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자고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책을 가지고 동네 스벅으로 갔다. 어제 혼자 있었던 시간이 충분치 못하기도 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오늘도 역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들고 스벅으로 가 초코크루아상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책을 펼쳐들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출입문 옆자리어서 사람들이 계속 이동하는 게 느껴졌고 스벅 안에는 사람들도 많아 좀 소란스러웠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는 내 폰에서 가사가 없는 음악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내 폰에는 Sergei Trofanov 가 있어서 그것을 재생해 두었다. 처음에는 가사가 없는데도 음악이 들려서 잠깐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잇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집중력이 꽤 좋은 사람이다. 책을 읽다 잠시 멈췄을 때는 그 앨범이 전체곡을 다 재생한 후에 멈춰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앗, 언제부터 음악이 안나왔지? 음악이 안나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책에 집중해 읽었다. 나의 이런 점은 정말이지 짱이다. 집중을 어쩌면 이렇게 잘할까? 최고 멋진 것 같아. 나는 내가 집중을 잘하는 것을 알고, 집중을 잘하기 때문에 사실 대부분의 문제들에 대하여 답을 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집중해서 생각하면 답을 찾을 수 있어, 라고 스스로 믿는 편이다.
아, 내가 잘난척 하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니고 ㅋㅋㅋㅋ (정말?) 어쨌든 정신차려보니 나는 세시간이나 꼼짝않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더라. 남아있는 커피는 차가워져 있었다. 크... 집에 가자. 뒤에 몇 장을 남겨두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기 전에 마트에 들러 와인 세 병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가 '로버트 브린자'는 1979년의 남성이다. 책의 처음에 피해자의 입장에서 글이 쓰여져서 읽기가 좀 힘들었다. 잡히는 사람, 죽음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좀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공포가 전해져와서 몹시 괴롭단 말이다. 그러나 주인공 '에리카' 경감이 나오면서부터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어졌다. 사건을 추리하고 수사하는 과정 자체는 다른 수사물과 별다를 바가 없지만, 범인을 잡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일(업무)로서 마주한 에리카의 주변 일들을 보여줌에 있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위산업의 큰 손인 남자의 둘째 딸이 살해된채로 발견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언론이 시끄러워진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압박을 느끼던 '마쉬 총경'은 이 사건을 얼른 제대로 해결하고 싶어서 능력있는 경감인 '에리카'를 자신의 서로 불러온다. 에리카는 얼마전에 범인 체포과정에서 동료 경감이자 남편을 잃고 일에서 손을 떼고 있었던 터다. 그런 그녀가 이 살인사건으로 복직한 것. 그녀는 특유의 직감으로 이 사건을 수사해가지만, 그전에 수사를 진행했던 남자 경감도 그녀를 대놓고 무시하고 피해자의 가족들도 남자경감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한다. 그녀가 유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추측은 신뢰를 받지 못하는데, 새삼 그녀가 경감이라는 지위까지 오는동안 얼마나 많은 편견에 시달렸을까를 생각하니 암담해졌다. 그 모든 과정들을 겪고 여기까지 왔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경감인데도 편견 앞에 자꾸 절망하고 뒤로 쳐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하는 건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가. 게다가 그녀를 도와주는 여자 형사도 나오고, 사회문화 전반에 형성된 여성혐오나 비하에 마주쳤을 때 이 여자 형사들은 대놓고 맞선다. 또한 매춘부의 죽음이 재벌딸의 죽음과 다르게 다루어 지는 것에도 불만을 품은 에리카는, 그 모두가 똑같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계속 알리고자 한다. 그녀가 살인자의 표적이 된 후에 동료 여자경찰의 집에 며칠 머무르는 장면에서는 동료 여자경찰이 다른 여성과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작가는 끊임없이 널린 편견들을 보여주고 그것들에 맞서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에리카'는 피해자들에게 연대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고, 그래서 진심으로 살인범을 잡고 싶어한다. 자신의 업적을 하나 더 쌓고 싶다는 바람이 아닌,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꼭 잡을게, 하는 것. 에리카 경감에게는 피해자에 대한 연대가 있었던 거다. 그게 그녀의 열정에 더 불을 지피고 남들보다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든다.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넨 에리카는 홀로 수사본부에 남아 화이트보드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녀의 눈길이 유독 앤드리아의 사진에 오래 머물렀다.
