 거리감을 느껴야했다.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만화 《베가본드》에서 주인공 '미야모토 무사시'는 동네에서 함께 자란 '오츠'를 좋아하는데, 오래 못보고 지내면서 그런 말을 한다. 안보면 잊혀진다고들 하지만, 안보니까 오히려 더 가슴에 새기게 된다고. 나는 이 말이 사실이며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한편,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오랜 격언도 있다. 나는 이 말 역시 사실이며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안보이니 오히려 가슴에 더 새긴다.

위 두 문장은 상반되지만 같이갈 수 있는 것.

우리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있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거리두기를 만들고야 만다.

영재와 재현이 아버지와 아들로서 자주 통화하며 안부를 묻고 또 그곳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가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모두다 파악할 수는 없다. 재현이 그랬던것처럼, 아들이 룸메와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주인이 흑인 노인인걸 몰랐고 또 같이 셰어해 사는 또 한명이 스무살 여자인 것도 몰랐다. 아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집을 그렇게나 지저분하게 해놓고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들과 수시로 연락하였지만 한 집에 사는 타인들과 그토록이나 친근한 사이인 것은 몰랐다.


그렇다.


멀리 떨어져있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맞다. 정말 그렇다.

멀리 떨어져있고 그리워하는만큼 자주 연락하면서 서로의 소식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겠지만, 그러나 서로의 생활을 낱낱이 고할 수도 없을 뿐더러 매 순간 느끼는 모든 감정을 다 알릴 수도 없고 또한, 순간순간 선택하는 것들까지 모두 말할 수는 없다. 함께 겪을 수도 없고 옆에 있을 수도 없는 많은 시간들이 한국에 있는 재현과 호주에 있는 영재와의 사이에 일어난다. 그러니 자주 연락했어도 도착했을 때 보게 되는 것들은 내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쨌든 현재 영재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갔다가 혹은 쇼핑을 했다가 혹은 산책을 했다가 돌아왔을 바로 그 때 옆에 있는 사람, 식사를 할 때 옆에 있는 사람, 친구랑 싸우고 왔을 때 옆에 있는 사람, 코메디 프로를 보며 웃고 있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은 재현이 아니다. 영재의 엄마도 아니다. 흑인 노인이고 스무살 민영이다. 힘들때 다독여주고 같이 수영하고 같이 해를 쬐는 사람은 흑인 노인이고 민영이다.

내 아들을 만나러간다, 고 바리바리 짐을 챙겨 그 먼 곳으로 갔건만 아들과 더 친근한 타인들을 봐야했을 때의 그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멀리 있다는 건 이런 거다. 서로의 말만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야 하는 것. 그곳에 있는 당신과 이곳에 있는 내가 아무리 자주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일상을 공유하려고 노력해도, 그것은 '노력해야만'하는 것에서부터 서로에게 닿기 힘들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옆에 있다면, 우리가 공유하려고 '노력할' 필요조차 없었을 테니까. 우리가 이렇게나 멀리에 있고 서로를 그리워하고 그러다 마음을 먹고 서로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을 때, 그 때 보게 될 것은 내가 생각하고 기대한 것과 아주 다를 수 있다. 집을 나누어 쓰는 사람과 내 생각보다 더 친근한 게 보였을 때, 나보다 그 사람과 더 가족같았을 때, 그 때 내가 느낄 마음의 거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매일 안부를 전하고 오늘 서로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오늘 서로가 어떤 감정들을 오고갔는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얘기해도, 전화를 끊고 나면 문을 열고 나가 하늘을 바라볼 때 옆에 있는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옆집의 레몬나무에서 레몬을 따왔을 때, 거기에 내가 없다. 옆집 아저씨가 쓰러져 응급차를 불러야했을 때, 그 옆에서 같이 놀라주는 건 내가 아니다. 나는 파운드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뻑뻑했다고 당신에게 말할 순 있겠지만, 내 옆에서 스콘같은 케이크를 먹고 우유가 필요하다고 우유를 꺼내오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다. 사소하고 작은 것들까지 당신에게 말할 수 있음으로 미나리삼겹살을 먹었다고 당신에게 말할 순 있겠지만, 내 옆에서 미나리 삼겹살을 같이 먹으면서 미나리 향 정말 좋다, 고 감탄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다. 이런 우리가 서로 만났을 때, 그리고 서로의 옆에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때 느껴야 할 허전함과 괴리감과 그리고 마음의 거리는, 우리가 무시하기에 힘들수 있다.



내가 당신을 찾아가 요즘 서핑을 즐긴다며, 라고 아는척 할 순 있지만, 물에 잔뜩 젖은 생쥐꼴로 집에 왔지 뭐예요, 라고 말하는 건 다른 사람일 것이다.

당신이 찾아와 요즘 알라딘에서 커피 사마신다며, 라고 아는척 할 순 있지만, 말도 마요 하루에 두잔씩 내려서 향 맡아보라고 설레발이라니까요, 라고 말하는 건 다른 사람일 것이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반드시 최선은 아니지만, 그러나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 그곳과 이곳은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마음의 거리도 만들어낸다.

그러나 마음의 거리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마음에서 사라져버리는 건 아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그런것처럼, 가슴에 새길 수 있다.

그러나 가슴에 새기는게 무슨 소용이람.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한국에 사는 고현정은 슬로베니아에 사는 조인성과 매일 영상통화를 하다가, 충동적으로 공항으로 달려가 비행기티켓을 끊고 슬로베니아로 날아간다. 먼 길이다. 그러나 닿지 못할 길은 아니다. 고현정은 그 후에 조인성에게 말한다. 열네시간만 날아오면 돼. 열네시간이면 만날 수 있어. 열네시간만 들이면 만날 수 있다고.


그렇다. 아무리 멀다고 해봤자, 열네시간 이면 되잖아. 그러면 만나지 못할 것도 없잖아. 백사십일도 아니고 일년사개월도 아니야. 고작 열네시간 이라고. 열네시간이면 닿을 수 있어. 열네시간이면 괜찮잖아.



