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하나의 작은 우주

금요일에 영화를 보기 위해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는 내게 어떤 책을 읽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를 읽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필립 클로델의 전작들처럼 '전쟁후의 사람들'을, '전쟁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이 한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전쟁이 파괴하는 건 마을이고 나라이지만, 그들의 파괴가 더 오래 지속되는건 그 마을 속, 그 나라안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삶이다.

 

우리 중 아무도 그의 본명을 물어보지 않았다. 딱 한 번 시작(市長)이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이제는 영영 알 수 없게 됐다. 때를 놓쳤다. 오히려 잘된 일인지 모른다. 진실이란 손모가지를 분지를 수도 있고 도저히 끌어안고 살기 힘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헌데 우리 대부분이 원하는 것은 그저 살아 나가는 것이다. 가능한한 고통스럽지 않게. 그것이 인간이다. (p.10)

 

필립 클로델은 그의 소설에서 언제나 전쟁이 가져온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를 -커다랗고 외형적인 상처가 아니라 작고 사소하게 개개인의 삶에 스며들어버린, 그래서 계속 가지고 가야 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그 상처들 틈틈이, 또 그 상처의 전과 후에,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도 놓치지 않고 얘기해준다. 그들이 사는 삶은 얼마나 반짝거렸는지를.

 

"무슨 일이니, 브로덱? 악마라도 본 게냐?"

그녀는 나의 두 손을 잡고 얼굴을 바싹 대고 있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은 초록색으로 무척 아름다웠고 홍채 가장자리에 금박이 박혀 있었다. 나는 그때 눈은 나이가 없다고, 사람은 어린아이의 눈을 간직한 채 죽는다고, 어느 날 세상을 향해 연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세상을 놓지 않던 눈을 그대로 간직한 채 죽는다고 생각했다. (p.55)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파의 눈이 아름답다는 걸 깨닫기도 하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무슨짓을 한걸까.

 

 

필립 클로델은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감정을, 그 은밀함을 그냥 넘기지 않아주어 무척 좋다. 그점이 고맙다. 그는 그 소중한 순간을 슬픔이 가득한 곳곳에, 늘, 놓아둔다. 그의 글이 가슴이 아프면서 아름다운 이유다.

수용소에서 개처럼 다루어지다가 살아 돌아온 남자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한 노인으로부터 먹을것과 잘 곳을 도움받게 된다. 맛있는 것을 먹고 편히 잘 수 있었고 며칠간 쉬면서 건강도 좀 좋아졌다. 그런데 남자는,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가까스로 그 말만 했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겨우 같은 문장을 한 번 더 반복했지만 누가 나를 기다리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에멜리아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이름을 내 안에 워낙 꽁꽁 숨겨둔 탓에, 자칫 입 밖에 냈다가 잃어버릴까 두려웠다. (p.95)

 

노인은 '떠나온 곳에 돌아가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p.95)고 말하지만, 그러나 돌아가겠다는 그에게 배낭을 건네준다.

 

전날 밤, 다시 길을 떠날 생각이라고 이미 말했기 때문에 노인은 문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회색 면포에 가죽 끈이 달린 배낭을 내게 건넸다. 그 안에는 커다란 빵 덩어리 두 개와 베이컨, 소시지, 옷가지들이 들어 있었다.

"가져가시오." 그가 말했다. "당신 몸에 맞을 것이오. 내 아들 거였는데 그 아이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요.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

갑자기 손에 받아 든 배낭이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졌다.

(중략)

"청이 있는데." 그가 덧붙였다. "그 아이를 용서하시오‥‥‥. 그들을 용서해 주시오‥‥‥. "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pp.96-97)

 

남자가 다시 고향에 돌아가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곳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모습 그대로 기다리고 있지 않음을 보지 않는게 나았을까? 남자가 수용소에서 개처럼 네 발로 바닥을 기고 핥았던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는데, 그런데, 이제, 그에게 남은건 무엇일까.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지금도 무슨 생각을 해야 할 지 판단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바로 이런 것이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에 대해 수용소가 영원히 승리하고 있는 부분같다. 죽어 나간 사람도 많지만 나처럼 그곳에서 빠져안오 사람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이미 더럽혀진 부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타인을 볼 때마다 그들의 눈길 속에 자신을 몰아세우고 고문하고 죽이려는 욕망이 들어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우리는 영원한 희생양이 되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동이 트는 아침은 뛰어넘어야 할 또 하나의 긴 시련이고 해가 지는 저녁이 되어야 이상하게 안도감을 느끼는 생물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 안에는 실망과 불안의 누룩이 들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말살된 인간성의 기념물이 되었고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다. (p.176)

 

그에게 어떻게, 무슨말로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아니, 자신을 '아물지 않는 상처'라고 지칭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가당키나 한가. 수용소에 끌려갔던 것도 네발로 기었던 것도 사람이고, 그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네 발로 기라고 명령한 것도 사람이다. 폭력을 당한 것도 사람이고 폭력을 행한 것도 사람이다. 그들 모두가 함께 살고 있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 내가 살기 위해서 폭력에 가담하기도 하고, 그 폭력의 광기에 휘말려 자신이 하는 짓을 제대로 인식도 하지 못한채로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한다. 자신이 저지른 짓이 자꾸만 자신을 짓눌러와 끊임없이 불편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것도 인간이고, 그래서 그런 자신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인간이다. 인간이란 종국에는 모질지 못한, 모질어질수 없는게 아닐까. 어느 순간 그들은 자신이 저질렀던 나쁜짓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 괴로움은 내가 당했던 짓에 대한 괴로움보다 그 크기가 더 작지 않다. 이 책속에서 남자가 당한 일들, 남자의 여자가 당한 일들, 마을의 이방인이 당한 일들도 가슴 아프지만, 남자가 한 순간에 저지른 그러나 어쩔 수 없었던 일에 대해서도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당신은 그 일을 절대로 잊을 수 없겠군요, 어떡하죠, 라고 묻고 싶지만, 그러나 이 말을 입 밖에 내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더이상 신을 믿지 않는 이 마을의 신부는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고 있었다. 그것이 신을 믿지 않으면서 계속 신부로 있어야 하는 이유다.

 

"이제는 네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걸 알겠다만, 네게 도움이 될 만한 고백을 하나 하지. 뭔고 하니, 나도 이제 신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는다, 이거야. 난 아주 오랫동안, 수십 년 동안 신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수십 년 동안 신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았어. 이런 저런 신호를 통해, 나에게 떠오르는 생각을 통해, 내가 하는 행동을 통해 신이 나에게 대답을 주는 것 같았지. 신이 영감을 주는 것 같았어. 그런데 그게 다 끝장났어. 이젠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영원히떠나 버렸다는 것을 알아. 어차피 둘 다 똑같은 얘기지. 그러니까 우리는 혼자다, 이 말이야. 그래도 난 점방을 지키고 있다. 제대로는 못 꾸려 가도 어쨌든 망하지는 안았잖아. 그 누구한테도 해 끼치는 것 없잖느냐. 내가 이 연극을 그만두면 지금보다 훨씬 더 외롭고 지금보다 훨씬 더 버려진 것처럼 느낄 늙은 영혼들이 있거든. 내가 하는 공연이 그들에게 그나마 힘을, 계속 살아나갈 힘을 주거든. 단 하나, 내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원칙이 있어. 비밀의 원칙, 고해성사의 비밀 보장 원칙이야. 그게 나의 십자가야. 그걸 지고 있는 거다. 그건 내가 끝까지 지고 갈 거아." (p.161)

 

 

남자는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나쁜일들에 관계되어 버렸다. 그가 이방인이 아니라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았다면 그는 그녀에게 일어날 나쁜 일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계속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그 갓난 아기엄마의 물통에 손대지 않았다면 그는 그것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과거를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이랬다면, 혹은 저러지 않았다면, 하는 것들이, 이미 그 일들이 일어난 후인 현재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무의미한 가정들. 그러나 그는 '상처'일지언정 인간이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아내와 아이를 지킬것이고, 이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른곳으로 가서 다시 삶을 살아볼 것이다. 매 순간이 사랑으로 가득차지는 못하겠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는 아내의 눈동자와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어가며 또다시, 또한번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것이다.

