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책 완독하신 분들의 글이 최근에 연달아 올라왔는데요, 읽고 계신 분들 힘내세요! 저도 아직 뒤에 조금 남았습니다만, 11월 안에는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왜이렇게 이 책 안읽히죠? 하아- 넘나 힘들다..


자, 시간은 잘도 흘러가고 우리가 이제 12월의 도서를 읽어야 할 때가 되었네요.

12월 도서는 '마리아 미즈'의 [마을과 세계] 입니다.

음.. 어쩐지 소프트할.. 것 같지 않나요? 그러나 책을 펼쳐보기 전까지는 알 수 음슴..

우리가 함께 읽었던 마리아 미즈에 대해 생각해보면, 마을과 세계는 역시나 자본주의와 자급자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내용일지 그리고 얼마나 어려울지는 직접 읽어보고 확인해봅시다!!
















2025년 1월부터 5월까지의 도서를 안내합니다.


1월은 '설혜심, 박형지' 의 [제국주의와 남성성] 입니다.



책소개를 보면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제국주의의 맥락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정의되고 작용했는지 고찰한 연구서다. 영국사와 영문학이라는 다른 두 분야의 전공자가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의 이론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와 젠더라는 주체를 조망하고 있다' 라고 되어있는데요,


제국주의, 탈식민주의...

학술서라 읽기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우리 한 번 읽어봅시다. 









2월은 '캐런 윌슨-부터바우'의 [아기 퍼가기 시대] 입니다.



1950~1960년대의 미국에서는 혼외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임신한 미혼 여성들은 지역사회에서 분리되었다고 합니다. 뭐, 어디 미국만의 일이겠습니까.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건 대한민국에서도 곱게 보지 않던 시간이 오래였죠. 이 책의 지은이는 갓 출산한 딸을 입양보내야 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다른 미혼모들의 경험을 수집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의 분류는 여성학/젠더 에서도 <여성문제> 입니다.









3월은 '조앤 스콧'의 [젠더와 역사의 정치] 입니다.




책소개에 보면 1986년 처음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도 역사학계와 여성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인 <젠더:역사 분석의 유용한 범주>를 비록한 연구의 결과물들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3월이 어떤 달입니까.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달 아닙니까.

우리도 학기를 시작하는 마음으로다가 어려운 책으로 뽝- 공부 의지 다져서... 읽어봅시다.







4월은  '수지 오바크'의 [몸에 갇힌 사람들] 입니다.




나온지 좀 된 책이기는 하지만 이 책의 분류는 '교양 인문학' 이면서 동시에 '여성학/젠더' 이기도 합니다.

몸에 대한 책들을 우리가 좀 읽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딱 읽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11월 책 아직 다 못읽은 제가 감히 추측해봅니다. ㅎㅎ








5월은 '클레어 혼'의 [재생산 유토피아] 입니다.


 

2월에 미혼모, 4월에 몸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면, 5월, 인공자궁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읽어보는게 어떨까 해서 골라넣은 책입니다. 사실 아주 고민이 많았는데요, 이 책을 할까말까... 그건 '인공자궁'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의 분류는 여성학/젠더 이면서 동시에 '미래학' 이기도 하며 '사회문제 일반' 이기도 합니다.


책소개를 보면 '현재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부분 인공자궁' 기술의 현실화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라고 써있는데요, 이 기술이 걸어온 궤적과 윤리적 문제등을 검토하고 또 악용 가능성을 포함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들여다본다고 합니다. 


사실, 현재 부분 인공자궁... 기술의 현실화.. 같은건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여간, '미래학' 이라니, 우리 미래학에 대해서도 좀 읽어봅시다.




제가 지난번에 책을 선정하면서 고민햇던 흔적을 사진으로 올린 적이 있었죠. 다시 올려보자면,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리스트 고민의 흔적




진심인 나..... 여러분이 나를 만난 건 행운.....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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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1-29 11: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아 낙서만 보면 공부 엄청 잘하는 사람의 노트 같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생산 유토피아> 관심 있어서 보관함에 담아뒀던 책인데 나중에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아기 퍼가기 시대> 제목이 참 재미있네요.

다락방 2024-11-30 21:0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아이패드 이러려고 샀습니다. 아이패드에 이것저것 메모 많이 해요.

재생산 유토피아 보관함에 있다고요? 대박.. 잠자냥 님, 우리 같이 읽어요!! 인공자궁.. 도대체 어떤 내용이 나오고 또 어떤 생각을 하게될지 잘 모르겠어요. 같이 읽어요!! >.<

단발머리 2024-11-29 1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두 문장에 저도 동감! 동감 & 기립 & 열광! ❤️🧡💛💚🩵💙🩷💜

다락방 2024-11-30 21:05   좋아요 1 | URL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를 알고 지내는 이들은 인생에 있어서 큰 행운을 만난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4-11-29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한 권 빼고 다 모르는 책이에요. 심지어 한 권 여기서 이미 읽은 줄 알았는데….

다락방님을 알고 알라딘 서재를 알게 된 건 제 행운! 다락방님을 소개해준 그 분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저 혼자) 보내봅니다 ^^!

다락방 2024-11-30 21:07   좋아요 1 | URL
아앗 건수하 님. 건수하 님으로부터 이렇게나 따뜻한 댓글이라니요. 아니, 건수하 님이 차갑다는게 아니라요, 건수하 님이 이렇게 막 다정 뿅뿅 하는 댓글은 잘 안 다는 타입 아니셨나요? ㅋㅋ 기분이 너무나 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축배를 들어야겠어요. 수육 삶아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4-11-30 23:05   좋아요 1 | URL
음 그래도 다락방님께는 좀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요 ㅎㅎㅎ
기분 좋으시다니 저도 좋습니다! :)

햇살과함께 2024-11-29 2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기 퍼가기 ㅠㅠ 제목이 재미있으면서도 슬프네요.
페이드포 처럼 다시 읽고 싶은 좋은 책 재독도 추가 기다려요!
내년에도 기대됩니다!