당신이 거기에 있고 내가 여기에 있어도 내가 당신을 가슴에 새기는 일은 가능하지만,

당신이 고개를 돌렸을 때의 그 작은 바람과 당신의 체취를 맡는 일을 가까이에서 느끼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실체가 나이고 내가 당신의 실체라면.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다시 읽을 때가 된 것 같다.
















당신은 감히 자기 피아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묘사하지 않아요. 피아노가 내 세계와는 아무 관계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미아는 저랑 50센티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작은 탁자 위로 몸을 숙이고 숟가락에 스파게티를 돌돌 말고 있어요. 미아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면 공기의 움직임이 느껴져요. 저는 미아를 보고, 듣고, 만지고, 그녀의 체취를 맡는 것,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할 수 있어요. 미아는 실체예요.
-218-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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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좋다는 평이 자자해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좋지는 않았다. 언제부턴가 젊은 작가들이 '여성 서사', '사이다 서사'에 갇힌것 같았는데,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여성 서사를 써야해, 사이다 서사를 써야해, 라는 생각이 작가들에게 압박으로 다가가고 있는건 아닐까. 여성서사는 더 나와야 하고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읽을 것이지만, 나는 이 작품집의 여성작가들이 굳이 여성서사를 쓰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저 쓰는 것 만으로도 그것은 여성 서사에 다름 아닐테니까. 기성 남자작가들의 글과는 완전히 다른 글을 써낼테니까. 그러니 좀 더 자유로워져도 좋을 것 같다고 나는 바랐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어디에도 갇히지 말고 하기를 바라는 마음. 문장력도 세상을 보는 섬세한 시선도 이미 탁월한 작가들이니 좀 더 은유해도 괜찮지 않을까.


작품집에 실린 작가들중 최은영을 가장 선호하긴 했는데 굳이 이 작품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꼽자면 장희원과 김초엽이었고 가장 별로인 걸 꼽자면 김봉곤 이었다. 김봉곤의 명성을 익히 들어 기존에도 《여름 스피드》라는 단편집을 읽긴 했었는데, 그 때도 느꼈던 감정을 이 작품집에서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김봉곤 글의 어떤 점이 좋다는걸까? 물음표 천 개 되는 순간이었다.




*리뷰의 마땅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책 제목 붙였다.



‘글 쓰는 일은 혼자 하는 일이어서 좋다‘라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두려움에 맞서도록 도와준 사람들, 나의 글을 끝까지 믿어준 사람들,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계속 글을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친구들에게 고맙다. 나는 나의 행복만큼 내 친구들의 행복을 원한다. 우리가 계속 밝은 곳으로 가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을 수 있기를, 자신을 내팽개치치 않기를 바란다. (최은영, 작가노트)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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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3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3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3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3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3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3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3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5-13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김봉곤 두 번째 소설집 매우 애정하며 읽고 있습니다. 취향의 차이란...

다락방 2020-05-13 13:45   좋아요 1 | URL
저는 김봉곤은 이제 더이상 안읽으려고요. 저는 그의 소설에서 소설의 의미를 1도 찾을 수가 없어요. -.-

hellas 2020-05-13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 저도 그분 이미 접음.

다락방 2020-05-13 22:33   좋아요 0 | URL
어떠한 이유인지 출판계에서 과하게 밀어주는 것 같은 느낌인데, 저로서는 이제 안읽어도 좋을 작가인 것입니다. 킁.

hellas 2020-05-13 23:41   좋아요 0 | URL
여운도 의미도 없어서 오독인가 싶어 다시 읽어봤잖아요 ㅡㅡ

다락방 2020-05-14 07:41   좋아요 0 | URL
다시 읽어보시다니 ㅠㅠ 안타깝네요 ㅠㅠㅠ

2020-05-20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20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5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에노 지즈코는 이 책에서 초반에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참 여러가지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쳤다.


얼마전에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한국 영화에 관심 많은 유럽 남자가 한국에 와 몇 년째 살면서 자기가 모은 블루레이 타이틀을 자신의 집에 온 손님에게 자랑하는 장면이었다. 그의 집은 살기에 좋아보였고 게다가 그가 모은 블루레이는 꽤 많은 양이었다. 영화를 좋아하고 관심있다는 사람답게 충실히 모은것일테다.


그전에 유럽에서 아이를 데리고 온 백인남자들은 거실과 방이 여러개 딸린 숙소에 묵었다. 아이가 있어서 필요한 공간이었겠지만, 그렇게 넓은 숙소를 가질 수 있다니.


사실 이 프로를 잘 보는 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백인남자들이 한국에 잠시 들르러 왔든 혹은 일을 하러 와서 오래 거주하는 중이든, 그들이 힘들게 사는 걸로는 보이질 않았다. 실제로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공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근무한다. 그들중에 아무도 백인은 없다. 한국에 와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사람들을 죄다 외국인 노동자일텐데 그런데 왜 외국인 노동자 라고 하면 유색인종이 바로 떠오르는걸까. 일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장에 근무했는데, 그들과 몇시간 함께 근무했던 아르바이트생이 그런 말을 했다. "그 사람들이 한국에 취직해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때리지마세요' 래요."

이 '때리지 마세요'란 말을 가장먼저 배운다는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은 머릿속에 자연스레 유색인종으로 떠오른다. 백인이 아니라. 이십년전 편의점에서 일할 때 백인 남자들이 공사판에서 일하는 걸 보긴 했는데, 그들은 러시아인들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그들이 일하다 크게 다쳐 팔의 살이 패이고 피가 철철 났는데 병원을 찾는대신 편의점에 들러 보드카를 한 병 사서는 벌컥벌컥 마시는 거였다. 그들은 어떤 집에 살까. 일을 마친후 어떤 집으로 돌아갈까.


물론 잘사는 유색인도 있을 것이고 못사는 백인도 있을 테지만, 텔레비젼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중에 아주 많은 퍼센테이지로 백인들은 좋은집에 잘 살고 유색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어떤 배움을 가졌든 이 나라에 와서는 힘겹게 일해야 하는 장면들이었다.


그런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이 때, 우에노 지즈코의 이 책을 읽었고, 우에노 지즈코는 마침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가져와 '동양'과 '서양' 그리고 타자화에 대해 얘기한다.



