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혹여 이 남자가 나를 좋아해서 사귀는 마음보다도 내가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귀는 마음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한 적이 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그래 그럼 사귀어보지' 라고 관계를 시작한 적이 내게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 역시 일방적으로 큰 사랑을 퍼부어서 관계가 시작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 거다. 아주 오래전에 장동건이 출연한 드라마에서 '사랑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정말로 사랑하게 됐어'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내 경우엔 노력한다고 사랑이 되지는 않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 쌓이는 건 있는데 내가 좋아서 시작하지 않은 상대에 대해서는 예의를 지킨다거나 다정할 순 있어도, 나를 짜릿하고도 행복하게 만들어줄만큼의 사랑이 생겨나진 않았다. 사랑으로 시작된 관계를 노력으로 유지할 수는 있으나 사랑 자체를 노력으로 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런 걱정스런 연애-이 관계는 나의 일방적인 감정 때문에 시작된 건 아닐까?-는,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감을 느끼는 쪽으로 바뀌었다. 내가 만나는 이 남자, 이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고 무엇보다 자신을 많이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나를 그저 '네가 좋아하니까' 라는 이유로 사귈 리는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확신하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연애의 경험과 또 그만큼의 이별의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같은 크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내가 시작하려는 관계를 의심해보고 들여다보려고 했던 거다. 또한 사랑에 대한 환상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하는 것도 안다.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는 그저 나같은 인간일 뿐이고, 사실 대부분의 연애에서 '좋아한다'는 이유 말고 다른 것들이 끼어들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나의 옷을 벗기는 이유가 그저 자신의 순간적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가를 또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랑은 아주 순식간에 끝날 수도 있고 또한 어떤 사랑은 굉장히 지저분하게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사랑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거다. 내가 지금 사랑하는 이 사람이 나와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이라고 지금 이순간 확신한다해도, 그 확신 자체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아는데, 리니는 몰랐다.


열세살 리니에게 지금 사랑하는 사랑은 운명적인 상대였고, 그 사람 역시 나와 아주 단단히, 리니가 사랑에 빠진 꼭 그만큼의 크기로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우리는 사랑하잖아, 우리는 사랑에 빠졌잖아, 그렇잖아!




"세상에, 주니어. 당신은 뭘 상상했던 거예요? 건초 헛간에서 남자랑 있다가 들켰는데 다음 날 가족이 싹 잊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동안 나는 당신에 데리러 올 줄 알았어요.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그려보곤 했죠. 내가 피 크릭 가를 걸어가고 있는데 당신이 매형의 트럭을 세우고 '타'라고 말하는 거예요. '내가 널 데려갈 거야' 그러다 당신이 편지를 보내고 기차삯이 동봉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그렇게 했다면 난 당장 짐을 싸서 떠났을 거예요! 나랑 말을 섞지 않은 사람은 아버지만이 아니었어요. 대부분 그랬다구요. 오빠랑 남동생까지도 나와 있을 때는 다르게 행동했고, 학교에서 사근사근하게 구는 여자애들은 나중에 알고 보니 연애에 대해 자세히 들으려고 친한 척한 것뿐이었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난 거기 사람들은 그 일을 모를 거라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죠. 그런데 당연히 그들은 알았죠. 나랑 같은 초등학교에 다닌 애들이 고등학교 애들한테 말했으니까. 그들은 '저기 리니 매 인먼 말이야. 자기 오빠 졸업 파티에서 애인이랑 홀딱 벗고 활보했잖아'라고 말했죠. 그즈음 그런 식으로 소문이 불어났으니까요."

주니어가 리니에게 말했다.

"넌 그게 내 잘못이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먼저 시작한 사람은 바로 너야."

"아니라고는 말 못 하죠. 내가 나빴어요. 하지만 난 사랑에 빠져 있었다구요. 난 여전히 사랑에 빠져 있어요! 당신도 그렇다는 걸 난 알아요." (p.504-505)



"솔직히 우린 언제나 부부였던 것 같아요. 심지어 태어났을 때부터." (p.495)



열세살 리니는 스물여섯살 주니어와 사랑에 빠진다. 주니어는 리니와 데이트를 시작했지만, 리니가 열세살일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어느날 오빠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말을 들은 주니어는 그렇다면 너는 몇 살인거냐 물었고, 이에 리니가 열세살 이라고 답한다. 주니어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알고는 놀라서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는다. 이대로 가면 큰일난다고, 아니 자신들의 연애를 누군가 안다면 자기는 진짜 큰일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의 곁에 나타나지 않으려는데, 그녀는 주니어를 운명이라 생각해서 친구들에게 부탁해 다시 만나게되고, 그러다 함께 헛간에 뒤엉켜 있는 걸 리니의 아버지가 보게되고, 그 길로 주니어는 마을에서 추방당하고...


리니는 주니어가 자기 평생의 사랑이라 믿는다. 그당시 자신이 그와 어마어마한 사랑에 빠져있었다고 믿고, 성인이 될 때까지 다른 남자와 일절 연애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열여덟살이 되자마자 여기저기 주니어의 소식을 수소문해서는 결국은 그를 찾아간다. 형편이 몹시 어려웠던 주니어는 입이 하나 더 늘어난 것에도 부담스럽지만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따라붙는 리니가 못마땅하다. 그는 그녀를 모른체할까, 그녀를 버려두고 그냥갈까를 고민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결국 주니어는 리니를 자기 차에 태우고 숙소에 데려왔다가 숙소에서 쫓겨나고..


주니어에게 리니는 사랑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꾸 사랑이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몇 번이나 빠져나가고 싶었고 몇 번이나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둘은 아이까지 낳게되고 그렇게 다른 부부들처럼 평범한 부부가 된다.



리니는 이 일의 이면에 있는 모든 것을 완전히 알지 못할 터였다. 그녀가 한 일을 보고 그가 받은 충격, 분노, 부당하다는 느낌, 손실을 복구하기 위한 노고. 유진이 '틸먼 브라더스'에 가야 했고, 그쪽에서는 급행료로 엄청난 액수를(일반적인 비용의 정확히 두 배) 청구했다. 주니어가 두 차례 새집에 가서 니스를 칠해야 했고, 마지막으로 금요일 아침에 가서 아이볼트(줄이나 훅을 거는 고리가 붙은 볼트)를 제자리에 넣고 8자형 고리에 로프를 다시 매고 천장에 그네를 매달 예정이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을 눈치조차 못 채겠지. 여기에 그들이 함께 사는 삶의 패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주니어가 리니에게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면서도 감추는 모든 비밀들. 이제껏 살면서 주니어가 얼마나 간절히 빠져나가고 싶었는지 그녀는 모를 터였다. 그가 곁에 머문 것은 단지 그러지 않으면 리니가 헤어나지 못할 줄 알기 때문인 것도 그녀는 모르리라. 또 잘못을 바로 잡으면서 하루하루 나아가기가 얼마나 힘이 부쳤는지도 모를터였다. 아니, 리니는 주니어가 계속 머문 것은 그녀를 사랑해서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 마당에 그가 다른 말을 하면-그가 희생했다는 것을 그녀가 안다면- 리니는 무너질 터였다. (p.519)