다락방 2024-11-30 21:07   좋아요 1 | URL
햇살과함께 님, 이번 해에 함께 읽어주셔서 참 감사했어요. 우리 내년에도 열심히 읽어봅시다. 빠샤!!
 














나는 이 책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가까스로 말일까지 다 읽었네.

굉장히 맹렬하다는 인상을 받으면서 읽었는데 마지막에 저자의 후기 보면 자신이 맹렬하게 썼다고 되어있더라.

구절구절 굉장한 분노가 느껴지는데 그러다 곧잘 자기 모순과 맞닥뜨린다. 이건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주 만나게 되는 문제이다. 그녀에게도 그게 다를 바 없는데, 왜 다나카 미쓰의 그 맹렬함과 자기 모순이 더 힘들게 느껴졌을까. 나는 다나카 미쓰가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거나 혹은 세상의 다른 문제를 자각할 때 자기 분열이 심하게 일어나는 사람 같다고 느껴졌다. 그 누구보다 맹렬하게 남자의 그간 삶과 또 그런 남자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여자들을 비난하지만, 그러나 다나카 미쓰에게서 나는 어마어마하게 사랑을 갈구함이 느껴졌고, 그게 굉장히 나를 힘들게 했다. 왜이렇게 타인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지. 그런데 이 책의 2장 개인사를 읽으면서 어떤 어른이 되느냐 혹은 어떤 성격이 형성되느냐는 정말 어린 시절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도 하고, 그런 한편 그런 성향을 불편하게 느꼈던 나인지라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구절은 정말 뭐지.. 싶다.


맨얼굴이라도 그걸 충분히 자기 긍정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젊은여자들이 자신의 맨얼굴에 대한 자신감의 연장선상에서 '맨얼굴혁명적'이라는 논리를 갖고 와서 그 부분에서만 자신의 혁명성을 과시하려한다. 더군다나 그런 여자들의 비난 섞인 눈초리에서 '나는 화장하면 좀 더 예쁘거든.' 하고 생각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자신은 문제시하지 않는 모습이 참 싫다. -P.75


몇십년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위의 구절은 지금 이곳의 탈코르셋 운동을 생각나게 한다. 왜이렇게 젊은 여성들의 탈코르셋을 안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은건지, 본인들이 탈코르셋 운동을 함께 참여하지 않을거면 그 운동을 비난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서도 탈코르셋 운동한다니 '너네들은 남자가 되겠다는 거냐', '남자처럼 잘 씻지도 않을려고 하네' 라는 비난을 하는걸 보고서, 대체 왜 꾸밈노동을 멈추겠다는 것에 안씼겠다는 거냐로 되받아치는걸까? 궁금했다. 그들은 화장을 해야만 씻는걸까? 그런데 다나카 미쓰의 저 구절에서 '맨얼굴을 충분히 자기 긍정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이라는 부분이나, '나는 화장하면 좀 더 예쁘거든 하고 생각하는 모습' 이라는 부분은, 정말 이건 아니지 않나 싶다. 왜 그렇게 꼬아서 보는걸까?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한다고 하면 간혹 여성주의가 뭐냐고 묻는 남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대신 그 질문을 그냥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다나카 미쓰의 이런 글을 읽는다.


걸핏하면 "여성해방이 뭐냐?"고 묻는 남자들이 있는데, 남자들이 스스로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끓어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은 그 질문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남자에게 평가받는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되어 버린 여자들의 역사성이, 입을 벌려 남자의 물음에 답하려는 모습이 내 속에도 보여서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히는 것이다. 내 안에서 혼자서 꿀을 빨고 싶어 하는 나를 보기 ㄸ대문인데, 나는 한 번 남자를 외면하고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를 외면하고, 말문이 막힌 채로 있는 나의 그런 '엉망인 상태'가 바로 내 현재이며, 내 '진짜 속내'이다. 즉 나는 그렇게 답하지 않는 상태로 여성해방이 여성해방인 까닭을 남자에게 알리고, 알릴 수밖에 없는 사람, '지금 여기에 있는 여자'인 것이다. 

(중략)

자기 속내를 딴 데다 두고 어디까지나 스스로 노예 우두머리로 있으려고 그 자리를 유지하면서 "여성해방이 뭡니까?"라고 묻는 남자들에게 나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걸인의 마음"이라고 중얼거린다. -P.89


다나카 미쓰와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나에게 그걸 묻는 남자들이 여성주의가 뭔지를 정말로 제대로 진지하게 알고 싶어서 묻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그렇다해도 내가 그걸 그에게 알려줄 의무도 없고. 알고 싶으면 얼마든지 자기가 알아서 공부하면 될 일이다. 다른 책 다 읽으면서 여성주의 책은 안읽고, 그러면서 여성주의가 뭐냐고 묻는 그 심뽀 징그럽다. 상대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다.



책의 말미 해설을 읽다보면 다나카 미쓰가 침구사가 됐다는 걸 알게 된다. 해설을 쓴 '이토 히로미'는 다나카 미쓰가 자신에게 침을 놔준 적이 있다면서 


내 몸에서 이물질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은 섹스할 때 페니스가 몸속에서 움직이는 것과 가장 비슷했다. 그런데 페니스는 페니스 크기 정도밖에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데에 비해, 내 몸속에 들어온 가늘고 작은 침은 분명 페니스보다 훨씬 컸다. 큰 봉처럼 크게 움직였다. -P.364


라고 쓴다. 침 맞은 걸 이렇게 표현할 일이야? 나는 좀 어이가 없었지만, 그런데 이 해설을 쓴 사람과 다나카 미쓰는 어쩐지 결이 잘 맞는 사람들일 것 같다. 그나저나 침구사가 됐다니, 침을 놓아주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아픈 걸 치료해주고 또 정신적으로도 위로를 준다니, 다나카 미쓰가 이 책을 쓰고나서 걸어간 길은 뭔가 독특하게 느껴졌지만, 그런데 어쩐지 맞춤한 길을 찾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나카 미쓰는 줄곧 내가 나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말로 옳은 말이다. 나는 나로 살아야 하고 나로 살아야 하는 건 바로 나인 것이다.

