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앤 프렌즈
루크 그린필드 감독, 존 크라신스키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영화 『우리, 사랑일까요?』에서 애쉬톤 커쳐는 아만다 피트의 집 앞에 찾아가 '본 조비'의 노래, [i'll be there]를 부르며 사랑을 고백한다. 그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애쉬톤 커쳐는 '나중에 늙어 할아버지가 됐을 때 고백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고백을 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애쉬톤 커쳐와 꼭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것이 받아들여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사람에게 그토록 좋아했던 감정을 말하는 것이 말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을거라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상대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았던 까닭이기도 할 것이고 또 고백한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내 고백의 타이밍은 조금 더 일찍 찾아왔어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결과는 달라졌을거라 확신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자꾸만 그 사람과 보낸 시간을 곱씹으며 조금 더 일찍 고백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혼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확실히 그때 내 고백의 타이밍은 늦었다.


It's too late.


이 영화속의 여자도 고백을 했다. 안된다고 생각하고 혼자 끙끙대면서 6년전에 자신이 고백하지 않아서 놓쳐버린 그를 떠올리며 다시 뒤돌아 비를 맞고 흠뻑 젖어서는 큰 마음을 먹고 사실은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고백하기까지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하고 수만가지의 가능성을 머리에 떠올려봐야 한다. 거절 당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안해볼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게 고백했다고 해서 그것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는 상대 나름의 이유로 나를 거절하기도 한다. 내가 힘들게 고백했다고 해서 상대가 그것을 반드시 예스라고 할 이유는 없다. 여자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힘들게 고백했지만, 남자는 여자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남자는 이미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까.


It's too late.



영화의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 나는 이 영화가 무척 슬펐다. 이미 다른 여자-그것도 여자의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하기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너무나 슬퍼서. 그 남자로부터 사랑한다는 속삭임을 듣는 그 달콤함에 푹 파묻혔다가도 금세 다시 그를 약혼녀에게 돌려보내야 하는 그 마음이 안타까워서. 하루에도 열 두번씩 그와는 끝내는게 맞다고 결심하다가 이내 다시 무너져버리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잊어야한다고 생각하다가도 바로 눈 앞에서 친구와 다정한 그 남자를 보는 여자의 마음은 대체 어땠을까. 남자 역시 마찬가지.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연애했던 여자와 결혼을 약속했고 그것은 순탄해 보였으나, 한 순간을 계기로 6년전에 자신이 사랑했던 그 여자도 자신을 사랑했었음을 알게 되고 갈등하게 된다. 이미 결혼을 하겠다고 모두에게 밝혔지만, 그의 눈이 좇는건 약혼녀가 아니다. 약혼녀가 아닌 여자를 만나고 싶고 그러나 약혼한 여자가 있고. 그런 남자가 우유부단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체 그 상황에서 어느 누가 우유부단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지 않을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 나는 평소에 우유부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고 우유부단은 내 성격에 별로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내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약속한 상황에서, 내가 사랑을 고백했던 상대가 나타나 나를 뒤흔든다면, 결혼을 뒤집을 수도 없고(나의 선택이었으니!), 이 남자를 만나는 것도 도무지 포기가 안되서, 약혼자에게도 그리고 남자에게도 못할짓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사람은 반드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쇼윈도의 마네킹과 똑같은 옷을 입고 싶다면 칼로리가 높은 근사한 저녁식사를 포기해야 한다. 영어를 잘 하고 싶다면 노는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양쪽을 모두 선택할 수 없고 양쪽을 모두 손에 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속 남자에게도 그리고 영화속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에게도, 선택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결정을 빨리 하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다.



영화는 내가 생각하는 뻔한 결말에 이르지는 않지만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는 지나치게 뻔한 우연들이 존재한다. 쳇, 마음의 찜찜함을 덜어주려는 설정이군, 하고 시큰둥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특별할 것 없는 영화지만 영화의 공간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높은 빌딩 사이를 돌아다니는 바쁜 사람들, 집 앞에 찾아온 남자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거리, 친한 친구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벤치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지금 현재. 이런 것들이 내게는 몹시 사랑스럽다.



덧붙이자면,

고백은, 

상대로부터 It's too late 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하지 않는것 보다는 하는게 낫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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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3-2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빵터짐ㅋㅋㅋ 저 오늘 운전해서 학원왔어용ㅋㅋㅋ

다락방 2012-03-29 13:47   좋아요 0 | URL
위의 비로그인 댓글 받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비로그인 댓글 앞으로 차단할까 엄청 고민했네요. -_-

오, 운전이라니! 짱 멋지다, 뽀! 난 운전은 생각도 안하는데 ㅎㅎㅎㅎ 멋져요 멋져!! ♡

Forgettable. 2012-03-29 14:14   좋아요 0 | URL
요즘 유일한 스트레스가 운전 ㅡㅡ;;; 거리의 무법자들이 많아요!! ㅠ 덜덜덜
익숙해지면 드라이브 시켜주겠음ㅋㅋ

다락방 2012-03-29 15:03   좋아요 0 | URL
뽀도 거리의 무법자가 되어버려요!! ㅎㅎㅎㅎㅎ
그런데 나 말이죠, 꼭 뽀의 차를 타야 해요?