희생한다고, 빠져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대와 오래 함께 살게된다면,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잘못' 확신한 채 믿는 게 좋을까, 아니면 상대의 마음을 진작에 아는 게 좋을까. 내 경우엔 아닌 건 빨리 빨리 말해서 서로 제 갈길을 찾아야 한다고 그동안 생각해왔는데, 이토록이나 강하게 '그는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는 리니를 보노라니, 어쩌면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관계라면, 희생이라기 보다는 한 쪽의 감정이 일방적으로 크고 다른 한 쪽은 감정의 크기가 같지도 않으며 또 감정의 방향도 다르다면, 그들은 함께 하는 것보다는 떨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리니가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사랑에 빠졌기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사랑이라 확신하고 또 철저히 믿는다. 게다가 상대 역시 나랑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 믿음을 언제까지고 변치 않은 채로 지속한다. 어쩌면 리니가 '어려서'가 아니라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리니는 자신과 주니어를 로미오와 줄리엣쯤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으니까. 아주 나이가 들어서 며느리가 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주니어에게 신의를 지켰지. 한순간도 그를 잊은 적이 없었어. 그래, 우린 작게나마 세계 최고의 러브 스토리를 만들었지! 그러다 다시 만나자 헤어진 적 없는 사람들 같았어. 가끔 그런 일이 있기도 하잖니. 우린 헤어진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했지, 예전과 똑같이." (p.403)



..... 주니어는 빠져나가고 싶어했는데...........다시 만나게 됐을 때 버려두고 그냥 갈까, 를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리니야말로 가장 자기중심적 사람이 아닌가 싶다. 열세살의 나이에서 더이상 성장하지 못한........... 


리니와 주니어가 열세살에 사랑에 빠졌고, 헛간에서 뒹굴다가 들켜서 몇 년간 떨어져 있었다는 것까지 리니로부터 다 들은, 앞으로 며느리가 될 애비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생각한다.



휘트생크 부인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그녀가 시시콜콜 말하는 이 일이 …… 범죄라는 생각을? (p.403)



미성년자가 원해도 미성년자와의 섹스는 범죄다. 주니어는 미성년자와 몇 번이나 섹스를 했다. 당시에 미성년자임을 몰랐다해도 결과가 달라지진 않는다. 그래서 도망쳤는데 성인이 된 그녀가 다시 찾아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부였던 것 같다 운운하며 결과적으로 훗날 부부가 되었다면.... 이건... 어떻게 되는걸까? 이건...... 뭐여...........




앤 타일러는, 줌파 라히리처럼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어도, 새 책이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은 작가군에 속한다. 일상속의 작은 갈등을 그녀는 지독하게 잘도 묘사하니까. [아마추어 메리지]에서의 이런 문장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정말이지 폴린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건 마이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둘이 함께 사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230쪽











아, 나도 좋은 사람이고 당신도 좋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함께 사는 것도 좋아야 할텐데! 그런데 왜 그렇지 못할까. 나는 결국은, 나도 좋은 사람이고 당신도 좋은 사람이라서 우리가 함께 사는 것도 좋다, 라는 식의 끝맺음을 맺고 싶다. 



리니는 주니어를 사랑했으므로, 태어났을 때부터 부부같다 생각했으므로, 그래서 주니어와 함께 하는 생활이 행복했을까?

내가 널 받아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 왜냐면 나는 화가 났으니까. 오랜 세월 이런 장황한 말을 늘어놓게 만들었다는 게 분통 터져. 요 몇 년뿐 아니라 언제나 그랬어. 명절마다 오지 않고 가족 여행에도 얼씬하지 않고, 엄마 아버지의 결혼 30주년도, 35주년도, 지니가 아기를 낳을 때도 오지 않았어. 내 결혼식 때도 오지 않았고, 행복을 빌어 주는 카드나 전화조차 주지 않았지. 하지만 데니, 무엇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용서되지 않는 것은 …… 네가 우리 부모님의 관심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빨아들였기 때문에 나머지 형제들의 몫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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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5-12-10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좋은 사람, 당신도 좋은 사람 = 같이 있으면 좋다

이것은 (약간 슬프게도) 공식이 아니지만, 일단 나도 당신도 각자 좋은 사람이어야 뭘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사랑은 결국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계속 노력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유지되는 것 아닐까요. 뻔한 말이지만, 다락님 페이퍼 보니까 그래도 말하고 싶었어요.

다락방 2015-12-14 09:5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을 유지하려고 하는 건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어릴 적에 사랑은 그저 되는 거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애를 써야 하는 거였어요.

이만큼 나이를 먹었어도 늘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네꼬님. 세상엔 배울 게 아주 많더라고요. 사랑도 그래요. 사랑, 연애, 관계에 대해서도 계속 배워요.

[그장소] 2015-12-10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프게도 사랑은 다 같은 색깔도 같은 모양도 또 그것이 유지되지도 ㅡ않아요.
유지하기도 어렵죠.그게 그 사랑의 가치이고 속성이라면 ㅡ

다락방 2015-12-14 09:55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다 같은 색깔도 다 같은 모양도 아니고, 나에게 이랬던 연인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모습으로 연애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슬프기도 하지만 또 그래서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해요.

단발머리 2015-12-11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다가서다가 더 물러나요.
보여주고 싶지만 드러낼 순 없기에
그대의 옷자락끝만 붙잡고 있는걸...

