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동안, 나는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내가 땅속의 두더지가 된 것 같았다. 책이 세상에 나온 뒤,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을 받게 되었고, 엘리베이터 속의 남자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접근해왔다. 전국의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책이 소개되었고, 방송국에 갔을 때 안내원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전남편은 빨래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녹화를 끝내고 스튜디오에서 나가는데 카메라 기사가 ˝그런데 박사님, 게을러터진 여자는 못 보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p.329)
'알리 러셀 혹실드'의 이 책이 나오고나서 반응이 꽤 뜨거웠다고 한다. 혹실드 박사는 여기저기 강연을 다녀야 했고 독자들로부터 편지를 받았으며,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 질문과 하소연을 들었다고 했다. 이 책은 혹실드 박사가 12년간 열두집의 가정으로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목격하고 인터뷰한 뒤에 내놓은 책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가사노동은 여자들이 부담하고 있었고, 이건 여성이 전업주부이거나 일을 따로 갖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이 밖에서 일을 하고 들어와도 집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가 텔레비젼을 보는 대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다 여성인 아내의 몫이었다.
이에 아내들은 지친다. 몸이 부서질 것만 같다. 그래서 남편에게 집안일을 좀 같이하자고 말하면 남편들은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더러는 해주기도 한다. 그건 어디까지나 아내들이 부탁했기 때문에 해주는 것뿐이지, 스스로 알아서 이것은 내가 사는 집, 우리 가족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남편들은 매우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낸다. 그래, 너도 바깥에서 일하니까 힘들지, 그런데 니 바깥일이 힘들다고 해서 내가 왜 가사노동을 해야 해?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진 남편들도 있다. 아내가 돈을 남편보다 잘벌든 못볼든 남편들은 아내보다 확실히 가사노동을 덜했다. 게다가 양육자로서도 한걸음 떨어져 있었다. 남편들이 그랬다.
그런 생활에 지친 아내들은 남편들을 타일러도 보고, 화를 참아가며 부탁을 해보기도 하다가, 포기한다. 어떤 아내들은 포기하고 어떤 아내들은 집을 나가버리고 어떤 아내들은 이혼을 얘기한다. 이 가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남편에게 이것좀 해달라 저것좀 해달라 부탁하는 게 너무 짜증이나서, 그냥 남편은 창고 일을 하고 나는 나머지 일들을 하면서 반반씩 부담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남편에게 짜증이 나는 아내들은 바로 '그래도 다른 남자들 보단 낫지', '그래도 이정도면 내가 운이 좋았지', '이런 남편이라니 그나마 내가 운이 좋은거야' 라면서 자신을 다독인다. 외부에서 보기에 전혀 운이 좋은 것 같지 않음에도, 그들 스스로는 운이 좋다고 자신들을 다독인다. 운이 좋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아내들이, 그런데 왜 삶에 지쳐있고 지겨워할까. 운이 좋다면서 왜 웃음을 잃을까.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꺼려한다. 그래서 아니, 이정도면 충분한거라고 합리화 하는데에 열중하기도 한다. 바깥에 나가서도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또 일을 하면서도, 그래서 늦은 밤에 침대에 쓰러져버리면서도, 아내들은 '그래도 이만하면 운이 좋았다', '내 남편은 그래도 다른 남자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남편들은 자신들은 게으르지만 아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내들이 가사노동을 하는 거라고 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가사 노동을 하는 게 아내들에게 노동을 지운 거라는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한 미친 자기합리화 아닌가. 집에 와서 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을까. 집에 와서 걸레질을 하고 식탁을 차려내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는 것은 또 얼마나 힘이 드는가. 자기는 하기 싫어서 텔레비젼 앞에 앉으면서 그건 아내가 부지런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다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 책은 이 책이 나오고난 후의 후기도 실려있고, 저 위에 인용한 부분은 그 후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박사님, 게을러터진 여자는 못 보셨습니까?˝
게을러터진 여자가 왜 없겠는가! 나 역시도 게을러터진 여자중 하나다. 우리 엄마는 게으르고 싶지 않았을까? 이 책 속의 아내들이 게으르고 싶지 않았을까? 누군가 밥을 차려야하고, 누군가 아이들을 씻겨야 하고, 누군가 설거지를 해야하는데, 그런데 당신이 안하면 누가 하나? 내가 한다.