=3=3=3=3=3=3=3=3=3=3=3=3=3=3=3=3=3=3

아무개 2012-03-2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사랑해라는 비로그인 손님의 고백보다 뽀님의 차를 타는게 더 겁나시나봐요 ^^:::
비로긴 댓글의 고백에 대한 답글입니다... It's too late!!! ㅋㅎㅎㅎ


다락방 2012-03-29 16:15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마중물님, 제 대신 대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________^

(속닥속닥, 뽀님이 말이죠 성격이 막 차분하고 그렇질 않거든요. ㅎㅎㅎㅎㅎ)

Forgettable. 2012-03-29 22:59   좋아요 0 | URL
뽀=조신녀 넘사임

다락방 2012-03-30 13:06   좋아요 0 | URL
조...................조.................조신녀..orz

뽀는 조신녀의 뜻을 잘못알고 있는건 아닌가요? 네? ( '')

신지 2012-03-29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로그인 댓글은 단 적이 없습니다.
'이상한' 댓글이 달리면 저라고 생각하실까 봐 ㅠ

다락방 2012-03-29 22:0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아니에요, 신지님. 신지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편해 지셔도 되요!!!

가연 2012-03-2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무도가 결방이라서 보는 예능을 힐링캠프로 갈아탔는데, 최근 힐링캠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후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한 일에 대한 후회이고, 다른 것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라고 하던데, 이 중에 악질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래요. 일단 하고 나면 어떻게든 합리화를 하지만, 아예 안했던 일은 합리화할 수가 없으니..ㅋㅋ 참 와닿는 말이었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내용은 19금이 빵빵 터졌지만(예능프로그램 상단에 19동그라미 그려놓은거 처음 봤어요ㅋㅋ) 고백도 비슷하지 않으려나요?? 하지만 저는 왠지 고백을 마음 깊이 삭힐 것 같네요.. 랄까, 지금은 고백할 상대도 없..고 앞으로도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다락방 2012-03-30 13:05   좋아요 0 | URL
우잉 가연님이닷! 최고로 반가운 가연님 ㅎㅎㅎㅎ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구요. 안해보고 후회하는 일에 대해서는 정말 돌이킬 수가 없잖아요. 여든살이 되었을 때, 그 때 고백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를 하게 된다해도 그래서 그때 해봐야겠다고 생각해도 상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지금 현재 내가 숨 쉬고 있을 때, 숨 쉬고 있는 상대에게 고백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나를 거절했을지언정, 사십년 쯤 지난후에, 아, 그때 내게도 고백하던 여자가 있었지, 하고 돌이켜 볼 수 있는 추억을 저는 그에게 만들어 준거잖아요. 참 근사한 일인 것 같아요. 잘했다고 제가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요.

저 역시 지금은 고백할 상대가 없고 앞으로도 생길지.....확신할 수 없지만, 설사 생긴다한들 이제 다시 고백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시간이 올까요, 가연님? 가연님에게도 제게도? 왔으면 좋겠어요. 두근두근하는 건, 꽤 근사하니까요.
:)

버벌 2012-03-30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대로.. 고백을 해봐야겠구나. 제 이야기에요.

다락방 2012-03-30 13:01   좋아요 0 | URL
그 후의 일들이 암담하고 참담하고 눈물로 지속되는 시간들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회복의 시간이 오는만큼, 고백을 해보는 것은 꽤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예스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그 상대에게 드러낼 수 있다는 건 참 근사하지 않아요? 전 그 후에 많은 시간을 울며 보냈지만 그렇게 했던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나중에 나중에 조카한테도 말해주고 싶어요. 이모는 그런 시간들을 보냈었단다, 하고 말이지요.

꼬마요정 2012-03-3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본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 떠오르네요... 사람과의 관계가, 마음들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더 감성적이 되고... 아... 자꾸 비 탓만 하고 있네요 아침부터..ㅋㅋㅋ

다락방 2012-03-30 13:00   좋아요 0 | URL
비는 참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어요. 멜랑콜리하게 ㅎㅎ 저는 비도 그렇지만 봄바람도 그래요. 요즘엔 아주 가슴속에 사랑이 살랑살랑 거려서 ㅎㅎㅎㅎㅎ 봄바람도 무섭고 봄처녀도 무섭고. ( '')

사람과의 관계가 정말 그렇죠, 꼬마요정님. 전혀 쉽지가 않아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저를 힘들게 해요. 그게 가장 힘든일인 것 같아요, 꼬마요정님.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데, 상대의 마음이라고 내 마음대로 될까요. 휴우.
 

작가 안토니오 타부키
이탈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의 맹렬한 비판가였던 안토니오 타부키가 25일 타계했다. 향년 68세. <페레이라가 주장하다>이 대표작이다.
(출처:경향신문 03월 27일자 )


어제 집에 돌아가 밥을 먹고 오전에 배달되어 온 경향신문을 들고 내 방 침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발견한 부고란에서 안토니오 타부키의 타계 소식을 접했다. 안토니오 타부키? 아, 나 이 작가 아는 것 같은데? 곧이어 나오는 『페리이라가 주장하다』라는 작품명을 접하고야, 아 이 작가구나 했다. 내가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그 책의 작가구나.


죽음 앞에 언제나 다른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는 나인지라, 그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평소엔 부고란을 보지 않는데 어제는 왜 그랬을까, 왜 부고란을 봤을까, 안토니오 타부키의 명복을 내가 빌어줘야 했기 때문일까?


내가 그의 책을 읽는 타이밍이 그가 살아있는 동안이든 혹은 그가 타계한 뒤이든 전혀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조만간 타계한 그를 떠올리며 그가 했던 말에 귀 기울이기 위해 책장에 꽂아두기만 한 그의 책을 읽어봐야 겠다.


그의 다른 작품은 뭐가 더 있을까 궁금하여 검색해봤다.










