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에 전쟁 포로로 잡혀가 철로를 건설해야 했던 연합군 포로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잠도, 휴식도 주어지지 않았다. 말라리아, 각기병등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점차로 죽어갔지만, 그러나 일본군은 그들을 계속해서 학대하며 노동하기를 강요했다. 장교이며 의사였던 '도리고 에번스'가 전쟁 전에 살았던 삶, 그리고 이 포로로 지냈던 삶, 전쟁 이후의 삶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것도 그리고 전쟁 포로의 삶에 대한 것도 읽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 책장은 아주 느리게 넘어갔다. 전쟁에 대한 글을 읽노라면, 대체 전쟁을 왜 하는걸까 하는 의문만 이백번쯤 들곤 한다. 신념이란 무엇인가. 어째서 가능하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모질게 고문하고 학대할 수 있는 것일까, 에 대한 생각도 해본다. 인생이란 무엇인고 인간이란 무엇일까. 


도리고 에번스는 오래 전에 헤어진 고모부를 휴가중에 찾아가게 된다. 그 때 그는 이십대의 청년이었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 '엘라'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모부의 아내에게 빠져버리게 된다. 고모부의 아내라면 고모여야 하겠지만, 고모가 죽고난 후 고모부가 재혼한 여자였다. '에이미'. 그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군에 있으면서 휴가를 주면 엘라를 찾아가는 대신 에이미를 찾아간다. 인생이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일까, 를 생각하면서 읽다가 어쩔 수 없이 생각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왜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빠질까. 왜 이미 결혼해 남편이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빠질까.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그러니까 결혼을 약속한 사람에 대한 내 선택이, 결혼할 상대를 고른 내 선택이 잘못이고 실수였을까. 왜 지금 이 사람을 좀 더 빨리 만나지 못했을까 왜 이렇게 모든 걸 바꾸기엔 좀 늦어버린 시점에 이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났을까. 내가 당신을 사랑할 거였다면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그런 상태에 있으면서 나를 찾아온걸까. 인생이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도리고 에번스는 분명 엘라를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결혼할 생각까지 햇었는데, 에이미를 알게된 후에는 엘라에 대한 감정들이 시들어진다.




예전에는 아름답고 이국적으로 보이던 얼굴이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지루하게 보였다. 처음엔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검은 눈이 지금은 암소처럼 경솔하게 남을 믿어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래도 자꾸 생각이 났기 때문에 점점 더 심한 자기혐오에 빠졌다. 그래서 새로이 결심을 다지고 그녀의 품에, 그녀와의 대화, 그녀의 두려움과 농담과 이야기에 자신을 던졌다 이런 친밀함이 궁극적으로 에이미 멀베이니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짓눌러주면 좋을 텐데. ( p.143-144)



아, 너무 싫다. 자신이 흠뻑 빠진 여자를 잊기 위해, 기억을 짓누르기 위해 지금 이 여자에게 충실하력 억지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 엘라가 그걸 모를까. 내가 엘라였으면 그걸 모를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것을 내가 모를까. 그럴 때의 내가 당신에게 그냥 그 사람에게 가, 당신이 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잖아,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러나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결코 다른 사람에게 보내기 싫으면 그렇게 다른 곳으로 향하는 시선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걸까.



놀랍게도, 아주 놀랍게도, 엘라는 단 하나의 거짓말로 그에게 평생 복수를 했다. 그것은 이 소설의 끝에 나오는 것이고,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아,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사랑 때문에 어떤 것까지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집착 때문에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는가. 나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거짓말을, 엘라가 했다. 나라면 하지 않았을 거짓말이지만, 그러나 그 거짓말을 한 엘라를 욕할 수가 없다. 그것이 그 때 엘라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도리고를 제옆에 두기 위한 최선의 방법. 





호주의 산불에 대한 소식으로 답답한데, 이 책에서도 호주 산불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야기의 배경이 호주인데 도리고의 아내가 머물고 있는 집에 산불이 나는 것. 도리고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 책장을 덮고 생각했다.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연이란 무엇이고 운명이란 무엇일까. 뉴스에서도 볼 수 있는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째서 나는 소설 속에서도 그대로 만나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런 우연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인가.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사이라면, 지금 호주에서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을 수 있을텐데. 괜찮은건지, 거기에서 당신은 괜찮은건지. 




책의 모든 내용들이 힘들어서, 책을 읽는 게 힘들었고, 그래서 이 책을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다. 빨리 읽고 다른 걸 읽고 싶었다. 전쟁도 싫고 너무나 원하는데 가질 수 없어 힘들어하는 것도 싫고, 고문과 학대도 싫고 폭력도 싫고 외로움도 고독도 싫었다. 이 모든게 다 있는 이 책을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다. 나중에 나오는 산불 이야기도 싫고 거짓말도 싫었다. 다 싫었다.



그는 죽지 않았고, 그녀도 아직 죽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p.506)


그것으로 충분한가.

정말 그런가.






힘들어요. 여자가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다는 게. - P105

어떡해.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을 정말 원해.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꼴사납게 보일 정도로 저 사람을 원해. - P167

처음부터 알았어. 그가 말했다. 그애가 처음 날 만나러 왔을 때부터.
문장과 문장 사이로 몇 마일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자동차가 한없이 펼쳐져 덜컹거리는 암흑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그녀는 생각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키스에게서 새오나오는 슬픔뿐이었다. 그 슬픔이 세상을 텅 비워버리는 것 같았다. - P196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외로웠고, 자식들과 함께 있을 때도 외로웠고, 수술실에서도 외로웠다. 그가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의학 모임, 스포츠 모임, 자선단체, 참전군인 단체에서도 외로웠고, 수많은 전쟁포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할 때도 외로웠다. 기운이 다 빠져버린 공허가 그를 에워쌌다. 뚫을 수 없는 공허가 사교성 좋기로 유명한 이 남자를 감싸고 있었다. 그는 벌써 다른 세상에 가서 살고 있는 듯했다. 한없는 꿈 또는 끝나지 않는 악몽을 풀었다 되감기를 영원히 반복하면서. 꿈과 악몽중 어느 쪾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거기서 영원히 탈출할 수 없을 터였다. 그는 다시 불을 켤 수 없게 된 등대였다. - P482

그렇게 그와 엘라 사이에 경험이라는 공모가 자라났다. 아이들을 기르는 것, 현실적이고도 다정하게 서로를 뒷받침해주는 것, 함께 보낸 세월, 수십 년 동안 쌓인 두 사람만의 대화와 친밀한 관계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소한 일들, 그러니까 잠에서 깨었을 때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체취와 아이가 아플 때 상대의 떨리는 숨소리, 서로가 앓은 병, 슬픔과 관심, 서로 기대하지도 않고 말해본 적도 없는 애정 같은 것들, 이 모든 것이 사랑보다 더 중요하고 더 확실하며 더 강하게 두 사람을 묶어주는 것 같았다.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엘라에게 묶여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도리고 에번스는 무엇보다 완전하고 확실한 고독을 느꼈다. - P489

그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기 직전까지 갈 때마다 그녀의 앞에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났다. 한 번도 그녀를 찾지 않고, 약속과 달리 전쟁이 끝난 뒤 그녀를 다시 찾아오지 않은 그가 그녀를 거절할 것이라는 장애물. 이제는 두 사람의 처지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유명한 도리고 에번스가 되어 계속 유명해지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아래로 자꾸만 가라앉는 하찮은 사람이었다. - P505

그는 죽지 않았고, 그녀도 아직 죽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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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고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책을 가지고 동네 스벅으로 갔다. 어제 혼자 있었던 시간이 충분치 못하기도 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오늘도 역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들고 스벅으로 가 초코크루아상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책을 펼쳐들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출입문 옆자리어서 사람들이 계속 이동하는 게 느껴졌고 스벅 안에는 사람들도 많아 좀 소란스러웠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는 내 폰에서 가사가 없는 음악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내 폰에는 Sergei Trofanov 가 있어서 그것을 재생해 두었다. 처음에는 가사가 없는데도 음악이 들려서 잠깐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잇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집중력이 꽤 좋은 사람이다. 책을 읽다 잠시 멈췄을 때는 그 앨범이 전체곡을 다 재생한 후에 멈춰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앗, 언제부터 음악이 안나왔지? 음악이 안나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책에 집중해 읽었다. 나의 이런 점은 정말이지 짱이다. 집중을 어쩌면 이렇게 잘할까? 최고 멋진 것 같아. 나는 내가 집중을 잘하는 것을 알고, 집중을 잘하기 때문에 사실 대부분의 문제들에 대하여 답을 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집중해서 생각하면 답을 찾을 수 있어, 라고 스스로 믿는 편이다. 