일전에 여동생네 가족이 와있을 때였다. 엄마가 이것저것 분주히 부엌에서 움직이고 계셨고 아빠는 거실에서 텔레비젼을 보고 계셨다. 나는 거실에서 조카랑 놀고 있는데, 아빠가 엄마에게 '그만하고 좀 쉬어'라고 말하는거다. 이때부터 내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하고 있는 가사노동-그것이 청소든 설거지든 빨래든- 그걸 엄마가 하고 있다면, 그 일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엄마가 그 일로부터 쉬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일을 '대신' 해줘야 하는 것이다. 일을 하는 중에 '쉬라'고만 하면, 그 일은 그대로 남아 다시 엄마의 몫이 되는 게 아닌가. '내가 할게 쉬어'가 아니라 '그만 하고 쉬어'라니. 그렇다면 그 다음은?
이게 작년인가 재작년의 일이다. 그래서 잔소리를 할까말까 하는 와중에 조카가 우리아빠에게 그랬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해야지! 할아버지가 하는 것도 아니면서 쉬라고 하면 어떻게 쉬어!"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조카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년이면 아홉살 재작년이면 여덟살인데, 조카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는 어쩜 그런 아이가 되었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모가 꼴페미이기 때문인거야???
이 날은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기로 한 날이었다. 식탁 위의 불판에서 고기는 익어가는데 조카1이 자꾸 나를 부르고, 그렇게 조카를 상대해주고 앉을라치면 여동생이 조카2 때문에 나를 부르고.. 그렇게 움직이느라 편하게 앉아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고기는 제부가 계속 굽고 있었다. 아빠는 계속 드시고 계셨다. 아빠가 다 드시고 일어나실 때쯤 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아빠는 내게 '너 아직도 다 안먹었냐'고 하시는거다. 와. 얼마나 화딱지가 나던지.
"나도 아빠처럼 누가 구워주는 거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면 아까 다 먹었지!!"
회사가 누군가의 노동으로 굴러가는 것이듯, 집안도 누군가의 노동-가사노동, 돌봄노동-으로 굴러간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건 대부분 아내만의 몫이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고 조금 달라졌다고 해도 지금까지도 역시 그렇다. 82년생 김지영이 괜히 나왔겠는가.
아빠 엄마가 맞벌이로 돈을 벌러 바깥으로 나가셔서 나는 어릴적부터 동생들과 함께 집을 보아야 했다. 엄마는 그런 우리가 불안해 가끔 친할아버지를 부르시고 가끔 외할머니를 부르셨다. 외할머니는 우리 삼남매의 밥을 챙겨주시고 어린 동생을 씻겨 주셨고, 넘어져 다치거나 화상을 입으면 약을 발라 주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가만 앉아있다가 열살, 열한살 내가 차려주는 밥을 가만 받아먹고 부모님중 누군가 오시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일찍부터 돈 벌기는 중단하고 계셨었다. 덕분에 아버지는 가난하게 자랐고....돈도 안벌고 밥도 안차려먹고..........그만두자, 이런 얘기는.....
아, 그러니까 나도 게으른 사람이라는 거다. 우리 친할머니도 게으르고 싶었을 거고 외할머니도, 엄마도 게으르고 싶었을 거다. 그러나 게으르고 싶다고 해서 게을러진다면 집안이 대체 어떻게 굴러가겠는가. 밥상을 차리는 것도, 다먹고난 후에 치우는 것도, 지저분해진 집을 청소하는 것도, 옷을 빠는 것도... 나 게을러 너 게을러 우리 모두 게을러 그러니까 안해~ 이렇게 되면 집안은 어떻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게을러터진 여자는 못봤냐는 저 피디의 말은 정말이지 답답하기 짝이없다.
그래, 게을러터진 여자를 봤다고 하자.
그런데?
그래서?
게을러터진 여자가 있어. 그런데 뭐?
게을러터진 여자가 있고, 그런 여자를 봤다면, 그러면 남자들이 가사노동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것이 갑자기 말이 되는 부분인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고 말하는데, '여자들도 때려'라고 말하면, 그 다음엔 뭐 어쩌라고? 되는거잖아. 그래서? 때리는 여자들도 있어서? 그래서 뭐? 그러면 남자들이 때리는 게 갑자기 변명되는 부분인가?
우리 남자들이 다 나쁜 건 아니야, 우리가 다 그렇게 게을러 터진 건 아니야, 를 말하고 싶어서 그랬겠지. 그래서 게을러터진 여자도 있잖아! 항변하고 싶었겠지. 그러나 게을러터진 여자가 있다고 해서 갑자기 남자들이 가사노동에 뛰어드는 게 아니자잖아. 게으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서 뭘 어쩌자는거지?