왼쪽 두 권은 『페리이라가 주장하다』양장본과 반양장본이고  마지막에 이미지가 뜨지 않는 것은 1994년에 나온 『인도 야상곡』이라는 작품이라는데, 품절이다. 『유럽, 소설에 빠지다』는 여러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이라는데 궁금해서 클릭해보니 목차가 이렇게 되어있다.


1권

서문

그리스 | 전화 한 통의 단막극
네덜란드 | 멕
덴마크 | 바에 있던 여자
독일 | 제우스
라트비아 | 석류가 있는 고요한 풍경
루마니아 | 부쿠레슈티, 저녁이 찾아올 때
룩셈부르크 | 겨울
리투아니아 | 첼로
몰타 | 창가에서
벨기에 | 드리스의 자전거
불가리아 | 프랑스어 수업
스웨덴 | 팔라
스페인 | 대담무쌍 알프레도 

2권

슬로바키아 | 향수 일기
슬로베니아 | 어머니
아일랜드 | 틈
에스토니아 | 탁자 위의 바이올리니스트
영국 | 마서, 마서
오스트리아 | 어느 야간 경비원의 일기
이탈리아 | 식탁에 앉아 있는 죽은 자들
체코 | 소년
키프로스 | H.
포르투갈 | 슬픈 천사의 미소와 애처로운 눈길
폴란드 | 0-800 휴대폰 무료 정보 서비스
프랑스 | 생제르맹데프레의 연인들
핀란드 | 꿀벌들의 정자
헝가리 | 사랑


오, 이거 ... 재미있겠는데? 불가리아 편의 프랑스어 수업이 눈에 띈다. 구글에 검색해봐도 안토니오 타부키의 작품으로 번역된 것은 『페레이라가 주장하다』와 『인도 야상곡』이 전부라고 나온다. 안토니오 타부키는 나만 잘 몰랐던 작가가 아니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던가 보다. 내가 신문을 읽기 전까지는 아무도 내게 그의 죽음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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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도서관

오래전에 홀로 극장을 찾아 영화 『라벤더의 연인들』을 보았었다.















영화속에는 아주 나이들어버린 자매가 나온다. 그들은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고 바느질을 하는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외국의 젊은 청년이 표류되어 그들의 앞에 나타난다. 자매는 모래사장에서 그를 자신들의 집으로 옮기고 돌보아준다. 남자는 정신이 들고 회복하고 자매들과 대화하기 위해 자매들의 언어를 배운다. 


젊은 남자가 서서히 회복되어 갈수록 자매는 그에게 마음이 끌린다.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뛰고 설레인다. 그를 차지하고 싶다. 그가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자매가 한다. 이 한적한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던 자매의 마음엔 파도가 치고 언니와 동생 사이에 긴장감이 돈다. 자신들에겐 관심도 없는 젊은 청년 때문에.


시간은 흐르고 청년은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또 꿈을 좇아 마을을 떠난다. 자매는 그의 바이올린 연주회에 참석해 그의 연주를 듣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청년을 만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다시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고 바느질을 할 것이다. 그들은 내내 평안할 것이고 행복할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그들사이에 존재했고, 그런 마음을 들게했던 해프닝이 그들 사이에 있었지만, 자신들의 마음이 왔다갔다 했다한들, 그 일은 일어나지 않는것 보다 일어나는 쪽이 훨씬 나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라디오를 들으며 듣게 될 음악도, 바느질에 담게 될 마음도, 책을 읽으며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것도, 이 해프닝 이전과 이후에는 미묘하게 달라져있을 테니까.


갑자기 이 영화를 떠올린건, 이 책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고 책만 읽던 여자가 나온다. 집에 쌓아둔 책 때문에 집이 무너질 지경이다. 그녀는 책을 기부해서 도서관으로 만들고 마을 사람들은 그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여자는 이제 할머니가 되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친구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녀의 삶은 전혀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을 하면서 늙어갈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녀가 꿈꾸는 삶이 그런 삶이었다면 더 바랄것이 무엇일까. 그런데 자꾸만 이 책 위로 영화 『라벤더의 연인들』이 겹치면서, 책 속의 그녀에게도 격렬한 해프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이 해프닝은 내가 책속의 그녀에게(설사 현실속에 그녀가 존재한다 한들), 결코 강요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런 해프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거다. 평안한 마음과 보통의 일상을 사는 와중에 마음속에 회오리가 불어닥친다면,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감당하면서 설레이고 아파하면서, 그녀는 그 뒤로 읽는 책들을 그 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거다. 만약 그녀에게 그런 해프닝이 일어났다면, 그녀는 지금보다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책을 읽다가,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그녀는 가끔은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기곤 할테니까. 해프닝이 있기전보다 해프닝이 있고난 후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테니까. 그런 경험과 그런 감정들을 가진채로 읽는 책은 더 많은것을 그녀에게 전해주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책 속의 그녀가 안정되어 보이고 편안해보이지만, 그런 해프닝을 한번쯤 맞닥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물론, 젊었을 때의 그녀에게는 내가 알지 못할 많은 일들이 책을 읽는 틈틈이 일어났었겠지만, 노년의 그녀에게도 일상을 뒤흔들만한 해프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거다. 살아있음을 격렬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해프닝. 여전히 가슴이 뛰고 여전히 설레이고 여전히 아파하고 또 간혹 내가 이러는건 주책인건 아닐까 자책하게 하는, 그래서 그녀로 하여금 실로 살아있음을 깨닫게 하는 그런 해프닝. 물론, 그녀는 지금의 삶으로 충분할수도 있고, 그녀는 감정의 동요 따위 겪고 싶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그냥 이 책을 보는데 자꾸만 라벤더의 연인들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의 그녀들의 그 질투와 시기와 긴장과 설레임이 전혀 나빠보이질 않아서. 그게 있었던 쪽이 나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마도 나는 『스타킹 훔쳐보기』에서 '엘리자베스 게이지'가 말했던 것처럼 '한번도 사랑하지 못한것보다 사랑을 잃고 아파하는 쪽이 더 낫다'는 쪽에 깊게 공감하는가 보다. 책 속에서 남자주인공은 사랑을 잃고 아파하는 자신을 위해 이 문장을 생각했고, 그리고는 이내 이렇게 덧붙여 생각했다. 덧없는 위로, 허무한 지혜.