다락방 2015-12-14 09:56   좋아요 1 | URL
ㅎㅎ 단발머리님은 심규선 노래를 아는 몸이 되어있으시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현상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요일에는 웬만하면 일자산에 다녀오는데 어제는 집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토요일의 과음으로 완전 녹초가 된 상태. 보통 과음했다고 해서 다음날 녹초가 되거나 하진 않는데 아.. 어제는 진짜 힘들었다. 토요일에 집에 들어갈 때도 얼마나 힘들던지. 길바닥에서 자고 싶을 정도였다. 다리가 흐느적거리고 무거워서 걸음이 힙겨웠어.. 택시를 잡고 싶었지만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들어올려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강동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려 했지만 버스는 이미 출발. 하는수없이 걸어가는데 걸어도 걸어도 집은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남동생이 어디냐며 만나서 같이 가자고 전화를 걸어왔는데 숫제 대답할 힘도 없어서 나 그냥 갈게,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통화버튼을 누르는 것도 수화기에 대고 무언가 말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이렇게 술 마시고 힘들기는 또 처음인듯 ㅠㅠ 천천히, 흐느적거리며 집으로 가면서 집에만 가봐라 쓰러져 자주겠다, 했지만 막상 집에 들어가니 세수도 안하고 그냥 자기는 거시기하더라. 그래서 세수를 하고 발만 씻고 쓰러져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아프다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하는 숙취는 남아있질 않은데 몸은 여전히 힘들었다. 아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 꼼짝도 하기 싫어. 보통 일자산 가는 걸 갈등하다가 결국 일어나서 가곤 했는데, 이 날은 갈등이고 뭐고 없었다. 그냥 제껴! 안가! 그렇게 나는 어제 널브러져 있었다. 축, 물에 젖은 휴지처럼 ..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여러명이서 즐거운 만남을 가졌다. 아마 그 만남이 너무 즐거워서 에너지를 너무 쏟아가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포함 총 일곱명의 사람이 있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같이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하는 게 얼마나 즐겁던지! 그래서 좋다, 즐겁다고 계속 말하게 됐고 완전 업되고 흥분됐었던 것 같다. 중간에 여자사람1이 좋다, 고 하길래 '네가 좋다고 하니 좋다' 라고 대꾸했는데, 그러자 여자사람1이 그랬다. 이거 너한테 배운 거야, 라고. 뭘 먹으면서도 맛있다고 생각안했었고 사람을 만나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너는 계속 끊임없이 맛있다, 즐겁다, 좋다, 라고 얘기하고 그걸 보니 자기도 그렇게 하게 됐다고, 그렇게 말하다보니 정말 좋더라고. 그래서 나는 또 약간 감동했다. 이런 게 뭔가 좋아서. 누군가에게 좀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은 기분? 가슴이 뿌듯함으로 빡빡해졌다. 



술마시기 전에 우리가 들렀던 곳은 알라딘에서도 활동하시는 분의 까페였다. 이미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까페, <꿈꾸는 타자기>가 그곳이다. 막연하게 책이 많은 까페이고, 조용히 활동하시는 분인것 같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아아, 나는 미처 몰랐네, 주인장이 그렇게나 미모로울 줄은!!!!! 


아니 이 분이 이렇게나 미모로운 남자사람일 줄 알았다면 진작에 가볼것을! 그동안의 시간이 아깝다 ㅠㅠ


술은 없을 줄 알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마가리타가 있더라. 꺅 >.<




소금, 사랑해요~ 마가리타의 소금을 홀짝이는 건 짜릿한 쾌락이다. 흣. 


그리고 여자사람2가 주문한 커피에는 이렇게 데코를 해주셨다. 까페에도 이미 다섯 마리나 있는 고양이!!



예..예...예뻐.....


그리고 따뜻하게 떠먹는 초콜렛도 내어주셨다. 아..이건...신세계다. 아아, 나는 숟가락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퍼먹었다. 아아, 나한테 이런 쾌락을 안겨주지마... 이건 죄악이야.. 오리지널 씬...




위의 초콜렛도 주인장님이 직접 만드신거고 뒤에 보이는 과자도 직접 만드신 거란다. 게다가 자몽과 레몬을 꿀에 절여 말린 과일도 직접 만드셨다며 내어주셨다. 아, 님하..



저 말린 과일은 너무 좋아서 조카들 주려고 한 봉지씩 사왔다. 조카는 안먹고 내가 다 먹었다는 게 함정..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예약석으로 안내해주시고는 귤도 내어주셨다. 과일을 대접하는 남자사람은 좀 멋지지 않은가!




까페 안에는 책들이 가득했다.





책들을 판매하기도 하셨는데, 나는 정신없이 또 네 권이나 사버리고 말았다. 



잠시후 주인장님은 나를 부르시더니 사인을 해달라며, 세상에서 제일 근사한 책,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를 내미셨다. 아아,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시뻘재셔저는 사인을 했다. 아아, 부끄럽다 부끄러워...



하하하하. 책에다가 잘생겼다고 사인한 건 또 처음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들하, 이 까페 미아사거리에 있는데 꼭 가보셈. 두번 가보셈. 한 번 가면 두 번 가게 될 거임. 여자사람3과 조만간 또 가보자고 막 얘기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까페에서 나와 레스토랑에 가서 와인을 마시는데 이때는 까페 주인장님까지 합석해서 남자사람1+여자사람6이 되었다. 다같이 와인잔을 들고 건배를 하는데 아아 너무 좋았어. 맛있는 음식, 와인, 그리고 남자사람...술자리에서 남자사람과 함께하게 된 게 너무 오랜만이라 감개무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언젠가부터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잘 기억안나지만 여튼 좋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겁다니, 그 사실이 또 너무 좋았다. 새삼 생각했다. 아, 나는 사람들 많은 거 되게 좋아하는구나. 사람들 많으면서 즐거운 거 너무 좋아하는구나, 하고. 뭐, 적은 사람을 만나도 즐거워하지만. 나는 진짜 사람들을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많은 에너지를 받고 돌아오는 것 같다


지만 어제 하루종일 시체처럼 굴었어. -0-




내 눈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쪽만 쌍커풀이 있다. 한 쪽은 없어...나는 이 사실에 대해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내 눈은 그런 눈, 하고 넘어가는데 우리 엄마는 그게 영 못마땅한지, '삐꾸같다'고 말씀하시면서 '돈 줄테니 한 쪽만 수술해라' 라고 하시는거다. 그때마다 나는 괜찮다니까? 하는데, 영 싫으신가 보다 ㅎㅎㅎㅎㅎ 칠봉이도 나한테 '한쪽만 살짝 찝을까?' 라고 두어번 말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괜찮은데? 아 임 오케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 돈 캐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이 눈이 사진을 찍으면 너무 선명하게 짝짝이로 티가 나가지고 내가 봐도 안이쁘긴 하더라. 그리고 쌍커풀 있는 쪽은 섀도우 바르기가 편한데 쌍커풀 없는 쪽은 어디까지 발라야할지 아무래도 모르겠어...눈화장은 워낙 안하기도 하지만 간혹 하게될때마다 곤란한 거다. 어디까지..널 발라야 해?


