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너무 좋아서 언제고 빅터 프랭클의 다른책을 또 읽어보리라 결심하던 차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빅터 프랭클을 빅토르 프랑클이라 했는데, 어쨌든 이 프랑클의 회고록을 읽다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유머를 발견했다. 아니, 프랑클 아저씨가 이런 유머감각을 가진 분이셨다니!!
나는 외모만으로는 여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항상 잔꾀를 부렸다. 예를 들어 무도회에서 어떤 여자를 사귀면 나는 그녀에게 프랑클이란 사람에 대해 열심히 얘기했다. 시민 대학에서 그 사람 강의를 들었는데 얼마나 좋은지 무조건 당신이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결국 나와 함께 가보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느 날 저녁 프랑클이 강의하는 치크루스가세 김나지움 대강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곳은 한때 프랑클이 가장 많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가장 앞줄 구석에 앉았다. 뒷일은 한번 상상해보라. 자신의 동행이 갑자기 일어나서 관객들의 박수갈채에 인사를 하며 강단에 올라섰을 때 그녀는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pp.103-104)
아...실례되는 말씀인줄 잘 알지만, 무척 귀여우십니다, 프랑클 아저씨. 하하하하하. 그리고 궁금했다. 갑자기 내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모두의 박수갈채를 받는 사람이며, 그 사람이 모두의 앞에 나가 강의를 하는걸 지켜보는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또,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내 자신이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임을 알리는 그 으쓱함은 어떤걸까.
이 책 역시 몇몇 부분에서 꽤 강한 인상을 내게 남겼는데, 이 부분에서는 특히 그랬다.
또 한번은 중증 간질병을 앓는 젊은 환자가 나로 인해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는 내가 준 약을 먹고 발작을 일으키지 않고 있었는데, 간질과는 또 다른 광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당시 유대인이 둘째로 많이 모여 살던 레오폴트슈타트의 로텐슈테른가세 한복판에서 수많은 살마들을 향해 히틀러에 대해 욕을 해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즉각 나는 그에게 어떤 약도 처방하지 않았다. 그의 간질은 다시 시작되었고, 다행히 그는 잔질보다 더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히틀러 비판을 멈출 수 있었다. (p.120)
몸이 아픈게 아니라도 사람에게 죽음의 위협은 언제든 닥쳐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병이 든것보다 훨씬 더 큰 죽음의 위협을 받는 상황앞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럴때 당연히 가장 큰 불을 먼저 끄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사람이 병보다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이 매우 씁쓸하기도 하다. 빅토르 프랑클은 위의 구절에서도 보여지듯이 사람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는 안락사에 반대하는 사람이었고, 자살을 하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은 자신의 의견도 존중받기를 원한다.
나는 자살하려는 사람의 결심을 존중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한 생명이라도 살리고 싶은 내 원칙도 존중받기를 원한다. (p.118)
그의 이런 원칙은 단순히 상담과 의학적 지식으로만 나타나는게 아니라 의지와 마음가짐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그는 그렇게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려내기도 하니까. 바로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새벽 3시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방금 막 자살할 결심을 했다는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긎녀는 자신의 그런 결심에 대해 내가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자살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자살에 대한 찬반 토론을 벌였고, 결국 그녀는 넌지시 계획을 접고 이튿날 아침 9시에 날 찾아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확히 약속한 시간에 병원에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나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박사님, 오늘 새벽에 내가 박사님의 얘기를 듣고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착각입니다. 내가 마음을 고쳐먹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단잠을 깨웠는데도 박사님이 화를 내거나 투덜거리지 않고 삼십 분동안 참을성 있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조언을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삶으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이것은 인간관계가 분명한 역할을 한 경우였다. (pp.200-201)
빅토르 프랑클은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살아남았지만 자신의 가족을 잃었다. 수용소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줌으로써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었고, 그 자신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며 70세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등반을 했다. 그는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97년 빈에서 숨을 거두었다. 나는 아직 그의 책이라곤 『죽음의 수용소에서』밖에 읽지 못했고, 또 이 회고록 한 권을 거기에 더했을 뿐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그 두 권의 책을 읽고서는 아직도 그가 창시한 '로고테라피'의 정확한 개념을 모르겠다. 그의 다른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
어제(라고 해봤자 사실은 오늘 새벽이었지만) 페이퍼에서 언급한 『걸어서 세계속으로』뉴질랜드 남섬 편을 보면서 나는 며칠간 그곳에 가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 지역의 음식인 뱅어샌드위치 만큼은 먹고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선구이도 잘 먹고 회도 잘 먹고 초밥도 잘 먹지만, 아, 이런 느낌의 뱅어를..먹을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이 뱅어샌드위치란 것은, 계란 푼것에 이 탱글탱글한 뱅어를 수십마리 넣고(몇백마리일찌도 모르겠다) 계란을 풀어 프라이를 하는거다. 그리고 우리나라 길거리 토스트처럼 빵에 그 프라이를 넣어 내놓는 것이다. 하아...빵도 계란도 좋지만...나는 이 뱅어가 씹히는 느낌을 도저히 .... 받아들일 수 없을것 같다. 게다가 이 뱅어는 토스트로만 먹는게 아니다. 술에 넣어서도 파는데, 위스키 스트레이트 잔에 이 뱅어 몇마리를 찝게로 집어 넣는다. 그리고 그 위에 위스키를 따르고 그걸 스트레이트로 한 번에 쭉 원샷을 하는거다.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보는것도 힘들어;;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뉴질랜드의 남섬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렇지만, 뱅어가 들어간 요리만큼은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왕 생각난거 뉴질랜드가 궁금해져서 curious 시리즈 뉴질랜드 편을 구매하려고 검새했더니, 이상하다, 이 시리즈가 죄다 품절이다. 나 8월에 포르투갈 편 선물 받았는데, 어떻게 그 사이에 모두가 품절이지?
혹시 개정판이 나오려는걸까? 뭔가 두근두근..하는데?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서 나뭇잎들이 마구 흩날리더니 어느틈에 비도 바람도 잠잠해졌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칼국수를 먹으러 가야겠다. 덤으로 만두도 시켜야지.
아직 일요일 오후가 더 남았고, 저녁도 남았다. 일요일 밤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