상대방을 이해 불가능한 존재-즉, 이방인, 이물질, 이교도-로 만들어 '우리들'로부터 추방하는 양식(이것을 '타자화'라고 한다)에는 인종화와 젠더화의 두 가지가 있으며 이 두 가지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지적한다. 즉, '동양(오리엔트)'은 '여성'으로 대체하여 이해할 수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오리엔트'란 '이방異邦'의 다른 말이며 '오리엔탈리즘'이란 다른 사회를 타자화하는 양식을 가리킨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서양의 지식'이라고 간결하게 정의했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이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무엇이었으면 하는가에 관한 서양인의 망상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따라서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안다고 해서 동양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알게 되는 것은 오로지 동양에 관한 서양인의 머릿속일 뿐이다. (p.47)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음악선생님은 남자였는데, 오페라 <나비부인>에 대해 굉장히 낭만적으로 감탄하며 설명해준 적이 있다. 그 때 그 오페라에 나왔던 음악도 틀어주었는데 그건 기억나지 않고, 그 오페라를 한 번도 보지 않고 나는 뭔가 '낭만적이다'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던 바, 우에노 지즈코의 날카로운 지적에 크- 그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했다. 그리고 당시 음악선생님이 남자라는 것이 떠오르며, 그 남자는 당시에 백인 남성에게 이입하고 있었던건가...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옥시덴트Occident(서양) 남성에게 있어서 이렇게나 '편리한' 망상도 없다. 상대가 이해 불가능한 타자이며 매혹적인 쾌락의 원천이면서 위협적인 요소를 전혀 가지지 않는 무력한 존재. 유혹하는 이로 등장하여 스스로 몸을 내어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떠난 뒤에도 원한은 커녕 연모의 정을 잊지 않는 존재. '내가 버린 여자'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마저도 그녀가 가진 사랑의 크기에 의해 정화되어버린다-이렇게나 '서양 남성'의 자존심을 만족시켜주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그런 여자가 있을 리 없다!'는 목소리는 서양인의 거대한 망상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지배적인 집단이 타자의 현실을 보지 않기 위해 만든 장치가 바로 오리엔탈리즘이기 때문에 아무리 '일본 여자는 진짜로는 이러이러해'하고 말해도 그 목소리는 도달되지 않는다. 저속하게 말해,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인 남성의 마스터베이션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포르노'를 보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동양인 청중의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나는 <나비 부인>을 볼 때마다 배알이 뒤틀려 기분 좋게 앉아 있을 수가 없다. (p.48)



'내가 버린 여자'가 여전히 나를 기다리며 사랑한다는 '망상'에 대해서는,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일전에 보았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떠올랐다. 소년은 동성인 어른 남자에 대해 성적으로 끌리고 있는데 동정이었고, 그러면서 또래의 소녀를 만나 섹스를 한다. 소녀는 당연히 소년과 연인사이가 될 줄 알았지? 그런데 소년은 이 소녀와 그렇게 몇 번 자고서는 자신이 끌리는 어른 남자에게 가버리는 것이다. 섹스란 걸 일단 해보기 위해 소녀를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짜증났는데, 더 짜증난 건 그 다음이었다. 소녀는 소년이 자신을 버리고 어른 남자를 선택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너를 좋아해'이러고 있는 거다. 이거 보면서 와, 남자들 머릿속에서 이상적인 여자란 '내가 버렸어도 나를 좋아하는 여자'같은 것인가, 생각하며 딥빡이 왔었던 거다. 그런데 이런 건 이미 오래전에, 나비부인에서 백남들이 가졌던 거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우에노 지즈코의 배알이 뒤틀림, 제가 잘 알겠습니다.




여러가지 책들을 가져오며 인용해서 몇몇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몇몇 책들은 국내에 아직 번역된 게 없기도 했다.


우선 '사이코 다마키'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라캉》(2006)은 '일본에서 나온 책 중에서 가장 쉽게 라캉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자평하던데, 사이코 다마키를 검색해보면 이 책은 번역서가 없다.

















위에 인용하며 예를 들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도 절판이다.

















'사노 요코'의 《나의 어머니 시즈코상》은 있다.
















'이브 세즈윅'의 《남성 간 유대》 궁금한데 번역서 없다.

















이 책의 옮긴이 '나일등'은 책 말미의 <옮긴이의 말>에서 '책 전체를 부드럽게 익어나갈 수 있도록' 원서의 7페이지에 해당하는 참고문헌 목록을 삭제했고 중요한 것만 본문에 병기하였다고 하는데, 하아, 나는 궁금한데... ㅠㅠ 왜 그런 일을 ㅠㅠ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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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5-1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서 보니 저도 배알이 뒤틀립니다. 원래 저는 그런 외국인 데려다가 (주로 백인, 그나마 오취리 이후 아주 조금 나아진) 돈 주고 스타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은 안 봅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백인우대국가입니다. 거기에 백남동녀의 망상까지 더해지면 답이 없네요

다락방 2020-05-12 17:34   좋아요 0 | URL
백인을 등장시키면 우리나라 프로그램도 더 시청률이 잘 나오는가봐요. 위의 페이퍼에도 쓴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자기집 있고 거실 가득 좋아하는 블루레이 채워놓고 여유롭게 사는 백인남자를 보니 뭔가 갑자기 확 괴리감이 들더라고요. 어느나라를 가도 빈부의 격차는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매스컴에서 보여지는 것이 굳이 백인의 부유함이어야 할까..그게 마치 너무 당연한듯 여겨지는 것도 그렇고요.
아무튼 배알이 뒤틀려요.

transient-guest 2020-05-14 00:23   좋아요 0 | URL
게다가 있어 보이는 백인이죠. 사실 한국에 와서 팔자 고친 백인남자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단발머리 2020-05-12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리엔탈리즘> 설명 보니,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기에 읽은 걸로 착각하는 책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그 책에는 예시가 많아 배경에 대한 이해까지 필요하다 하던데, 아직도 앞쪽을 헤매고 있는 저로서는ㅠㅠ 페미니즘을 이해하는데 오리엔탈리즘이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백인남자, 유럽의 백인남자 중심 세계관의 도전이라는 면에서요.