 

우리를 갉아먹고 우리를 파괴시킬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죽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다. (p.188)

 

고통스러운 과거를 묵묵히 이겨내면서 괴로운 순간들을 참아내면서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것도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을 견디고 인내하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건 아닐까.

 

 

친구에게 필립 클로델은 우리가 함께 본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의 감독이라고 말했더니, 그 영화 정말이지 무척 좋았다고, 자신도 그의 책을 읽어보겠다고, 책 제목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읽었던 그의 책 『무슈린의 아기』, 『회색 영혼』을 이 책과 함께 알려주었다. 그러나 아직 내가 읽지 못한 그의 책중에는 『아이들 없는 세상』도 있다.

 

 

덧붙여, 이 책의 눈에 띄는 오타 몇 개만 지적하자면,

 

49페이지, 설명할 수 있을 만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없었다 → 보이지 않았다, 로

293페이지, 확실한 치료약이라고 것을 압니다 → 치료약이라는 것을 압니다 로 바꿉시다. 개정판이 나온다면 수정되겠지만,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올 수 있을까? 2010년 4월에 나왔는데 내가 가진게 여전히 초판 제1쇄인데 말이다.

 

 

 

 

페이퍼를 쓰다보니 아홉시가 넘었길래 으응? 왜 남동생이 개그콘서트를 보지 않는거지? 라고 잠깐 갸웃했는데, 오오, 오늘이 화요일이구나. 일요일이 아니구나. 연휴동안 너무 술을 마셨더니 이젠 온 몸의 어디를 찔러도 술이 새 나올 것 같다. 내일 회사갈 생각을 하니까 답답하다. 이제 나는 또 무얼 기다리며 살아가나. 출근하자마자 수요일이라는 사실, 그것 하나로 위안을 삼아야 하나. 시간은 잘도 흐르는구나. 아...직장생활한지 십년도 넘었는데 왜 여전히 다음날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은 늘 나를 압박하는걸까. 왜 이런걸 극복해내지 못할까. 쿨해지고 싶은데. 흥, 출근따위, 라며 무시해버리고 싶은데.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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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2-01-2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폭력.
저도 오랫동안 끌어왔던 책을 오늘에야 마치며 폭력이란 단어를 생각했어요.

다락방 2012-01-25 08:48   좋아요 0 | URL
오르한 파묵의 책 리뷰 쓰신것 읽었습니다,드림아웃님. 드림아웃님께서 읽으신 그 책도 다섯명 화자의 시선으로 진행되는가 봐요. 제가 읽은 오르한 파묵의 책 [내 이름은 빨강]도 여러 화자의 시선에서 진행되었는데 말이죠. 등장인물들 이름이 어려웠는데, 드림아웃님의 리뷰를 읽으니 그 책도 마찬가지인가 봐요.

필립 클로델의 전작을 읽고 좋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이 책을 펼치기 전에 좋을까? 하고 갸웃 했었는데 오, 역시 좋았어요.

dreamout 2012-01-25 20:37   좋아요 0 | URL
회색 영혼. 좋았어요.
그를 이렇게 계속 읽어 주는 분들 있어서 좋아요.

다락방 2012-01-25 22:39   좋아요 0 | URL
저는 드림아웃님이 지금보다 훨씬 훨씬 더 자주, 많이 리뷰를, 페이퍼를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moonnight 2012-01-25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출근해야죠ㅠㅠ 책은일단보관함에넣고요;; 몇시간후-_-;출근한다는사실이믿기지않아요흑ㅠㅠ 그나마위로는 수요일부터시작한다는건데.. 다만내일은지옥의수욜이될듯해요 무셔-_-;;;; 늦었지만^^; 설잘보내셨나요 사랑하는 다락님^^

다락방 2012-01-25 08:49   좋아요 0 | URL
전 이미 출근했어요, 문나잇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밤사이 눈이 내려 쌓였더군요. 오늘까지도 연휴인 사람들이 많은지 출근길의 버스안에도 지하철안에도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아아아아 나는 그런데 왜 꾸역꾸역 가고 있는가, 하는 원망이 물씬 ㅠㅠ
자자, 기운내서 또 사흘, 열심히 일해봅시다, 문나잇님.

레와 2012-01-2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 연휴동안 [회색영혼]을 들고만(!) 다녔는데, 다락방은 또 다른 필립의 책을 읽었네요. ㅎㅎ

다락방 2012-01-26 13:55   좋아요 0 | URL
연휴전부터 시작한 책이었는데 가까스로 연휴내에 끝냈어요. 연휴에 의외로 책을 못읽었어요. 아니 의외가 아니지 조카랑 놀기도 해야했고 술도 마셔야 했고..이럴거란걸 알고 있었으니까. ㅎㅎ
 
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필립 클로델, 나는 늘 그랬던것처럼 앞으로도 당신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일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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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2-01-2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당신은 참 귀여운 여자 같아요.

다락방 2012-01-25 11:32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잘못 짚으신 것 같지만(귀엽지 않아요!), 고맙습니다! 하하하하하
 

 

 

내가 이 영화, 『움』의 40자평을 쓰게 된다면, 나는 이렇게 쓰려고 했었다.

 

[운명을 거슬러 다시 태어나도 운명이 아닌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

 

물론 나는 80byte 에 맞춰 수정했겠지만(그러니까 저게 몇 byte 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저런 40자평을 쓰려했고,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떤 느낌도 공감도 불가능했던 나로서는 '판단불가'라는 의미의 별 셋을 주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라딘에서 검색이 되질 않았다.

 

이 영화는 불편하다. 여자주인공이 '에바 그린'인것 말고는 이 영화의 어떤것도 내게 익숙하거나 친근감있게 다가오질 않는다. 이 영화는 공상과학 장르가 아닌데 '복제인간' 이야기를 하고있다. 그러니까 줄거리는 이렇다. 여자는 어릴적에 찾아갔던 할아버지 집에서 이웃인 소년을 알게된다. 둘은 친하게 지냈다. 여자는 성인이 되어 그 바닷가로 다시 돌아가 그 소년을 찾는다. 소년을 다시 만난 여자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사랑이 채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거나 결말을 맺기도 전에 남자는 사고를 당해 죽게된다. 여자는 이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서 남자의 부모들로부터 간신히 허락을 얻어내 유전자 복제에 성공, 자신의 자궁에 그 복제된 아이를 잉태하고 낳고 키운다. 아이의 엄마가 된 여자는 아이의 성장과정을 당연히 옆에서 함께 하게되는데, 아이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그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자란다.