애초에 이 세상을 포르노로 만들어 놓고서는 그때마다 팬티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를 문제시하니 예술인지 외설인지 논쟁을 벌인다 한들 사람들의 눈에는 고발하는 쪽 검사가 가장 외설적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거리낌 없는 추악함이야말로 권력이라는 것의 정체이다. 포르노의 총감독이면서 동시에 포르노를 고발할 수 있는 권력, 그 기만성은 바로 결혼이라는 절차를 밟아야만 암컷과 수컷의 성적 결합을 허락한다. 결혼은 이러한 기만성과 표리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결혼은 권력이 보증한 ‘포르노‘이고, 포르노를 상영할 현장을 덮칠 필요가 없게끔 한 절차에 다름 아니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또 결혼식이란, 아내로 엄마로 암컷의 생을 살아 살아 내기 위한 결의를 세상에 알리는 창구이다. 생각건대 공인된 포르노인 결혼은 거리에서 남녀 간 성행위 퍼포먼스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 P62

더욱 우스운 것은 거리를 지나며 그 퍼포먼스를 본 사람들이 누구도 성행위를 보지 않았다고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와 비슷하게 입모아 거짓말을 하는 꼴이다. 이렇게 결혼 포르노가 상연되어 왔다. 그러니까 모두가 결혼이 포르노인 것을 알고 있는데도, 포르노라고 외친다면 이 세상의 중심 뼈대에 금이 갈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이 공인된 포르노 ‘결혼‘이 계속 상영될 수 있다는 소리이다. 이런 속임수를 숨기려고 ‘예술이냐 외설이냐‘ 왈가왈부한다. 마치 결혼 이상으로 외설적인 것이 있는 것처럼 여기게 하고서 체제를 정비한다. - P63

그러나 문제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성의 주체인 우리이다. 항상 그렇다. 나는 맨얼굴을 뽐내는 여성해방운동가들한테서 자신의 지성과 교양을 모성애로 뭉뚱그려서 남자를 위해 헌신하는 고급 노예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한다. 이제 세상이 복잡해져서 전처럼 여자가 남자의 분부대로 "예." 하면서 따르는 건 더 이상 유행이 아니다. 전보다 좀더 건방지고 건방지게 된 만큼 경제적으로 자립해 있으면서 남자의 약함을 알고 그것을 채워 줄 만큼 현명한 여자가 요즘 기대되고 선망받는 여성상이 됐다. 그러니까 여성해방운동을 해도 남자한테 제법 인기가 있을 이유가 있게 됐다. 그러나 남자의 서랍에서 밀려나온 것을 받아들여 주는 한, 여자는 진한 화장을 하든지 맨얼굴을 하든지 남자를향한 교태의 역사에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다. 맨얼굴을 한 여자가 뽐낼 수 있는 것은 진한 화장을 한 여자에 대한 경멸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 P88

남자한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우리 속에 없애지 못한채 늘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남자를 제대로 만나고 싶은 것인지 남자한테 사랑받고 싶은 것인지 그 경계가 항상 구별이 안 되게 섞여 있다. (??)
- P89

여덟 살 아이가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는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 이는 마치 이 세상과 삶으로부터 버림받은 것과 같았다.
더군다나 마땅히 그런 공포심을 나와 공유해야만 하는 상대방은 다음달에도 그다음 해에도 우리 집이 필요로 하는 우수한 직원이었다. 그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천연덕스럽게 계속 일했다. 그리고 지금도 추석이나 설에 처자식을 데리고 과자를 사 들고 우리 집에 오고, 의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한다. - P104

어둠 편에 있는 여자는 보기 싫어도 남자가 잘 보인다. 남자가 헛도는 꼴이 잘 보인다. 그렇기에 여자는 자칫 헛도는 남자를 안아주고싶어 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현모양처란 아이한테도 엄마, 남편한테도 엄마, 이렇게 두 엄마 노릇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자가 너그러움을 보이는 가운데 남자는 자신의 자궁 회귀 욕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 P131

서머셋 몸의 유명한 단편으로 <비>라는 작품이 있다. 한 선교사가 매춘부를 깨끗하고 성스러운 생활로 인도하려고 한다. 이제 매춘부가 조금만 더 하면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있겠다 싶은 찰나에 선교사는 의문의 자살을 한다. 야단법석이 일어난 가운데 매춘부가 내뱉는다. "남자란 모두 돼지 같아." 매춘부가 돼지라면, 선교사도 돼지라고 알려 준이 실제 같은 허구의 작품은 여자와 남자의 숙명적인 대립의 근원을 밝혔다. - P157

범죄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서 전부가 다 그렇다고는 단언할 수 없으나, 범죄라 부르는 행위 대부분은 지금 아픈 사람이 그 엉망인 상태를 극한의 형태로 나타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해 이 세상에서는 엉망인 상태가 바로 악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존재의 그러한 본질이 엉망인 상태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 P180

[옮긴이] 연합적군파 내부에서 혁명 자금을 아끼기 위해 여자가 생리대를 사는 것을 문제시한 적이 있다. 한편 기업에서의 생리휴가를 살펴보면, 전후 일본의 노동기준법(1947년)은 생리휴가를 생리 당일 여성의 휴가뿐만 아니라 생식 건강에 유해한 업무를 하는 여성이 청구할 수 있는 휴가로 규정한다. 그러나 후자의 조항에 대해 사용자 측은 지속적으로 여성 과보호라는 이유로 폐지를 주장했고, 일본의 노동조합 내여성 조직의 주요한 의제는 생리휴가에 관한 것이었다. - P220

빌헬름 라이히는 저서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개인적인 쾌감(오르가슴)을 대중적인 규모의 쾌감(오르가슴)으로 바꿔차는 조작으로 파시즘의 토대가 생긴다. 대중적인 규모로 쾌감을 바란다는 말은 사회의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하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개인이 집단으로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집단할복이다. - P231