아, 내가 잘난척 하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니고 ㅋㅋㅋㅋ (정말?) 어쨌든 정신차려보니 나는 세시간이나 꼼짝않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더라. 남아있는 커피는 차가워져 있었다. 크... 집에 가자. 뒤에 몇 장을 남겨두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기 전에 마트에 들러 와인 세 병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가 '로버트 브린자'는 1979년의 남성이다. 책의 처음에 피해자의 입장에서 글이 쓰여져서 읽기가 좀 힘들었다. 잡히는 사람, 죽음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좀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공포가 전해져와서 몹시 괴롭단 말이다. 그러나 주인공 '에리카' 경감이 나오면서부터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어졌다. 사건을 추리하고 수사하는 과정 자체는 다른 수사물과 별다를 바가 없지만, 범인을 잡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일(업무)로서 마주한 에리카의 주변 일들을 보여줌에 있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위산업의 큰 손인 남자의 둘째 딸이 살해된채로 발견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언론이 시끄러워진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압박을 느끼던 '마쉬 총경'은 이 사건을 얼른 제대로 해결하고 싶어서 능력있는 경감인 '에리카'를 자신의 서로 불러온다. 에리카는 얼마전에 범인 체포과정에서 동료 경감이자 남편을 잃고 일에서 손을 떼고 있었던 터다. 그런 그녀가 이 살인사건으로 복직한 것. 그녀는 특유의 직감으로 이 사건을 수사해가지만, 그전에 수사를 진행했던 남자 경감도 그녀를 대놓고 무시하고 피해자의 가족들도 남자경감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한다. 그녀가 유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추측은 신뢰를 받지 못하는데, 새삼 그녀가 경감이라는 지위까지 오는동안 얼마나 많은 편견에 시달렸을까를 생각하니 암담해졌다. 그 모든 과정들을 겪고 여기까지 왔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경감인데도 편견 앞에 자꾸 절망하고 뒤로 쳐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하는 건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가. 게다가 그녀를 도와주는 여자 형사도 나오고, 사회문화 전반에 형성된 여성혐오나 비하에 마주쳤을 때 이 여자 형사들은 대놓고 맞선다. 또한 매춘부의 죽음이 재벌딸의 죽음과 다르게 다루어 지는 것에도 불만을 품은 에리카는, 그 모두가 똑같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계속 알리고자 한다. 그녀가 살인자의 표적이 된 후에 동료 여자경찰의 집에 며칠 머무르는 장면에서는 동료 여자경찰이 다른 여성과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작가는 끊임없이 널린 편견들을 보여주고 그것들에 맞서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에리카'는 피해자들에게 연대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고, 그래서 진심으로 살인범을 잡고 싶어한다. 자신의 업적을 하나 더 쌓고 싶다는 바람이 아닌,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꼭 잡을게, 하는 것. 에리카 경감에게는 피해자에 대한 연대가 있었던 거다. 그게 그녀의 열정에 더 불을 지피고 남들보다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든다.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넨 에리카는 홀로 수사본부에 남아 화이트보드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녀의 눈길이 유독 앤드리아의 사진에 오래 머물렀다. 

"넌 겨우 스물셋이었어. 앞날이 창창했다고." (p.72)


바로 이 연대가 그녀가 외로운 가운데에서도, 경찰서의 다른 경찰들과 피해자 가족들마저 자기를 배척하는 가운데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총경님, '우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네, 제가 연락도 없이 총경님 집 앞에 찾아와서 이러는 거, 정신 나간 짓이란 거 압니다. 하지만 제가 미친년 취급받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어요. 제가 못 참겠는 건 말입니다, 이 여자애들한테 일어난 일이에요. 아무런 노력도 안 해 보고, 오늘 밤에 발 뻗고 주무실 수 있겠어요? 우리가 처음 경찰이 됐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땐 힘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잖아요. 충분히 있잖습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총경님한테요. 젠장, 수색에 드는 비용은 저한테 청구하세요. 인사 위원회에 회부해서 저를 해고하셔도 돼요, 지금 그딴 건 아무 상관 없어요. 하지만 이것 좀 보세요, 보시라고요!"

에리카는 사진을 다시 마쉬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만해!"

마쉬는 큰 소리로 외치고는 현관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p.268)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의 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고 지휘권도 빼앗겨 버린 그녀는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걸 견뎌내면서 수사를 계속하다니... 불법체류자인 여성, 홈리스 여성의 말을 경찰서의 누구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며 믿어주려 하지 않았을 때, 에리카는 그들의 말을 '믿는다'. 아마도 자신 역시 사실을 말해도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오늘까지는 앤드리아 더글러스-브라운의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신문과 인터넷 사이트, 텔레비전 뉴스에 앤드리아 사진이 도배됐고, 국가적 양심의 문제로까지 번졌죠. 그렇습니다, 앤드리아가 특권을 누렸던 건 사실입니다. 반면 타티아나 이바노바, 미르카 브라토바, 카톨리나 토도로바와 아이비 노리스는 어떤가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험한 삶을 살았을까요? 아닐겁니다. 상황이 달랐다면, 그들도 앤드리아처럼 윤택한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내가 구태여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매일같이 행해지는 대로 이들을 계급화하지는 말자고요. 이 다섯 사람 모두 끔찍하게 살해됐어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겁에 질려 죽어 갔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등하고, 똑같은 피해자이며, 공정한 시선으로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p.355)



에리카가 하는 생각들, 말들이 좋아서 이 책이 시리즈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실 피터슨.. 의 이야기도 좀 더 보고 싶고. 시리즈가 있다고 해도 피터슨의 이야기가 나올까? 그렇지 않을 확률도 있지만, 그래도...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오, 에리카 경감의 이야기는 시리즈가 맞았다. 나이쓰~ 내가 시리즈를 찾게 되다니 ㅋㅋㅋㅋ 이 책이 첫번째고, 그 다음책은 바로 이것.

















오오, 이것도 읽어봐야겠다. 피터슨 얘기 좀 더 나오면 좋겠는데.... 정확하게는 피터슨이 부하직원으로서 에리카를 계속 도우면서 뭔가 둘 사이에 특별한 무언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것이 반드시 이성간의 연애감정은 아니더라도, 어떤 단단한 관계. 에리카는 낯선 지역으로 와서 다 새로 만나는 동료들이었으니만큼 누군가와 좀 더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도 좋지 않은가. 데이트하고 섹스를 해도 좋겠지만, 데이트와 섹스와는 거리가 멀고 그저 서로를 신뢰하는 단단한 관계, 그런 관계가 하나쯤 있는 거 참 좋지 않나. 퇴근하고 같이 맥주도 마시고 피자도 먹고 그러는 거. 모스가 이미 전적으로 에리카를 신뢰하기는 하지만, 피터슨과도 그런 관계가 되면 좋겠다...라고 나는 혼자 바란 것이었다. 얼른 다음 시리즈도 읽어봐야지. 



1월달에 월급 타면 사려고 했는데... 지금 이 책 하나만 살까? 아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2020년에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맨날 책 살까말까 고민하면서? 그러다가 결국 사면서? 그렇게 사는걸까?








휴일인 거 너무 좋다. 늦잠도 자고 느즈막히 일어나서 까페로 나가 한낮에 책도 읽을 수 있다니. 아, 이런 거 정말 너무 좋잖아. 나는 한낮에 까페로 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삶을 언제나 꿈꾸고 있다. 너무 좋아. 집중도 세 시간이나 했다구!!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 가운데 수요일에는 휴일이 하루씩 껴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하루를 쉬고 다음날 출근해서 목,금 일하고 다시 토,일 쉬고... 월,화 일하고 수요일 쉬고 목,금 일하고 토요일일요일 쉬고... 환타스틱하지 않은가...