일전에 y 씨와 둘이 술을 마시면서 나는 소주와 깍두기가 얼마나 환상궁합인지 얘기한적이 있었다.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그것은 소주 안주의 최정점이라고, 소주를 마시며 인생의 씁쓸함을 논하기에는 깍두기가 최고라고. 그러자 y씨는 내게 말했다. 그것보다 진화한 것이 짜장면에 소주라고. 뭐라구요? 짜장면에 소주라구요?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내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그래서 나는 지난주 금요일, 내내 벼르고 있던 그걸 해보고자 했다. 짜잔~



오. 좋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집의 메뉴는 간단해서 시골짬뽕, 홍합짬뽕, 시골짜장, 탕수육, 짬뽕밥 정도가 있다. 내가 시킨건 당연히 시골짜장 이었는데 면발이 유독 쫄깃쫄깃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지쳐있었던 금요일밤의 소주와 짜장면. 캬~ 좋았다. 물론, 좋았지만, 나에겐 역시 깍두기에 소주가 더 최상의 메뉴인듯 하다. 아, 짜장면 왼쪽으로 보이는 저것은 두둥~ 탕수육. 훗.


음...사진을 보니 또 먹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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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2-03-2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토요일 밤에 마셨던 소주는 유난히 달콤했는데, 다음날 숙취는 어휴...;;;



사랑에 대한 감정은 나도 같은 생각인데, 그러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였으면 하는 마음도 공존하오.

다락방 2012-03-28 13:44   좋아요 0 | URL
저는 토요일에 양주를 마셔서 그런지 다음날 숙취가 전혀 없더라구요.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다, 라고 깨닫게 되는건 언제나 그 당시가 아니라 모든게 끝나버리고 난 후인것 같아요. 그 때 그건 사랑이 아니었구나, 혹은 그 때 그건 사랑이었구나, 하는 건 말이지요.

Arch 2012-03-2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배고파요~ 맛있겠다! 소주에는 볶은 김치인줄 알았는데. 깍두기랑은 또 어떤 맛이 날까.

나는 요새 너무 짜증을 많이 내고 다른 사람들을 속상하게 하는 것 같아 해프닝을 바라고 싶지 않달까.
내가 좀 착하고 순해졌음 좋겠어요.

다락방 2012-03-28 13:45   좋아요 0 | URL
깍두기랑 소주 마시면 뭐랄까, 인생의 씁쓸함이 그대로 느껴져요.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맛이랄까요. 아주 좋아요, 아주. ㅎㅎ

나는 요즘 내 자신이 보내는 시간들이 제대로 된 건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불안해요. 어떻게 하면 잘 하는 건지도 누군가가 말해주었으면 좋겠구요. 착하고 순해지는걸 바라지는 않는데 현명하고 지혜로워지고 싶어요.

꽃핑키 2012-03-2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소리가 절로 나오네요!! 짜장에 소주는 정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조합인데! ㅋㅋ
어쩐지 막 - 따라해보고싶다는 욕구가 생겨요 ㅋㅋㅋㅋ

사실 저는 시답잖은 친구들을 만나서 시간낭비할 바엔 집에서 혼자 책이나 읽자는 주의인데요;;
그러다보니 친구가 하나 둘.;;;; 다 사라져버렸네요 ㅠㅠ ㅋㅋㅋㅋ
막상 어떤 해프닝이 일어나게되면 이내 귀찮아져 다시 숨어들게 되지만 ㅋ
다락방님의 페이퍼를 읽으며 지금 내게도 해프닝이 필요할까? ㅋ 한 번 생각해봅니다. ㅋㅋㅋㅋ
오늘따라 유난히 짱짱한 햇살을 바라보며 다락방님도 포근하게 오늘하루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다락방 2012-03-28 13:46   좋아요 0 | URL
핑키님 한번 해보세요, 짜장면에 소주요. 짜장면에 소주 궁합이 최고로 좋은 이유는 집에서 혼자 해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캬~ 소리 내면서 물컵에 소주를 따라 마시고 혼자 울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한다는 거. 아, 핑키님이 소주 마시다 울라는 건 아니구요. ㅎㅎㅎㅎㅎ

오늘은 날씨가 풀려서 봄이구나 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핑키님.

아무개 2012-03-2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벌어져야 해프닝이겠죠? 해프닝이 일상이 되면(여기저기서 지뢰터지듯 뻥~뻥~ 터진다면)
소주와 깍두기, 소주와 짜장면, 소주와 볶은김치를 매일 찾게 될꺼 같은데요? ^^:::
무료한 삶에는 활기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언제나 대체적으로 일상을 더 꿈꾸는듯 해요.
무료와 평온의 사이........