한 지붕 아래 맞벌이하고 일상을 공유하면서도 남편을 그저 집안일을 돕는 사람으로 삼고, 자신을 집안일의 주체로 삼는 사고방식은 여자가 자신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된 여자다움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탓이다. 다시 말해 남자다움에 대한 여자의 환상 탓이다. 집안일에 협조적인 남편을 두고 기쁨을 느끼는 맞벌이 여자는 남편을 따라 죽기를 강요당하는 여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환상이 있어서 맞벌이 여자는 자신이 대의를 위해 살아갈 남자, 무대 위 배우처럼 살아갈 남자에게 별볼일없는 일상 잡일을 가지고 성가시게 한다는 식으로 부담을 느끼면서 불평하지 않는 온화한 아내가 된다. - P240

주간지에서 운운하는 성의 해방 그러니까 프리섹스란 실은 여자를 변소(성욕 배출구)로 보는 남자들의 더러운 배설욕이자, 당장 눈앞의 것만 신경 쓰고 나중 일은 나 몰라라 하는 남자의 구미에 맞춰 조리한말일 뿐이다. 또 그것은 성에 대한 죄책감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프리섹스는 ‘혼전 성교‘, ‘혼외 성교‘라고도 하는데 이렇듯 어디까지나 결혼을 전제로 성립하는 것일 뿐이다. 이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날 ‘프리섹스‘란 말은 돈을 내지 않고 여자를 안을 수 있는 남자의 자유를 뜻한다. - P262

내가 싫은 것을 말하지 못한 어제였지만 오늘은 내가 싫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렇게 할 수 있는 내가 멋진 것이고, 또 그런 여성을 보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집합체니까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사회를 바꿀 수 있다." 특히 저자는 여성해방과 사회운동에서 사회적 약자인 주체들의 ‘야만의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때 ‘야만의 힘‘이란 나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것들로 인해 느끼는 아픔을 무시하고 자기 안으로 삼켜 버리지 않고, 아픔에서 나온 분노로 맞받아쳐 나온 첫 순간의 말이나 행동을 일컫는다. 저자가 쓴 글 <세계는 ‘야만스러운 힘을 기다린다>(1996년)에 따르면 여성해방은 차별이나 억압을 받으면 그 원인이나 구조를 분석하거나 머리로 따지기에 앞서 ‘야만스러움‘으로 즉각 맞받아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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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11-30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습니다 ~~^^
말일까지 그래도 다 읽으신거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 읽으며 내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참 많기도 했지만, 그래서 리뷰를 쓰기가 참 난감했지만, 한편으론 일본의 여성해방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어 나름의 공부가 되었던 점은 긍정할만 하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시원하게 내뱉듯 써놓은 문장들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던건 사실이라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2024-11-30 21:45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책 속 일본의 분위기(항문 섹스 아프지않게 어떻게 하냐는 질문이었나요...)에서 이렇게 내뱉을 수 있는 여성학자가 있다니,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일 자체가 맹렬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모든 운동에 나름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자하는 것도 그리고 여성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고요. 전 마지막에 침구사로 살아가는 것도 너무 놀라웠어요!!

저는 이번 읽기 너무 힘들었는데 마지막 날까지는 어떻게든 읽어내서 너무 후련합니다!! 후훗.
다음달에도 우리 열심히 읽어보아요. 빠샤!!

단발머리 2024-11-30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 리뷰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번달이 다 가기 전에 쓸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어 보임ㅋㅋㅋㅋㅋㅋ)
읽느라 고생하셨어요. 공감되는 면이 많았지만, 논의의 요점이 모아지지 않을 때 저도 읽기 힘들었습니다.
완독 축하해요, 다락방님!!

다락방 2024-12-02 07:55   좋아요 1 | URL
저는 작가의 성격이 저랑 너무 안맞는 것 같았어요. 내적 분열이 심하게 일어나는 사람인것 같아서 옆에 있으면 너무나 괴로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책에 집중이 좀처럼 되지 않아 생각보다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말씀하신것처럼 논의의 요점이 모아지지 않는 면도 있어서 읽다 보면 무슨말인지 모르겠던 때가 많더라고요. 물론 저자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저 시대에 저런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글을 썼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단발머리 님의 글도 얼른 읽고 싶어요!!

건수하 2024-11-30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모범을 보여주시는 모습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힘들게 완독하신 거 축하드려요!

저도 늦게라도 완독할게요.. ^^

다락방 2024-12-02 07:58   좋아요 0 | URL
모범.. 이라기 보다는, 사실 제가 뭐 모범을 보이는 타입..그런건 아닌 것 같고. 저는 그냥 저 스스로에게 쪽팔리지 말자는 신념으로 살고 있습니다. 약속 안지키는 나, 는 되고 싶지 않다보니(게다가 제가 진행하잖아요?) 언제나 다 읽어내긴 하는데, 문제는 이번 책도 그렇고 아주 자주,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읽는... 그런 때가 있다는 겁니다. ㅎㅎ

건수하 님의 완독도 응원합니다. 빠샤!!