 

이 영화에서 판단 불가한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 사람과 같은 복제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옳은가, 하는 문제. 영화에서도 여자는 그걸 원하지만 죽은 남자의 부모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살고 가야 할 운명이 있고 그것을 거슬러서는 안된다' 라는 말을 한다. 아마도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 생각과 비슷한게 아닐까. 나는 사랑이 지나치면 '하지 말아야 될' 것들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은 '옳다'고 말하게 되는 부분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자꾸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이 죽었다고 하면, 나는 그들의 복제인간을 만들고 싶을까? 그 아이를 내 뱃속에 키우고 싶을까? 결국 나는 그들의 '엄마'가 되고 싶은가? 아니, 나는 자꾸만 '아니'라는 답을 한다.

 

또 판단이 불가한 것은 '복제'한 인간을 세상에 내보내게 된 여자는 과연 '엄마'인가 하는것이다. 여자의 난자와 한 남자의 정자가 결합해 태어난 아이가 아니다. 복제하기 위해 유전자를 가져와 자궁에 넣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여자는 이 아이의 엄마인가, 아닌가. '난자'가 들어가지 않았으니 엄마가 아닌가, '자궁'에 품고 있다가 낳았으니 엄마인가. 만약 엄마가 아니라면 그 아이는 낯선 '타인'인가, 엄마 라면 그 아이는 내 '친자식'인가.


영화는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불편해진다. 여자의 소원은 '사랑하는' 남자를 되살리는 것이었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에게 여자는 단순히 '엄마'일 뿐이다. 그런 엄마가 아이가 아이었을 때도, 소년이 되어갈 때도, 그리고 청년이 되었을 때도, '여자로서' 자신을 본다. 여자가 '자식으로' 그를 대하지 않는 몇몇 장면들에서 나는 불편해질 수 밖에 없고 결국에는 '그러지만 마' 라는 간절함을 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너의 바람 따위 가당치도 않아' 라며 나의 바람을 무시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내 불편하다. 불편한데 어떤 판단도 불가하다. 내가 이 영화속에서 공감할 인물은 없고 또한 어떤것이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누구의 편을 들어야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머릿속에 멍해져서 아,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하나, 당황하고 말았다. 나는 이 영화를 그 누구에게도 추천할 수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어떠했는지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의 감상이 몹시도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이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걸 느꼈는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읽을 수 있거나 듣게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나면 조금쯤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까.

 

어지러워.

 

지금 시각 새벽 두시 일십이분. 나는 저녁때 순대국에 소주를 마셨고, 좀 전까지는 오리와 전, 계란프라이와 잡채 김치와 김, 귤 등등을 안주 삼아 와인을 마셨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취했다는 거다.

 

 

 

 

 

 

 

 

 

 

 

 

 

 

 

 

나는 원작이 있는 영화에 대해서는 책을 먼저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물론 그것이 늘 지켜지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그러려고 한다. 밀레니엄은 그래서 역시나, 책으로 먼저 읽었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 책을 읽을 때는 남자주인공 '미카엘'이 정말 정나미가 떨어졌다. '무심하게' 여자를 상처주는 거지같은 자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영화속의 미카엘이 '다니엘 크레이그' 라는걸 알게 된 순간 갑자기 미카엘이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았나....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젠장. 나는 속물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길다. 너무 지루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책의 그 많은 내용을 아주 싹둑싹둑 잘라먹었다. 내 눈에 잘려나가는 그 많은 장면들이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다고 느껴지다니. 오오, 이것은 무슨 조화인가.

 

지난주였나. 알라딘 서재 에*님이 이 영화를 보고, 데이빗 핀처 감독은 호주를 무시하냐는 평을 남기셨더랬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대체 어떻게 무시하나 보자 싶었는데, 오오오오, 정말 무시했더라. 나는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에*님의 그 페이퍼가 생각나서 한참을 웃었다. 어서빨리 댓글을 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맞아요, 완전 무시했더라구요! 그러나 이 '무시'에 대한건 원작을 읽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원작을 읽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공유할 수 있는 사소한 그러나 무시하지 못할 사안이다. 후훗. 뿌듯하다.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리스베트'는 찬란하다. 범죄나 폭력에 노출되는 여자들은 많다. 대부분은 울고 체념한다. 나 역시 폭력에 노출되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여자사람의 입장으로서, 내가 바라는 모든것을 영화속의 리스베트가 보여준다는 데에 한치의 이의도 없다. 나에게 폭력을 가한 상대를 응징하는 리스베트, 또한 다른 여자들에게 같은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미리 조치를 취하는 리스베트, 그녀는 모든 여자들의 대변인이요, 심판자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들에게 반드시 리스베트 같은 심판자가 나타나 그들의 죄를 벌하여주기를 바란다.

 

 

 

 

요즘에는 백팩을 메고 다닌다. 이것은 숄더백보다 편하다. 책 두세권을 넣어도 어깨에 메는 순간 그 무게가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질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문제가 된다. 다섯권을 넣고 다니게 되기도 하는거다. 제기랄. 나는 나의 짐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회사로 책을 주문해 가방에 넣고 어깨에 힘을 주고 집에다 나른다. 중고샵에 팔 책을 다시 가방에 넣고 회사로 나른다. 웬디양님은 언젠가의 페이퍼에서 '나는 나의 시녀' 라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오오, 나는 나의 '짐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 근데 완전 졸리네..자야겠다..[하하하] 얘기도 하고 싶었고, '필립 클로델'의 얘기도 하고 싶었는데,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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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2-01-23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밀레니엄을 스웨덴 판으로 보아서 책도 다시 보고 싶지 않았고(이미 보았으니까,) 이번 데이빗 핀처 판 영화도 그닥 궁금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다락방님의 글을 보고 나니까 원작 소설이 읽고 싶어졌어요. 꽤 길고, 게다가 작가가 죽었기 때문에 읽고 나면 목마름이 더 커질 것 같은데도, 불현듯, 읽어야 마땅하단 생각이 드네요.
꽤 어울리지만, 해피 뉴 이어입니다.^^ㅎㅎㅎ

다락방 2012-01-24 19:36   좋아요 0 | URL
스웨덴판은 보질 않아서 모르겠는데요, 일단 제가 본 밀레니엄은 꽤 많은 내용들이 잘리고 축약되었거든요. 물론 책을 그대로 살릴 수는 없지만, 제가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 책 안 읽은 사람들도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더라구요. 그러기엔 좀 압축되어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요. 어쩌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몰라요. 그저 영화로 보았다면 영화로 관람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읽어야 마땅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노아님. 물론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재미있다고 말하지만 말입니다. 제 주변에도 홀딱 빠져서 읽는 사람들이 좀 있어요. ㅎㅎㅎㅎ

2012-01-23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4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1-24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까지 해피 설날 계속 보내세요, 다락방님^^
에바 그린이 나온다니 무조건 보고싶어지는 영화에요.