다락방 2020-05-12 17:36   좋아요 0 | URL
우에노 지즈코의 책에서 마침 단발머리님이 읽고 계신 책이 나오니 되게 반갑더라고요. 제가 읽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예요. 그래서 어제 부랴부랴 단발머리님 서재 가서 땡투하고 사려고 했더니 절판이더라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써운해... 저도 읽고 싶어요.
페미니즘을 이해하는데 오리엔탈리즘이 도움이 될 거라는 단발머리님의 생각에 저도 동의해요. 전 세계가 그게 무엇이든 백남 기준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걸 가장 잘 꼬집은 게 샤론 볼턴이라는 생각을 하고요. (갑분샤론볼턴 자랑 ㅋㅋㅋㅋㅋ 오리엔탈리즘 쪽수도 많던데 도서관에 있는지 검색해봐야겠어요. 어휴.. 왜이렇게 책은 사도 사도 살 게 또 있죠?

비연 2020-05-12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엔탈리즘은 위 설명과는 좀 다른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에드워드 사이드가 팔레스타인 출신이라 그런 배경을 깔고 기존의 서구 중심의 세상에 대한 변혁적 반격을 했던 책이었다고 기억.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재다짐..ㅜㅜ

다락방 2020-05-12 17:38   좋아요 1 | URL
비연님이 기억하시는 내용이 맞는 것 같은데요?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서양의 지식‘이라고 간결하게 정의했다‘ 라고 하는걸 보면 말이지요. 그래서 저도 너무나 읽고 싶어요. 진작에 이 책을 읽으셨다니, 비연님은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는 분이시군요. 멋져요! ♡

꼬마요정 2020-05-1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비부인 싫어해요. 정말 싫어요. 그래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도 안 좋아해요.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신기한 건 같은 여자인 백인 여자도 동양 여자를 멸시하죠... 성별은 인종 앞에서 일단 뒷전인가봐요. 어디서는 인종 관계 없이 성별이 같아서 연대하고, 어디서는 인종이 우선이고... 인간은 알 수 없는 족속이지만 약자에게는 잔인하네요... 귀신 같이 약자가 누군지 판별해내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20-05-12 17:39   좋아요 0 | URL
저는 나비부인 도 미스 사이공도 안봤는데, 봤다면 정말 싫어할 내용이네요. 저는 뜬금없지만 [페르귄트]도 싫어해요. 겁나게 방황하다가 늙은 껍질만 남아서 아내에게 돌아오는데 아내는 일편단심 그자리에서 기다리다가 늙은 유신을 맞이하고.. 으으...

우리나라 남자들도 아시아 남자를 멸시하는데 최선을 다하는것 같아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와서 임금도 못받고, 폭력에 노출되는 것만 봐도 그렇고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여자일 경우는 또 어떻구요. 아주 징글징글해요. 자신이 조금이라도 강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돌변하게 되는걸까요? 왜 그 힘을 꼭 어떻게든 쓰려고 하는걸까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기고부터 지금까지 소설을 제외하고도 80여권 정도의 페미니즘 서적을 읽어왔다. 어렵지 않게 에세이부터 시작해 소위 벽돌책이라 불리우는 책들까지. 그렇게 읽고나니 가끔 어떤 책들에 대해서는 '이건 내가 읽지 않아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됐는데,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도 그중 하나였다. 사둔지는 오래였지만 이제는 '이런 기본적인 건 읽지 않아도 될 것같다'는 생각을 한거다. 그러나 나는 읽었고, 읽으면서는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일본 최고의 여성학자이며 사회학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우에노 지즈코는 여성혐오에 대해서 아주 날카롭게 파악하고 분석한 것을 이 책에 알기 쉽게 썼기 때문이다. 우에노 지즈코의 책을 전에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던바, 우에노 지즈코는 기득권을 가진 남성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비판하는데도 전혀 망설임이 없다. 이미 유명한 책(혹은 작품)을 보란듯이 비판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고, 사회현상들 이면에 숨겨진 여성혐오를 보란듯이 까발리는 데에는 속이 다 시원해졌다.


날카로운 분석에도 불구하고 포르노에 대해서는 규제하지 말자고 하는데에서 좀 놀랐다. 우에노 지즈코는 '상상력을 막아서는 안된다'라고 하는데, 나는 이미 포르노라는 것이 여성과 아이 그리고 인종에 대해서까지 혐오표현이라는 페미니스트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바, 거기에 대해서는 우에노 지즈코와 의견을 달리했다. 우에노 지즈코는 상상력을 규제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포르노를 금지하자는 데에는 찬성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아동 포르노도 안되고, 트라우마를 건드려도 안된다는 등의 조건들을 내건다. 나는 거기서 좀 갸웃했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저것도 고려해야 해, 라고 한다는 것은 어찌됐든 그것이 어떤 식의 피해를 가져올 것이 있다는 걸 안다는 것일텐데, 그렇다면 '되고' '안되고'의 기준을 대체 누가 어떻게 정할 수 있단 말인가.

우에노 지즈코의 포르노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이 책이 10년전의 책이기도 하고 또 우에노 지즈코가 1948년생인만큼, 현재의 포르노가 어떤 식의 영상을 송출하는지에 대해서는, '게일 다인스'가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서둘러 부연해 놓아야 하는 것은, 포르노라고 하는 표상 안이라 할지라도 실재하는 어린이를 모델로 사용한 차일드 포르노는 별도라는 사실이다.

모델의 현실과 모델의 연기 사이의 경계는 대단히 모호하다. 살인 현장을 연기로 표현하는 피해자 모델은 살아 돌아오는 것이 가능하다. 미디어에 넘쳐나는 살인 신을 단속하라는 미디어 규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그것이 연기자에게 트라우마적인 체험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포르노 모델이 시나리오에 없는 실제 강간을 당하게 된다면 당연히 인권침해로 볼 수 있다. 또한 트라우마적인 포르노를 연기함으로써 받게 되는 영향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p.101)


포르노에 대해 표현의 자유이며 그것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들도 있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 나는 그런 쪽이 아니다. 나는 포르노 반대, 성매매에 반대한다.