시에나 2024-12-01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요즘 보기 드물게 펄펄 끓어오르면서 톡 쏘는 문장으로 가득찬 책이죠. 게다가 다나카 미쓰 자신이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피해자이기도 한데 그 자세가 어딘지 너무 꼿꼿하고 뻔뻔하게 되받아치는데가 있고, 본인이 당한게 많으면서도, 정말이지 정치적 올바름이나 자기 모순 속에서의 올바름 같은 건 1도 추구하지 않고 있어서...저는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왜 요즘 글들은 이렇게 쓰면 욕 디지게 먹으니까 엄청 검열하고 다듬어서 올바르게 쓰잖아요. 그런데 다나카 미쓰는 안 그런게 좋더라고요. 하하하. 생날것이랄까요. 언급하신 저 탈코르셋 부분에서도, 저는 여성들이 겪는 분열이나 모순을 잘 꼬집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었는데요. 다나카 미쓰가 저런 꼬인 마음을 갖게 돈 것도, 그 뒤에 고백을 하죠. 사실 자기가 뒤쳐질까봐 겁이 난 거였다고요. 이런 점이 저는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읽다가 이해 안 되는 부분은 그냥 패스했고요. ㅋㅋㅋㅋㅋ 이 책 읽고 어디다 떠들데가 없었는데, 저도 써주시는 글들을 읽고 다른 면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24-12-02 08:06   좋아요 0 | URL
저는 저자가 소설을 썼다면 아니 에르노 같은 작가가 되었을거란 생각을 했어요. 굉장히 솔직하게 가감없이 쓸 것 같은, 너무나 솔직해서 오히려 어떤 독자들에게는 지독하게 느껴질 그런 소설가가 될 것 같더라고요. 저는 저 위 리뷰에도 썼지만, 그 날것이 뭐랄까, 저 해설 쓴 사람도 그렇고 날것에 좀 집착하는 느낌이었어요. 다나카 미쓰의 운동도 운동의 정신 보다는 본인이 살기 위해 치열하게 운동을 해야만 했던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개인의 삶 자체가 참 힘들었을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개인의 몸과 마음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 치열함이 너무 생생하게 전해져서 그런 것이 저에겐 좀 힘들더라고요. 그런 한편 이 여성인권 후진 나라에서 이렇게 과격하게 나올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덕분에 일본 작가의 글을 읽게 되어 좋았어요. 사실 일본 여성학자 라고 하면 우에노 치즈코 밖에 몰랐는데 말이죠. 시에나 님 서재 자주 보면서 다른 책들에 대한 정보도 좀 얻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잠자냥 2024-12-02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저자가 사랑을 받고(갈구하게) 싶어 하게 된 계기가 어린 시절하고 연관되어 있는가 보네요?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 때문에 그렇게 사랑을 갈구하게 되었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제가 이 책은 안 읽을 것 같아서요;;;)
(남자한테 사랑받고 싶어하는 그 심리를 잘 모르겠어서요. 걍 본인이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면 사랑받게 되는 거 아닌가..... 뭘 그렇게 갈구까지하나 싶어져서 말입니다....... 올려주신 예문만 보면 이 저자는... 남자 엄청 좋아하는 느낌...? 굳이 페니스를 예로 드는 것도 그렇고)

다락방 2024-12-02 12:44   좋아요 1 | URL
저자는 8살때 엄마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어요. 그 당시에 어린 저자가 그걸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그리고 본인도 그 때 그걸 싫어하지 않았다고 책에선 표현하는데요(미성년자가 그걸 좋아하고 원하고와 관계없이 그건 강간이죠), 책 뒤로 가면 그 기억은 8살때가 아니라 5살때였던 것 같다, 라고 정정하긴 합니다. 그때 엄마에게 말했는데 그 직원은 가게에서도 일을 잘하는 직원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그 직원을 계속 고용해요. 결국 저자는 어린 시절 자기 편도 없었고 엄마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했던거죠. 애정결핍은 결국 애정을 갈구하는 어른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저 페니스 구절은 저자의 것은 아니고 이 책의 해설을 쓴 ‘이토 히로미‘가 쓴건데요,
제가 이 책 읽으면서 너무 힘들었던건 저자가 누구보다 당시에 과격하게 운동을 하지만, 그런데 누구보다 남자를 사랑하는게 보여서였어요. 남자를 놓을 수 없는 사람인데 저는 인생에 남자 없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보면, 어떻게든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들, 그 남자가 자신을 괴롭거나 고통스럽게 해도 옆에 남자는 무조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여자들 보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데, 저자로부터 그런 스트레스를 좀 받았어요. 해설을 쓴 사람도 그런 다나카 미쓰의 기질과 비슷한 것 같고요. 침 들어가는데 페니스라니.. 절레절레.

제가 이렇게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걸 이해못하겠다, 왜이렇게 사랑 받으려고 몸부림치느냐고 일전에도 다른 책을 읽고 평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바람돌이 님이 애정결핍에 대해 얘기해주시더라고요. 그게 어릴 때 충족되지 않으면 계속 그걸 갈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로구나, 어떻게든 충족시키고 싶어하는 거구나, 라고 이해를 하긴 했습니다만, 하여간 그래서 좀 읽기에 괴로웠습니다. 전 인생에서 남자에게 사랑받는게 일순위인 사람이 페미니즘적 삶을 살아가기는 너무나 어려울 것 같아요. 페미니즘의 아주 많은 것들이 그들에게 걸리적거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나카 미쓰는 래디컬한 여성주의를 실천하려고 하니 본인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자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급하게 돈 필요했을 땐 짧게 호스티스로 일하는데, 저는 .. 거기에 있어서도 참 복잡한 마음이었습니다. 휴..

잠자냥 2024-12-02 12:56   좋아요 0 | URL
아하. 호스티스로 일한 전력도 있군요... 다락방 님의 그 복잡한 심정에 저도 지금 동의하게 되네요....으으음.
 














보통 매달 10일 정도부터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를 읽기 시작한다.

10일이 되기 전까지는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어주고, 10일부터 본격적으로 여성주의 책을 읽고 마치자,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오늘 출근길부터 이 책, '다나카 미쓰'의 [생명의 여자들에게: 엉망인 여성해방론]을 시작했는데,

제일 처음 <한국어판 서문>부터 턱, 막혀버리고 말았다. 아, 이 책, 읽기 만만찮겠네. 무엇보다 읽기 싫어하는 혹은 불쾌해하는 혹은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부터가 매끄럽게 읽히지 않고 음, 당황스러웠거든. 자, 그러니까 서문에서 나를 이런 구절을 본것이다.