그나저나 이 책 다 읽었으니 이제 다음 책을 뭘 읽어야 하나. 하루키 책 하나 꺼내놨고 배움의 발견도 읽고 싶고 내친김에 추리로 하나 더 읽을까 싶고,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 시작할까..아니 이건 조금 더 있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소설을 한 권 더 읽어야겠다. 소설 좀 여러권 읽어서 내 안에 이야기로 가득 채운 다음에 다시 페미니즘 도서 읽으면서 으르렁 거려야지. 으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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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20-01-0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면 순문학과 장르문학 나누는 거 참 부질없구나 싶어요..
집중력 짱 몰입도 짱 (^^)b
2주째 수요일을 쉬니 저희 아이도 매주 수요일 쉬면 학교 잘 다닐수 있겠다고 하네요 ㅎㅎ

다락방 2020-01-02 07:40   좋아요 0 | URL
저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어서 읽지 않기 때문에, 그 구분은 저야말로 참 부질없다 싶어요.
물론 제가 더 좋아하는 작가나 책은 있지만 말입니다.

매주 수요일 쉬면 학생들도 좋아하고 직장인들도 좋아하는데 대체 왜 매주 수요일에 쉬지 않는걸까요?????
ㅎㅎ

- 2020-01-01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맹날 수요일에 쉬면 좋겟다! 저도 세시간 집중햇는데 ㅠㅠ 100페이지 읽엇나? 제 2의성 어렵다 ㅠㅠㅠㅠㅠ
앗차차~ 1월 1일이지만 변함없이 오늘의 책을 읽는 사람들 참.. 멋지다..*

다락방 2020-01-02 07:42   좋아요 1 | URL
제2의 성보다는 소설이 같은 시간 집중해도 휘리릭 넘어가지요. 제2의 성은.. 정말 장난 아니에요. 으흐흐흐.
쟝님도 1월1일 세시간 집중해서 책 읽으셨군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열심히 읽고 쓰며 살아갑시다. 뽜샤!!

2020-01-03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5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회사와 집 사이, 잠깐 까페.
회사엔 직원들 집에는 가족이 있어서 잠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들어왔다. 마침 까페에서는 샌드위치 테스트 해보라며 나눠주었어. 힛.
그러나 하필이면 제일 추운 날 얼음에 갇힌 여자라니, 너무 추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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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9-12-3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맛나 보여요. 혼자만의 시간 잘 보내고요. 책 두께 보니 왠지 얼음두께가 어마무시할 듯. ㅎㅎ 내일 일출 보러 가겠다던 사람들 그냥 집콕 하는 걸로 하대요. 많이 추운가 봐요. 부산은 좀 나아요 ㅠ

다락방 2020-01-01 17:52   좋아요 0 | URL
오늘도 집근처 까페에 나가 혼자 세시간동안 앉아있으면서 이 책을 다 읽었어요. 저는 역시 혼자 까페에서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프레이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아하는 시간 많이 갖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바랄게요.

책읽는나무 2019-12-3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
그래도 복은 받고 갑시다.ㅋㅋ
새해 봅 많이 받으세요~다락방님

다락방 2020-01-01 17:53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물론이지요. 우리 복 받는 건 잊지 맙시다!
책나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알라딘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만나요!

블랙겟타 2019-12-31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만의 시간을 잘 가지셨나요? 다락방님
지금은 집이시겠죠? 남은 2019년의 시간을 잘 보내시구 내년에도 자주 봬요 ^^

다락방 2020-01-01 17:54   좋아요 1 | URL
어제도 갖고 오늘도 가져서 결국 이 책을 다 읽었습니다. 으하하하. 재미있게 읽었어요. 시리즈라 그래서 그 다음편도 사려고요.
2019년에 겟타님을 뵙게 되어 반가웠어요. 새해에는 더 자주 보도록 합시다. 아울러 여성주의 책 같이읽는 것도 함께 열심히 해보도록 합시다. 뽜이팅!

수이 2019-12-31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는 꼭 만나서 한 잔 해요!

다락방 2020-01-01 17:55   좋아요 0 | URL
수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년에는 그래요, 만나서 소주 한 잔 해요. 저는 맥주보다는 소!주! :)

blanca 2019-12-31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우리 2020년에는 정말 행복하자구요! 복을 막 끌어당기면서요.

다락방 2020-01-01 17:55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좋아요! 우리 2020년에서 복 막 끌어당기면서 살도록 해요. 전 벌써부터 우리가 그럴 수 있을거라는 강한 확신이 듭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내가 땅속의 두더지가 된 것 같았다. 책이 세상에 나온 뒤,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을 받게 되었고, 엘리베이터 속의 남자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접근해왔다. 전국의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책이 소개되었고, 방송국에 갔을 때 안내원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전남편은 빨래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녹화를 끝내고 스튜디오에서 나가는데 카메라 기사가 ˝그런데 박사님, 게을러터진 여자는 못 보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p.329)

















'알리 러셀 혹실드'의 이 책이 나오고나서 반응이 꽤 뜨거웠다고 한다. 혹실드 박사는 여기저기 강연을 다녀야 했고 독자들로부터 편지를 받았으며,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 질문과 하소연을 들었다고 했다. 이 책은 혹실드 박사가 12년간 열두집의 가정으로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목격하고 인터뷰한 뒤에 내놓은 책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가사노동은 여자들이 부담하고 있었고, 이건 여성이 전업주부이거나 일을 따로 갖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이 밖에서 일을 하고 들어와도 집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가 텔레비젼을 보는 대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다 여성인 아내의 몫이었다.


이에 아내들은 지친다. 몸이 부서질 것만 같다. 그래서 남편에게 집안일을 좀 같이하자고 말하면 남편들은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더러는 해주기도 한다. 그건 어디까지나 아내들이 부탁했기 때문에 해주는 것뿐이지, 스스로 알아서 이것은 내가 사는 집, 우리 가족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남편들은 매우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낸다. 그래, 너도 바깥에서 일하니까 힘들지, 그런데 니 바깥일이 힘들다고 해서 내가 왜 가사노동을 해야 해?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진 남편들도 있다. 아내가 돈을 남편보다 잘벌든 못볼든 남편들은 아내보다 확실히 가사노동을 덜했다. 게다가 양육자로서도 한걸음 떨어져 있었다. 남편들이 그랬다.



그런 생활에 지친 아내들은 남편들을 타일러도 보고, 화를 참아가며 부탁을 해보기도 하다가, 포기한다. 어떤 아내들은 포기하고 어떤 아내들은 집을 나가버리고 어떤 아내들은 이혼을 얘기한다. 이 가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남편에게 이것좀 해달라 저것좀 해달라 부탁하는 게 너무 짜증이나서, 그냥 남편은 창고 일을 하고 나는 나머지 일들을 하면서 반반씩 부담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남편에게 짜증이 나는 아내들은 바로 '그래도 다른 남자들 보단 낫지', '그래도 이정도면 내가 운이 좋았지', '이런 남편이라니 그나마 내가 운이 좋은거야' 라면서 자신을 다독인다. 외부에서 보기에 전혀 운이 좋은 것 같지 않음에도, 그들 스스로는 운이 좋다고 자신들을 다독인다. 운이 좋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아내들이, 그런데 왜 삶에 지쳐있고 지겨워할까. 운이 좋다면서 왜 웃음을 잃을까.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꺼려한다. 그래서 아니, 이정도면 충분한거라고 합리화 하는데에 열중하기도 한다. 바깥에 나가서도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또 일을 하면서도, 그래서 늦은 밤에 침대에 쓰러져버리면서도, 아내들은 '그래도 이만하면 운이 좋았다', '내 남편은 그래도 다른 남자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남편들은 자신들은 게으르지만 아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내들이 가사노동을 하는 거라고 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가사 노동을 하는 게 아내들에게 노동을 지운 거라는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한 미친 자기합리화 아닌가. 집에 와서 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집에 와서 걸레질을 하고 식탁을 차려내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는 것은 또 얼마나 힘이 드는가. 자기는 하기 싫어서 텔레비젼 앞에 앉으면서 그건 아내가 부지런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다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 책은 이 책이 나오고난 후의 후기도 실려있고, 저 위에 인용한 부분은 그 후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박사님, 게을러터진 여자는 못 보셨습니까?˝



게을러터진 여자가 왜 없겠는가! 나 역시도 게을러터진 여자중 하나다. 우리 엄마는 게으르고 싶지 않았을까? 이 책 속의 아내들이 게으르고 싶지 않았을까? 누군가 밥을 차려야하고, 누군가 아이들을 씻겨야 하고, 누군가 설거지를 해야하는데, 그런데 당신이 안하면 누가 하나? 내가 한다.