다락방 2012-01-24 19:39   좋아요 0 | URL
에바 그린은 정말 신비하게 예뻐요, 프레이야님. 독특한 매력을 가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추천'할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프레이야님이 보시고 프레이야님의 감상을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만큼은 다른사람들이 어떻게 봤는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가 무척 궁금하거든요. 이 영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말예요. 제겐 '판단 불가' 영화였어요. 좋다 싫다를 말할 수 없는..
연휴가 오늘로 끝나고 있어요, 프레이야님. 내일 회사 갈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요. ㅜㅡ

기억의집 2012-01-24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바 그린~ 조니뎁하고 바람 났다면서요! 아니아니 조니 뎁이 에바그린하고 바람 났다는데요!

밀레니엄은 책으로 먼저 읽고 싶어요. 그레이그, 젊었을 때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는 금발배우였는데...나이가 드니깐 감독들이 좋아하네요.

전 전자책 읽지요. 여는 때같으면 시댁갈 때 책 세,네권은 가져갔을텐데 이번엔 하나도 안 가져가고 아이패드만 달랑 들고 가서 닥치고 정치하고 목요일이었던 남자 거의 다 읽었어요. 넘 편해요. 백팩의 무게하고는 비교도 안돼용~

다락방 2012-01-24 22:25   좋아요 0 | URL
앗 저도 갑자기 사두고 읽지 않은채로 저 구석에 치워둔 [닥치고 정치]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 이런. 왜이렇게 읽어야 할 책은 많은거죠.
안그래도 어제 남동생과 이 영화 얘기하다가 에바 그린 얘기 나왔는데, 남동생이 에바 그린이 누구냐고 스맛폰으로 검색창에 쳐봤거든요. 그런데 검색어1위더라구요. 남동생이 왜 이여자가 검색어 1위지? 하고 저는 내가 페이퍼 써서 검색어 1위됐나봐, 이런 헛소리를 하면서 클릭해봤더니 조니뎁...과의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흐음.

저는 밀레니엄을 책으로 읽으면서 미카엘에 대한 엄청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다니엘 크레이그는 멋있어 보이더라구요. ㅎㅎ 나이 들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옷도 멋지게 입는건지. 하하하하.

제 친구도 이젠 종이책 쌓아두는게 숨 막히다고 앞으로는 전자책 읽을거라고 하더라구요. 흐음. 그런데 저는 아주 오래 제 짐꾼 역할을 할 것 같아요. orz

Arch 2012-01-25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휴에 잠깐 밀레니엄을 봤어요. 리스베트가 활약하는 장면들 위주로.
어톤먼트는 영화보다 책이 엄청 좋았는데 밀레니엄은 책도 영화도 그저 그랬어요.
정말 리스베트란 여자 사람만 기억나는 이야기였어요. 책에서 미카엘은 세실리아하고도 자더군요. 근육녀가 뜬금없진 않네요. 물론 미카엘이 매력적이라 그렇더라고 하는데 난 그 매력이 뭔지 도통...
호주 무시는 또 뭔가요. 책은 안 땡기는데 참참.

다락방은 다락방의 짐꾼! 책욕심은 어쩔,,,

다락방 2012-01-25 09:34   좋아요 0 | URL
나도 책에서 미카엘의 매력을 전혀 알수가 없어요. 세실리아하고만 자는 줄 알아요? 말도 마요, 진짜. 읽을수록 가관임. 주변 여자들하고 다 자요. 그런데 다 여자들이 원했던거임 ;; 좀 어이없어요. 그래서 뭔가 짜증났는데 영화의 주인공이 다니엘 크레이그 인걸 보니까 또 뭔가....매력적이기도 하고 ㅋㅋㅋㅋㅋ

호주 무시는 책을 보고 영화를 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어요. 빵터지죠. ㅋㅋㅋㅋㅋ

아치, 오늘 출근했어요? 나는 출근했는데 아침에 지하철에도 버스에도 사람이 별로 없더라구요. 다들 오늘까지 쉬는가봐요. 흑흑. ㅜㅜ 부러워요.

Arch 2012-01-25 17:34   좋아요 0 | URL
연가 쓸까 하다가 나와서 쉬나 집에서 덜덜 떨며 쉬나 매한가지라 주먹 불끈 쥐고 나왔죠.
전 회사가 좋아요. 따뜻하고^^

다락방 2012-01-26 09:12   좋아요 0 | URL
오늘 너무 추워서 출근길에 콧물 나왔어요, 아치. 아 추워...
콧물 닦아주세요. ㅋㅋㅋㅋㅋ
 

택배가 왔다. 책 박스가 도착했다. 2012년 들어 처음으로 주문한 책들. 게다가 나의 순수 구매 결제액 580원! 580원! 아,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중고책을 팔아 예치금을 쌓아두고, 선물용 책들은 신용카드로 결제해서 마일리지를 쌓았다. 거의 매일 땡스투 적립금이 100~200원 사이로 들어왔다. 그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5만원을 채울 수 있기를 기다렸다. 5만원어치를 주문하려고. 드디어 지난 월요일! 예치금과 마일리지와 적립금을 다 합쳐서 53,000원이 쌓인것을 보고 기뻐 날뛰며 나의 장바구니를 클릭했다. 장바구니에는 이미 이십권 가량의 책이 담겨 있었다. 이 중에 어떤걸 선택해서 결제할까? 몇백권이 들어있는 보관함을 먼저 봐줄까? 다시 5만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야, 신중하자. 아주 신중하게 책을 고르자. 일단 『16인의 반란자들』은 결제해야지, 이건 꼭 살거야, 그리고 ... 책들을 선택하지 못하다가 외근을 나가야 했다. 그래, 다녀와서, 다녀와서 다시 골라보자. 나는 사무실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한겨레21]을 집어들었다. 혹시라도 외근중에 기다려야 되는 시간이 있다면 이걸 읽을까. 회사빌딩의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나는 그 주간지를 (당연히)뒤에서부터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신형철의 리뷰를 보게됐다. 어어, 신형철? 신형철이라고? 그래서 읽었다. 신형철이 [한겨레21]에 리뷰한 책은, 바로 이것, '안토니오 타부키'의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리뷰를 읽으면서 이 책을 사려고 했던건 아니다. 나는 그저 신형철의 글을 읽는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 제기랄, 이 책의 리뷰 마지막에 신형철이 이렇게 써놓은게 아닌가.


1938년의 포르투갈, 1994년의 이탈리아, 2012년의 대한민국 사이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면 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한 전직 국회의원을 감옥에 처넣는 나라에 살고 있다. ( -한겨레 21 제894호, 2012.01.16, 신형철의 문학사용법 p.88)
















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만이 운명이 아닌거다. 사람과 책이 만나는 것도 운명인거다. 왜 하필 너는 내 책상에 굴러다녔니, 왜 하필 나는 외근길에 이걸 집어들고 나간거니, 왜 하필 신형철의 리뷰가 거기에 실린거니, 그러니까 왜 하필, 내가 책을 사겠다고 마음먹은 바로 이 때에!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래, 이 책을 사자 마음먹고 나의 서재로 들어왔다가 나는 후* 님의 댓글을 읽게 되었다. '알고있겠지만 『호프만의 허기』가 재출간 되었다'는 .. 아아..몰랐어요, 몰랐습니다. 며칠전 후*님의 서재에서 이 책에 대한 포스팅을 보고 너무 사고싶어서 검색했는데 품절인거다. 그래서 품절이라 아쉬워하는 댓글을 달았었는데, 아아, 그 사이에 재출간 되다니.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가?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은 내가 결제하기만을 바라고 출간되는 것인가. 이를 어쩌면 좋아. 아니야, 다음에 사도 되잖아, 흥분하지마, 라고 책을 검색했다가 어므낫, 표지 좀 봐, 완전 이쁘잖아! 나는 또 이 책 역시 사기로 결심한다.

