'여자다움으로 살아간다면 나는 나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온몸에서 끓어올랐습니다. 남녀 구별 없이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내면서, 저는 '이게 바로 나야'라고 여기는 내 자신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싫은 남자가 내 엉덩이를 만지지 않았으면' 하는 나, '좋은 남자가 만지고 싶어 하는 엉덩이를 갖고'싶은 나. 내가 싫어하는 남자가 내 엉덩이를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은 여성들의 공통된 분노에서 나온 것이기에 운동의 대의가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만져 줬으면 싶은 쪽은 말하자면 개인의 욕망입니다. 대의와 욕망-이 두 가지가 비슷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나와 함께 들고 일어났습니다. -p.5-6



음.. 싫어하는 남자가 내 엉덩이를 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는 일단 적극 동의. 그런데 '좋은 남자가 만지고 싶어 하는 엉덩이를 갖고 싶은' 것 역시 적극적 동의인가? 여기에서 턱, 하고 걸려버리는거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어떤 남자도 내 엉덩이를 만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는 참인가? 나는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아니, 나는 좋은 남자여도 내 엉덩이 만지는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나는 생각하는가? 질문을 여러개 더 던져보아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 엉덩이가 내가 좋아하는 남자에게는 매력적이기를 원한다는 답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니 '다나카 미쓰'의 저 구절이 거짓은 아니고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되게 불편한거다. 저 문장이 너무너무 불편해. 사실이라며, 참이라며, 그러니까 대의와 욕망이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데, 내 안의 모순 우리 안의 모순을 우리가 인지한다고 해도, 그래도 저 문장이 왜이렇게 불편한걸까. 다나카 미쓰가 '지나치게' 솔직한걸까? 그런 지나친 솔직함에 내가 불편한건가? 지나친 솔직함에 당황스러운건가? 내 안의 깊은 욕망을 표현해버려서 불편한건가? 너무 직설적이라 불편한건가? 음.. 그런데 나는 그게 아닌것 같은거다. 그러니까 나는 '좋은 남자가 만지고 싶어하는 엉덩이를 갖고 싶은 나'라는 문장 자체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불편하다. 이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문장의 적나라함에서 오는가 혹은 나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기 싫음에서 오는가. 아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은거다. 이 문장은 불편함이 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솔직하지 못함에서 오는 불편함이 아니다. 다른 불편함이다. 그렇다면 그 다른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라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그것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떠올린 건 '에바 일루즈' 였다. 에바 일루즈가 이 남녀관계 욕망에 대한 모순.. 을 말하지 않았었나. 



그리고 나는 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불안한가] 에서 이런 구절을 보게 된다.

















로이피(미국의 여성 작가로 뉴욕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기도 한다)는 『뉴요커』The New Yorker 지에 실린 대프니 머킨의 말을 인용한다. "남성과 여성의 평등, 심지어 겉보기뿐인 평등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지만, 언제나 섹스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로이피가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더더욱 흘려들을 수 없는 노골적인 불평, 곧 평등이 섹스 욕구를 퇴색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남녀의 평등은 그다지 섹시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평등을 존중하는 섹스는 협상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번거로운 절차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반면교사로 삼은 남자는 적극적이며 직접적으로 섹스를 주도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니까 여성은 자신감에 넘치며 게임이라도 벌이듯 유려하게 접근하는 남성성을 갈망한다. -p.81-82



평등은 원래부터 혼란스럽다. 평등을 기본 전제로 깔면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갈등이 불거진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평등이 불안함과 애매함을 낳는 원인이라 말할 수 있다. 불평등을 편안하게 여기게 만드는 두 번째 측면은 권력관계를 보호관계로 바꿔주며, '자연스러운' 상호의존성과 강한 감정적 접착성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반대로 평등은 어떤 의무감도 낳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욕구와 권리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상대방과 갈등을 빚도록 조장한다. 불평등이 지닌 세 번째 편안한 측면은 역할 문제를 놓고 서로 협상을 벌이지 않아도 좋다는 점이다. 이로써 관계 당사자들은 좀 더 자발적이고 직접적인 감정을 가짐으로써 골치 썩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즐겨 보는 드라마 시나리오가 그려내는 사회적 역할을 보라. 고민하고 자시고 할것 없이 그저 감당하기만 하면 되는 역할이지 않은가. -p.82-83



아, 뭔가 손에 잡힐 것 같지만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내가 원하는 답이 여기에 있기를 바랐지만 정확한 답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방향에서 내가 저 문장을 불편해했는지는 알 것 같다. 에바 일루즈의 문장들을 읽고나니 내 안의 모순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만져지길 원하는 엉덩이를 갖고 싶다'는 그 '욕망'은 욕망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만, 그러나 그 욕망 자체가 순수하게 내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이 온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태어나기를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엉덩이가 만져지길 원한다'고 태어나진 않았다는 거다. 이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그 욕망은 나에게 세뇌된 것이라는 거다. 이 거대한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에 살기 때문에 때로는 내 엉덩이가 누군가에게는 만져지길 원한다는 욕망이 생기는 것이지, 애초에 그것이 내가 내 모순에 직면할만큼 본질적 욕망은 아니라는 거다. 


물론,

지금 내가 가진 모든 욕망은 이 사회에서 태어나 살아가기 때문에 만들어진 욕망인 것이 맞다. 만약 내가 화성에서 태어났다면, 무인도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욕망과는 완전히 다른 욕망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남자에게 만져지길 원하는 엉덩이를 갖고싶어 한다는 것, 그 욕망만 나에게 주입된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거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건 '그건 애초부터 내 욕망인 것은 아니었다고!' 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가진 대부분의 욕망은 이 환경에서 자라면서 주입되거나 만들어진 것이다. 나도 안다. 그런데 저 문장에서 불편한 것은, 그 욕망을 내 안의 모순, 그러니까 대의와 욕망의 대립.. 으로만 보는게 옳은가, 우리에겐 이런 대의와 욕망이 함께 있다, 고 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잘 설명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직 이 책을 몇 페이지 읽지 않았지만, 지금을 사는 여자들은, 내 욕망이 내 대의와 대립한다, 는 것에서 더 나아가있는데, 그 욕망의 원인 조차도 알고 있는데, 이 책, [생명의 여자들에게]는 욕망과 대의의 인정만 말하고 있는것인가, 에서 오는 것이다. 내 엉덩이가 누군가에게는 만져지기를 원해, 를 인정하는 데에서 끝나면 안되는데, 그런데 그 욕망은 왜 있는거지? 를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결국 닿게 되는 지점은 '어떤 남자가 내 엉덩이를 만지길 원하는 나의 욕망은 정말 내 것인가?' 일텐데, 이 서문만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은거다. 