일전에 여동생네 가족이 와있을 때였다. 엄마가 이것저것 분주히 부엌에서 움직이고 계셨고 아빠는 거실에서 텔레비젼을 보고 계셨다. 나는 거실에서 조카랑 놀고 있는데, 아빠가 엄마에게 '그만하고 좀 쉬어'라고 말하는거다. 이때부터 내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하고 있는 가사노동-그것이 청소든 설거지든 빨래든- 그걸 엄마가 하고 있다면, 그 일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엄마가 그 일로부터 쉬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일을 '대신' 해줘야 하는 것이다. 일을 하는 중에 '쉬라'고만 하면, 그 일은 그대로 남아 다시 엄마의 몫이 되는 게 아닌가. '내가 할게 쉬어'가 아니라 '그만 하고 쉬어'라니. 그렇다면 그 다음은?



이게 작년인가 재작년의 일이다. 그래서 잔소리를 할까말까 하는 와중에 조카가 우리아빠에게 그랬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해야지! 할아버지가 하는 것도 아니면서 쉬라고 하면 어떻게 쉬어!"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조카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년이면 아홉살 재작년이면 여덟살인데, 조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는 어쩜 그런 아이가 되었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모가 꼴페미이기 때문인거야???



이 날은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기로 한 날이었다. 식탁 위의 불판에서 고기는 익어가는데 조카1이 자꾸 나를 부르고, 그렇게 조카를 상대해주고 앉을라치면 여동생이 조카2 때문에 나를 부르고.. 그렇게 움직이느라 편하게 앉아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고기는 제부가 계속 굽고 있었다. 아빠는 계속 드시고 계셨다. 아빠가 다 드시고 일어나실 때쯤 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아빠는 내게 '너 아직도 다 안먹었냐'고 하시는거다. 와. 얼마나 화딱지가 나던지.



"나도 아빠처럼 누가 구워주는 거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면 아까 다 먹었지!!"




회사가 누군가의 노동으로 굴러가는 것이듯, 집안도 누군가의 노동-가사노동, 돌봄노동-으로 굴러간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건 대부분 아내만의 몫이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고 조금 달라졌다고 해도 지금까지도 역시 그렇다. 82년생 김지영이 괜히 나왔겠는가.

아빠 엄마가 맞벌이로 돈을 벌러 바깥으로 나가셔서 나는 어릴적부터 동생들과 함께 집을 보아야 했다. 엄마는 그런 우리가 불안해 가끔 친할아버지를 부르시고 가끔 외할머니를 부르셨다. 외할머니는 우리 삼남매의 밥을 챙겨주시고 어린 동생을 씻겨 주셨고, 넘어져 다치거나 화상을 입으면 약을 발라 주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가만 앉아있다가 열살, 열한살 내가 차려주는 밥을 가만 받아먹고 부모님중 누군가 오시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일찍부터 돈 벌기는 중단하고 계셨었다. 덕분에 아버지는 가난하게 자랐고....돈도 안벌고 밥도 안차려먹고..........그만두자, 이런 얘기는.....




아, 그러니까 나도 게으른 사람이라는 거다. 우리 친할머니도 게으르고 싶었을 거고 외할머니도, 엄마도 게으르고 싶었을 거다. 그러나 게으르고 싶다고 해서 게을러진다면 집안이 대체 어떻게 굴러가겠는가. 밥상을 차리는 것도, 다먹고난 후에 치우는 것도, 지저분해진 집을 청소하는 것도, 옷을 빠는 것도... 나 게을러 너 게을러 우리 모두 게을러 그러니까 안해~ 이렇게 되면 집안은 어떻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게을러터진 여자는 못봤냐는 저 피디의 말은 정말이지 답답하기 짝이없다.



그래, 게을러터진 여자를 봤다고 하자.

그런데?

그래서?

게을러터진 여자가 있어. 그런데 뭐?

게을러터진 여자가 있고, 그런 여자를 봤다면, 그러면 남자들이 가사노동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것이 갑자기 말이 되는 부분인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고 말하는데, '여자들도 때려'라고 말하면, 그 다음엔 뭐 어쩌라고? 되는거잖아. 그래서?  때리는 여자들도 있어서? 그래서 뭐? 그러면 남자들이 때리는 게 갑자기 변명되는 부분인가?



우리 남자들이 다 나쁜 건 아니야, 우리가 다 그렇게 게을러 터진 건 아니야, 를 말하고 싶어서 그랬겠지. 그래서 게을러터진 여자도 있잖아! 항변하고 싶었겠지. 그러나 게을러터진 여자가 있다고 해서 갑자기 남자들이 가사노동에 뛰어드는 게 아니자잖아. 게으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서 뭘 어쩌자는거지?


아아..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부르짖고, 약자의 편이 되어야 한다면서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우다얀도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가... 줌파 라히리는 [저지대]에서 그런 남자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가우리는 그의 독립적인 생활이 고마웠다. 동시에 의아스러운 점이 있었다. 우다얀은 혁명을 원했지만 집에서는 남들이 해주기만을 기대했다. 식사 시간에 그가 하는 거라곤 자리에 앉아서 가우리나 어머니가 그 앞에 접시를 놓아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저지대, 줌파 라히리, p.203)




우리 아빠야말로 다른 아빠들에 비해서 더 가정적이고 다정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해도 아빠가 엄마보다 더 많은 여가시간을 가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빠는 엄마가 안계실 때는 빨래도 돌리고 청소도 하고 바로바로 설거지도 한다. 그렇지만 엄마랑 같이 있으면 갑자기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 소파에 짱박히고 텔레비젼과 절친이 된다.




이 책속에 나오는 부부들 역시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살고 싶어서 함께 살기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 그 결혼생활이 자신의 생각하던 것과 다름을 알고 절망한다. 여자는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남자는 뒷바라지 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한것 같다. 회사 갔다오면 나 다독여줄사람, 밥 차려주고 옷 빨아주고 침대 정리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드는 것이다. 몸종 필요해서 결혼한 부분?

나는 어김없이 나에게도 물었다. 만약 내가 연애하던 중에 그와 결혼하기로 했다면, 내 결혼생활은 어땠을까? 이 책에 드물게 나오는 부부처럼 평등하게 가사노동을 나누고 사이좋게 지내는 부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알 수 없다. 이 책에 나온 여자들도 그럴줄 알고 결혼했겠지.


일전에 애인하고 열흘간 호텔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우리는 다정했고 웃으며 헤어졌는데, 나중에 애인이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만약 우리가 그 때 함께 했던 게 호텔이 아니었다면, 누군가의 집이었다면, 그래서 우리 사이에 가사노동이 끼어들었다면, 그때도 우리가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사이좋게 웃을 수 있었을까, 하고. 그건 정말 모를 일이었다. 만약 가사노동이 끼어들고 그것이 대체적으로 어느 한쪽의 몫이 되었다면,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사랑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므로 참고 인내할 수 있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지만, 나는 ... 어느 한쪽에게만 허락된 여가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사랑으로 커버칠 수 있는 것은 가끔의 3:7이고 가끔의 6:4이지 늘상 일어나는 1:9 는 우리의 그 뜨거운 사랑으로도 커버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뜨거운 사랑은 어쩌면 나만 한걸지도 모르겠고.