아아..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부르짖고, 약자의 편이 되어야 한다면서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우다얀도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가... 줌파 라히리는 [저지대]에서 그런 남자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가우리는 그의 독립적인 생활이 고마웠다. 동시에 의아스러운 점이 있었다. 우다얀은 혁명을 원했지만 집에서는 남들이 해주기만을 기대했다. 식사 시간에 그가 하는 거라곤 자리에 앉아서 가우리나 어머니가 그 앞에 접시를 놓아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저지대, 줌파 라히리, p.203)
우리 아빠야말로 다른 아빠들에 비해서 더 가정적이고 다정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해도 아빠가 엄마보다 더 많은 여가시간을 가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빠는 엄마가 안계실 때는 빨래도 돌리고 청소도 하고 바로바로 설거지도 한다. 그렇지만 엄마랑 같이 있으면 갑자기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 소파에 짱박히고 텔레비젼과 절친이 된다.
이 책속에 나오는 부부들 역시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살고 싶어서 함께 살기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 그 결혼생활이 자신의 생각하던 것과 다름을 알고 절망한다. 여자는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남자는 뒷바라지 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한것 같다. 회사 갔다오면 나 다독여줄사람, 밥 차려주고 옷 빨아주고 침대 정리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드는 것이다. 몸종 필요해서 결혼한 부분?
나는 어김없이 나에게도 물었다. 만약 내가 연애하던 중에 그와 결혼하기로 했다면, 내 결혼생활은 어땠을까? 이 책에 드물게 나오는 부부처럼 평등하게 가사노동을 나누고 사이좋게 지내는 부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알 수 없다. 이 책에 나온 여자들도 그럴줄 알고 결혼했겠지.
일전에 애인하고 열흘간 호텔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우리는 다정했고 웃으며 헤어졌는데, 나중에 애인이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만약 우리가 그 때 함께 했던 게 호텔이 아니었다면, 누군가의 집이었다면, 그래서 우리 사이에 가사노동이 끼어들었다면, 그때도 우리가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사이좋게 웃을 수 있었을까, 하고. 그건 정말 모를 일이었다. 만약 가사노동이 끼어들고 그것이 대체적으로 어느 한쪽의 몫이 되었다면,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사랑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므로 참고 인내할 수 있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지만, 나는 ... 어느 한쪽에게만 허락된 여가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사랑으로 커버칠 수 있는 것은 가끔의 3:7이고 가끔의 6:4이지 늘상 일어나는 1:9 는 우리의 그 뜨거운 사랑으로도 커버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뜨거운 사랑은 어쩌면 나만 한걸지도 모르겠고.
당연한 얘기지만, 혹실드는 자기가 본 부부들 중에서 행복해 보였던 부부들은 가사노동을 함께 분담하고 있던 부부들이라고 했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같이 해나가야 부부가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당연한 얘기로 책을 끝맺는다. 성역할도 성역할이지만, 남자들이 뭐 자기들이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버는대로 가사노동에서 자기는 좀 빠져도 된다고 생각하고, 적게 벌면 적게 번다고 자존심 상해서 빠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우쭈쭈해준 게 크지 않았나 싶다. 진짜 남자들은 우쭈쭈해줄 필요가 없다. 버릇만 나빠진다니까?