그래서 으음, 아이참을 한 이틀 붙이다보면 쌍커풀이 생기려나 싶어서 검색해봤는데, 오, 이 세상은 언제 이렇게 발전한 것이냐. <쌍커풀액>이라는 게 있다더라. 풀처럼 발라서 꾹 눌러주면 쌍커풀이 생긴다는 거다. 내 경우엔 안 쪽에 자리만 잡아주면 뒤까지 연결되는 쌍커풀이 생기는 터라, 옳다쿠나, 이걸 한 번 해보자 싶어서, 오천원 주고 샀다. 그리고 앞쪽에만 살짝 발라 눌러주니 쌍커풀 완성! ㅋㅋㅋㅋㅋ



다 늙어서 별 걸 다 해보는 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오늘 출근할 때도 해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풀자국만 나고 쌍커풀은 없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에잇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뭐 오늘은 회사에만 있을거니까 그러든지 말든지 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여섯살 조카가 왔다. 어제 완전 어휴 너무 예뻐가지고. 귀욤귀욤 ㅠㅠ 실컷 안아줬는데 기침이 심해 오지 않은 세 살 조카 생각도 엄청 났다. 세 살 조카가 자라면서 완전 인물나는데 어휴, 이모 닮아가지고 조카들이 다 한 미모 한다. 세 살 조카가 방싯방싯 웃는 게 너무 생각난다. 어제 여섯 살 조카는 뭐가 그리 좋았는지 가면서는 뽀뽀하자고 입을 내밀더라. 보통 입에다 뽀뽀 잘 안하는데, 어제는 나도 모르게 그냥 했다. 아이구 이뻐라 ㅠㅠ 얘네들은 참... ㅠㅠ 이뻐 ㅠㅠㅠ





앗.

동료가 커피를 사왔다.

향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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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12-07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모로운 남자사람과 와인과 심규선은 다락방을 춤추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아...놔...춤................................................................................................

다락방 2015-12-07 14:2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노코멘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리미 2015-12-07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꿈꾸는 타자기라면... 팟캐스트 꿈타장의 유혹하는 책읽기를 진행하시는분이 하는 까페 맞죠????
우왕~ 그분이 알라딘 서재에서도 활동하시나요?? 팟캐스트 듣다보면 목소리가 너무 좋으셔서 조금 예상은 했지만 얼굴까지 아름다우시다니요 ㅎㅎㅎ 카페도 너무 이쁘고요.
비록 에너지가 고갈되긴 했어도 너무 즐거운 모임이셨겠어요^^

다락방 2015-12-07 14:27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바로 그 분입니다. 그 분이 목소리만 좋으신 게 아니더라고요. 미모로움의 최고점을 찍으셨습니다. 아하하하핫. 미모롭기가 거의 다락방급 이더라고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네네, 즐거웠습니다. 미모는 언제나 미녀를 웃게 하지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레와 2015-12-07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환휘야!!!!!!!!!!!!!!!!!!!!!!!!!
병원에서 이렇게 예쁘게 빵실 웃는 아기라니.. 아이고 예뻐라 예뻐라~!!!


저기 북카페 찜요! 다음에 데려가줘요! ㅎㅎ

다락방 2015-12-07 14:27   좋아요 1 | URL
응 다음 모임은 서울에서 가집시다. 코스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어요.

꿈꾸는 타자기-애슐리-호텔. 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장소] 2015-12-07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야나문 님 ㅡ아닐까 ㅡ (응?)그분이 남자 사람이셨더랬나?^^;;;
안면 인식 장애에 더불어 ㅡ네임인식장애 까지..ㅎㄷㄷ
암튼 ㅡ
꿈타 님 은 많이 들어봤는데 ㅡ
남자 사람님...였어요...?!
아ㅡ제 멘탈 좀 ㅡ...

2015-12-07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12-07 16:53   좋아요 0 | URL
기억상실 ㅡ일으킬만한데요?^^
ㅋㅋ어쨌든 이글을 매번 이마에 붙이고 다니든지
피켓처럼 들고 다니지 않는한 ㅡㅎㅎㅎ
포스트잇으로 붙여둘께요.~
메모의 습관 ㅡ도 나왔는데...푸핫

2015-12-07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5-12-07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귀요미네요. 웃는 것 좀 봐♡ 어서 빨리 나아야할텐데ㅜㅜ
와 알라디너분이 하시는 카페로군요. 멋지다. 대왕부러워요~^^

다락방 2015-12-07 14:30   좋아요 1 | URL
병원에서는 퇴원했어요. 저건 입원해 있을 때인데 발에 링겔 꽂고서도 방실방실 웃지 뭐에요? 이긍.. 아주 그냥 이뻐서 미치겠어요. 조카란 이모의 혼을 빼앗아 가는 것 같아요. -0-

건조기후 2015-12-07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렇게 책이 까페스럽지 않게 꽂혀있는 곳은 처음 봐요. 예쁘게 가지런히 진열된 건 정이 안 가던데 ㅋㅋ 그냥 막 그득그득하니 좋네용 ㅎㅎㅎ 말린 과일도 ㅎㅎ 그리고 이 말은 안 할 수가 없네요 조카 너무 이뻐요!

다락방 2015-12-07 14:31   좋아요 1 | URL
조카가 점점 더 예뻐져요, 건조기후님. 저 아이가 어쩌려고 더 예뻐지는지 모르겠어요. 이뻐요 ㅠㅠ 감동 ㅠㅠ 첫째 조카도 엄청 예뻤는데 둘째도 만만치 않네요. 아, 요놈들 ㅠㅠ

저 까페 정말 좋아요, 건조기후님. 고양이 다섯 마리가 까페 안에서 살아요!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5-12-07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오늘 아침에 심규선의 ˝오늘˝을 듣는데, 눈 앞에 엄청 귀엽고 섹시한 색다른 모습의 심규선이
흐느적흐느적거리더라구요.
엄청 좋아하는 노래인데, 자꾸자꾸 웃음이 나서.... 웃음이 나요.

나만 그런가요?
나만 그런가요~~~~~

다락방 2015-12-08 08:56   좋아요 0 | URL
그 노래가 <오늘> 이었나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제가 왜 갑자기 그렇게 되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0-

2015-12-07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12-0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든지요 ㅡ개인의 영역도 지켜줘야죠

다락방 2015-12-08 08:5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2015-12-08 0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뽈따구 2015-12-0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생뚱맞게 제목만 보고서는 노래가 떠올랐어요.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다락방 2015-12-08 10:45   좋아요 1 | URL
ㅎㅎ 그 노래를 생각하고 지은 제목이 맞습니다!