아직 초반이니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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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1-1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심정 뭔 심정인지 알 거 같은데.... 내 엉덩이는 내가 만지고 싶다고 세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11-12 08:57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오늘 하루 우리는 자신의 엉덩이를 만지면서 힘차게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11-1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적으로 섹시해 보이길 원하는 욕망이 있긴 있는데 그게 어디까지 세뇌된 것인지를 정확히 판별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여자들은 일단 “남에게 섹시해보이는 엉덩이”보다는 “달리기 좋은 기능성 엉덩이”에 더 집중하는 노력을 해야만 조금은 그 세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용… 다락방님이 왜 불편하신지 그 혼란 너무 공감가고요.

다락방 2024-11-12 08:57   좋아요 1 | URL
섹시한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섹시해지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 따라와야 할 것 같아요. 만약 섹시한 여성이 가치있는 여성인것처럼 매스컴이 다루지 않았다면, 이 자본주의가 조장하지 않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섹시한 엉덩이를 꿈꿨을 것인가.. 그런데 이 욕망에 대한 것을 ‘싫은 놈이 만지는 건 싫다‘랑 같이 놓으니 너무 걸리적거리는거에요. 하여간 계속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출근길에도 좀 읽었는데요, 음, 현재까지는... 보부아르 제2의 성 읽었으면 이 책을 굳이...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합니다. 흠흠.

건수하 2024-11-11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금 다른 면에서 혼란스러운데...

(제가 아직 읽기 시작하지 않아서, 다락방님이 인용하신 부분만 본다면)

싫은 남자가 만진다면 허락받지 않고 만지는 것일테고
좋은 남자는... 허락의 의미는 차치하고 좋은 남자가 ‘만지고 싶을만한‘ 엉덩이를 ‘만드는 것‘만 다루는 것인가요?

이걸 어떻게 한 번에 얘기할 수가 있는지... @_@

(어제 운동했더니 엉덩이가 아파서 괴로운 자 - 누가 만지길 바라진 않고, 건강해질 것 같아서 + 꽉 끼던 바지가 덜 껴서 보람을 느낍니다)

다락방 2024-11-12 08:55   좋아요 0 | URL
제가 어제 건수하 님 댓글을 읽고 곰곰 생각해봤는데요, 제가 저 문장에서 불편했고 그래서 그걸 찾으려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서 나름 제 나름의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건수하 님 댓글 읽고나니 어쩌면 제 불편함도 바로 그것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싫은 남자가 만지는 건 싫다‘는 것과 ‘만지고 싶을만한 엉덩이를 갖고싶다‘는 것이 한문장에 있는 거요. 거기에서 오는 이상한 불균형 이라고 해야할까요. 그게 한 문장에 있어서 불편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어제 필라테스에서 운동이를 조져줬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잠이 다 안오더라고요. 저는 건강해지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나쁜 자세를 바로 잡기 위해서 엉덩이를 집중적으로 운동했어요. 제가 자세가 나빠서 여러가지로 나쁜 증상들이 나타나버리는 바람에.. 하아- 젊은 여성들이 바른 자세를 갖고 운동 열심히 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저처럼 나이 들어서 자세 고치고 균형 찾으려면 너무 힘들고 오래걸려요 흑흑 ㅠㅠ

단발머리 2024-11-1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락방님 문장 읽으면서 오히려.....
예쁜 엉덩이를 만지고 싶은 나...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다르게도 표현할 수 있는데요. 예쁜 손을 만지고 싶은 나.에 대해서요.
그걸 섹슈얼리티의 영역에 묶을 수 있는지, 아니면 섹슈얼리티가 그 모든 걸 포함하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일단 책을 좀 읽어보고 정리해봐야할 거 같아요.

전, 띠지를 풀어놓았습니다. 헤헤.

다락방 2024-11-13 09:29   좋아요 1 | URL
저는 오늘 출근길에도 이 책을 읽었는데요, 음, 매끄럽게 읽히는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독자들의 경우에는 상당히 불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조금 더 읽고 또 생각나는게 있다면 정리해서 올려볼게요. 단발머리 님도 읽고 감상 남겨주세요!

시에나 2024-11-1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 책이 초반부에 으잉? 하는게 좀 있죠. 게다가 글이 어찌나 산만한지.ㅋㅋㅋㅋ 이 말 했다 저 말했다.ㅋㅋㅋㅋㅋ

한 중반 넘어가야, 다나카미쓰가 뭘 말하려는지 알듯말듯한데 그럼에도 저도 한 두번 읽은 후에야 파악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중간중간은 확실히 제2의성 요약본 같은 부분도 꽤 많고요. 문제의식이 비슷한 지점이 있어요. 그리고 이 책은 70년대 일본 좌파운동의 한복판에서 쓰여진 거라, 그때 일본의 적군파 같은 사건을 모르면 이해가 안되는게 많더라고요. 여성해방운동하는 여자들과 좌파운동 남성 혁명가(?)들의 이상한 결탁, 공의존 관계 같은걸 계속 비판하는 책이라서...

대의와 욕망의 대립을 큰 축으로 볼 수는 있으나, 이 책은 그 욕망에 담겨 있는 어두움 자체를 더 파고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 욕망이 내것이 아니었으나 내것처럼 되어버렸고 여자들이 그걸 알면서도 왜 못 버리는가, 또 자아를 그부분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까지...? 그리고 여자들의 취약함이나 비겁함까지 엄청 후비파들어가고요. 그런데 반전은 그 부분을 긍정하라는데까지 이른다는 것이고요.