**꺄울.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 후속편 나왔네요. 만세!!**
내게로 오고있다. 두근두근.. ♡
인터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운이 좋다‘고 느끼는 일하는 여성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은행원이자 어린 두 아이의 엄마인, 집안일을 거의 도맡아하고 있는 한 여성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많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은 정말 ‘운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신없이 집안일을 해치우고,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해 달라고 요구하는 아내의 말을 거의 들어주지 않는 남편과 살고 있는 그녀가 내가 보기에는 별로 운이 좋은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보통 남자들에 비해 남편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운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아내가 직장에 다닌다거나, 집안일을 많이 ‘분담‘한다고 해서 자신을 ‘운이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이런 류의 얘기를 전혀 하지 않는 반면, 내가 인터뷰한 그 은행원이나 나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여자들은 남편이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거들어주면 자신이 남보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P16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여인들 스스로가, 남편의 배려가 드물고 귀중하다는 이유만으로 ‘운이 좋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곧 가정에 대한 남성적 시각과 그러한 시각을 창출하고 강화하는 직장 문화에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 P16
나는 시간이라는 측정가능한 측면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1960~70년대에 시행된 시간 사용에 관한 연구에서 제시한 통계를 근거로 직장일과 가사, 육아에 소요되는 시간을 합산하여 평균을 낸 결과 여성은 남성에 비해 대략 주당 15시간 더 일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1년이면 한 달 더, 12년이면 1년 더 일하는 셈이었다. 자녀가 없는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사에 바쳤다. 자녀가 있을 경우엔 가사와 육아 양쪽에 남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바쳤다. 직장에서 남녀간에 임금 격차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부부간에 ‘여가시간의 격차‘가 존재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종일 일하고 집에 와서 또 일을 했다. - P28
나는 여러 가정을 직접 관찰하면서, "빨리 해! 갈 시간 됐다" "빨리 먹어라" "그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어서 가자!"라며 아이들을 재촉하는 사람이 주로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침 7시45분에서 8시쯤 "누가 제일 먼저 씻고 나오는지 보자!"라고 소리치는 사람은 대개 엄마였다. 어린 아이들은 1등을 하기 위해 쏜살같이 달리지만, 머리가 굵은 아이들은 고분고분하지 않을 뿐더러 원망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항상 잔소리만 해." 슬픈 일이지만, 여성들은 직장일과 가족 생활의 속도 증가로 인한 가족들의 공격성을 받아내는 피뢰침 노릇을 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 또한 피해자인 구조에서 악역을 도맡는다. 길어진 노동 시간, 수면 부족, 감정적 분열을 겪는 여성들에게 주어진 슬픈 대가는 1년에 한 달 더 일하는 것이다. - P35
그(에반)는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가 사회복지사 일을 좋아한다면 그 일을 기분 좋게 뒷받침해줄 생각이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이 맡은 업무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래서 일을 매우 힘들게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힘든 직업을 선택했다고 해서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내가 집 밖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남편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 P71
어느 날, 내가 집안일을 시시콜콜하게 다 적은 긴 목록을 들여다보며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낸시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손을 홰홰 저으며 말했다. "저는 위층 일을 하고, 남편은 아래층 일을 해요." 그게 무슨 뜻이지요? 내가 물었다. 낸시는 위층에 거실과 식당, 주방, 침실 두 개, 욕실 두 개가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래층은 창고 겸 에반의 취미 활동 공간으로 쓰이는 차고뿐이었다. 남편과 위층·아래층 일을 ‘분담‘하기로 했다는 그녀의 말에 농담이나 한탄의 빛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에반도 마찬가지였다. 양쪽 다 그것이 부부간의 싸움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했다. 에반이 차와 차고, 개를 돌보기로 한 것에 대해 낸시는 이렇게 설명했다. "개는 완전히 남편 차지예요. 저는 개하고 씨름할 필요가 없답니다." 그 나머지 일은 몽땅 낸시의 몫이었다. 이렇게 해서, 차고는 집의 나머지 부분과 동등한 것으로 격상되었다. - P75
나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놀랄 만큼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거나 ‘생각‘해서 일을 도와주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우리 아빠는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셨어요. 아빠는 엄마를 정말 사랑하셨지요." 하지만 내가 만나본 남자들 중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사분담과 사랑을 결부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82
가사분담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들은 둘 사이의 불화를 은폐하려고 했다. 그들은 과거의 불화가 두 사람의 성격 차이에서 빚어졌다고 설명한다. 특히 에반에게, 여가시간의 격차에 대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두 성격 사이의 지속적이고 흥미로운 상호작용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전 게을러요. 그래서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편이지요. 아내는 저처럼 게으르지 않습니다. 강박적이고 아주 조직적인 성격의 소유자예요." 남편의 일과 아내의 일, 남편의 피로와 아내의 피로, 남편의 여가시간과 아내의 여가시간을 비교하면 분명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은 둘 사이의 성격 차이, 남편의 게으름, 아내의 강박증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P88