[그장소] 2015-12-0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을 다하십니다~!^^

2015-12-08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0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0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테레사 2015-12-09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조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네요. 근데 발을...ㅜㅜ

다락방 2015-12-10 09:04   좋아요 0 | URL
아, 장염 염증 수치가 높아서 입원했었고요, 링겔을 발에 꽂은 거였어요. 그리고 이제는 퇴원했답니다.
저도 제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미치겠어요, 테레사님. 아른아른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태우스 2015-12-10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걸 야매라고 하잖아요 전 야매는 무조건 반대입니다^^ 쌍꺼풀은 역시 압구정역에 있는 홍진주성형외과! 그간 안녕하셨어요 다락방님 간만에 들러서 인사드립니다. 여전히 즐겁게 살고 계신 듯한데, 글이 과거보다 좀 뜸해진 듯...!! 혹시 제가 아는 그 이유 때문일까요? 외눈 쌍꺼풀을 가진 님을 언제 한번 뵈야 하는데,내년엔 꼭 뵈요!

다락방 2015-12-10 09:06   좋아요 0 | URL
네, 이거 안 좋은 것 같아요, 야매. ㅋㅋ 저는 그냥 외눈 쌍커풀인채로 즐겁게 사는 걸로 결정했어요. 하핫.

글이 과거보다 뜸해진 건 맞는데요, 그건 제가 요즘 책을 잘 안읽어서 그래요. 독서력이 현저히 떨어짐요. ㅠㅠ 그렇지만 앞으로는 다시 열심히 읽고 열심히 써보리라 다짐합니다. 흣.
안그래도 연말에 마태우스님 뵙게 되려나 싶었는데, 내년이 되겠네요. 힛. 네, 꼭 봬요!!
 
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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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마도 그 하나하나의 이유 모두가 진실을 품고 있으리라.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인간이 행하는 바 어떤 결과가 오직 한 가지의 원인에 반드시 귀착된다고 하는 단순한 낙관주의를 점점 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신 더 많은 미묘한 카오스(혼돈)에 의한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찾아낸 원인이라는 것은, 유기적인 카오스로부터 조금 떼어온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리라. 물론 그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p.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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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5-12-0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20대 중반쯤에 쓴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참 대단해요~
˝어려도 다 알아요(아파요)˝ 같은 노랫가사인지 뭔지가 떠올라요!! ㅎ

다락방 2015-12-01 17:19   좋아요 0 | URL
스물 셋에 썼답니다, 글쎄! 저는 스물 셋에 만화방에서 만화 보며 라면 먹고 있었는데... 하아-

moonnight 2015-12-0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저도 충격받았던 기억 나네요. 굉장한 젊은 작가가 나타났구나 하고요. @_@;

다락방 2015-12-02 08:20   좋아요 0 | URL
제 젊은 시절은 헛된 시간들이 아니었나..젊은 시절을 너무 탕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ㅠㅠ

뽈따구 2015-12-0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스물 셋에..... 왠 벤쳐에서 밤새가며 프로그래밍 공부를 했....... 하아..........

다락방 2015-12-03 12:24   좋아요 0 | URL
아아, 그래도 공부를 하셨다면...뭔가 남는 게 아닐까요? 전 너무 먹고 마셔대기만해서...결국 비루한 육체가 남았네요. Orz

transient-guest 2015-12-03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제가 사놓고 못 읽고 있는 책이 pop-out하네요.-_-: 납뜩이가 그럽니다...`어쩌면 좋지 너??` 딱 제 심정이네요..

다락방 2015-12-03 12:25   좋아요 0 | URL
사놓고 못 읽은 책으로 배틀붙으면 제가 이길 것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사두고 안읽은 책 소진하기..를 2016년의 목표로 잡아볼까 합니다. 매해 그랬듯이..말입니다. ( ˝)

2015-12-05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6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걷어차기

어제는 e와 소주를 마셨다. 육전과 부대찌개를 안주삼아 소주를 홀짝홀짝이다가, 그렇게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e 는 아오마메를 얘기했다. 고환 걷어차기를. 아! 아오마메, 고환 걷어차기!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급반가워하며 맞아,맞아, 그랬지! 대화를 이어갔고, e 는 갑자기 좋다고 했다. 자기 주변에는 책 읽는 사람이 없어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없는데 너한테는 망설임 없이 해도 된다, 고 하면서. 그치, 좋지? 하며 얘기하다가 갑자기 일큐팔사를 다시 읽고싶어졌다. 지금은, 이 흉흉한 세상에서는, 아오마메가 필요한 게 아닐까.

















아오마메만큼 고환을 걷어차는 기술에 숙달된 사람은 아마 손꼽을 정도일 것이다. 발차기 패턴에 대해서도 매일 연마를 거듭하고 실전 연습을 빠뜨리지 않았다. 고환을 걷어찰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망설임을 배제하는 것이다. 상대의 가장 허술한 부분을 무자비하게, 전격적으로, 치열하게 공격한다. 히틀러가 네더란드와 벨기에의 중립국 선언을 무시하고 유린해버리는 것으로 마지노선의 약점을 찔러 간단히 프랑스를 함락시킨 것과 같이. 잠시도 망설여서는 안 된다. 단 한순간의 망설임이 치명적인 것이 된다.  (1권, p.276)



남성회원에게 불안이나 분노나 불쾌감을 주는 것에 대해 아오마메는 털끝만큼도 켕기는 게 없었다. 우격다짐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고통에 비하면 그런 불쾌감 따위는 별것도 아니지 않은가.(p.280) 



혹시라도 나를 공격하는 무모한 놈이 있다면, 그때는 세계의 종말을 생생하게 보여주리라고 그녀는 마음먹었다. 왕국의 도래를 똑똑히 직시하게 해주리라. 한 방에 저 남반구로 날려보내 캥거루랑 왈라비와 함께 죽음의 재를 듬뿍 뒤집어쓰게 해줄 것이다.(p.281) 



고환이 걷어 차이는 아픔은 이런 것이다.


"그건 이제 곧 세계가 끝나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아픔이야. 그거 말고는 제대로 비유할 말도 없어. 보통 아픔과는 전혀 달라."(p.277) 



나는, 어떤 놈들의 세계는 끝나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음, 나는 웹툰도 만화책도 잘 못본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미생]도 1권을 보다 말았다. 텔레비젼은 워낙 안보니 역시 방송으로도 보지 않았고. 그런데 우연히 드라마 [송곳] 1편을 보고는 '아 좋다' 생각을 했다. 그 방송을 매시간 챙겨볼 자신이 없었던 나는, 만화책을 읽기로 했다. 부랴부랴 사서 이 책의 1권부터 3권까지 읽게 됐는데, 아, 정말 좋았다. 가슴이 아팠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섭지만 용기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최규석의 만화야 내가 워낙 좋아했지만, 아, 정말 잘 썼구나, 잘 그렸어. 이야기를 정말 잘 풀어냈고 대사를 진짜 잘 썼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완결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이 책을 보고난 후에 고개를 들고 세상을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집 근처 홈플러스에 들렀는데 구호가 써진 옷을 입은 몇몇 직원분들이 보였다. 아, 저 분들은 노조에 가입한 거겠구나, 싶더라. 