당연한 얘기지만, 혹실드는 자기가 본 부부들 중에서 행복해 보였던 부부들은 가사노동을 함께 분담하고 있던 부부들이라고 했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같이 해나가야 부부가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당연한 얘기로 책을 끝맺는다. 성역할도 성역할이지만, 남자들이 뭐 자기들이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버는대로 가사노동에서 자기는 좀 빠져도 된다고 생각하고, 적게 벌면 적게 번다고 자존심 상해서 빠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우쭈쭈해준 게 크지 않았나 싶다. 진짜 남자들은 우쭈쭈해줄 필요가 없다. 버릇만 나빠진다니까?






**꺄울.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 후속편 나왔네요. 만세!!**




내게로 오고있다. 두근두근.. ♡







인터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운이 좋다‘고 느끼는 일하는 여성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은행원이자 어린 두 아이의 엄마인, 집안일을 거의 도맡아하고 있는 한 여성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많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은 정말 ‘운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신없이 집안일을 해치우고,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해 달라고 요구하는 아내의 말을 거의 들어주지 않는 남편과 살고 있는 그녀가 내가 보기에는 별로 운이 좋은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보통 남자들에 비해 남편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운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아내가 직장에 다닌다거나, 집안일을 많이 ‘분담‘한다고 해서 자신을 ‘운이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이런 류의 얘기를 전혀 하지 않는 반면, 내가 인터뷰한 그 은행원이나 나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여자들은 남편이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거들어주면 자신이 남보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P16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여인들 스스로가, 남편의 배려가 드물고 귀중하다는 이유만으로 ‘운이 좋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곧 가정에 대한 남성적 시각과 그러한 시각을 창출하고 강화하는 직장 문화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 P16

나는 시간이라는 측정가능한 측면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1960~70년대에 시행된 시간 사용에 관한 연구에서 제시한 통계를 근거로 직장일과 가사, 육아에 소요되는 시간을 합산하여 평균을 낸 결과 여성은 남성에 비해 대략 주당 15시간 더 일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1년이면 한 달 더, 12년이면 1년 더 일하는 셈이었다. 자녀가 없는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사에 바쳤다. 자녀가 있을 경우엔 가사와 육아 양쪽에 남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바쳤다. 직장에서 남녀간에 임금 격차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부부간에 ‘여가시간의 격차‘가 존재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종일 일하고 집에 와서 또 일을 했다. - P28

나는 여러 가정을 직접 관찰하면서, "빨리 해! 갈 시간 됐다" "빨리 먹어라" "그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어서 가자!"라며 아이들을 재촉하는 사람이 주로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침 7시45분에서 8시쯤 "누가 제일 먼저 씻고 나오는지 보자!"라고 소리치는 사람은 대개 엄마였다. 어린 아이들은 1등을 하기 위해 쏜살같이 달리지만, 머리가 굵은 아이들은 고분고분하지 않을 뿐더러 원망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항상 잔소리만 해." 슬픈 일이지만, 여성들은 직장일과 가족 생활의 속도 증가로 인한 가족들의 공격성을 받아내는 피뢰침 노릇을 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 또한 피해자인 구조에서 악역을 도맡는다. 길어진 노동 시간, 수면 부족, 감정적 분열을 겪는 여성들에게 주어진 슬픈 대가는 1년에 한 달 더 일하는 것이다. - P35

그(에반)는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가 사회복지사 일을 좋아한다면 그 일을 기분 좋게 뒷받침해줄 생각이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이 맡은 업무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래서 일을 매우 힘들게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힘든 직업을 선택했다고 해서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내가 집 밖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남편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 P71

어느 날, 내가 집안일을 시시콜콜하게 다 적은 긴 목록을 들여다보며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낸시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손을 홰홰 저으며 말했다.
"저는 위층 일을 하고, 남편은 아래층 일을 해요." 그게 무슨 뜻이지요? 내가 물었다. 낸시는 위층에 거실과 식당, 주방, 침실 두 개, 욕실 두 개가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래층은 창고 겸 에반의 취미 활동 공간으로 쓰이는 차고뿐이었다. 남편과 위층·아래층 일을 ‘분담‘하기로 했다는 그녀의 말에 농담이나 한탄의 빛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에반도 마찬가지였다. 양쪽 다 그것이 부부간의 싸움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했다. 에반이 차와 차고, 개를 돌보기로 한 것에 대해 낸시는 이렇게 설명했다. "개는 완전히 남편 차지예요. 저는 개하고 씨름할 필요가 없답니다." 그 나머지 일은 몽땅 낸시의 몫이었다.
이렇게 해서, 차고는 집의 나머지 부분과 동등한 것으로 격상되었다. - P75

나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놀랄 만큼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거나 ‘생각‘해서 일을 도와주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우리 아빠는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셨어요. 아빠는 엄마를 정말 사랑하셨지요." 하지만 내가 만나본 남자들 중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사분담과 사랑을 결부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82

가사분담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들은 둘 사이의 불화를 은폐하려고 했다. 그들은 과거의 불화가 두 사람의 성격 차이에서 빚어졌다고 설명한다. 특히 에반에게, 여가시간의 격차에 대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두 성격 사이의 지속적이고 흥미로운 상호작용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전 게을러요. 그래서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편이지요. 아내는 저처럼 게으르지 않습니다. 강박적이고 아주 조직적인 성격의 소유자예요." 남편의 일과 아내의 일, 남편의 피로와 아내의 피로, 남편의 여가시간과 아내의 여가시간을 비교하면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은 둘 사이의 성격 차이, 남편의 게으름, 아내의 강박증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P88

피터는 자신의 남자다움의 위협받게 되자, 부부 관계에서 권위를 유지할 목적으로 부조리한 ‘포석‘을 놓았다. 그는 많은 연봉이라는 선물을 준 쪽이 아내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큰 선물을 준 쪽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왜냐하면 아내를 위해 자신의 남자다움이 훼손되는 걸 감수했으니까. 그의 고향 사람들은 아내보다 돈을 못 버는 남자를 우습게 생각했고, 피터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피터는 돈 잘 버는 여자와 함께 살기 위해, 자신의 남자다움에 가해진 사회적 모욕을 견뎌내야 했다. 피터는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남자들 백 명 가운데 한 명 정도가 이런 상황을 참아낼 겁니다." 니나가 이렇게 드문 남자와 결혼한 것은 행운이었다. 그녀는 그 점을 인정했다. 그녀는 피터가 ‘보기 드문‘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연봉은 남편으로선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녀는 운이 좋았다. - P122

1980년대의 문화적 변동, 여성의 취업 기회 증가 더군에 이들 부부는 이데올로기적 혹은 경제적으로 가부장제를 벗어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관습의 영향을 받았다. 캐롤은 여러 가지 조건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불리했기 때문에, 남편에게 매우 고마워했지만 그렉은 그 정도로 아내에게 감사하지는 않았다. 사랑은 양방향으로 흘렀지만 감사는 주로 아내 쪽에서 남편 쪽으로 흘렀던 것이다. 비록 캐롤이 몇 년동안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고, 집안일의 중요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그렉은 아내에게 감사해 하지 않았다. - P208

남자들을 세 집단으로 나눴을 때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띄었다. 아내보다 더 많이 버는 대부분의 남편 집단과 아내와 똑같이 버는 남편 집단 그리고 아내보다 못 버는 남편 집단 가운데 아내보다 많이 버는 남편들은 21%가 가사를 분담했다. 아내와 똑같이 버는 남편들은 30%가 분담했다. 그런데 아내보다 못 버는 남편들 중에서 가사를 분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302

