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번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야 만다.
그러니까 토요일 밤에, 술안주로 김치찜을 만들었다. 며칠전 점심으로 배달시켜 먹은 김치찜이 맛있어서 이건 쉽지 않을까, 해서 만들어보기로 결심을 하고 인터넷으로 요리방법을 찾았던거다. 김치야 워낙 맛이 보장되어 있는 음식이니 어떻게 만들어도 맛있지 않을까. 그래도 요리방법에 써있는대로 해서 훌륭한 김치찜을 만들어보고자, 나는 그 요리블로거가 시키는대로 배를, 무를 샀다. 양파는 준비되어 있었고, 당연히 시장에 있는 정육점에 들러 좋은 목살도 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요리는 실패할 리가 없었다. 고기를 넣고 김치를 넣고 그냥 푹 끓이기만 하면 되는데, 실패한다면, 그게 이상한거잖아? 여튼, '더' 맛있게 만들자. 그래서 나는 요리블로거가 시키는대로 배를, 무를, 양파를 갈아 돼지고기와 김치를 넣어둔 냄비에 넣었다. 물론 돼지고기를 참기름과 후추와 마늘다진걸로 쪼물쪼물 거려놓았고.
이건 정말 실패할 리가 없잖아. 나는 고기를 많이 깔았고, 이건 정말 실패할 리가 없잖아, 김치를 두 포기나 넣었다. 넣고나니 한 솥이라 엄마도 남동생도 너무 많은거 아냐? 라고 물었지만, 이건 실패할 리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나는 말해두었다. 그리고,
보기좋게 실패했다.
나는 번번이 이런다. 처음 해보는 거면 일단 조금 해보고 맛이 보장된 뒤에 다음번에 양을 늘리면 될텐데, 꼭 처음부터 이상하게 실패할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잔뜩 해버리고 만다. 한번도 요리에 성공해본 적이 없으면서 꼭 이런다. 번번이, 번번이. 지난번에 시도한 김치참치스파게티도 한 솥을 해놓고 절반 이상을 버려야 했으면서, 아무리 쉽다고 해도 감자 토르티야마저 괴상하게 만들었는데, 그것도 후라이팬 한가득이라 먹기 힘들었는데, 젠장. 그런데 왜 또 이렇게 많이 해서 힘들어하는 걸까.
그래도 처음엔 괜찮았다. 뭐, 찜이 아니라 찌개가 된 것 같긴 하지만, 좀 달지만, 남동생도 먹을만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게 양이 너무 많아, 일요일에도 데워 먹으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오늘 아침에 데워 먹으니 더 달아지고 끔찍해졌다. 제기랄. 그냥 김치랑 고기만 넣을걸, 그래도 충분히 맛있었을텐데, 내가 요리를 괴상하게 해놨고, 이젠 처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하다니. 엄마가 맛있게 담근 김친데, 내가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오늘 아침에도 먹었더니, 흑흑, 이미 어제 남동생은 누나가 다 먹으라고 말했었다, 흑흑, 오늘은 너무 끔찍했어, 그런데 아직도 한 포기나 남았어, 나는 이제 어쩌면 좋아, 왜 나는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이제 다시는 요리하지 않을거야.
- 어제는 뒷산으로 산책을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보았다. 가을의 가장 선명한 상징, 코스모스를. 그리고 맨드라미를, 채송화를.



가을이구나, 가을이었어. 나는 새삼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덥다 덥다 했는데 가을이 왔네, 라고 말하자 남동생은 덥다 덥다 하지 않아도 가을은 와, 라고 말했다.