피터는 자신의 남자다움의 위협받게 되자, 부부 관계에서 권위를 유지할 목적으로 부조리한 ‘포석‘을 놓았다. 그는 많은 연봉이라는 선물을 준 쪽이 아내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큰 선물을 준 쪽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왜냐하면 아내를 위해 자신의 남자다움이 훼손되는 걸 감수했으니까. 그의 고향 사람들은 아내보다 돈을 못 버는 남자를 우습게 생각했고, 피터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피터는 돈 잘 버는 여자와 함께 살기 위해, 자신의 남자다움에 가해진 사회적 모욕을 견뎌내야 했다. 피터는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남자들 백 명 가운데 한 명 정도가 이런 상황을 참아낼 겁니다." 니나가 이렇게 드문 남자와 결혼한 것은 행운이었다. 그녀는 그 점을 인정했다. 그녀는 피터가 ‘보기 드문‘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연봉은 남편으로선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녀는 운이 좋았다. - P122
1980년대의 문화적 변동, 여성의 취업 기회 증가 더군에 이들 부부는 이데올로기적 혹은 경제적으로 가부장제를 벗어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관습의 영향을 받았다. 캐롤은 여러 가지 조건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불리했기 때문에, 남편에게 매우 고마워했지만 그렉은 그 정도로 아내에게 감사하지는 않았다. 사랑은 양방향으로 흘렀지만 감사는 주로 아내 쪽에서 남편 쪽으로 흘렀던 것이다. 비록 캐롤이 몇 년동안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고, 집안일의 중요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그렉은 아내에게 감사해 하지 않았다. - P208
남자들을 세 집단으로 나눴을 때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띄었다. 아내보다 더 많이 버는 대부분의 남편 집단과 아내와 똑같이 버는 남편 집단 그리고 아내보다 못 버는 남편 집단 가운데 아내보다 많이 버는 남편들은 21%가 가사를 분담했다. 아내와 똑같이 버는 남편들은 30%가 분담했다. 그런데 아내보다 못 버는 남편들 중에서 가사를 분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302
경제 논리만이 통용된다면, 남자가 돈을 더 벌든 여자가 돈을 더 벌든 같은 현상이 나타나야 했다. 그러나 경제 논리는 남편이 아내보다 더 벌거나 똑같이 벌 대만 통용되었다. 돈은 남편들에게는 ‘작용‘했지만(집안일을 면제시켜주었다), 아내에게는 ‘작용하지 않았다‘(집안일을 면제시켜주지 않았다). 남편의 가사분담에는 ‘균형 잡기‘원칙이 작용했다. 균형 잡기 원칙에 따르면, 남편들은 한 면에서 아내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버리면 다른 면에서 그것을 보상받으려 했다. 이런 식으로 남편은 아내에 대해 우위를 유지했다. 남자가 가정에서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지고 있는가는 남성의 지배력과 많은 관련이 있었다. 아내보다 더 버는 남자들은 중요한 자원을 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아내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있었다. - P302
그러나 아내의 수입이 더 많아서 경제적으로 남편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위협받을수록, 남폄은 더더욱 가정에서 ‘여자 일‘을 못했다(여자 일을 한다는 사실이 남자롱서의 정체성을 한층 위태롭게 할 것이므로). - P302
나는 비정규직에서 일하는 남자들과 한 인터뷰를 돌이켜보았다. 부유한 흑인 가정의 4형제 중 막내인 어느 건축가는 1970년대 말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어버린 뒤 반실업 상태로 지내며 굉장히 풀이 죽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우리 식구는 제 월급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건축가면서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 남편은 지금 굉장히 힘들어 하고 있답니다." 그는 집안일을 하지 않았고 기분이 내킬 때만 아들과 놀아주었다. "저는 집에서 일을 거의 안 합니다."그는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불평하지 않지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 P303
더 나은 조건을 쟁취하기 위해 회사와 싸워서 이기더라도 결국 해고당하는 것은 투쟁했던 노동자다. 지난날의 역사를 살펴보면, 찍소리 못하고 있는 착한 일꾼들의 고용 조건을 개선해준 것은 분노한 소수였다. - P306
가사를 분담하면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어느 계급에나 있다.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 고학력 전문직 여성-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하면 문화자본을 소유한-의 남편들이 문화자본을 갖지 못한 여성의 남편들보다 더 많이 분담하는 경향이 있다. - P306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취업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사회적 현상을 환영했다.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적 잔재에 대해서 분개했다. 그런데 정작 가정 문제에 이르게 되면, 그들은 애매한, 막연한, 산만한 표정을 지었고, 갑자기 우유부단해졌다. 여학생들은 무조건 결혼을 미룰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결혼 상대자로 생각하는 남자친구가 있어도 가사를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아직 먼‘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 P322
레이는 아니타에게 집에서 살림할 권리를 주고 싶어했지만 아니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레이와 마찬가지로 피터도 아내 니나에게 살림할 권리를 주고 싶어했다. 니나는 그에 대해 감사했지만 피터가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낸시는 남편 에반에게 자신이 직장에서 받는 여러가지 혜택, 봉급, 직장 동료와의 교류를 선물로 주고 싶어했지만 그것은 에반에게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 시대의 주요한 사회 혁명이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그러한 ‘선물‘에 대한 다른 평가를 통해서이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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