다락방 2012-03-28 13:48   좋아요 0 | URL
그렇죠, 매일 벌어지는 건 일상이지 해프닝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곤란하겠죠. 소주와 깍두기가 존재한다는 게 위로가 되요. 가끔은 사람이 아니라 이런것들로부터 위로 받기도 하고, 또 그렇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기도 하니까요. 사람은 가끔 (친구든 연인이든) 고민을 얘기하거나 들을 때 부담이 되기도 하잖아요. 간혹 나에게 오늘은 그 말을 하지마, 라는 마음도 들구요. 그런데 소주와 깍두기는 전혀 그렇질 않아요. 순수하게 제 편이라는 느낌이에요. ㅎㅎ

해프닝이 벌어졌다면, 격렬한 심장의 고동이 찾아왔다면, 그 때는 그럴것 같아요,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 우리는 누구나 지금이 아닌 다른 순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까요.

비로그인 2012-03-2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먹고 왔는데 또 배고프네요. 저도 짜쏘(짜장면에 쏘주) 해보고 싶어요! 저는 소주와 관련되서 해본 게 별로 없네요 그러고 보니~ 감자튀김, 오돌뼈, 김치찌개, 어묵탕이 전부였던 것 같아요. 음, 조만간 시도를 해보겠습니다~ 불끈!

원래 이런 댓글 쓰려고 했던 게 아닌데... 식욕으로 마무리되는 다락방님의 페이퍼를 읽으면 늘 이래요 ㅋㅋ
<도서관>이라는 책은 제가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책이에요. 제가 정말정말 좋아했던 블로거님이 있었는데, 그 분이 저 책을 되게 좋아하셨거든요. 책의 주인공처럼 책을 사랑하는 분이었어요. 저도 물론 책을 사랑하지만, 다락방님 말씀처럼 가끔 책을 읽는 평온함 사이에 격렬한 해프닝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살아 있음을 열렬히 느낄 수 있는 그런 해프닝! 그래서 놀이공원에라도 갈까 싶어요. 바이킹도 못 타는데... 격렬하긴 할 것 같아서 ''...

오늘 완전 웰빙 식단으로 점심 먹었는데 자장면 탕수육보니까 좀 미련이 남네요 ㅠ ㅠ

다락방 2012-03-28 13:50   좋아요 0 | URL
저도 한때는 제 뱃속에 기생충이 사는건 아닌가 의심했었어요. 먹자마자 소화되고 돌아서면 배가고파서 남동생은 제게 대한민국에서 소화능력이 가장 탁월하다고 했었죠. 하핫. 그래서 하루는 진지하게 아빠한테 아빠, 나 기생충 있는거 아닐까, 하고 물었더니 아빠는 제게 기생충이 있으면 얼굴이 누렇게 떠야 되는데 너는 그게 아니라 완전 잘 먹고 다니는 얼굴이다, 라고 하셨더랬어요. ㅎㅎ

[도서관]이란 책을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는 알겠는데, 저는 별 다섯을 줄만큼 좋지는 않아요, 수다쟁이님. 저도 책을 사랑하고 책 읽는 사람을 보는걸 좋아하지만, 그래도 저 책 [도서관]은 흥분할만큼 좋은 책은 아니에요, 저한테는.

전 제 핸드폰에 저장된 저 짜장면 사진 볼때마다 미칠것 같아요. 먹고싶어서. ㅎㅎㅎㅎㅎ

moonnight 2012-03-2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소맥폭탄 마셨어요. 마실 땐 기분좋았는데 오늘은 다시 우울증이에요. 술 마신 다음날 우울해지면 알콜중독이라지요. -_-;;;

다락방 2012-03-28 13:50   좋아요 0 | URL
저는 토요일에 양주와 맥주 폭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좋았어요. ㅎㅎ 저는 그 다음날 손을 떨었는데...........(ㅠㅠ) 이것도 알콜 중독일까요, 문나잇님? ㅠㅠ

기억의집 2012-03-2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저는 소주를 못 마셔요. 짜짱면에 막걸리라면 도전할 수 있지만,
다락방님 글에 전적으로 동감. 도서관 보면서 엘리자벳에게 책도 좋지만 삶을 부딪히는 것도 나쁘지 않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책만 읽는 삶도 좋지만, 직접 부딪히고 깨지고 박살나보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주변을 더 따스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다락방 2012-03-28 13:53   좋아요 0 | URL
저는 막걸리와 맥주는 잘 마시기는 하는데 좋아하지는 않아요. 소주와 와인을 좋아해요. ㅎㅎ
네, 기억의집님. 물론 저 책은 그림책이고 거기에 저 여자의 다른 삶이 어땠었는지는 나타나지 않지만, 경험이 바탕이 되면 더 나을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앉아서 책만 보는 것 말고 거기에 더한 다른 어떤 것, 감정적이나 육체적으로 어떠한 경험을 해보는 것. 그것이 더해진다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기억의집님도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훗 :)

가연 2012-03-2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짜장면 ㅠㅠ 저녁 시간인데... ㅠㅠㅠㅠㅠ 그저 음식이야기만 늘어놓게 되네요.. ㅠㅠㅠㅠㅠ (죄송해라)

다락방 2012-03-29 09:51   좋아요 0 | URL
저는 어제저녁에 소주를 마시면서 월남쌈을 먹었어요. 적당히 취할 무렵엔 쌀국수를 먹었죠. 아..정말 꿀맛이었어요, 가연님!! ㅎㅎ

마태우스 2012-03-29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프닝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모두 다 사람을 변화시키죠. 제 경우도 여자를 스쳐보낸 수만큼 반성을 했고, 그 결과 그전보다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스쳐보내다,는 사귀었다는 것과 같은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소주, 마셔본 지 너무 오래됐네요. 한잔 마시고 카아~ 한번 하고 싶어요.

