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8명의 여인들』을 그다지 재미없게 봤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 『5*2』도 포스터를 보고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그냥 패쓰했다. 그런데 오, 괜찮다, 이 영화는. 좀 씁쓸하긴하지만, 그건 원래 남녀관계가 씁쓸한 것이니 그렇다. 처음 만나고 설레이고 사랑을 느끼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운해지는 시간이 많아지고 헤어지고 .........
헤어지고난 후 어느 한 쪽은 여전히 미련이 남아서 미련이 남지 않은 쪽을 원망할 수도 있고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원래 남녀 사이란게 아니, 인간 관계에서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보다 어느 감정이든 더 크게 마련 아닌가. 그것이 사랑이든 미움이든 동정이든 존경이든. 그러니까 그게 뭐든, 내가 너한테 가진 감정과 니가 나한테 가진 감정이 방향이 같을수 있어도 그 크기나 농도까지 같을 수는 없다는 거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어느 특별한 커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남자에겐 애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애인과 휴가를 갔다. 그런데 그 애인은 매사에 불평불만 투성이다. 그게 좀 신경쓰이는 가운데, 휴가지에서 우연히 거래처 직원인 여자를 만나게 되는거다. 결혼은? 당연히 거래처 직원인 여자와 하게 된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고 모두가 축복을 하는 가운데 여자와 남자도 신이 나서 호텔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들뜬 마음에 그 밤을 보내려는데 남자는 여자가 옷을 갈아입고 온 사이, 잠이 들어버린다. 그런데 여자는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고, 그 호텔내의 한적한 숲 속으로 들어가 그 밤에 쓰러진 나무위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거기, 미국 청년이 등장한다. 그들은 거기서 담배를 나눠피고, 그리고.....여자는 이러면 안된다고 자기한테 말하면서도 오, 그 밤과, 그 기분과, 그 청년앞에 무릎꿇는다. (갓, 세이브 미!)
나는 그 청년이 앞으로의 영화에 어떻게 등장할까 기대했는데, 영화를 다 본 지금,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에서의 이 구절이 자꾸만 떠오른다.
휴가로 떠난 그리스의 해변 휴양지에서 파비오란 남자와 벌인 격정적 정사를 몇 년이 흐른 뒤 집에서 재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은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 대고, 개새끼는 산책을 시켜 줘야 하며, 두 배우자 모두 일로 녹초가 된 상황
에서 말이다. (p.237)
그러나 오, 그리스 해변 휴양지에서 누구나 파비오란 남자를 만날 수는 없는 법. 단 하룻밤의 격정적 정사였다 한들, 그조차도 얼마나 가치있는(?) 경험인가. 어떤 이들은 십 년 내내 2호선의 같은 구간으로 출퇴근을 해도 파비오가 얼씬도 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이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단 말이다.
어쨌든 우울한 -그러나 현실적인- 이 영화의 결말보다 더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건, 이 영화속의 여자주인공 이었는데, 나는 이 영화를 보자마자 오, 리그렛, 했다. 그래, 얼마전에 본 영화 『리그렛』에서의 여자주인공이었던 거다. 그런데 나는 『리그렛』에서 이 여자를 보면서도, 이상하다, 저 여자 어디서 꼭 한 번은 본 것 같은데..했더랬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 『5*2』를 보다 말고 이 여자의 필모그라피를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오, 그래, 그럼 그렇지, 『거짓말의 한 가운데』에도 출연했던 거다.
(포스터 속의 여자가 아님, 이 여자가 아니라 이 영화에서는 조연인 경찰로 나옴)
여자의 이름은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_- 외울 수 없겠군.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이 여자는 꽤 매력적인게, 비쩍 마르질 않았다는 거다. 『리그렛』에서도 마르지 않은 이 여자가 무척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예쁘다. 등판도 넓어 보이는데(라고 해봤자 나만큼 넓은건 아니고;;) 날개뼈도 이쁘고 머리카락도 풍성하다.. 히융..이쁘다.. 뭔가 시원시원하게 생겼다고나 할까. 내가 본 영화는 다 프랑스 영화였는데, 그녀는 이탈리아 사람이란다. 오. 그렇군. 그리고 2007년에는 『여배우들』이란 작품으로 감독 데뷔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한다. 우훗. 멋지구나.
『리그렛』에서도 이 여자가 와인을 마시는 걸 보고 나와 내 친구는 와인을 마시러 갔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도 또 와인을 마시고 싶어진다. 와인만 머릿속에 가득한 와중에 오늘 점심은 이것이었다.
크라제 버거의 '필리스 샌드위치' 인데, 우와, 고기가 완전 풍성하게 들어있다. 그리고 그 고기가 맛있는거다! 꺄울. 완전 만족해서는 당장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마일즈' 가 그랬던 것처럼, 와인 한 병 사들고 크라제 매장으로 가는거다. 아무도 안 볼 때 컵에 따라서는 꿀꺽꿀꺽 마시는거지. 앞에는 이 필리스 샌드위치를 두고. 하아- 그러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창문 열고 헐레벌떡 먹었던 나의 초라한 현실.......
점심으로 먹는 햄버거는 질색팔색 하지만, 이 필리스 샌드위치는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두 개를 먹었다면 더 기분이 좋아졋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미로스페이스에서는 왜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의 상영을 꼭 오전 11시에만 하는걸까? 왜 나 못보게 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