경제 논리만이 통용된다면, 남자가 돈을 더 벌든 여자가 돈을 더 벌든 같은 현상이 나타나야 했다. 그러나 경제 논리는 남편이 아내보다 더 벌거나 똑같이 벌 대만 통용되었다. 돈은 남편들에게는 ‘작용‘했지만(집안일을 면제시켜주었다), 아내에게는 ‘작용하지 않았다‘(집안일을 면제시켜주지 않았다).
남편의 가사분담에는 ‘균형 잡기‘원칙이 작용했다. 균형 잡기 원칙에 따르면, 남편들은 한 면에서 아내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버리면 다른 면에서 그것을 보상받으려 했다. 이런 식으로 남편은 아내에 대해 우위를 유지했다. 남자가 가정에서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지고 있는가는 남성의 지배력과 많은 관련이 있었다. 아내보다 더 버는 남자들은 중요한 자원을 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아내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있었다. - P302

그러나 아내의 수입이 더 많아서 경제적으로 남편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위협받을수록, 남폄은 더더욱 가정에서 ‘여자 일‘을 못했다(여자 일을 한다는 사실이 남자롱서의 정체성을 한층 위태롭게 할 것이므로). - P302

나는 비정규직에서 일하는 남자들과 한 인터뷰를 돌이켜보았다. 부유한 흑인 가정의 4형제 중 막내인 어느 건축가는 1970년대 말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어버린 뒤 반실업 상태로 지내며 굉장히 풀이 죽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우리 식구는 제 월급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건축가면서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 남편은 지금 굉장히 힘들어 하고 있답니다." 그는 집안일을 하지 않았고 기분이 내킬 때만 아들과 놀아주었다. "저는 집에서 일을 거의 안 합니다."그는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불평하지 않지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 P303

더 나은 조건을 쟁취하기 위해 회사와 싸워서 이기더라도 결국 해고당하는 것은 투쟁했던 노동자다. 지난날의 역사를 살펴보면, 찍소리 못하고 있는 착한 일꾼들의 고용 조건을 개선해준 것은 분노한 소수였다. - P306

가사를 분담하면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어느 계급에나 있다.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 고학력 전문직 여성-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하면 문화자본을 소유한-의 남편들이 문화자본을 갖지 못한 여성의 남편들보다 더 많이 분담하는 경향이 있다. - P306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취업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사회적 현상을 환영했다.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적 잔재에 대해서 분개했다. 그런데 정작 가정 문제에 이르게 되면, 그들은 애매한, 막연한, 산만한 표정을 지었고, 갑자기 우유부단해졌다. 여학생들은 무조건 결혼을 미룰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결혼 상대자로 생각하는 남자친구가 있어도 가사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아직 먼‘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 P322

레이는 아니타에게 집에서 살림할 권리를 주고 싶어했지만 아니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레이와 마찬가지로 피터도 아내 니나에게 살림할 권리를 주고 싶어했다. 니나는 그에 대해 감사했지만 피터가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낸시는 남편 에반에게 자신이 직장에서 받는 여러가지 혜택, 봉급, 직장 동료와의 교류를 선물로 주고 싶어했지만 그것은 에반에게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 시대의 주요한 사회 혁명이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그러한 ‘선물‘에 대한 다른 평가를 통해서이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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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12-31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징한 가사노동에 시달리며, 여자들은 왜 가사노동에서 해방이 못 되는가, 왜 은퇴가 안 되는가를 생각하며 속된 말로 내내 ‘빡쳐‘ 있었어요. 정말 ‘게을러터진‘ 여자가 되면 안되는 건가 싶구요... 애트우드의 <증언들> (제목이 무슨 르뽀 같은)은 이 김에 보관함에 숑~

다락방 2019-12-31 08:36   좋아요 1 | URL
게으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대체 어디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게으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몫까지 누군가 대신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걸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르는척 하면서 ‘너는 부지런하니까‘ 라고 올려쳐주는듯 부려먹는거죠. 아 너무 싫어요. 최근에 가사노동에 대한 책들 읽으면서 남자들은 정말이지 대신 부려먹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너무 싫어요 너무.

비연 2019-12-31 08:46   좋아요 0 | URL
<제2의성>을 읽으면서도 생각했지만, 결혼이란 것이 여자에게 무슨 도움이 되나 싶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결혼을 안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지만. 어제 부엌에 옹기종기 모인 여자들을 보면서 속에서 화가 불끈.. 하는 걸 숨기기가 힘들더라구요. 누구는 서비스로 선심쓰듯 하고 누구는 노동으로 뼈빠지게 하고. 진심 짜증났습니다.

다락방 2019-12-31 09:17   좋아요 1 | URL
맞아요, 비연님. 너무 화딱지나죠.

저는 얼마전에 <연애의 참견>이란 프로를 보았는데요, 사연을 보낸 여자분이 남자친구가 너무 짠돌이인게 고민이라고 보냈는데 어느날 남자친구가 로그아웃을 하지 않은 블로그 일기장을 보게 된거에요. 거기에는 여자친구가 섹스를 안해주니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써놨더라고요.......... 여자는 첫연애였고...........저 그런 남자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 그 전에 에어팟을 선물로 준거에요, 여친한테. 그런데 섹스를 안해주니까 에어팟 먹튀라고 일기장에 써놨어요.....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연애고 결혼이고 남자랑 하면 안되는것 같아요... 진심 남혐.... ㅠㅠ

syo 2019-12-31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족분의 댓글을 받아서 똔똔 될 때까지 댓글을 달지 않겠노라 다짐했건만 좋은 글은 도무지 피해갈 도리가 없군요. 절레절레....

비연 2019-12-31 08:4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부족분의 댓글 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9-12-31 09:18   좋아요 0 | URL
쇼님 이러기에요? 우리사이가 고작 그런 사이야? 엉? 우리 아꼈잖아? 서로 아끼는 사이 아니었어? 그렇게 계산적으로 나와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12-31 09:23   좋아요 0 | URL
왜 날 덜 아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2-31 09:28   좋아요 0 | URL
내가 고루고루 아끼느라 그래... 이해해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19-12-31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 게을러터진 여자인데 말입니다, 똑똑하게 게으르려면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군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01 17:56   좋아요 1 | URL
내가 게으른만큼 살기 위해서는 혼자 사는 게 답인 것 같아요, 쟝쟝님. 다 큰 남자 뒷바라지 해주면서 살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으하하하하하하하. 갑시다, 래디컬의 길로. 뽜샤!!

han22598 2020-01-08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지나치기 힘드네요 ㅎㅎ 진한 빡침이 느껴지는건...우연이 아니라 필연이겠죠 ㅎㅎ 감사해요. 리뷰 잘 써주셔서...^^

다락방 2020-01-08 07:56   좋아요 0 | URL
ㅎㅎ 진심으로 빡쳤기 때문에 진한 빡침이 느껴졌는가 봅니다. 정말 빡쳐서 썼거든요.ㅎㅎ
이 책 읽으면 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어휴...
 
우동과 ㅇㅈ

'캐서린 맥키넌'의 [포르노에 도전한다] 를 읽고서도 생각한 거지만, 왜 같은 영상을 보고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게 다른걸까. 아니 그보다는, 손발을 묶고 재갈을 물리고 구타의 흔적이 보이고, 성기를 입안 가득 쑤셔넣는 영상이, 이토록 언급하기에도 괴로운 영상이, 왜 나와 다른 성별에게는 발기의 자극제가 되는걸까. 포르노에 있어서라면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옹호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낀다. 캐서린 맥키넌이 그랬고 안드레아 드워킨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수맣은 포르노 영상들과 포르노, 매춘, 강간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아, 세상에는 너무 많은 남자들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고 너무 많은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정말 너무도 많이 남자들이 말과 글을 차지하고 있었다. 도화지도 카메라도 마찬가지. 오래전부터 여성을 학대하고 고문하고 강간하고 괴롭히면서 그러나 많은 남자들은 그것이 여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고, 자기들이 원하는데 자기들도 잘 몰랐고, 그렇게 태어난 것이 여자의 본성이라고들 말해왔다. 심지어 미성년자 여성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그것을 원한것처럼 말해왔다. 무엇을. 성적 학대를. 여성을 고문하는 영상을 찍으면서 그 안에 쾌락이 있는 것처럼 표현해, 많은 남자들이 그것을 실제와 다르지 않게 생각한다. 현실에서도 저런 일들이 자신앞에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런 영상을 보면 나는 괴로워서 두 눈을 질끈 감는데, 그런데 남자들은 너도 포르노에서처럼, 이라면서 그런 행위를 강요하거나 '부탁'한다. 실제 이 책에서도 그런 사례가 나온다. 섹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여자애를 성인 남자들이 붙잡고 포르노 잡지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해보라고 안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던 일들이. 실제상황이다.