다락방 2012-03-29 13:05   좋아요 0 | URL
네, 마태우스님. 해프닝이든 사랑이든 사람을 변화시키죠. 그리고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해주기도 하구요.
얼마전에 마태우스님의 페이퍼를 보고 마태우스님이 술을 드실 수 없다고 하셔서 흑흑 저는 너무 속상했어요 흑흑. 마태우스님과 함께 소주를 마시는건 제게는 정말 큰 기쁨이란 말입니다. 흑흑흑흑 ㅜㅜ

버벌 2012-03-30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뜨케.. 아 어뜨케... 저 지금 급 다이어트 중인데. 짜장면에 소주라니. 바로 어제는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피자에 와인 마시는거 보고 눈물을 흘렸는데. 짜장면에 소주라뇨.. 아 어뜨케. 어뜨케 ㅠㅠ

다락방 2012-03-30 13:07   좋아요 0 | URL
대박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짜장면에 소주가 깍두기에 소주만큼 강력한 건 아니지만 자꾸자꾸 생각나요. 아마 앞으로도 이 콤비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그런데 새벽엔 잘 참으셨습니까? ㅎㅎㅎㅎㅎ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그림이나 사진이 많이 들어가있는 책을 좋아하질 않는다. 블로그의 글들을 묶어서 책으로 만드는 것도 역시 좋아하질 않는다. 연예인들의 에세이를 좋아하질 않고 여행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 책들의 대부분이 사진들이 수두룩한 가운데(특히 연예인 사진들 수두룩하면 돌아버릴 지경이 되어버림..orz), 글은 지독하게 짧고 감상에만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사놓고 한동안 읽지를 못했다. 몇 년전, 신문의 신간코너에서 보고 보관함에 넣어둔지 오래였는데도 섣불리 구입하지 못했던 이유와 마찬가지, 책마을 여행기라면 사진만 가득하고 글은 별로일 것이니 다 읽지 못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오!! 달랐다.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 책속에 가득한 사진은 연예인의 얼굴도 아니고(만세!), 내가 그다지 감흥을 얻지 못하는 자연 풍경도 아니었다. 꺄울. 이 책속에는 책과 책이 있는 풍경과 거리,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맙소사.


유럽 여러나라의 책마을을 작가는 찾아다니면서 글을 썼다. 그 중에는 이렇게 책 마을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문구를 벽에 적어둔 곳도 있고 (빅토르 위고의 문장-책에는 뜻이 있었던 것 같은데 미처 메모해오지 못했음),




부엌에도 책을 가득 꽂아둔  곳도 있었으며, 책을 어지러이 꽂아둔 곳도 있었다. 와...좋아 ㅠㅠ  어딜 펼쳐도 책 사진들이 가득해서 마음이 흡족해진다. 바깥에 마련해둔 곳도 있다. 와- 



이런 곳이라면 한번쯤 들러보아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마일스는 친구와 함께 포도농장을 돌아다니면서 와인을 시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영화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면서 나도 한적하게 영국과 벨기에로 프랑스와 독일의 책마을을 돌아다니며 이 책 저 책을 한번씩 들추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슬렁 어슬렁. 때로는 책마을에 마련된 유일한 숙박업소에 머무르기도 하면서.




잠시 포르투갈에 들러 프란세시냐를 먹어도 좋을테지.(응?) 



게다가 책을 읽는 사람들, 내가 그 사람들을 대체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도 엄마도 그리고 길을 지나던 양복입은 직장인도 책을 고르고, 책을 읽는 사진들이 이 책 속에 있다.




서점 앞에서 책을 읽는 주황색 옷을 입은 꼬마, 기차안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엄마, 서점 앞에 멈추어 서서 책을 고르는 직장인. 아- 너무나 근사하지 않은가! 물론 가장 근사한 사진은 바로 이 사진이다. 책을 읽는 청년!



머리는 좀 벗겨진 것 같지만...아저씨가 아니라 청년이라고 해야 어쩐지 로망실현...이 되니까.....( '') 기차안에서 홀로 앉아 책을 읽는 남자사람이라니. 아, 진짜 멋있잖아. 나는 기차를 탈 일이 가끔 있어서 늘 책을 챙겨가곤 하는데, 내가 연출하고 싶은 장면도 바로 위와 같은 장면이다. 와, 책을 읽는 여자사람이라니, 근사하다! 하는 그런 생각을 내 주변의 승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단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잔인한 법. 기차만 탔다하면 나는 잠이 쏟아져서..책을 두 권씩 챙겨가지만 두 장도 채 읽지 못한채로 그대로 가지고 오기 일쑤다. 위의 책을 읽는 남자사람의 사진을 보노라니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욕망이 또 잠시 쳐들어온다. 곧 사라지겠지, 그러겠지.


물론 책을 '읽기만' 하는 사람들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책 사이를 마구 활보하는 아이의 사진도 있다.



가운데, 자전거를 타고 책장 사이를 누비는 꼬마. 하하하하하. 