그리고 지난주 방송에서 지현우는 욕을 했다. 늘 예의를 지키려고 하고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가려고 했던 그는, 사측의 입장이 되어 노조를 방해하는 여자사람부장의 귓가에, 전투력이 상승하여, 



꺼져 씨발년아.



라고 말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지현우는 어쩌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한다.



이 장면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왜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는데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왜일까? 왜그럴까? 그러다가 최근에 내게 일어났던 일이 생각났다. 내가 그때, 그렇게, 그저 수그러들면 안되는거였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전투력도 그때 상승했어야 하는데. 그때 말했어야 되는데. 맞서서 으르렁거렸어야 했는데. 그때 진짜 거침없이 말했어야 했는데.



꺼져 씨발놈아.



라고...아, 그러지 못한 게 너무 후회된다. 너무 얌전히 물러났어... 좀 더 거칠어져야겠어.





아버지가 하루 휴가를 내셨고, 덕분에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집에 계셨다. 머리를 감고 나오면 국을 데우는 게 내 출근 일과였는데, 오늘은 아버지가 데우고 계셨다. 반찬은 어떤 거 꺼내줄까, 물으시고는 식탁 위에 반찬도 차려주셨다. 나는 평소보다 조금은 여유롭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렸고 부엌으로 나와 내가 먹을 만큼의 소고기뭇국(!)과 밥을 퍼서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아, 누군가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니 출근은 한결 여유로워지는구나. 최근에 엄마가 평일에 여동생집에 가 계셔서 늘 내 아침을 내가 분주하게 차려먹고 와야 했다. 분주한 아침이라며 아침식사를 거를 순 없었다. 매 끼니는 소중하니까.


밥을 다 먹고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으면서, 아빠, 아침 차려줘서 고마워, 하고 말했다. 아빠 덕분에 한결 편했어, 덧붙이고 집을 나섰다.




며칠전에는 칠봉이에게 재이슨 스태덤과 로지 헌팅턴 휘틀리 얘기를 하면서, 나는 이 커플이 너무 좋고 이런 커플을 지향한다, 라고 말했다. 내 애인은 재이슨이고 내가 로지 같은.....그런 커플......그러자 칠봉이는



너는 로지보다는 재이슨에 더 가깝지.


라고 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뭔가...반박할 수 없다! 대학시절 교양으로 호신술을 들을 때, 같은과 아이들이 나를 '스티븐 시갈'이라고 불렀던 게 생각났다. 아아, 나는 젊었을 때는 시갈이었고 나이 들어서는 재이슨인가...... 어제 점심에 동료 k 랑 밥을 먹으면서 이 얘기를 했더니 '시갈 닮았다는 게 어쩐지 와닿는다'고 하며 빵터져서 웃더라...야.....





요즘엔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인 '캔디스 스와네포엘' 사진을 많이 본다. 너무너무 예쁘다. 특히나 내가 언제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아름다운 색깔의 눈동자! 나는 성형수술 생각이 전혀 없을 정도로 내 얼굴이 마음에 드는데(응?), 눈동자 색깔 만큼은 저렇게 찬란한 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눈썹도 예쁘고 입술도 예쁘다. 아..저 눈동자. 닮고 싶은 눈동자.....


점심을 함께 먹던 k 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내가 눈동자색만 이랬어도 이 사람이랑 똑같은데!' 라고 하자, k는 


"네?"


라고 했다.


술을 함께 마시던 e 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내가 눈동자색만 이랬어도 이 사람이랑 똑같은데!' 라고 하자, e는


"그렇죠.."


라고 했다.



음...왜 그렇다고 하는 e의 대답이 더 기분나쁜거지...




어쨌든,

목요일에는 어복쟁반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중고샵!

배송비를 받는 대신 책값 대폭 인하! 

송곳은 올리자마자 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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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12-01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래 인생이란 톤이 중요한거죠~~
k는 어처구니없지만서도 웃으면서
˝네?˝ 한거구요,
e는 힘없이 대답한거죠.
˝그렇죠~~~˝
이건 댓글이라 톤이 전달이 안 되니까요.
저는..... ˝그렇죠~~~~˝로 할께요. ㅎㅎ

다락방 2015-12-01 09:5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님 럽럽 ♡

살리미 2015-12-01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여기 음성지원기능이 있는거 같은데요? ㅋㅋㅋ
방금 간장두종지 곰발님 글 보고 또 열받았다가 금새 또 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고 갑니다^^

다락방 2015-12-01 11:31   좋아요 0 | URL
음성지원기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배고파요 오로라님. 점심 시간이 곧 다가옵니다. 꺅 >.<

세상엔 사람 열 받게 하는 게 엄청 많지요? 그렇지만 또 사람을 웃게 하는 것도 많아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오로라님. 많이 드시고요. 잘 먹고 추운 겨울, 혹독한 세상살이, 잘 이겨냅시다!!

기억의집 2015-12-0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웹툰만화 못 봐요.희안하게도~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미생은 드라마로 봤는데, 만화는 안 샀어요. 송곳은 편치 않을 드라마같아서 보기가 그렇더라구요....아 진짜 모르겠어요. 우리들 이야긴데 왜 외면하는지...

다락방 2015-12-01 11:37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보니까 확실히 불편해요. 아프고요. 몰랐더라면 좋았을 거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정희진은 `아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다` 라고 말했는가 봐요. 그 말을 실감합니다.
그 아픔이 느껴질 게 뻔해서, 불편함이 뻔할 것 같아서 아마도 외면하고 싶은 거 아닐까요?
요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차라리 모르고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해요. ㅠㅠ

transient-guest 2015-12-0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웹툰으로 보다가 너무 열받고 답답해서 멈췄어요. 무엇인가 속이 시원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다락방 2015-12-03 12:26   좋아요 0 | URL
속이 시원해질 날이 올지는..모르겠어요. 암울하죠.
그래도 누군가 그 환경에서조차 용기를 내서 발언을 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걸 보노라니 가슴이 뛰더라고요. 두렵고 걱정이 되면서도 가슴이 뛰는거죠. 드라마는 끝났다는데..저는 마지막회를 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어쩐지 너무 아플것 같아서요. ㅠㅠ

럭키언니 2015-12-03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샵바로가기를 연신 눌러보는 나.
송곳을 마주하고 싶어지네요..드라마도 못보고 웹툰도 못봤는디..