내가 그것에 대해 우에노 지즈코랑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이 책이 나쁜 것도 결코 아니고 우에노 지즈코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페미니즘, 사실 그보다는 '여성 혐오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주 날카로운 안내서가 될것이다. 이미 페미니즘 책을 숱하게 읽어온 사람이라도 다시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고. 여성혐오가 대체 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나는 여자 좋아해, 나는 혐오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어보기에 매우 유용하다. 여자라고 여성혐오를 안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여성혐오를 했던 자신을 파악해야 여성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으니, 역시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호색‘한 남자가 여성을 혐오한다고 하면 모순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misogyny‘라는 연단어는 번역하기가 힘들다. ‘misogyny‘말고 ‘women hating‘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호색한 남자가 ‘women hating‘하다고 하면 더욱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바람둥이‘라 일컬어지는 남자들을 떠올리면 좋다. 그들은 ‘자기것‘으로 만든 여자의 수를 자랑하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여자라면 누구든 상관 않고 발정할 정도로 여체와 여성기, 여성성의 기호나 신체 부위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도록 조건 훈련된 ‘파블로프의 개‘가 바로 자신이란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이 반응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성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여성을 ‘여자‘라고 하는 하나의 범주에 일괄 처리하는 그들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 P13

나가이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두 평짜리 방의 장지》(1972)에는 몸을 파는 여성에게 쾌락을 부여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게 해주는 사창가 손님들의 ‘신사적‘ 문화가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은 남성 지배의 궁극적 형태를 언어화한 텍스트인 것이다. - P15

남자들 마음 속에는 ‘여자 없이 어떻게 안 될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때문에 이성애 중심의 근대인에 비해 소년애를 칭송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여성 혐오가 더욱 철저하게 보이는 것이다. 남성성을 미화하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내가 느끼는 불신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 P16

‘자기 여자‘란 말은 참으로 잘도 만들어낸 표현이다. ‘남자다움‘은 한 여자를 자기 지배하에 두는 것으로써 담보된다. ‘자기 마누라 하나 휘어잡지 못하는 남자가 무슨 남자냐‘는 판정 기준은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여성의 객체화, 타자화-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 멸시-를 ‘여성 혐오‘라고 한다. - P37

사실 인간의 역사에는 남성/여성의 이항뿐만 아니라 ‘제3의 성‘이라 불리는 남성도 여서도 아닌 중간적인 젠더가 언제나 존재했다. 북미 인디언의 베르다쉬berdache, 인도의 히즈라hijra, 통가의 파카레이티fakaleiti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 범주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다. 둘째, 여장女裝과 같은 여성성 기호에 의해 ‘여성화‘ 되어 있다. 셋째, 종종 종교상의 의례적 역할뿐만 아니라 (남성을 상대로 한)매춘에도 종사하고 있다. 그들은 ‘남성이면서 남성이 되지 못한 남성‘ ‘여성화된 남성‘이며 그들의 존재 의의는 오로지 남성을 위한 ‘성적 객체‘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제3의 성‘을 ‘n개의 성‘에 대한 증거로 언급해 온 이들이 많으나, 이상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중간적 성이라기보다는 성별이원제 하에 존재하는 하위 범주이다. 이들을 ‘제3의 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호칭인 것이다. - P38

누가 생각해낸 것인지는 모르지만 ‘위안부‘라는 명칭은 참으로 절묘하게도 지은 이름이다. 이 ‘위안‘은 오로지 남성의 ‘위안‘이지 ‘위안부‘에게는 지옥의 노예 노동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자에 의한 증언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라고 그 호칭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 P53

‘성적 약자론‘은 진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과 연결됨으로써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신체적, 사회적, 경제적, 기타 등등의 약자인 장애인 남성은 성의 자유 시장에서도 성적 약자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러한 성적 약자 장애인의 성욕은 충족될 권리가 있다고 인정되어 장애인의 매춘을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마스터베이션 혹은 성행위를 위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등이 논의되고 있다. 여기서도 여성 장애인의 ‘성적 약자‘ 문제는, 의도적인지 비의도적인지는 모르나, 간과되고 있다. - P65

‘전원 결혼 사회‘는 여성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그것은 결혼이 강제였던 사회, 결혼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선택지가 없었던 시대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 시대 결혼은 여성의 ‘평생 직장‘이라 불렸다.
그에 반해 결혼이 선택지의 하나인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혼인율은 저하하고 이혼율은 상승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여성에게 ‘평생 직장‘이외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원 결혼 사회‘가 종언한 오늘날, 우치다 다츠루나 고야노 돈같은 남성론자가 ‘누구나 결혼 가능했던(해야만 했던)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논하는 것, 야마다 마사히로와 시라가와 도코가 《결혼 활동 시대》(2008)를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P70

K군(무차별 살상 사건의 범인)은 말한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차를 도난당하지 않아도, 야반도주하지 않아도, 휴대전화 의존증에 걸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여자 친구‘가 모든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줄 역전 홈런의 히든카드라 생각하는 그의 사고는 완전히 도착하고 있다. 실제 인과관계는 ‘일을 그만두거나, 차를 도난당하거나, 야반도주하거나, 휴대전화 의존증에 걸리는 놈‘한테 여자 친구가 생길 리 없다, 일 테니까.
- P74

그런데 남자에게 있어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학력이 없어도, 직장이 없어도, 수입이 없어도, ‘여자 친구만 있으면‘ 왜 역전타를 날릴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인기‘가 다른 모든 사회적 요인을 웃도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여자 친구만 있으면 ‘나는 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여성에게 선택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제2장에서 논한 세지윅의 호모소셜리티 개념에 의하면 남자는 여자에게 선택되는 것에 의해 ‘남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남자는 남성 집단의 정식 멤버로 인정됨으로써 최초로 남성이 되는 것이며 여자는 그 가입 자격을 위한 조건, 또는 그 멤버십에 사후적으로 딸려 오는 선물 같은 것이다.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여자를 한 명 소유‘, 즉 문자 그대로 ‘자기 것을 하나 가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 P74