왜 후*님은 내가 장바구니를 결제하기 전에 이런 댓글을 달아두신걸까, 왜 나는 장바구니 결제하기 전에 댓글을 먼저 읽은걸까, 왜 이 책은 며칠 있다가 나오질 않았을까. 결국 나는 장바구니에 있던 그 모든 책들 중에 딱 두 권만 선택하고 다른 두 권은 이 날 아침 만난 이 두 책을 넣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네 권 사는데 53,000원이 훌쩍 넘어버리더군. 아아, 역시 책과의 만남도 운명이 아니던가. 운명이 아니라면 나는 장바구니 결제할 아침에 왜 이 책들을 마주친것인가.



5만원이 모이면 인피니트의 CD를 사려고 계속 벼르고 있었다. 너무 가지고 싶어서 신용카드로 CD하나만 결제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중고책 판매 예치금과 적립금과 마일리지등으로 구매하는 건 책에만 적용시키자, 그런 룰로 가자, 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고개를 저었고, 드디어 지를 수 있게 되었는데, 막상 결제하려고 하니 인피니트 CD는 안중에도 없었다. 인피니트의 시디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단 며칠짜리 였는가 보다. 아, CD 영어로 쓰려니까 귀찮네. 처음부터 시디 라고 쓸걸. 짜증나..



책 박스가 왔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받는 박스. 기쁘다. 우리의 만남은 운명인 것이다.




덧. 오늘 아침부터 읽기 시작한 책이 무척 좋은데, 이건 좀 더 읽어보고 얘기하기로 하자. 

(저는 어떤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요? 알아맞혀 보십시오 . 우하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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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1-1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답. [활자잔혹극]을 읽고 계신 거 아닌가요? (사실 제가 이 책을 읽고 있어요 ㅎㅎ) 제목에서 풍기는 장르 문학의 짙은 느낌과 달리, 시작부터 순수 문학을 읽는 것처럼 낯익어요. 그래서 장르 문학을 잘 읽지 않는 저는 '무척 좋다'고 생각하며 읽고 있답니다. 게다가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가지고,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난독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래서 도서관 아동 코너에 들려서 동화 한 권을 빌렸다는...

다락방님은 죽는 그 날까지 책과의 운명적 만남을 이어가실 것 같아요 :)

다락방 2012-01-20 14:29   좋아요 0 | URL
[활자잔혹극]은 며칠전에 다 읽었지롱요. ㅎㅎㅎㅎ 활자잔혹극은 저도 괜찮았는데 '무척 좋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구요. 지금 이곳은 비가 오고 있질 않아요. 어제 새벽에는 비가 내렸는지 아침에 출근하려고 집밖으로 나섰는데 땅이 축축하더라구요. 축축하게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참 좋았어요. 어쩌면 금요일이라 전 뭐든 다 좋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예요. 아, 세시간 반만 있으면 퇴근인데 일이 산더미에요. 싫어 ㅜㅡ

우리 실버타운에서 함께 책친구해요!

건조기후 2012-01-19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80원! 희한하게 0원보다 몇백원 결제하는게 더 기분좋지 않아요? 저 그럴 때 막 희열희열이 ㅋ

신중하자. 아주 신중하게 책을 고르자. 그래, 다녀와서, 다녀와서 다시 골라보자.
이런 박진감 ㅎㅎㅎㅎㅎ 아 웃겨 귀염 다락방님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2-01-20 14:30   좋아요 0 | URL
네, 게다가 580원은 핸드폰으로 결제. 꺄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멋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요미 다락방입니다, 많이 귀여워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12-01-19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제가 쓴 페이퍼 같아요. 저는 요새 책을 최대한 느리게 읽으려고 음미하며 ㅋㅋ 한 권씩 읽는 방침을 정했답니다. 그리고 주문도 두 권 정도씩. 아주 느리게 텀을 가지고. 다락방님 근데 저 책 팔려고 박스에 포장에서 700미터 걸어 편의점 갔더니 배송 폭주로 아예 안 된다고 해서 또 그 박스 들고 끙끙거리며 돌아오는 굴욕을--;; 맛보았잖아요.

다락방 2012-01-20 14:32   좋아요 0 | URL
전 안읽은 책이 집에 너무 많아서 빨리빨리 읽고 싶은데 요즘에는 허구헌날 술마시느라 책을 잘 못읽고 있어요. 어제도 술마시느라고 책을 못읽었네요. 슬퍼..설 연휴에는 내내 책을 읽고 싶지만, 천사같은 조카가 오면 저는 또 정신줄 놓고 조카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겠죠. 흑흑.

아, 이런. 박스 들고 걸어갔다가 다시 들고 오셨다니. 아 블랑카님 ㅠㅠ 슬프다 ㅠㅠ 그치만 이런 일이 있었으니 다음에는 명절연휴에 택배 보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겠죠. 굴욕에서 삶의 지혜를 하나 건졌다고 생각하세요. (응?) 킁킁.

비로그인 2012-01-20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등을 빚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사실 로쟈님의 페이퍼를 보고 알았을 뿐인데ㅠㅠ). 아마도 다락방님을 만날 운명이었던 모양이네요. 그래도 정 억울하시면 <호프만의 허기>를 맨 나중에 읽으세요ㅎㅎ^^

다락방 2012-01-20 14:33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후와님. 후와님은 로쟈님의 페이퍼에서 보시고 그리고 제게 댓글을 남겨주시고...저는 그 책을 만나기 위해 직접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듯 가만히 있다가 그 책이 제 손에 들어오게 되었네요. 운명 맞는것 같아요. 아, 언제 읽지. 빨리 읽고 싶어서 초조해요. 침대 위에 책들은 마구 널브러져 있어요. 하하하하.

버벌 2012-01-20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얼마전에 받았던 택배 박스... 를 보던 막내는 한숨을 쉬더라구요. "뭐 어쩌겠냐. 다른것도 아니고 책인데...."
라면서. 표지가 예쁜 호프만의 허기를 먼저 읽을 것 같아요. 저라면 표지에 맘이 혹해서 먼저 읽었을테니까요. ㅋㅋㅋ

전 지금 미미여사의 "고구레사진관"을 막 읽기 시작했습니다.
전 미미여사가 넘흐 좋아요.

다락방 2012-01-20 14:35   좋아요 0 | URL
전 지금 읽는걸 다 읽고 생각해볼텐데, 지금 기분하고 또 막상 뭘 읽지 하고 다시 고르는 기분하고 달라가지고 생각하지 못했던 책을 읽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고구레사진관은 어때요? 잘 읽히나요? 제 친구는 이거 아주 오만년간 붙들고 있던데 말입니다. 저는 미미여사의 몇몇 작품들을 아주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미미여사가 넘 좋고 그렇진 않아요. 하하하하. 잔인한 다락방이에요. 하하하하.