"넌 겨우 스물셋이었어. 앞날이 창창했다고." (p.72)
바로 이 연대가 그녀가 외로운 가운데에서도, 경찰서의 다른 경찰들과 피해자 가족들마저 자기를 배척하는 가운데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총경님, '우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네, 제가 연락도 없이 총경님 집 앞에 찾아와서 이러는 거, 정신 나간 짓이란 거 압니다. 하지만 제가 미친년 취급받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어요. 제가 못 참겠는 건 말입니다, 이 여자애들한테 일어난 일이에요. 아무런 노력도 안 해 보고, 오늘 밤에 발 뻗고 주무실 수 있겠어요? 우리가 처음 경찰이 됐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땐 힘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잖아요. 충분히 있잖습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총경님한테요. 젠장, 수색에 드는 비용은 저한테 청구하세요. 인사 위원회에 회부해서 저를 해고하셔도 돼요, 지금 그딴 건 아무 상관 없어요. 하지만 이것 좀 보세요, 보시라고요!"
에리카는 사진을 다시 마쉬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만해!"
마쉬는 큰 소리로 외치고는 현관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p.268)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의 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고 지휘권도 빼앗겨 버린 그녀는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걸 견뎌내면서 수사를 계속하다니... 불법체류자인 여성, 홈리스 여성의 말을 경찰서의 누구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며 믿어주려 하지 않았을 때, 에리카는 그들의 말을 '믿는다'. 아마도 자신 역시 사실을 말해도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오늘까지는 앤드리아 더글러스-브라운의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신문과 인터넷 사이트, 텔레비전 뉴스에 앤드리아 사진이 도배됐고, 국가적 양심의 문제로까지 번졌죠. 그렇습니다, 앤드리아가 특권을 누렸던 건 사실입니다. 반면 타티아나 이바노바, 미르카 브라토바, 카톨리나 토도로바와 아이비 노리스는 어떤가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험한 삶을 살았을까요? 아닐겁니다. 상황이 달랐다면, 그들도 앤드리아처럼 윤택한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내가 구태여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매일같이 행해지는 대로 이들을 계급화하지는 말자고요. 이 다섯 사람 모두 끔찍하게 살해됐어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겁에 질려 죽어 갔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등하고, 똑같은 피해자이며, 공정한 시선으로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p.355)
에리카가 하는 생각들, 말들이 좋아서 이 책이 시리즈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실 피터슨.. 의 이야기도 좀 더 보고 싶고. 시리즈가 있다고 해도 피터슨의 이야기가 나올까? 그렇지 않을 확률도 있지만, 그래도...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오, 에리카 경감의 이야기는 시리즈가 맞았다. 나이쓰~ 내가 시리즈를 찾게 되다니 ㅋㅋㅋㅋ 이 책이 첫번째고, 그 다음책은 바로 이것.
오오, 이것도 읽어봐야겠다. 피터슨 얘기 좀 더 나오면 좋겠는데.... 정확하게는 피터슨이 부하직원으로서 에리카를 계속 도우면서 뭔가 둘 사이에 특별한 무언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것이 반드시 이성간의 연애감정은 아니더라도, 어떤 단단한 관계. 에리카는 낯선 지역으로 와서 다 새로 만나는 동료들이었으니만큼 누군가와 좀 더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도 좋지 않은가. 데이트하고 섹스를 해도 좋겠지만, 데이트와 섹스와는 거리가 멀고 그저 서로를 신뢰하는 단단한 관계, 그런 관계가 하나쯤 있는 거 참 좋지 않나. 퇴근하고 같이 맥주도 마시고 피자도 먹고 그러는 거. 모스가 이미 전적으로 에리카를 신뢰하기는 하지만, 피터슨과도 그런 관계가 되면 좋겠다...라고 나는 혼자 바란 것이었다. 얼른 다음 시리즈도 읽어봐야지.
1월달에 월급 타면 사려고 했는데... 지금 이 책 하나만 살까? 아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2020년에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맨날 책 살까말까 고민하면서? 그러다가 결국 사면서? 그렇게 사는걸까?
휴일인 거 너무 좋다. 늦잠도 자고 느즈막히 일어나서 까페로 나가 한낮에 책도 읽을 수 있다니. 아, 이런 거 정말 너무 좋잖아. 나는 한낮에 까페로 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삶을 언제나 꿈꾸고 있다. 너무 좋아. 집중도 세 시간이나 했다구!!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 가운데 수요일에는 휴일이 하루씩 껴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하루를 쉬고 다음날 출근해서 목,금 일하고 다시 토,일 쉬고... 월,화 일하고 수요일 쉬고 목,금 일하고 토요일일요일 쉬고... 환타스틱하지 않은가...
그나저나 이 책 다 읽었으니 이제 다음 책을 뭘 읽어야 하나. 하루키 책 하나 꺼내놨고 배움의 발견도 읽고 싶고 내친김에 추리로 하나 더 읽을까 싶고,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 시작할까..아니 이건 조금 더 있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소설을 한 권 더 읽어야겠다. 소설 좀 여러권 읽어서 내 안에 이야기로 가득 채운 다음에 다시 페미니즘 도서 읽으면서 으르렁 거려야지. 으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