여자가 교태를 부리며 남자를 조종하는 것을 가리켜 일본어로 ‘코털을 읽는다‘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남자에게 기댄 채 아양을 떨며 대각선 45도 위를 올려다보면 시선 정중앙에 콧구멍이 오게 된다. - P77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하고 바라던 K군의 외침이 진정으로 ‘사람과 관계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었다면 그가 선택했어야 하는 행동은 아키하바라에서 타인을 칼로 찌르는 행동이어서는 안 됐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행동을 근거로 판단했을 때, K군과 J군이 공통적으로 바랐던 것은 자신을 ‘남성으로 만들어주는‘, 독선적인 ‘여성 소유‘욕망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 P84

성욕은 개인의 내부에서 완결되는 대뇌 작용의 현상이다. 전미 성교육 정보 협의회(SIECUS)에 의한 정의와 같이 ‘성적 욕망‘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섹슈얼리티‘는 ‘다리 사이between the legs‘가 아니라 ‘귀 사이between the ears‘, 즉 대뇌 안에 있다. 대문에 섹슈얼리티 연구는 사실 하반신 연구가 아니다. 무엇이 성욕의 장치가 되는가는 개인이나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육체가 눈앞에 있지 않으면 성욕을 느낄 수 없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시렞로는 단순히 기호화된 신체의 일부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으며 완전히 버추얼한 심벌이나 영상으로도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사물이나 기호에 반응하는 즉물적即物的 경우도 있을 것이고 특정 판타지를 요구하는 복잡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완전히 오리지널할 수는 없으며 문화에 의해 학습된 ‘기성품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자기 식의 버전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 P88

나는 예전에 가부장제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의한 적이 있다.
‘가부장제란 자신의 다리 사이로 낳은 아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멸시하도록 기르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성을 멸시하는 것은 가능해도 어머니를 멸시하는 것은 남성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자기의 ‘근본‘을 더럽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P147

사람은 ‘여성‘이 될 때 ‘여성‘이라는 범주가 짊어진 역사적 여성 혐오의 모든 것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 범주가 부여하는 지정석에 안주하면 ‘여성‘은 탄생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란 그 ‘지정석‘에 위화감을 느끼는 자, 여성 혐오에 적응하지 않은 자들을 가리킨다. 때문에 여성 혐오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는 없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이 여성 혐오와의 갈등을 의미한다. - P158

시즈미는 ‘OL위원회‘를 조직하여 젊은 여성의 생생한 목소리를 모아 분석하였는데, 이 책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관한 약 1,500명 여성의 이야기를 모아 분석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약 50퍼센트의 딸들이 아버지를 싫어하고 있다‘고 한다. - P193

가정 내에서 최약자인 딸의 공격은 강자인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직접적으로 향하지 않는다. 약자의 공격은 더욱 약하고 저항하지 않는 이, 즉 자신의 신체와 영혼, 섹슈얼리티로 향한다. 아들의 공격성이 단순히 타벌 또는 타자에 대한 상해 행위로 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자기 신체를 시궁창에 던져 넣듯 남성에게 바치는 성적 일탈(그 안에 매춘 행위도 포함된다)은 섭식 장애나 손목을 긋는 자해 행위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 P227

프라이버시는 누구를 지키고 있는가? 바로 강자이다. 이 대답은 성추행과 가정 폭력 피해자, 성적 소수자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페미니즘이 부정하고 있는 것은 ‘남성성‘이지 개개의 ‘남성 존재‘가 아니다. 만약 ‘남성‘으로 분류되어 있는 자들이,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나라는 존재를 긍정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그리고 그것은 누구에게 있어서도 정당한 바람이다-여자들이 여성 혐오와 싸워왔듯이 남자들도 자신의 여성 혐오와 싸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302

‘게이와 페미니즘은 같이 투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린 적이 있다. ‘Yes, but 여성 혐오적이지 않은 게이들이라면 가능하다‘. 추가로 ‘섹슈얼리티 여하를 불문하고 여성혐오적이지 않은 남자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을 덧붙여도 좋다. 페미니스트가 여성 혐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더욱 신중하게 ‘여성 혐오아 싸우고 있는 남자들이라면‘이라고. - P303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있어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길이었다. 남성에게도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여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 혐오‘와 싸우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제시하는 것은 더 이상 여성의 역할이 아니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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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5-12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문 중에 마지막 문구 더 콕콕 와박혀요.

다락방 2020-05-12 17:40   좋아요 0 | URL
수연 님 요즘에 아주 날개달고 책 읽으시더라고요. 쉬엄쉬엄 하세요. 지치지 않으려면 꾸준히 오래 천천히 가야지요. 화이팅!

단발머리 2020-05-12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우에노 지즈코라면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의 하루카 요코가 생각나요. 다정한 선생님은 아닌듯 하지만 ㅎㅎㅎㅎ 좋은 선생님 같기는 해요. 우리에게도 이 정도의 여성주의 학자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 좀 안타깝기도 해요. 학문적 업적, 성과도 있겠지만 우에노 지즈코가 학계에서 자리잡고 일해왔기 때문에 이정도라도 평가받는거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저도 이 책 읽어보려고요^^

다락방 2020-05-12 17:41   좋아요 1 | URL
전 이 책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우에노 지즈코의 책들을 천천히 다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에요. 날카롭고 거친 태도가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 이런 분이 일본에 계시다니 한편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말이지요. 이 책 읽어보세요, 단발머리님. 그리고 우리 우에노 지즈코도 열심히 찾아 읽고 아무튼 세상의 페미니즘 책들 다 정복해버립시닷!
 

파운드 케이크 (부제:빵 한입 우유 두 모금)


파운드 케이크를 만들어보겠다고 큰소리 쳤으니 만들어 보았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기존에 만들었던 것과는 다른 레시피로 만들어 보았다. 친구로부터 받은 링크를 참고하고 또 친구의 레시피를 참고해서 결과적으로 나만의 레시피로.. (응?)


재료: 박력분 210g, 버터 210g, 설탕 210g, 계란 210g, 베이킹파우더 4 g, 우유 30g, 호두 원하는만큼



재료를 저렇게 써놨지만 나는 요리할 때 쓰는 저울이 없고, 그래서 도대체 저게 얼만큼의 양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버터는 마트에 가니 200g 짜리가 있어서 그래, 이거 한 통을 다 넣으면 되겠구나 하고 준비했지만 다른 건?