레와 2012-01-20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레이라가 주장하다』를 읽고 있지 않을까요?

난 운명을 믿어요. :)

다락방 2012-01-20 14:36   좋아요 0 | URL
아니지롱요 아니지롱요~~ 땡! 틀렸어요. 움화화핫.

나는 내가 운명을 믿는지 안믿는지 잘 모르겠어요. 요즘엔 믿는 것 같기도 하고..흐음.

테레사 2012-01-2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호프만의 허기는 제가 십 수년 전에 읽었던 좋은 책입니다. 이 책소개로 문화상품권도 탔던 적이 있습니다.ㅎㅎ그땐 디자인하우스에서 출간되었었죠.

다락방 2012-01-20 14:37   좋아요 0 | URL
오, 테레사님은 이미 읽으신 책이로군요. 전 저기 위에 댓글 달아주신 후와님덕에 알게 된 책이랍니다. '좋은 책'이라고 말씀해주시니 이 책을 사서 제 책장에 꽂아둔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집니다. 으쓱. 움화화핫.

Arch 2012-01-2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영키 누르고 cd 쓰면 되잖아요 ^^ 마일리지랑 적립금 모아서 결재할 때면 누가 선물로 책 사주는 것 같아요.
저도 이 글을 읽자마자 '박진감'이란 단어가 생각났지만 건조기후님이 먼저 쓰셨으니 쓸 수 없고 고미고민 하다가 한영키 누르고 cd 댓글 다는걸로 퉁쳐버렸어요.

재미있어요. 다락방 글~

다락방 2012-01-20 14:38   좋아요 0 | URL
당연하 한영키 누르고 쓰죠, 아치. 나는 한영키 누르는게 귀찮다는 뜻이었어요. ㅋㅋ 걍 한글로 시디 라고 쓰는게 훨씬 편한데 내가 왜 애초에 영타로 쳤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귀찮게스리. ㅋㅋ

아치, 졸려요. 퇴근하고 싶어요. 나는 오늘 퇴근하고 영화 보러 갈거에요. 영화 제목이 무려 '자궁'이랍니다. 흥미롭죠? 에바 그린 주연! ㅋㅋ

Arch 2012-01-20 16:50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말이었어요. 한영키만 누르면 되는데.. 이런거.

'자궁'이라... 예고편 살짝 봐야겠어요.
덕분에 마더앤차일드 잘 봤어요. 요새 글은 영 재미가 없어 리뷰는 미뤄야겠어요. 무려 다락방이 알려준 영화니까 리뷰를 잘 쓰고 싶어요

다락방 2012-01-20 17:33   좋아요 0 | URL
우앗. 마더앤차일드 벌써 봤어요? 난 아직도 못봤어요. 게으른 여자랍니다, 전. '자궁'은 영화제목으로는 [웜]이에요. 에바 그린 주연입니다. 기대중이에요.
리뷰는 너무 고심하다보면 잘 안써지더라구요, 제 경우엔. 뭔가 느껴졌을때 즉시 써야해요. 안그러면 안써져요;; 즉시즉시즉시즉시 ㅋㅋ 택시택시택시택시♬
 

이제 십팔개월을 보내고 있는 조카는 '엄마', '아빠' 같은 기본적인 단어 외에 말할 수 있는 단어가 거의 없지만 참 신기하게도 텔레비젼이든 장난감이든 음악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서 춤을 춘다.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팔을 휘젓기도 하고 발을 구르기도 한다.  목을 까딱까딱 움직이기도 한다. 모든 아기들이 음악에 반응하는걸까? 음악에 반응하는게 인간의 본능일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의 타고난 성향인걸까? 만약 음악에 반응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성향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본능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특정한 악기'에 반응하는 건 개인의 성향이겠지?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의 뒷표지에는 '특유의 서정적 언어로 아름답게 그려낸 한 소녀의 눈부신 성장기'라고 쓰여져 있는데, 그녀가 납치되었었고 누군가에게 팔려갔으며, 누군가의 괴롭힘을 피해 달아나고, 프랑스의 파리로 도망가고, 남자들의 유혹을 받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래 '성장기' 에 따라오는 자연스런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 것은 그녀가 음악을 만나는 부분이다. 그녀는 팝송이나 샹송에 이끌리는게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하철 역에서 두드리는 북소리에 이끌린다. 정확한 단어를 구사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자신의 입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뜻모를 중얼거림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 타악기들의 소리에 이끌리고 그 장소를 매일 찾는다. 나에게 이것은, 그러니까 '소녀가 타악기의 소리에 이끌리는' 것은 꽤 신선해서 이 소설이 여느 성장기와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책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의 고향, 자신이 돌아가야 할 그 모든 장소는 결국은 아프리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피부색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들려주는 음악에 이끌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밤이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한 마리의 바퀴벌레가 되었다. 그리하여 톨비아크, 오스테를리츠, 레오뮈르 세바스토폴 역으로 다른 바퀴벌레들을 만나러 갔다. 우리만이 아는 길을 통해 지하철 통로 안으로 들어서면 북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몸을 떨었다. 그야말로 마술적인 소리였다. 저항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음악에 이끌려 바다와 사막을 건넜다. (p.154)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묘하게도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으면서도 그러나 가장 닮아있는 듯한 영화, 『비지터』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영화 『비지터』에서도 타악기를 두드려대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곳으로부터 이 땅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속의 주인공은 그 소리에 이끌린다. 그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그러니까, 피아노가 아니었다. 그는 자꾸만 자신이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행위에, 소리에 열중하고 빠져들게 된다.


악기에 끌리는 것은 대체 어떤것일까. 그것은 언제 어떻게 어느 순간 찾아오는 것일까. 내가 끌리는 악기는 내가 만나야 하는 악기인가.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악기인가. 나는 어릴때 몇 년간 피아노를 배웠다. 텔레비젼에서 피아노 치는 여자가 나오는 걸 보고 막연하게 저걸 배우게 해달라고 졸랐고 그래서 열심히 했다. 나는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피아노의 천재일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후에야 나는 피아노에 재능이 없는 아이였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나는 악보를 외우지도 못했다. 처음 보는 악보를 훌륭하게 연주하지도 못했다. 내 주변에서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가 어떤 악보든 한번에 척척 연주하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왜 저 아이는 저게 되고 나는 저게 되질 않는것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피아노를 배웠다고 했던 친구들은 몇개의 악보를 외우고 연주할 줄 알았다. 나는 외워서 칠 수 있는 것이 단 한 곡도 없었다. 나는 피아노에는 영 재능이 없는 아이었는데, 왜 그때는 내가 스스로를 피아노의 천재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피아노로 진로를 정하지 않은것은 다행중에 또 다행인 일이다. 물론 내가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했다면 아마도 주변의 모두가 말렸을테지만.


