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어차기

어제는 e와 소주를 마셨다. 육전과 부대찌개를 안주삼아 소주를 홀짝홀짝이다가, 그렇게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e 는 아오마메를 얘기했다. 고환 걷어차기를. 아! 아오마메, 고환 걷어차기!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급반가워하며 맞아,맞아, 그랬지! 대화를 이어갔고, e 는 갑자기 좋다고 했다. 자기 주변에는 책 읽는 사람이 없어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없는데 너한테는 망설임 없이 해도 된다, 고 하면서. 그치, 좋지? 하며 얘기하다가 갑자기 일큐팔사를 다시 읽고싶어졌다. 지금은, 이 흉흉한 세상에서는, 아오마메가 필요한 게 아닐까.

















아오마메만큼 고환을 걷어차는 기술에 숙달된 사람은 아마 손꼽을 정도일 것이다. 발차기 패턴에 대해서도 매일 연마를 거듭하고 실전 연습을 빠뜨리지 않았다. 고환을 걷어찰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망설임을 배제하는 것이다. 상대의 가장 허술한 부분을 무자비하게, 전격적으로, 치열하게 공격한다. 히틀러가 네더란드와 벨기에의 중립국 선언을 무시하고 유린해버리는 것으로 마지노선의 약점을 찔러 간단히 프랑스를 함락시킨 것과 같이. 잠시도 망설여서는 안 된다. 단 한순간의 망설임이 치명적인 것이 된다.  (1권, p.276)



남성회원에게 불안이나 분노나 불쾌감을 주는 것에 대해 아오마메는 털끝만큼도 켕기는 게 없었다. 우격다짐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고통에 비하면 그런 불쾌감 따위는 별것도 아니지 않은가.(p.280) 



혹시라도 나를 공격하는 무모한 놈이 있다면, 그때는 세계의 종말을 생생하게 보여주리라고 그녀는 마음먹었다. 왕국의 도래를 똑똑히 직시하게 해주리라. 한 방에 저 남반구로 날려보내 캥거루랑 왈라비와 함께 죽음의 재를 듬뿍 뒤집어쓰게 해줄 것이다.(p.281) 



고환이 걷어 차이는 아픔은 이런 것이다.


"그건 이제 곧 세계가 끝나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아픔이야. 그거 말고는 제대로 비유할 말도 없어. 보통 아픔과는 전혀 달라."(p.277) 



나는, 어떤 놈들의 세계는 끝나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음, 나는 웹툰도 만화책도 잘 못본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미생]도 1권을 보다 말았다. 텔레비젼은 워낙 안보니 역시 방송으로도 보지 않았고. 그런데 우연히 드라마 [송곳] 1편을 보고는 '아 좋다' 생각을 했다. 그 방송을 매시간 챙겨볼 자신이 없었던 나는, 만화책을 읽기로 했다. 부랴부랴 사서 이 책의 1권부터 3권까지 읽게 됐는데, 아, 정말 좋았다. 가슴이 아팠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섭지만 용기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최규석의 만화야 내가 워낙 좋아했지만, 아, 정말 잘 썼구나, 잘 그렸어. 이야기를 정말 잘 풀어냈고 대사를 진짜 잘 썼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완결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이 책을 보고난 후에 고개를 들고 세상을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집 근처 홈플러스에 들렀는데 구호가 써진 옷을 입은 몇몇 직원분들이 보였다. 아, 저 분들은 노조에 가입한 거겠구나, 싶더라. 


그리고 지난주 방송에서 지현우는 욕을 했다. 늘 예의를 지키려고 하고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가려고 했던 그는, 사측의 입장이 되어 노조를 방해하는 여자사람부장의 귓가에, 전투력이 상승하여, 



꺼져 씨발년아.



라고 말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지현우는 어쩌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한다.



이 장면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왜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는데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왜일까? 왜그럴까? 그러다가 최근에 내게 일어났던 일이 생각났다. 내가 그때, 그렇게, 그저 수그러들면 안되는거였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전투력도 그때 상승했어야 하는데. 그때 말했어야 되는데. 맞서서 으르렁거렸어야 했는데. 그때 진짜 거침없이 말했어야 했는데.



꺼져 씨발놈아.



라고...아, 그러지 못한 게 너무 후회된다. 너무 얌전히 물러났어... 좀 더 거칠어져야겠어.





아버지가 하루 휴가를 내셨고, 덕분에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집에 계셨다. 머리를 감고 나오면 국을 데우는 게 내 출근 일과였는데, 오늘은 아버지가 데우고 계셨다. 반찬은 어떤 거 꺼내줄까, 물으시고는 식탁 위에 반찬도 차려주셨다. 나는 평소보다 조금은 여유롭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렸고 부엌으로 나와 내가 먹을 만큼의 소고기뭇국(!)과 밥을 퍼서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아, 누군가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니 출근은 한결 여유로워지는구나. 최근에 엄마가 평일에 여동생집에 가 계셔서 늘 내 아침을 내가 분주하게 차려먹고 와야 했다. 분주한 아침이라며 아침식사를 거를 순 없었다. 매 끼니는 소중하니까.