남자들이 쓸데없이 너무 많은 말들을 했다. 남자들이 사실이 아닌 것을 너무 사실처럼 써냈다. 사드가 그랬고 바타유가 그랬다. 바타유라면 일전에 내가 그의 책을 읽어보려다가 40페이지도 못읽고 별 하나를 준 구매자평을 쓴 적이 있다. 연달아 페이퍼도 써냈는데, 그가 초반부터 섹스와 오줌싸기를 연결시키는 바람에 읽기 힘들었던 거였다. 안드레아 드워킨은 자신의 책 [포르노그래피]에서 바타유의 <안구담>이란 책을 언급한다. 이 책에서도 고추를 빨고 또 빨고 오줌을 싸고 발기되는 걸 보기 위해 목졸라 죽이고 안구를 빼내서 항문에 넣는 기이한 행각을 벌인다. 그리고 많은 저명한 저술가들이나 사상가들이 그런 바타유의 문학을 심오하다고 옹호한다. 그중에 한 명이 수전 손택이었고. 손택이시여... 오줌싸고 안구를 적출해 항문에 넣는 것에 무슨 심오함이 있나요? 사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성병을 옮기고 고문을 하고 미성년자를 납치 감금한 사드의 문학에 반해 그를 옹호하는 장문의 글을 보부아르가 썼다. 심지어 사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천재적이라 인정받기도 했다. 미성년자 납치 감금과 학대 고문... 에서 무슨 천재적인걸 본것인가. 남들은 하지 못하는데 실제로 행하는 데에서 그 큰 용기를 본 것인가. 인간들이여....



잠깐 바타유가 한 말을 들을 필요가 없지만 들어보자. 손택이 그의 글을 심오하다고 하면 안됐던 이유가 되는 글이다.




매춘은, 여자의 태도의 논리적인 귀결이다. 여자가 매력적인 한 남자의 욕망의 먹이가 된다. 여자가 순결을 지키겠다고 결심을 단단히 햇으므로, 완전히 남자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는 어느 정도의 금액에, 어떠한 상황에서 여자가 굴할 것이냐이다. 만약 조건이 이루어진다면, 여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성의 대상으로 내놓는다. 매춘은 다만 경제적 요소를 강하게 지니고 있을 뿐이다. (바타유의 단언, p.237)





이 책은 드워킨이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집필한 책이다. 그리고 1981년에 출간되었다. 그 때로부터 사십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포르노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퍼지고 있다. 심지어 불법촬영한 영상물들이 포르노라는 이름을 달고 유포되고 있다. 


어제 토요일에는 혜화역에서 <페미사이드 철폐 시위>가 있었다. 나는 드레스코드인 블랙에 맞춰 아빠의 롱패딩을 입고 검정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뒤에 시위에 참여했다. 아마 내가 그러한 것처럼 그 자리에 모여든 여자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더이상 여자들의 죽음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 여성을 살해하는 이 세상에 대해 그만두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그 자리에서 때리지말라고 죽이지말라고 목청껏 소리쳤다. 작년 여름에는 땡볕에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니 불법 촬영하지 말라고 소리쳤는데, 이제는 추위속에서 죽이지말라고 소리쳐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소리를 치고 남자들은 불법촬영을 한다. 시위 중에도 유튜브로 불법촬영하는 남자가 있어 경찰이 제지하는 일이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왜 한쪽 성은 불법촬영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왜 한쪾 성은 불법촬영을 할까. 왜 한쪽은 죽이고 한쪽은 죽이지 말라고 소리질러야 할까.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왜 한쪽 성이 괴로워하는 일을,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는 일을, 한쪽 성은 보고 즐기고 유포를 할까. 몰래 신체를 촬영하는 일이, 침범하는 일이, 고통을 주는 일이, 왜 남자들에게는 즐기는 일이 되어있을까. 왜일까.



나는 그것이 남자가 너무 많이 말하여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남자들이 너무 여기저기에서 너무 많이 말하고 너무 많이 쓰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은 그런 쓰레기 같은 말과 글들로 가득해지고 그리고 그것은 당영한 듯이 다음 세대의 남자들에게 전해진다. 남자들은 너무 많이 말하여진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말과 글을 통해 강간을 여자들도 원한다고 말한다. 여자인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말하는데도, 아니야 사실은 여자들도 강간을 원한다니까, 라고 말하고 있다. 여자를 김치녀로, 된장녀로, 맘충으로 명명하는 것도 남자들의 몫이었고, 그들이 명명하는 순간 그 이름들은 힘을 가지고 또 전파된다. 남자들은 진짜 입을 다물줄을 모르고 손을 가만둘 줄을 모른다. 너무 많이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일들에 대해 짐작하고 말하고 쓴다. 그리고 그것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고 전해져서 아직까지도 유효하게 작용한다. 시상식만 봐도 후보들이 죄다 남자들이잖아. 남자들은 너무 많이 사회 곳곳에서 웃기려고 하고 예술을 하려고 하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진상짓들을 한다. 강간을 사실은 원한다고, 여자들의 노는 사실은 예스라고, 자기들이 여자인 당사자도 아니면서 멋대로 말들을 해대고 그것을 사실화 한다. 남자들은 너무 많이 말한다. 남자들은 사실은 강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자들도 좋아서 해놓고는 수틀리면 그것을 강간으로 신고한다고 말한다. 그 말들을 거침없이 해대는 통에 또 사실화 된다. 남자들은 쓸데없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부끄러움도 모르는채로 너무 나선다. 너무 나대고 설치는 게 지금의 남자들이 하는 일이다. 남자들이 너무 많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남자들이 너무 많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이 너무 입을 많이 가지고 있고 남자들이 너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된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것처럼 그렇게 전달하는 입과 손을 더이상 작동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그들에게 지면을 더이상 주어서는 안되고 그들에게 마이크를 주어서는 안된다. 여자들을 때리고 묶고 정액을 뿌려가면서 그것이 마치 여자들에게도 쾌락인냥 포장해 보이는 일을 더이상 하게 해서는 안된다. 여자들을 몰래 촬영하면서 그것을 올리는 일을 하게 두어서는 안된다. 



남자들은 그동안 너무 많이 말해왔다. 오줌싸고 안구를 적출해서 항문에 넣는 것이 왜 문학이란 이름으로 나와야 하는가. 게다가 그것이 어째서 심오한 글이 되는가. 미성년자를 납치하고 감금하고 고문하는 사람의 글이 어째서 천재적이란 칭찬까지 들어야 하는 것인가. 남자들이 너무 많이 말했고 너무 많이 썼다. 그리고 아주 많은 남자들이 그것들에 환호했다. 이제 그래서는 안된다. 



남자들은 그만 말하고 그만 써야 된다. 남자들은 그만 그리고 그만 찍어야 한다. 남자들은 그만 만들어야 한다.