어쩌면 내가 반응하는 악기는 첼로가 아닐까, 바이올린이 아닐까.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으면서 생에 처음 좋아하는 클래식곡이 생겼으니까. 미카의 「any other world」를 들으면서 나는 (아마도)첼로 소리에 반했으니까. 어쩌면 나는 현악기에 더 반응하는 사람이 아닐까?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책 속에서 소녀는 어릴적에 납치를 당해서 팔려갔었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에서 '아기를 파는 일'에 끼어들게 된다. 물론 상습적으로 벌이는 일도 아니고 소녀가 한 일은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부부를 소개시켜주는 일이었지만, 내가 또 소녀가 놀란 건 소녀가 누군가에게 '팔린'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팔렸었는데 누군가를 파는 일을 돕는다는 것이 소녀에겐 어떤 것이었을까. 이 장면은 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는데, 우리는 자신이 '아직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 그것들중 하나였다. 만약 내 눈앞에 닥쳤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됐을지, 대체 어떻게 우리 스스로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부모도 없는 가난한 아기를,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부잣집에 파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걸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이해해야 할 부분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비난해야 할 부분인걸까? 이 일은 이 책속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것도 아닌데 나는 또 머릿속이 복잡해져가지고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자유로운 세계』를 떠올리고 말았다.















이 영화속에서 여자는 돈 없는 노동자였다. 착취당하는 것이 일상인 가난한 삶을 살던 그녀는 자신이 노동자와 일터를 연결해주는 중간일을 맡기로 하고 그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기게 된다.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많이. 그녀가 가져가는 돈은 많아지고 급기야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게 된다. 그녀의 행태가 못마땅했던 친구는 그녀에게 니가 하는 짓은 나쁜짓이다, 고 말하며 비난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바꿀 생각이 없다. 노동자들은 그녀에게 항의하지만 그녀는 자꾸만 불어나는 돈을 노동자들에게 돌려줄 생각이 없다. 자신의 아들에게 장난감을 사주고 싶다, 여유롭게 살고 싶다. 노동자들이 지금 살고있는 이 삶을, 고통과 착취의 일상을 그 누구보다 그녀가 가장 잘 아는데, 그런데 그녀가 그런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되돌려준다. 


그 상황에 놓여있지 않을 때 그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다. 내가 선택해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정의를 부르짖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정작 그것이 나의 일에 되었을 때, 그때도 나는 정의로울 수 있을것인가. 



또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소녀는 친구의 할아버지를 매일 찾아가게 된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에서 등장인물 중 한명인 할아버지는 범인에게 '너에게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해줄 어른이 없었던거야'라는 말을 한다. 성장할 때 필요한 건 좋은 음식이고 좋은 환경이고 좋은 교육이고 좋은 친구이고 그리고 좋은 어른이다. 좋은 어른은 아이에게 좋은 음식이고 환경이며 교육이고 친구, 바로 그 자체가 된다. 그러나 좋은 어른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힘든일인가. 이렇게 말해주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아이가 자라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세상을 조금 더 밝게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나가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도처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 나서게 될거야." 마치 그가 내게 축복을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 대한 경의와 사랑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p.147)




나는 여전히, 피아노는 가장 완벽한 악기라고 생각한다. 만약 악기를 다시 배우게 된다면 어김없이 피아노를 선택할 것이다. 바이올린과 첼로에 내가 반응하는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듣는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 상황에 놓이지 않은 채 함부로 정의를 입밖으로 내지를 않을것이고, 나는 나의 어린 조카에게 세상은 무섭고 잔인하다고 가르치는 대신 도처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그런 어른이 될 것이다. 나의 조카가 나로부터 축복을 내리는 것 같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 아이가 내게 느끼는 것이 경의와 사랑이 아니더라도 좋다. 그러나 내가 내리는 축복은 알아채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읽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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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2-01-1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영화 '비지터' !!! 남자주인공이 젬베를 연주하고 싶어 몸을 들썩이던 장면..!!
이 영화 우리 같이 본 영화죠.ㅎ 그때 무비콜라쥬에서만 개봉하고 국내 상영은 안된거 같은데..

무튼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누군가에게 '팔린'적이 있는 소녀가 누군가를 '파는'일에 끼어들어 다락방을 놀라게 만들었잖아요. 비슷한 감정을 나는 [꽃으로 말해죠]에서 느꼈어요. 빅토리아는 고아였어요. 설사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빅토리아는 처음에 아이를 포기했었잖아요. 그래서 별 다섯을 줄 수가 없었어요.


밴드안에 첼리스트가 있다면, 일단 오십점은 먹고 들어갑니다. ㅋ 예를 들면 브랜디 칼라일 밴드 같은. ㅎ

다락방 2012-01-17 13:30   좋아요 0 | URL
[비지터]는 레와님 말씀대로 국내상영을 안한 것 같아요. 그쵸? 포스터를 본 적도 영화 이야기를 들은적도 없는 것 같으니..흐음.

음, 나는 [꽃으로 말해줘]에서 여자가 아이를 포기한 것이 그녀가 거쳐야 할 자연스럽고 혹은 당연한 과정으로 보였어요. 그녀는 처음부터 버려졌었고, 그래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채 지내왔잖아요. 그런데 스무살의 나이에 자신이 돌보아야 하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줘야 할 아이가 생겼으니, 그 순간을 감당하기가 굉장히 벅찼을 것 같아요. '엄마'가 된다는 건 지금의 나에게도 벅찬 일로만 느껴지는데, 하물며 사랑이란걸 받아본 적도 줘본적도 없는 빅토리아에겐 더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에게 보내서 사랑을 받게끔 하고 싶은 욕망을 당연히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그녀는 그 뒤로 그 아기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연습을 하려고 하죠. 천천히 다가가려고 하고. 그래서 그 소설이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첼로소리를 제대로 듣기는 하는건지, 비올라 소리랑 구분을 못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지만 현악기 소리가 좋은건 틀림없어요. 기타소리는 썩 좋진 않지만;;

Forgettable. 2012-01-1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웅 이책 읽고 있군요. 어쩐지 좋아할 것 같았음. 왜냠 내가 안좋아했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피아노 잘침 ㅋㅋ

다락방 2012-01-17 13:32   좋아요 0 | URL
오, 뽀님아. 난 이 책이 막 좋지는 않아요. 끝까지 읽어봐야 감정의 방향이 잡히겠지만 아직까지는 이 소설이 우앗 엄청 좋다, 뭐 이렇진 않아요. ㅎㅎㅎㅎㅎ
피아노 잘친다고 잘난척 하는거임? 뽀가 나보다 잘하는거 많죠. 뽀는 나보다 피아노도 잘치고 나보다 연애도 잘하고 나보다 술도 잘마시죠. ㅎㅎㅎㅎㅎ

굿바이 2012-01-17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를 치셨군요.
저는 예전에 과외를 시작할 때 학생 집에 피아노가 있으면 꼭 한 번 연주를 해보라고 했어요. 피아노를 오래 배웠든 조금 익혔든 연주를 들으면 그 학생의 수학능력을 알 수 있었거든요. 물론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대체로 악보를 잘 이해하는 친구들이 수학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았어요. 또 악보를 이해하는 방식을 보고 어떻게 수학과외를 해야하는지 감을 잡기도 했구요. 피타고라스의 이론을 믿었다고나 할까요.
갑자기 다락방님의 연주가 듣고 싶네요. :)

저는 해금소리에 빠져서 해금도 샀는데 연주를 못합니다. 겁이 나서요.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면 어떻하죠?
갑자기 바람의 소리를 듣고 연주하겠다고 길을 나서고 그럴까봐서.... (미쳤나봐요, 약을 너무 많이 먹었어요 ㅜㅜ)

다락방 2012-01-17 13:39   좋아요 0 | URL
음, 굿바이님의 댓글을 읽고 돌이켜보니 제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에는 산수를 잘했네요. 초등학교 시절이니...그러나 피아노를 안쳤던 고등학교 시절에는(중학교때도 안치긴했지만) 수학을 엄청 못했네요. 하하하하하. 저야말로 굿바이님 앞에서 피아노를 쳐보여서 굿바이님으로부터 감상을 듣고 제가 어떻게 치는지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싶지만, 저는 이제 피아노를 못쳐요. 흑흑. 악보를 보는것도 굳어버리고 손도 굳어버리고. 피아노는 저와 점점 더 멀어지네요.