- 뒷산에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초저녁잠을 잤다. 일요일의 낮잠은 신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너무 달콤해서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다. 온전히 낮잠을 잘 수 있는 날, 일요일. 나는 아침과 낮과 초저녁에 졸리다. 밤에만 안졸려;; 그런데 평일에 아침과 낮과 초저녁에 잠을 잘 수 없으니 일요일의 낮잠 혹은 초저녁잠이 그렇게나 달콤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제도 스르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며 얼마나 행복했던가. 물론 그 여파인지 새벽 세시까지 잠을 못자서 지금 캡피곤하지만...그래도, 그런김에, 주말에 읽지 못했던 책을 어젯밤에 읽었다. 레 미제라블을 계속 읽을까 하다가, 으응, 다른걸 읽어볼까, 하고 『물밑 페스티벌』을, 『성녀의 구제』를 읽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단 범인을 밝히고 추리하는 과정을 쓴 소설에서 가장 빛이 나는 것 같다. 여러권을 읽고 히가시노 버릴거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성녀의 구제에서는 범인을 미리 밝히고 시작함에도 추리 과정이 재밌는거다. 으윽, 어떻게 그런거지? 오오, 이건 감탄할만한 추리인데, 하면서. 『물밑 페스티벌』을 읽고 재미도 없고 문장력도 없어서 짜증났던터라, 재미를 주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고마웠다. 그래, 재미라도 주는게 어디야, 하면서. 물밑 페스티벌을 읽고서는 뭐야, 메세지만 주면 다냐, 하고 짜증이 났던거다. 레 미제라블을 읽다 읽어서 그런지 문장부터가 짜증이 났다. 절반쯤을 읽고 아, 그만 읽을까를 고민하기도 했었다. 뭐가 생애 단 한번의 사랑이라는거야.
그러다가 불을 끄고 잠들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장에 집착하는 독자인건가, 하는 생각. 무언가에 집착하는건 정말 싫다고 스스로 생각해왔는데...나는 내면의 이야기를 뛰어난 문장으로 들려주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이야기보다는 그런 것들에 더 치중하곤 하는데, 물론 좋은 문장을 좋아하긴 하는데, 문장이 좋다는 생각이 들질 않는 소설에 대해서는 점수를 좀처럼 주지 못하는거다. 그래서 자꾸만, 아, 나 문장에 집착하는 여자였나, 이런 생각이 드는거다. 재미 없는 소설, 짜증 나는 소설이 많은데 일단 재미라도 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메세지를 던지고 싶다면 무작정 던져서는 안된다, 거기에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라고 생각하다가, 그런데 그것이 좋은 소설이 되려면 좋은 문장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거였다. 아, 역시 코맥 매카시가 그런걸 잘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내가 물밑 페스티벌을 잘 읽어내지 못한 건 빅토르 위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레 미제라블에서 지금 엄청난 문장들과 엄청난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걸 보다가 중간에 본 물밑 페스티벌은, 그래서 상대적으로 나쁜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그런데 어쩌겠나. 그것이 나에게 하필 이 타이밍에 선택된 물밑 페스티벌의 운명인걸.
- 일전에도 한 번 쓴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아주아주 오래전 본 단막극이었나, 거기에서 중년의 여자가 첫사랑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와 결혼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거기에서 그 남자의 아내는 첫사랑 그녀에게 묻는다. 젊은 시절, 내 남편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냐고. 그러자 그 여자는 코라고 대답한다. 코가 너무너무 잘생겼다고. 그런데 아내는 남편의 코에 대해서 한 순간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노라고 얘기한다. 코가 잘생겼다는 생각을 못했었다고.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것을, 가치있다고 생각한 것을, 누군가는 별다른 생각없이 가지기도 하고 또 쉽게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삶의, 이 세상의 진리이지만,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지만, 그걸 깨달을때마다 처참해진다. 내가 그렇게 갖고 싶었는데, 그래도 갖지 못했는데, 쟤는 저토록 쉽게 가졌네. 심지어 그것의 가치도 잘 깨닫지 못하는데, 그것은 내게 최상의 가치였는데, 하면서. 알지만, 처참해진다. 내가 아무리 원해도 안되던 것이 누군가에겐 의미도 없이 쉽게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이. 그럴때는 이를 악물고 질투하지 않는 척 할 수 밖에 없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할 수밖에.
- 요즘에는 오렌지쥬스가 맛있어서 거의 매일 꼬마병 하나씩을 마시고 있다. 이제 곧 점심을 먹을건데, 하아- 나는 감자탕을 먹고 싶다. 소주를 한 잔 하고 싶다. 조용한 까페의 구석자리에 처박혀 뜨거운 커피를 한 잔 시켜두고 레 미제라블을 읽고 싶다. 그렇게 읽다가 어김없이 배가 고파지면 따뜻한 스콘을 시켜서 버터를 듬뿍 발라 먹고 싶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나는, 사무실에서 해야할 일이 아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