그러나 이 책이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작가가 관심을 가진 책은 내 관심과는 달라서 나는 그가 흥미를 느끼는 책에 그다지 흥미가 느껴지질 않았다. 작가는 음악과 예술에 조예가 깊어서 그런 책들을 발견할 때마다 흥분하곤 했는데, 나는 그 책들을 발견한 순간들의 흥분에 대해서는 짐작하고도 남지만, 그 책들에 같이 흥분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때로 그의 글을 읽는것은 지루하게 여겨졌다. 소설 얘기도 좀 해주지, 내가 아는 작가의 얘기도 좀 해주지 싶었던거다. 유럽의 책 마을이 애초에 신간을 위주로 파는 서점이 아닌만큼 소설은 없는건지, 아니면 소설도 역시 마찬가지로 가득가득하지만 작가가 흥미를 느낀 분야가 아니어서 별로 언급이 없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다 읽기'는 내게 쉽지 않았다. 이토록 내 마음을 끄는 사진들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아, 중간에 그가 프랑스에서 만난 청년이 그에게 이승우의 소설을 읽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가는 이승우의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 부분을 읽는데 나는 갑자기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갔다. 후훗, 나는 읽었는데! 그 청년은 내가 만났어야 되는데. 국제결혼 한번 해줘야 되는데. 그러면 멋지게 페이퍼도 쓸 수 있었을 텐데. 이승우가 연결시켜준 프랑스 청년, 이라는 제목으로. 이국땅의 청년과 사랑하고 연애하는 과정을 멋지게 내가 글로 쓸 수도 있었을텐데! 아, 그런데 내가 불어를 못하니까 이승우라는 단어만 알아듣고 그저 땅만 쳤으려나.....



이곳 사람들에게 보트를 타고 스카제락 해협을 가로질러 한 권의 책을 찾아 이 항구에 상륙하는 일은 그저 소박한 일상이다. 곳곳에서 여개선이 운항하고 있다. 더 그럴싸한 것은 자기 보트를 몰고 이곳으로 올라온 다음, 곧장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갑판에 누워 절인 대구포나 고래포를 씹으며 독서를 즐길 수도 있다. 아니면 주말을 앞 섬 민박집에서 책과 함께 뒹굴든가 ‥‥‥(pp.217-218)


아, 어느 나라였는지 메모를 안해두었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보트를 타고 책을 읽는것은 안하겠지만, 민박집에서 책과 함께 뒹구는 며칠쯤은 보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생각은 고래포 에 있었다. 고래로 포를 만든다고? 얼마전에 읽은 '존 코널리'의 소설 『모든 죽은 것』에서는 악어튀김을 먹었다는 얘기가 나와서 이게 작가의 장난인지 실제로 악어튀김이 존재하는지 몰라서 구글로 검색을 했었다. 악어 튀김은 정말 존재하더라! 악어 튀김이라니! 그런데 이번엔 고래포란다. 고래포.. 검색해봤지만 고래포의 이미지는 찾을 수 없었다. 아 궁금한데..



책은 이래서 좋다. 내가 알지도 못했던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음식들의 존재를 내게 알려준다.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악어 튀김을 어떻게 알 것이며 고래포를 어떻게 알 것인가. 아, 그건그렇고,


사진이 가득한 이 책을 나는 책장에 얌전히 꽂아둘 것이다. 이 책 속의 사진들을 나는 수시로 보고 싶어지게 될 것 같다. 그럴때마다 꺼내볼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사진도 함께. 그 사진들을 보는 순간 나는 한결 여유로워질 것 같다.



(소근소근- 그런데 지금 이 책, 반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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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2-03-26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이제 좀 뻔하다고 생각했는데....! 으앙, 사야 되잖아. ㅠㅠ (장바구니 열었음)

다락방 2012-03-27 11:20   좋아요 0 | URL
네꼬님, 전 이런 책을 별로 읽어보질 않았어요. ㅎㅎ 작가가 관심을 가진 책에 저는 관심을 가질 수 없어서 유감이고 좀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책 읽는 꼬마라니, 참 귀엽지 않아요? 히히.

레와 2012-03-2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 여행 그리고 책!
좋아하는 것들만 모아놓았네..ㅋ



다락방 2012-03-27 11:1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말입니다. 레와님 혹시라도 유럽여행 가게 된다면 고래포를 먹어줘요. 그리고 그 맛이 어땠는지 내게 꼭 말해줘요. 어쩐지 난 먹을 수 없을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12-03-26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란세시냐... 푸핫...

중간에 다락방님이 국제결혼까지 불사를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승우의 소설을 읽었다고 말한 프랑스 청년의 사진은요??? ㅋㅋㅋㅋ

다락방 2012-03-27 11:17   좋아요 0 | URL
그게 그러니까 그 청년의 사진은 실려있질 않아서....그렇지만 저는 혼자 나름대로 그가 하이킥의 쥘리앵처럼 생겼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저랑 결혼을.....( '')

하루 2012-03-2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항상 갈등하는데, 다락방님때문에 읽겠어요!

다락방 2012-03-27 11:16   좋아요 0 | URL
저도 많이 망설이다가 집어든건데 사진들이 참 좋더라구요. 책이 가득가득해서 말이죠. 아, 저도 책 구경하러 유럽가고 싶어요! >.<

2012-03-26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7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urnleft 2012-03-27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종종 까페에 앉아서 책 읽는 남자 모습을 연출하는데, 아무도 저한테 관심 안 가지던데요 ㅠ_ㅠ

다락방 2012-03-27 11:13   좋아요 0 | URL
저라면 반드시 관심을 가졌을 겁니다! (단호)

파란놀 2012-03-27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의나무' 출판사가 부도 내서 사라졌잖아요.
흠...