요리를 즐겨하는 여동생에게 저울이 있으니 도대체 밀가루 210g 이 얼마나 되냐 물으니, 여동생은 자신이 가진 책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밀가루는 고운 가루라서 종이컵 하나에 100g 이라고. 오호 그래? 그렇다면 종이컵으로 두 번 넣고 더 넣으면 되겠구나. 친구는 만들 때 설탕의 양을 확 줄였다는데, 나도 줄여야 할 것 같았다. 종이컵의 절반만 넣자. 이것저것 영상을 찾아보니 베이킹파우더는 한꼬집 이라고 써있기도 하길래, 한꼬집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양이 한꼬집인가. 이것도 그냥 알아서 넣었다. 계란.. 210g 은 몇 개일까?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보통 저 레서피에 3개를 넣는다고 했다. 나는 영상 몇 개를 찾아보았고, 그래서 저 재료들로 이렇게 만들었다.


상온에 한시간 이상 두었던 재료들임을 미리 밝힌다.



1. 계란을 풀고 거기에 준비한 설탕을 넣어 계속 휘핑한다. 휘핑한다는 대체 뭘까.. 젓는다는거겠지. 젓는다. 설탕이 잘 녹아야 한다고 뜨거운 물 담긴 그릇안에 계란 푼 그릇을 넣은 영상을 봐서 나도 그렇게 한다.


2. 버터를 뽀개가 뭉개다가 잘 안돼서 걍 그 버터 담긴 그릇에 1번을 넣고 막 젓는다. 부드럽게 죄다 풀려야 되는것 같은데 안된다. 그냥 이만큼만 하자, 포기하고.


3. 체에 받쳐 곱게 걸러낸 밀가루+베이킹 파우더를 2에 넣어 젓는다.


4. 3에 뽀갠 호두를 넣고 다시 반죽한다.


5. 파운드케이크 틀에 이걸 쏟아 붓고 예열된 오븐에 굽는다.



까지 하다가 앗!!! 씽크대에 꺼내둔 우유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어떡해 우유 안넣었어!!"


엄마는 깔깔대고 웃으시며 지금 넣으라고 하셨지만, 이번판은 그냥 망치는 판으로 하자...고 내심 나를 다독인다. 그렇게 완성된 파운드케이크는 아래와 같다. 젓가락으로 푹 찔러서 밀가루가 묻어나오지 않으면 익은거라는데, 일단 그랬단 말야? 성급한 엄마는 딸이 만든 케이크가 어떤지 너무 맛보고 싶으셔서, 포크를 가져와서 푹 떠드셨다. 엄마... 이게 뭐야 ㅠㅠ




맛은 있는데 퍽퍽하다. 맛이 없을리가 없지. 버터랑 계란이 그렇게나 들어갔는데. 그리고 단맛이 전혀 없어. 흐음. 이제, 다시 시도하자. 성공하도록 하자. 첫판의 실패를 보충해가며 좀 더 나은 파운드 케이크를 만들자.


나는 우유도 빼먹지 않고 넣었고 설탕은 기존보다 좀 더 넣었다. 밀가루와 베이킹 파우더의 양도 조금 늘렸다. 베이킹 파우더가 한꼬집보다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아 그냥 내 생각대로 넣었다. 계란도 하나 더 넣었다. 여동생이 저울로 계란 하나를 쟀더니 껍질 포함 60g 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네 개 넣었다. 나는 자기 주장이 좀 강한편이야...

저녁에 남동생네 식구들이 와서 부모님과 식사를 함께할 예정이었던 터라, 빵을 좋아하는 올케에게 내가 만든 파운드케이크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게 보완해 만들어낸 두번째 파운드 케이크는 아래와 같다.




잘 된것 같지만, 사진으로 알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겉에가 좀 바삭거린다. 파운드케이크는 바삭 보다는 푹신 쪽에 가까워야 하는데... 잘라낸 단면을 보자.




여길 봐도 어떤 뻑뻑함...이 느껴진다.


우유가 부족했을까? 베이킹 파우더를 더 넣어야 했을까?

게다가 내가 설탕을 더 넣느라고 넣었는데도 1도 안달아. 하아... 내가 설탕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는가 보았다. 설탕에 대해 쫄고 있어... 어쨌든 버터가 가득 들어갔으니 맛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굉장히 목이 메이는 것이다. 음..단면이 저것보단 부드러워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버터랑 계란이랑 푸는데에 있어서 젓기가 너무 싫은거야... 나는 진짜.. 하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절대 하지 말자고. 어쨌든 저거 해서 먹는데 달지 않아서 좋긴 했지만 빵 한 입 먹으면 우유 두 모금을 먹어야 했다. 엄마는 커피랑 마시자고 해서 엄마와 내 커피를 내리긴 했지만, 커피랑 저 빵 한 조각 먹으려면 커피가 한없이 들어갈 것 같은 거다.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우유를 부러 꺼냈다. 어차피 빵만들고 남았어.. 그래서 빵 한입에 우유 두 모금씩.. 가까스로 빵을 먹었다. 흑흑 ㅠㅠ



남동생이 집에 와서 보더니 와 근사하다 좋다고 하고는 맛을 보더니 딸기쨈을 발라 먹어야겠다고 했다. 너무 안달다고..왜 설탕을 넣지 않았느냐고.... 나는 넣었다고 했다. 단지 쫄았을 뿐.... 너무나 뻑뻑하여 내가 만든 것이 파운드 케이크인지 스콘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ㅠㅠ



저 두개짜리에서 예쁜거를 올케한테 안겨줬다. 먹어...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요가 잠깐 해주고 파운드 케이크 두 판 굽고 그 뒤로 일요일 밤까지 뻗어있었다. 진짜 개힘들어. 내가 왜했을까. 버터며 우유며 장 볼 때 엄마가 같이 갔었는데 하지말라고, 하지말란 말야, 옆에서 계속 말리셨지만...'에휴, 그래, 해라, 너는 고집이 세지' 하면서 날 내버려두셨어. 넌 한다면 그냥 니가 해야 직성이 풀리니까, 하면서..그리고 주말 내내 힘들어 힘들어 뻗어있는 나를 보면서 '사먹자고 몇 번 말했니' 라고 하셨다.