다락방 2015-12-03 12:27   좋아요 0 | URL
송곳..은 이미 팔렸으므로 다시 올라오진 않을거에요. ㅠㅠ
쪼꼬미뽀님을 위해서라도 중고샵 업뎃을 부지런히 해야하는데, 제가 요즘 독서력이 현저히 떨어져 업뎃이 느리네요. ㅠㅠ 책을 못읽고 있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웃집 살인마 - 진화 심리학으로 파헤친 인간의 살인 본성
데이비드 버스 지음, 홍승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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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할 때도 그렇고 다른 인터넷 쇼핑을 할 때, 나는 가급적이면 회사에서 택배를 받는다. 친구들이 주소를 물어도 대부분 회사 주소를 알려준다. 집 주소는 가능하면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남자친구인 경우엔 더 그렇다. 가급적이면 애인이라도 집 주소를 알려주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알려주지 않을 수는 없다. 연애를 하고 지내다보면 부득이하게 집 주소를 알려줘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야 만다. 좋다고 사귀면서 알려주지 않는 것도 좀 뭣해서 결국엔 알려주게 되는데, 헤어지고나면 집 주소를 알려준 게 가장 걸린다. 


나는 내가 강박증을 갖고 있어서 그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최근에서야 많은 여자사람들이 자신의 애인에게 집주소 알려주기를 꺼려한다는 걸 알게됐다. 뿐만아니라, 내가 사는 곳을 알려줬다는 거, 특히나 헤어진 애인이 나의 집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는 것도 알게됐다. 예전에 여자사람친구랑 얘기하는데, 그 친구가 그랬다. '나는 애인하고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닌데 집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까봐 무섭다' 고. 나 역시도 그랬다. 헤어지고나서 가장 무서운 건, 혹시라도 집앞에서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헤어진 연인을, 말없이, 맞닥뜨리기 싫었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물론, 사귀고 있을 때도 말없이 집앞에서 기다리는 건 오싹하다. 결코 유쾌하지 않다. 낭만을 찾는답시고 약속 없이 찾아오는 일은 연애중에도 나는 싫다. 오늘도 한 여자사람에게 물었다. 너도 혹시 헤어진 남자가 집앞에서 기다릴까봐 무서웠던 적이 있냐고. 그녀는 있다고 했다. 


어쩌면 나는 기본적으로 남자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릴 적에 폭력에 노출된 때문인지 아니면 여태 살아오면서 겪어온 생활속의 남자들의 모습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나는 아주 많이 남자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대화하며 웃고 술 마시는 걸 정말 사랑하지만, 두려움까지 함께 가진 것도 맞다. 헤어진 뒤 쌍년이란 욕을 들었을 때도 두려웠고 욕을 먹지 않았는데도 두려웠던 적도 있다. 어떤 헤어짐에 있어서는 두려움이 너무 커서 나를 아는 여자사람들 모두에게 내가 지금 이토록 두렵다, 고 다 말하고 다니기도 했었다. 혹시라도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내가 이러이러해서 두려워했었다는 걸 알아줘, 하고. 


물론 매 연애와 이별뒤에 늘 그랬던 건 아니다. 또한 나를 두렵게 했던 남자들, 내 친구들을 두렵게 했던 남자들이 유별나게 나빴던 남자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착하고 평범한, 좋은 남자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헤어지고 나니 무서운 존재가 되는 거다. 그렇다면 그런 두려움을 느끼는 내가, 다른 여자들이 유별난걸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잠시만 생각해 보자. 순간적일지라도 누군가를 살해하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는가? (p.56)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특이한 사람이 아니란다. 우리 모두 누군가 한 번은 죽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살인에 대한 판타지를 가졌다는 것을 이 책은 얘기한다.


이 책에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던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가진 것을 잃을까봐, 경쟁상대가 꼴보고 싫어서, 모욕감을 느껴서, 두려워서 등등. 각각의 이유로 사람들은 누군가를 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대부분은 그저 생각에 그쳤으며 그중 일부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니 나처럼 헤어진 연인에 의해 내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여자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됐다. 내가 유별난 게 아니었단 말이다.



우리는 몇몇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남성들은 자신의 짝짓기 전망이 희박해질 때 살인을 저지르고 싶어진다고 응답한 반면,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말했듯이, "당신을 거절할 때, 여자들은 사악해 보인다.(Women seem wicked when you're unwanted)"(1960년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킵며 히피 문화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전설적인 록 그룹 도어스의 보컬 짐 모리슨이 가사를 쓴 「사람들은 이상해(People are Strange)」에 나오는 구절이다-옮긴이) 이 불온한 생각은 남자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상황에 대한 연구 결과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p.36-37)



자신을 버린 배우자에 대한 살인 판타지에서는, 남녀 간의 차이가 그리 크게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판타지를 실행할 가능성이 주요한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성들이 자신을 버린 배우자를 살해한 반면, 여성들은 살인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될 만큼 심하게 자신을 격리하고 학대하며 위협한 배우자를 살해했다. (p.174)



간략히 말해,여성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살인의 주된 동기는 자기 보호와 위험한 결혼으로부터 도망치려는 필사적인 욕망이다. 이렇게 학대적인 관계에 처한 여성들은 자신이 처한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자신의 배우자를 떠나려 시도한,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는 많은 여성들이 수잔 라이트보다 더 운이 없었다. 적어도 수잔은 자신의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p.171)



한 남자사람을 처음 보게 됐을 때, 그리고 그저 아는 사이로 지냈을 때는 그가 '사귀면서' 어떤 남자일지 알 수가 없다. 사귀면서는 그의 새로운 면들, 내가 알지 못했던 면들이 속속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사귀면서 알지 못했던 점들이 헤어지고 나서 드러나기도 한다. 이 사람이 이럴 줄 몰랐는데, 하는 것들. 데이트폭력을 당하고 가정 폭력에 노출된 여자들에게 종종 '그런 남자랑 왜 사귀어', '그런 남자랑 왜 결혼했어' 라고들 말하는데, 사귀기 전에는 그가 때릴 줄 몰랐기에 사귀었고, 결혼 전에도 그가 수시로 내게 주먹을 휘두를 줄 몰랐기에 그렇게 되었다. 또한 '맞은 여자'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가해자보다 더 많이 피해자를 위협한다. 그런 폭력 속에 휘둘린 이상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 역시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와 사귀기 전에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남자는 여자를 때릴 남자다', '이 남자는 변태적인 성행위를 즐기는 남자다', '이 남자는 집착으로 여자를 피곤하게 할 것이다' 등등. 그런 게 이마에 써있다면, 여자들이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런 남자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남자들이 반응하는 방법을 예측할 수만 있다면(누가 애걸하며 간청할지, 누가 위협할지, 누가 스토킹할지, 누가 떠나갈지 그리고 누가 살해할지) 상당한 고통을 줄이고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살인이 상대적으로 드문 사건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누가 살인을 저지를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p.139)



그는 계속 제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제가 자신을 완전히 떠나 버리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말했구요. …… 제가 사는 곳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집에 찾아와서 절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p.145)