다락방 2012-03-27 11:1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토니 2012-03-27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 잘 지내셨나요? 책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몇 주 전에 받았는데 제가 신종플루로 너무 (정말 너무) 아파서 오늘 겨우 기숙사 사무실서 책을 찾아왔어요. 너무 감사해요. 일주일 남짓되는 봄방학 기숙사에 있는 한국 친구들이랑 돌려가며 잘 읽을께요. 여름에 한국에서 뵐께요. 아프고 나니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네요.. 다락방님도 건강 유의하세요.

다락방 2012-03-27 11:14   좋아요 0 | URL
잘 받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토니님. 안그래도 받을 때가 지났다고 생각하고는 있었거든요. 지금은 좀 괜찮으신 거에요? 얼른 회복하세요. 그리고 다시는 아프지 마시구요.

moonnight 2012-03-27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이 책, 사놓고 아직 못 읽었는데 반값행사하네요. 그런 책이 한둘이 아니에요. (ㅠ_ㅠ)
요즘 책조차 읽히지 않는 심란한 일이 있어요. -_-;;;; 책사진들 들여다보면 좀 안정이 되려나. 집에 가서 살펴봐야겠어요. (어디쯤 꽂혀있을런지 -_-;;;;;;;)

다락방 2012-03-28 13:53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들 사진이 참 좋더라구요. 막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지요. 저도 사놓고 반값 행사하는 책들이 많고 또 사고나서 알사탕 행사하기도 하고 이래가지고 ㅎㅎㅎㅎㅎ 요즘에는 가급적 책을 사지 말자, 있는 책이나 부지런히 읽자 하고 있어요. 이 책도 사놓은지 오래된 책이었어요. 하핫

기억의집 2012-03-2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팔아버렸는데,,, 다락방님처럼 글쓴이가 좋아하는 분야가 맞지 않아서 그 부분에선 흥이 나지 않더라구요. 대신 사진이 이쁘고 나중에 유럽가면(도대체 언제갈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가 본 곳에 가봐야지 했는데, 결국 읽고 팔았지요.

다락방 2012-03-28 13:55   좋아요 0 | URL
네, 기억의집님. 사진은 기대이상으로 좋아서 마음이 흡족해지는데, 글에는 도무지 흥미가 생기질 않더라구요. 유익한 글인듯 하고 작가의 흥분도 전해져오는데, 제가 흥분할 수가 없어서 지루해져버렸어요. 저도 '언젠가' 여기에 가봐야지, 라고 마음은 먹었는데 그 날이 과연 오기는 올까요? ㅎㅎ

읽기전에는 저도 이 책을 팔아버릴 생각이었는데 읽고 나서는 팔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icaru 2012-03-2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제 결혼 함 해줘야 되는데" ㅎㅎㅎ
저도 님처럼 아무데나 펼쳐도 책사진이 가득한 책을 원해서,,, '책과 집'이라는 책을 보고 있답니다~ 같은 맥락에서 추천해요 ㅎ

다락방 2012-03-28 14:22   좋아요 0 | URL
아, 안그래도 저도 그 책 살까 어쩔까 계속 고민중이긴 했어요. ㅎㅎ 그 책 보면 기분이 막 좋을것 같아서요. 서점에서 보니 그 책은 디자인 인테리어 쪽으로 분류되어 있더라구요. 그 책도 사서 가끔 들춰볼까요? ㅎㅎ

국제결혼하게 되면 청첩장 보내드리겠습니다. 하하핫

나그네 2012-05-20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십니까. '책마을' 저자는 우리 'documentor' 회원입니다. 제가 다락방 님 글을 보고 말씀드렸더니,
아주 재밌어 하셨지요. 그러면서 앙비에를 편에 있는 독사진 '다비드'라는 청년이 실려 있다고 합니다. 이승우 소설을
읽었다는... 그러면서 다비드에 대해 궁금하다면 또 고래포에 대해서도 궁금하시면 위의 이메일 주소로
연락주시면 가능한 정보를 드리겠다 했습니다. 저자 정진국 씨는 온라인이나 전자통신에 서툰 양반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2-05-22 14:02   좋아요 0 | URL
아, 안녕하세요, 나그네님.
온라인에 글을 쓰니 이렇게 놀라운 일이 생기네요. 저자의 지인이 지나가다 이 글을 읽게되는 그런 경우 말입니다. 하하.

그냥 지나치지 않아주셔서, 그리고 저자에게도 기쁘게 전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_________^

나그네 2012-05-2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락방 님
정진국 회원의 주소는 naguenet@hotmail.com. 입니다.
질문하시면 좋아하실 겁니다...
참고로 '다큐멘토'는 사진 서클입니다.
 
도서관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9
사라 스튜어트 지음, 데이비드 스몰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과 친구로 충분히 행복하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일상을 뒤흔들 해프닝이 생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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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짜장면과 소주 그리고 해프닝
    from 마지막 키스 2012-03-27 10:14 
    오래전에 홀로 극장을 찾아 영화 『라벤더의 연인들』을 보았었다.영화속에는 아주 나이들어버린 자매가 나온다. 그들은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고 바느질을 하는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외국의 젊은 청년이 표류되어 그들의 앞에 나타난다. 자매는 모래사장에서 그를 자신들의 집으로 옮기고 돌보아준다. 남자는 정신이 들고 회복하고 자매들과 대화하기 위해 자매들의 언어를 배운다. 젊은 남자가 서서히 회복되어 갈수록 자매는 그에
 
 
2012-03-26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6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6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2-03-27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투하고 보관함에 넣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