바람의 소리를 듣고 연주하겠다고 길을 나서는 것도 근사한데요? 저는 해금을 연주할 줄 안다고 해도, 북을 친다고 해도 아마 연주를 하겠다고 길을 나서지는 못할것 같아요. 아마도 제자리에서 혼자 연주하고 술이나 마셨을 듯.
굿바이님이 악기를 가지고 길을 나선다면, 아마도 그 길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선 다른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나시게 될테죠. 그리고 그들 모두와 친구가 될거구요. 상상하면 참 좋아요, 굿바이님.
:)

무스탕 2012-01-17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를 연주할줄 아는 남자, 가 제 로망이었는데 제 주변은 피아노를 연주할줄 아는 남자가 하나도 없어요 ㅠㅠ
지성정성을 이제 다그친다고 뭐가 될것 같지도 않고 손자가 태어나 할머니를 위해 연주할 날만 손꼽아야죠 ( ")

이진 2012-01-17 12:14   좋아요 0 | URL
크하하, 언젠가 제가 달려가서 피아노 쳐드릴게요!!

다락방 2012-01-17 13:43   좋아요 0 | URL
텔레비젼 안에는 로망의 실현인듯한 남자가 얼마나 많은가요, 무스탕님. 유준상도 김건모도 피아노를 치던데 왜 제 남동생과 제 애인은 피아노를 못칠까요? 네? ( '')

무스탕님의 댓글을 읽노라니 영화 [라벤더의 연인들]이 생각나네요. 한적한 바닷가에서 평온한 삶을 유지하던 노년의 자매앞에 한 젊은 청년이 나타나죠. 흰머리의 할머니들인데도 그녀들은 그 젊은 청년때문에 마음이 설레이고 긴장하고 질투해요. 게다가 그 청년은 무려(!) 바이올린을 켜는 남자였습니다!! 하하하하하


무스탕님, 소이진님이 피아노 연주 들려드린대요! 꺅 >.< (소이진님은 말도 이쁘게 하네요!)

무스탕 2012-01-17 14:21   좋아요 0 | URL
크~~ 소이진님. 생각만으로도 환상이에요.
소이진님이 저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해 주신다면 전 소이지님을 위해 소음뿐이더라도 드럼을 연주해 드리지요. ㅎㅎㅎ
그때 그 자리에 꼭 다락방님도 모실게요 :)

다락방 2012-01-18 09:44   좋아요 0 | URL
우앙 피아노와 드럼. 전 그럼 그자리에서 뭘 하죠? 제가 할게 없네요. 음...탬버린 칠까요? ㅋㅋㅋㅋ

2012-01-17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7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7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8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2-01-17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정말 좋아요. 너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어른. 저도 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줄 멋진 어른분을 만나서 잘 커야할텐데.. 무럭무럭! 피아노는 완벽해요. 손가락이 두꺼운 제게는 어렵지만 말이어요 ㅋ

다락방 2012-01-17 13:57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은 지금 충분히 잘 크고 있는 것 같아요. 소이진님은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이제는 소이진님이 좀 더 괜찮은 어른이 되는게 소이진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더 근사한 어른이 되어요, 소이진님. 그래서 주변의 아이들에게 옳은 방향을 알려주고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 함께 그런 어른이 되도록 해요, 소이진님.

앗, 그러고보니 제 손가락이 두꺼워진건 피아노를 그만둬서...인걸까요? orz

버벌 2012-01-17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 저는 피아노를 배웠구요. 무려 웅!변! 을 배웠어요. 덕분에 목소리만 커진....... ㅎㅎ 자유로운 세계 보고싶네요. 움.. 저도 피아노 잘친다고 잘난척하는 뽀님을 좋아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곧. 명절이 와요
움....... 친척 어르신들이 와요......... 오고 있어요.....

다락방 2012-01-18 09:48   좋아요 0 | URL
우앗. 웅..웅.......웅변이라구요? 대박. ㅎㅎㅎ
그리고 버벌님 저는 피아노 잘친다고 잘난척하는 뽀님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저 뽀 안좋아해요. 제가 왜 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아. 도망쳐요, 버벌님. 멀리, 멀리로!!

L.SHIN 2012-01-1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복이 남았으면 나에게도 좀..-_-
풀어쓰면 '축하할 복'이라는 건데, 그건 대체 어디 나무에서 열리는 건가요? 흥-

다락방 2012-01-18 16:35   좋아요 0 | URL
엘신님, 제가 드릴 수 있는 축복은 무한대에요. 원하시는 만큼 축복해드릴게요.

축.복.!! (샤라라랑~ 축복 내려지는 효과음)

L.SHIN 2012-01-18 21:08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2012-01-18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9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테레사 2012-01-27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도 피아노가 참으로 매력적인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왜 어렸을 적에 우리 엄마는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았을까?하는 원망을 해 보곤 합니다. 전 피아노만으로 된 곡을 좋아합니다. 제 올해 목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들어보는 것입니다. 치지는 못하고 듣기만이라도 해 보고 싶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피아노를, 이 늦은 나이에라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옐리네크의 피아노치는 여자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그 작품도 참 좋잖아요? 암튼...

다락방 2012-01-27 11:18   좋아요 0 | URL
저는 어릴적에 피아노를 가르쳤던 엄마에게 감사하기도 했었어요. 물론 잘 치지도 못하고 외우는 악보도 하나 없지만, 칠 수는 있게 했으니까요. 피아노는 배워두는게 좋은 것 같아요. 건반을 두드린다는 것,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잖아요!
저는 '피아노만으로 된 곡'을 특별히 더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어떤 노래를 들을 때 피아노 소리가 거기에 섞여있는게 좋아요. 어, 이건 피아노 소리다, 하는걸 생각하면서 듣곤 하죠. 저도 몇년전에 이 나이에라도 다시 한번 피아노를 배워야겠다, 그동안 배운게 무용지물이야 다시 배워야겠어, 하고 생각했는데 흐지부지 생각만하다가 말았네요. 저도 언젠가는 피아노를 잘 치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 댓글이 너무 웃겨요, 테레사님. 피아노 얘기하시다가 피아노 치는 여자로 연결지으시고 암튼, 으로 끝맺으시는 댓글이요. 웃었어요. 므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