살해당한 많은 여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살해당할 걸 예측하고 있었다. 누가 자신을 죽일지 이미 두려워하고 있었고 '저 사람이 나를 언젠가 죽일거야' 하는 말을 바깥으로 꺼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두려워했던 그대로 그 사람에게 살해당한다. 멀리 도망가기도 해봤지만 결국은 그렇게 됐다. 커다란 두려움이 계속 내게 보내는 신호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7년간 살인에 대해 연구해서 이 책을 써낸 저자 '데이비드 버스'는 이렇게 오랜 시간 살인을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인 문제에 대해 만병통치약이란 없다. (p.361)



라고 말한다. 그는 그저 나의 직관을 믿으라고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것 뿐인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살해당할 위험이 얼마나 실제적인 것인지 깨달아라. 반갑지 않은 성적인 눈길을 일 초 이상으로 오래 보내는 남자를 경계하라.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걸 더 좋아할지도 모르는 계부모에게 주의하라. 당신의 성공을 배 아파 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경쟁자를 조심하라. 동료들 앞에서 당신이 준 모욕을 참을성 있게 받아넘긴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라. 방금 유혹한 이성의 전 배우자를 주의하라. 거절하기 전에 당신을 '유일한 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낭만주의자를 경계하라. 떠나지 않으려는, 스토커로 변해 버린 전 애인을 경계하라. (p.362)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한번쯤은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저자는 묻는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았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람을 죽이고나면 자신이 감옥에 갈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앞으로의 삶을 암흑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고. 또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에만 그친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저자가 내게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그들에게 물었던 그대로 묻는다면, 나는 저자에게 아마도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힘이 없었고, 지금은 힘이 있지만 그가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쩌면 괴물이 됐을지도 모를 순간들을 지나쳐왔다. 나 역시도 그랬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얘기, 누군가 나를 죽일까봐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권 가득 읽고났더니 두려움보다는 슬픔이 밀려왔다. 죽이고 싶다는 욕망도-거기에 이르게 한 수치심, 모멸감, 분함 등등-,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하나같이 다 내가 알 수 있는 감정들이라 마냥 슬펐다. 이 연구를 하는 동안 저자 역시 연구를 그만둘까를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러니까 살인에 대한 욕망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에 대해 믿고 있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나도 그렇다.


우리의 마음속에 살인을 저지르도록 자극하는 적응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그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받아들이고 살인을 퇴치하려는 노력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인간은 살인에 대한 적응뿐만 아니라 협동, 이타주의, 화해, 우정, 동맹 형성, 자기희생에 대한 적응들 역시 가지고 있다. 살인이 발생할 때, 인간의 본성은 문제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본성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하다. (p.356)



라고 써놨건만, 조선대의전원생의 데이트폭력 사건을 듣게 됐다. 네 시간 동안 잔인한 폭력 앞에 노출되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겪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안좋았다. 피해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는데, 고작 얼마간의 벌금으로 가해자를 세상에, 피해자의 옆에 다시 내놓다니. 바로 위에 희망 운운한게 병신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출생 후 작동하는 살해 방어 기제는 바로 `울기`다. `울기`는 아기가 배고픔이나 고통을 부모에게 알리는 괴로움의 신호이다. 출생 후 6개월이 지나, 영아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비교적 갖추게 될 때까지, 영아에게서는 특화된 공포 반응이 나타난다. 바로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 반응(낯가림)이다. 영아의 공포 반응은 낯선 사람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남성에게 집중해서 나타난다. 이는 인간의 진화 역사 동안 영아에게 가장 큰 위험의 대상이었던 성별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p.30)

또 다른 문제는 비상하는 것은 종종 추락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질 때처럼 갑작스럽게 사랑에 흥미를 잃는다. 우리는 누구의 사랑이 식을지 확신을 가지고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이에 대해 몇몇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 사랑에 빠질 때, 욕구의 충족이 중대한 것처럼, 욕구의 방해는 갈등과 이혼을 예고한다. 부분적으로 그가 가진 부와 야심 때문에 선택된 남성은 직업을 잃게 되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또 부분적으로 젊음과 미모 때문에 선택된 여성은 젊은 모델이 자신의 배우자를 유혹하면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자상하던 상대가 잔인하게 변할지도 모른다. 반복해서 관계를 가졌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으면 부부는 각자 다른 곳에서 더 비옥한 결합을 찾을지도 모른다.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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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 2015-12-01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고 나니 생각나는 남자가 있네요. 친구에게 직장에서 묘하게 계속 찝쩍대는, 심지어 결혼한 뒤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고요.
매일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기사들이나, 어제 4시간 감금폭행이나 여자를 무섭게 하는 일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되는 거 같습니다.

다락방 2015-12-01 09:38   좋아요 0 | URL
네, 무휘님. 제가 아는 여자들 중에서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어요. 분명히 `아니`라고 말했고 심지어 `애인이 있다`고 말했는데도 무작정 들이대는 남자들이요. 소리도 질러보고 좋게도 말해봤지만 자기 말만 하고 자기 감정만 전달하기에 급급했던 남자들. 그런 남자들을 대하는 여자들은 정말로 `무서워` 했어요.

현재진행형이에요, 무휘님. 여전히요.

단발머리 2015-12-0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문기사나 방송을 통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헤어진 남자, 전 남편, 전 남친의 존재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이 글을 읽고나니 더 가깝게 느꼈어요. 제 주위에서는 실제로 많이 말하지 않기 때문인것 같아요.
헤어져서도 도망갈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헤어져야 하는지...

그나저나 저는 이 책, 읽어요, 말아요? ㅎㅎ

다락방 2015-12-01 10:29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제가 ... 그러니까.. 판단이 잘 안되네요? ㅎㅎㅎㅎㅎ

네, 단발머리님. 실제로 저도 공포를 느낀 적이 있고요, 공포를 느꼈다고 말한 지인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털어놓다 보면 꽤 많더라고요. 다들 그걸 말하기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것 같아요. 내가 사귀었던 사람, 내가 호감을 가진 남자에게 실상 공포를 느꼈었다는 걸 말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돼요. 말해야 해요. 그래서 누구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지 주변인에게 알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전. ㅠㅠ

도망을 갔는데도 따라와서 총으로 쏜 남자도 있더라고요. 왜 헤어지는 일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 된걸까요...하아-

뽈따구 2015-12-0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역시... 전.. 무한긍정인가봐요. 이 글을 읽으면서 십분 공감하면서도.... 실감이 안 나는걸보면. 긁적.

다락방 2015-12-01 13:13   좋아요 0 | URL
실감이 안 나는게 낫지 않을까요? 실감나는 순간 아프고 불편하니까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