그의 말을 빌린다면 <갓난아이의 질을 강간>해 보고 싶다며 그녀의 음모를 깎아냈다. - P21

우리들은 프레더릭 더글러스나 소자나 투르스(흑인해방운동의 지도자)의 일인칭 언어, 프리모 레비나 에리 위즐(유대인 강제수용소에 관해 증언한 사람들)의 일인칭 언어, 나데즈나 만델스탐이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일인칭 언어를 신뢰한다. 방금 말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고민이나 공포의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도 증언하려고 과감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녀들이 한 증언을 사람들은 도저히 이애할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용기 있는 증언을 한 탓에 영예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모욕을 당했다. 우리들은 그녀들의 이야기에 수치와 타락의 악취가 배어 있다고 단정하여 얼굴을 돌려 보렸다. 동시에 그녀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두렵고 이해의 차원을 넘어 불쾌한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였던 사람들-모든 시점에서 우리들 대부분의 인간-까지도 고발했기 때문이다. - P26

포르노그래피는 여성의 몸과 정신에 대한 조직화된 파괴행위이며, 강간·구타·근친상간·매춘은 포르노그래피와 서로 활발히 연계되어 있다. 포르노그래피의 특질은 비인간화와 새디즘이다. 그것은 여성에게 선포하는 전쟁이며, 인간의 존엄이나 자아 그리고 인간적 가치에 대한 끝없는 공격이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각자 자기 자신의 인생경험을 통해서,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을 구속하고 있다는 사실-여성들은 포르노 필름 속에 붙잡혀 있으며, 그 필름이 또 다른 여성에게 사용되고 있으며, 남성이 그 필름을 갖고 있는 동안 여성은 계속해서 감금된 것이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 P27

포르노그래피란 사진으로 여성을 명백하게 성적 종속물로 표현하는 것이며, 성의 대상·물체·도구로 인격을 박탈 제시하는 문장이다. 즉 여성을 고통이나 굴욕을 즐겨 받아들이는 성적인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 강간당하는 가운데 성의 쾌락을 경험하는 성적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 묶거나 자르거나 불구로 만들거나 구타하거나 육체적으로 손상시키는 성적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 성적 복종이나 노예상태, 더구나 성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자세나 위치로 여성을 표현하는 것, 여성의 몸의 부분-질이나 유방이나 엉덩이를 포함하는데, 반드시 이것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을, 즉 여성을 그 부분 자체로 깍아내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드러내게 하는 것, 여성을 타고난 매춘부로 표현하는 것, 여성의 질에 물건이나 동물의 페니스를 넣는 장면, 모욕과 상처와 가학의 시나리오에 따라 여성을 부정하거나 열등시하는 것, - P34

피를 흘리고 구타당하거나 상처입어야 할 것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이러한 조건을 섹시하다고 여겨 경연대회에서 표현케 하는 것이다. - P34

현 재판소는 포르노그래피를 옹호하고 있다. 재판소의 사법 판단으로는, 여성에게 미치는 포르노의 해악은 인정하지만-혹은 그 해악을 인정한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그래도 여전히 여성에게 헌법은 그 해악이 행해지는 것을 옹호하고 있다고 말한다. 재판소에서 이러한 견해를 유지함으로써 생기는 결과는 곧 현실이다. 말하자면 재판소는 여성이나 아이들은 이 나라의 빈민으로 머물러 있게 해 놓고, 포르노업자들이 계속해서 부를 누리는 상황을 보증하는 셈이다. - P34

포르노그래피란 우리들 여성에게는 그런 남성이 없었으면 좋겠다 싶은 상태이며, 남성에게는 여성이란 이러한 것이라고 생각케 하며, 또한 우리들을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상태이며, 더욱이 남성이 우리들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 P42

사회 시스템에서 여자의 신분이 높으면 육체적인 강함은 잠식되고 저해되며, 여자는 (남자에 의해 정의된 바에 의하면) 자신의 경제적 계급이 높을수록 육체적으로 약하다. 여자는 권력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약하다. 육체적으로 강한 여자는 심지어 육체적으로 약한 척하여서 자신의 여자다움뿐만 아니라, 자기의 상승 지향의 미적‘심미적 희구를 강조한다. 육체적인 면의 무능력은 여자의 아름다움의 한 형태이고, 남자의 부의 상징이다. 부유한 남자가 여자를 노동면에서 능력이 업고 쓸모없이 만들고, 장식적인 존재로 남도록 한다. 또한 여자는 종종 유행이나 관습에 따라 실제로 육체를 절단한다. - P53

남자는 적의와 폭력을 다양하게 섞어 <섹스>라고 명명한다. - P57

남자는 여자를 집에 있는 것만 어울리는 아내housewife로 명명하고, 여자를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완전히 의존적인 상황에 가두고, 결국에 가서 만일 여자가 집을 나가면 여자를 돈으로 사고, 그리고 창녀라고 부른다. 남자는 어떤 이름이든 자기 뜻에 부합하는 대로 여자를 부른다.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그 행위를 자신에게 부합하는 대로 부른다. 남자는 힘을 통해서 이름 붙이기의 권력을 적극적으로 보유하고, 그리고 명명의 권력을 통해서 힘을 정당화 한다. 남자는 여자를 포함하여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세계는 그의 것이다. 여자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이 언어를 사용하고, 그것은 그 이외의 다른 언어사용은 없기 때문이다. 남성지상주의 이데올로기의 네번째 교의는, 남자들은 지적이고 창조적으로 존재하므로 권위를 가지고 명명할 권리를 지닌다는 것이다. 남자의 명명에 역행하고 전복하려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명을 씌워 존재를 말소하고자 한다. - P58

남자의 시스템 안에서 명명의 권리는 그 자체로 힘의 형태이다. - P58

남자는 취하고, 그 상태를 지속하고, 일단 소유하면 그것은 그의 것이다. 취하는 자인 자기와 소유권과의 관계는 예를 들어, 강간과 결혼의 관계에 정확히 반영되고 있다. 제도로서의 결혼은 관례로서의 강간으로부터 발전하였다. 당초 유괴행위로서 규정된 강간은 포획으로서 결혼이 되었다. 결혼은 강탈이 시간적으로 확대되고, 여자에 대한 소유권의 행사뿐만 아니라, 일생에 걸쳐 소유권을 보유하려는 것이다. - P59

남자의 견해에 따르면, 남자가 정의한 여성상에 부합되게 행동하지 않는 여자는 여자가 아니다. 남자가 내리는 정의가 시종일관할 필요는 없다. 논리나 일관성을 지닌 관점인가, 심지어는 최소한의 상식에 합치하는 관점인가 정도도 음미 검토되지 않는다.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여자에 대한 정의를 공상적으로 만들고 이론화하여, 그것을 과학이나 예술이라고 부른다. 남자가 여자에 대해 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지 남자가 말했다는 이유로 진실이라고 본다. - P122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특히 글을 쓰는 것은 여자의 미의 정반대, 여자의 미에 청산가리처럼 치명적인 해악으로 간주됐다. 육체적 활동은, 그것이 금지되던 시기에도 글쓰기보다는 덜 미움을 샀다. - P192

‘치모를 왜 그렇게 수치스럽게 잘랐느냐는 질문을 받자, 카타리나는 완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답하였다‘ 여자가 내밀하게 원하는 것이 그 사진에서는 아주 우연히도 남자가 여자들에게 바라는 것과 일치하였다. 이것은 포르노그래피의 가장 비열한 주제이다. 남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해명해 보면, 여자, 자유스러운 여자들의 비밀스럽고 은밀하고 생생한 육욕이라는 것이다. - P219

(여성 영화가 몰리 해스컬의 말)

남자들은 강간이 여자에게 어떠한 의미-완전한 침해의 의미를 지니고, 혹은 강간의 협박만을 받아도, 그 여자의 행동의 자유에 일생 동안 그림자가 드리운다-를 지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불일치점은, 여자가 보고, 알고, 경험하는 강간은 적의와 공격의 의미를 지닌 것에 비해, 남자가 경험하는 강간은 환타지 안에 있는 관능적인 행위로서의 강간이라는 점에 있다. - P255

이 책을 집필하고 출간하는 데 따른 어려움은 컸다. 내가 숙명적으로 연구하게 된 포르노그래피는 나의 삶의 중심이 되었고, 큰 고뇌에 싸이게 했다. 이 책을 집필할 때, 일시적으로는 대부분의 잡지와 신문이 나의 연구를 게재하는 것을 거부한 관계로 먹고 사는 일조차 어려웠다. 서적 출판인들은 이 책을 출간하는 것을 기피하였다. 이 책의 완성은 나에게는 작가로서의 생존 축하의 의미를 지닌다. 많은 분들이 나를 도와 주셨고,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굴복하지 않았다고 감히 말한다. (저자후기)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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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netar 2020-01-01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 세상의 슬픈 현실,
그 현실이 더 슬퍼지는 것은
진실이 서로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보여진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