밥을 다 먹고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으면서, 아빠, 아침 차려줘서 고마워, 하고 말했다. 아빠 덕분에 한결 편했어, 덧붙이고 집을 나섰다.




며칠전에는 칠봉이에게 재이슨 스태덤과 로지 헌팅턴 휘틀리 얘기를 하면서, 나는 이 커플이 너무 좋고 이런 커플을 지향한다, 라고 말했다. 내 애인은 재이슨이고 내가 로지 같은.....그런 커플......그러자 칠봉이는



너는 로지보다는 재이슨에 더 가깝지.


라고 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뭔가...반박할 수 없다! 대학시절 교양으로 호신술을 들을 때, 같은과 아이들이 나를 '스티븐 시갈'이라고 불렀던 게 생각났다. 아아, 나는 젊었을 때는 시갈이었고 나이 들어서는 재이슨인가...... 어제 점심에 동료 k 랑 밥을 먹으면서 이 얘기를 했더니 '시갈 닮았다는 게 어쩐지 와닿는다'고 하며 빵터져서 웃더라...야.....





요즘엔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인 '캔디스 스와네포엘' 사진을 많이 본다. 너무너무 예쁘다. 특히나 내가 언제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아름다운 색깔의 눈동자! 나는 성형수술 생각이 전혀 없을 정도로 내 얼굴이 마음에 드는데(응?), 눈동자 색깔 만큼은 저렇게 찬란한 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눈썹도 예쁘고 입술도 예쁘다. 아..저 눈동자. 닮고 싶은 눈동자.....


점심을 함께 먹던 k 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내가 눈동자색만 이랬어도 이 사람이랑 똑같은데!' 라고 하자, k는 


"네?"


라고 했다.


술을 함께 마시던 e 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내가 눈동자색만 이랬어도 이 사람이랑 똑같은데!' 라고 하자, e는


"그렇죠.."


라고 했다.



음...왜 그렇다고 하는 e의 대답이 더 기분나쁜거지...




어쨌든,

목요일에는 어복쟁반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중고샵!

배송비를 받는 대신 책값 대폭 인하! 

송곳은 올리자마자 팔림..


중고샵 바로가기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5-12-01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래 인생이란 톤이 중요한거죠~~
k는 어처구니없지만서도 웃으면서
˝네?˝ 한거구요,
e는 힘없이 대답한거죠.
˝그렇죠~~~˝
이건 댓글이라 톤이 전달이 안 되니까요.
저는..... ˝그렇죠~~~~˝로 할께요. ㅎㅎ

다락방 2015-12-01 09:5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님 럽럽 ♡

살리미 2015-12-01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여기 음성지원기능이 있는거 같은데요? ㅋㅋㅋ
방금 간장두종지 곰발님 글 보고 또 열받았다가 금새 또 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고 갑니다^^

다락방 2015-12-01 11:31   좋아요 0 | URL
음성지원기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배고파요 오로라님. 점심 시간이 곧 다가옵니다. 꺅 >.<

세상엔 사람 열 받게 하는 게 엄청 많지요? 그렇지만 또 사람을 웃게 하는 것도 많아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오로라님. 많이 드시고요. 잘 먹고 추운 겨울, 혹독한 세상살이, 잘 이겨냅시다!!

기억의집 2015-12-0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웹툰만화 못 봐요.희안하게도~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미생은 드라마로 봤는데, 만화는 안 샀어요. 송곳은 편치 않을 드라마같아서 보기가 그렇더라구요....아 진짜 모르겠어요. 우리들 이야긴데 왜 외면하는지...

다락방 2015-12-01 11:37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보니까 확실히 불편해요. 아프고요. 몰랐더라면 좋았을 거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정희진은 `아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다` 라고 말했는가 봐요. 그 말을 실감합니다.
그 아픔이 느껴질 게 뻔해서, 불편함이 뻔할 것 같아서 아마도 외면하고 싶은 거 아닐까요?
요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차라리 모르고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해요. ㅠㅠ

transient-guest 2015-12-0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웹툰으로 보다가 너무 열받고 답답해서 멈췄어요. 무엇인가 속이 시원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다락방 2015-12-03 12:26   좋아요 0 | URL
속이 시원해질 날이 올지는..모르겠어요. 암울하죠.
그래도 누군가 그 환경에서조차 용기를 내서 발언을 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걸 보노라니 가슴이 뛰더라고요. 두렵고 걱정이 되면서도 가슴이 뛰는거죠. 드라마는 끝났다는데..저는 마지막회를 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어쩐지 너무 아플것 같아서요. ㅠㅠ

럭키언니 2015-12-03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샵바로가기를 연신 눌러보는 나.
송곳을 마주하고 싶어지네요..드라마도 못보고 웹툰도 못봤는디..

다락방 2015-12-03 12:27   좋아요 0 | URL
송곳..은 이미 팔렸으므로 다시 올라오진 않을거에요. ㅠㅠ
쪼꼬미뽀님을 위해서라도 중고샵 업뎃을 부지런히 해야하는데, 제가 요즘 독서력이 현저히 떨어져 업뎃이 느리네요. ㅠㅠ 책을 못읽고 있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