그런데 일요일밤 저녁 먹으면서 나는 채널을 돌리다가 그 뭣이냐, 이연복이 중국에 가서 탕슉 만들어 파는 걸 보았고...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다음 주말엔 탕수육 해볼까?"


엄마는 다시 나를 말리셨다. 사먹어. 사먹자. 제발 하지마..너 또 힘들어서 뻗어버리려고 그래....



나는 왜 요리만 하면 뻗을까? 왜 내 에너지를 요리가 다 가져갈까? 진짜 다시는 안해야지. 베이킹 하고 주말 이틀을 뻗어있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게 그냥 ...나랑은 너무나 안맞는 일인 것 같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제 안해야지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재료비 겁나 많이 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버터 200g 짜리 세 개나 샀단말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리고 마트 간김에 와인도 샀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걍 파운드 케이트 두개 샀으면 2만원에 퉁치는건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마트 가서 10만원 쓰고 왔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유는 1+1 로 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호두 사다가 옆에 있는 캐슈너트도 사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만두 시식했다가 만두 사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난 멍충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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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5-1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으셨습니다^^ 맛있어 보이는데요! 좀 퍽퍽하면 어때요. 올케가 기뻤겠어요. 빵 구워주는 시누이^^

다락방 2020-05-11 17:45   좋아요 0 | URL
올케가 기뻣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잘먹겠다고 가져가긴 했는데...과연 기뻤을까요..... 제가 괜한 짓을 한 건 아닌지...하아- 아무튼 빵은 이제 안굽는 걸로... (시무룩)

blanca 2020-05-1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다락방님 귀여워요.

다락방 2020-05-11 17:45   좋아요 0 | URL
요리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0-05-1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에요. 맛있어 보여요~~~!!! 뻑뻑하다고 하셨는데 그럼 빵 한 번 우유 세 모금 마시면 되지 않을까요? (우유 좋아하는 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탕수육은 좀 말리고 싶어요. 파운드 케익보다 힘들지 않을까요?

다락방 2020-05-11 17:46   좋아요 0 | URL
맛이 없는 건 아니에요. 담백한 맛이었어요. 버터가 왕창 들어갔는데 어떻게 맛이 없겠어요. 그렇지만..네, 말씀하신 것처럼 빵 한입에 우유 세모금 ㅠㅠ
탕수육은 엄마가 극구 말리시는 바람에 저도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기름 뜨겁다고 엄마가 하지말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20-05-1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파운드 케익 이뻐 보이는데요? 올케분이 좋아하셨을거에요. 마음과 정성은 최고의 선물이죠^^ 저는 요리 진짜 못해요. ㅎㅎ 결혼 전에 제사 때 동생들(여자, 남자) 전 굽고 할 때 전 과일 씻고 잔심부름 했어요. 다 태워먹었거든요 ㅎㅎㅎ 결혼하고 나서도 뭐 남편이 워낙 요리를 잘 해서 절 보면 주방에서 쫓아내죠. 아플 때 죽 끓여줬더니... 한 숟갈 뜨고 바로 벌떡 일어나더니 본죽 가서 죽 사오더라구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20-05-11 17:47   좋아요 0 | URL
제가 뭐랄까, 제 나름대로 정성을 들이긴 하지만 꼼꼼하지 못한 타입이라서요. 섬세하게 요리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늘 요리가 엉망진창이 되는것 같아요. 아닌걸 알면서도 왜 자꾸 시도하는지... 저도 제 고집 때문에 제가 힘들어요. 요리 잘하는 남편이라 좋네요. 어느 한쪽이라도 요리를 잘하면 맛있는걸 먹을 순 있겠죠. 전 열심히 돈 벌 거예요. 죄다 사먹을 겁니다. 으하핫

수이 2020-05-1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메리카노랑 먹으면 딱일 거 같아요. 정말 맛나보여요. 다락방님 ^^

다락방 2020-05-11 17:47   좋아요 0 | URL
저 빵 한조각 먹으려면 아메리카노 한주전자 필요한걸요 ㅠㅠ

잠자냥 2020-05-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어 보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주 목이 막히도록 뻑뻑한 맛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 주 탕슉 기대할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5-11 17:48   좋아요 0 | URL
저는 분명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었는데 먹으면서는 스콘인줄 알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탕수육은 포기입니다. 포기라구욧!!

비연 2020-05-1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베이킹까지! 다들 그거 하고 나면 빵은 사먹는 것이야 로 결론난다던데 ㅎㅎㅎㅎㅎ;;; ;
애쓰셨구요. 담주 탕수육 기대해도 될라나요? ㅋㅋ

ㅠㅠㅠㅠ그리고 마트 간김에 와인도 샀지... 이 부분에 빵 터졌음을 고백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20-05-11 17:49   좋아요 0 | URL
역시 빵은 사먹는 것이 진리입니다. 제가 왜 이런 짓을 애초에 시도했는지... 제 안의 제가 저를 말렸어야 하는데.... 엄마가 말려도 듣지를 않아서 엄마도 저 때문에 고민이 깊습니다. 니 고집을 어쩌니, 하고서요. 탕수육은 안할거에요. 기름.. 수습불가일 것 같아서요. ㅋㅋ

마트 갔으면 와인 사는건... 자동 ... 이죠? 누구나 그런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0-05-1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안 웃기게 생겼잖아?! 아아.....

다락방 2020-05-22 13:52   좋아요 0 | URL
으응? 웃긴데... 왜 안웃어줘요? 이제 내가 안웃겨? (글썽)

보슬비 2020-05-1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운드케잌은 원래 목 메이게 먹는거예요~~ 스콘처럼 먹는 파운드케잌 맛있을것 같아요.~~

다락방 2020-05-22 13:53   좋아요 0 | URL
저 우유 사왔는데 빵을 못사서 지금 빵+우유 먹고 싶은데 못먹고 커피만 두잔째 마시고 있어요. 욕구불만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