하여간 70년대 래디컬페미니즘이라, 엄청나게 새로운 내용은 없는데, 동북아 버전의 페미니즘 책이라는 점에서, 일본 민족주의나 학생운동과 한국 상황에서 통하는 부분들...?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락방 2024-11-22 11:00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도 초반부이긴 한데요, 저자의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나 절절하게 느껴져서 그게 되게 괴로웠거든요. 현실을 파악하는 감각은 가지고 있는데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사랑을 갈구하는 지점이 있어서, 그래서 제가 읽기 힘든것 같더라고요. 그냥 남자한테 잘 보이고 싶은 본인의 욕망 자체를 버리면 더 나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느라 좀 괴로웠는데요, 2부로 넘어가니까 개인사 나오면서 그녀가 어릴 적부터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고, 그래서 사랑받고 싶은 인정하고 싶은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또 짜증내며서 읽은 제 자신이 좀 부끄러워지고, 야속해지고.. 한 인간이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는 어린 시절이 정말 많이 좌우하잖아요. 그러다가도 또 불쑥불쑥 윽, 별로야, 하게 되고... 저는 좀 괴로운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정말 초반이고요, 저도 더 읽어가다보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같이 읽는 다른 분들은 다들 좋게 읽고 계시니 말입니다. :)
 

여러분, 10월의 책 버섯.. 다 읽고 계십니까? 완독하신 분들도 계시고 여전히 읽는 분들도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튼 다들 화이팅 입니다. 저는 다 읽고 이 페이퍼 등록 후에 리뷰도 등록할 참입니다. 참.. 부지런한 다락방인 것입니다. ㅎㅎ


11월에 우리 함께 읽을 책은 '다나카 미쓰'의 [생명의 여자들에게] 입니다.

사실 이 책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우리 함께 읽어보십시다.















12월은 '마리아 미즈'의 [마을과 세계] 입니다.
















그 후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자, 여러분 어쨌든 계속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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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0-31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1월의 저 책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다락방 2024-10-31 14:01   좋아요 5 | URL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진행하면서 제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다양한 분야-여성대상폭력, 성매매, 자본주의, 가사노동, 환경 등등-의 책을 읽자고 생각해서 책을 선정하는데, 저 책의 존재를 아는 순간 그러고보니 일본 여성학자의 글은 다같이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본의 여성학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얘기를 하는지 한 번 들어보자, 하고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단발머리 2024-11-02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해서 자랑하려고 했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 바로 밑에 11월의 책 ㅋㅋㅋㅋㅋㅋㅋㅋ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한 템포 쉬고 들어갈게요! 만세만세 만만세! (후련해서 업됐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11-04 09:07   좋아요 1 | URL
저도 11월의 책은 준비되었지만 일단 10일 까지는 읽고 싶은 책 좀 마음껏 읽어보려고 합니다.
완독하신 거 축하드리고요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잠깐 쉬면서 읽고 싶은 책 좀 읽읍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 달에 급하게 읽어내야 할 책의 분량이 좀 많아서 이 책을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읽고 있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 마치면 바로 이 책 시작해야지 했는데, 어제 단발머리 님 서재에서 이 책의 인용문 보고 급 읽고싶어져서, 그 밤에 이 책을 펼쳤다. 물론 얼마 못가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자야했지만.


이 책 읽기 시작하는데 와- 왜이렇게 좋지? 처음 읽을 때보다 더 좋은것 같다. 특히, 프롤로그의 첫문장.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p.21



아아, 너무 좋지 않은가. 진짜 너무 좋은거다. 이 책의 첫문장이 이렇게 좋았었나? 왜 내가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었지?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애나 칭이 하는 것이 산책이란다. 크- 아마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산책하는 사람은 많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는 것은 애나 칭만의 고유한 것일테다. 버섯을 발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운이 좋다'고 표현하는 것 말이다. 


간혹 뒷산이든 어디든 산에 오를 때면 버섯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송이버섯은 아니고, 이름도 모르는 버섯들이긴 한데, 나무 밑둥에서 혹은 나무 중간에서 빼꼼 올라오고 있는 버섯들. 어떤 것들은 지극히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데, 언젠가는 온 가족이 다함께 산을 갔다 화려한 버섯을 발견하고 오, 저거 따먹으면 안되겠지? 화려한 건 독버섯이라잖아? 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내 말에 이렇게 답하셨다.


"저거 따 먹으면 너 뿅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실 버섯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편이다 보니, 산에서 버섯을 발견했다고 해서 한 번도 그걸 따먹어 본 적은 없다. 지금도 내가 아는 건, 화려한 버섯은 독버섯.. 정도랄까. 


어쨌든 이 문장 너무 좋아서, 당연히 저자가 던진 가벼운 물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실 굳이 다른 사람의 답을 듣기보다는 자신이 산책하고 버섯을 발견하는 걸 기쁨으로 생각한다는 거에 더 중점을 둔 문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물었으니 대답하는 것이 인지상정.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


이 문장을 보자마자 내가 떠올린 건 요가였다. 삶이 엉망이 되어간다는 느낌은 내가 자주 받는 느낌은 아니다. 그러나 느껴보지 못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때, 내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요가였다. 요가를 한 번 해보자, 등록해보자.


2017년 이었다. 마음이 너무나 힘들고도 힘들었다. 꼼짝도 하기 싫었고 이대로 내가 바닥으로 가라앉는게 느껴졌다. 보통 우울이 찾아오거나 한다면 내가 나를 좀 다독이는 편이고 또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끄는 걸 스스로 잘 해내는 편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데 이 때는 그게 안되고 하염없이 밑으로 밑으로 떨어지기만 했다. 아, 이러다가 내가 정말 망가지겠다, 나 이대로는 안될것 같은데, 이대로 큰일나겠어, 아 나를 어떡하지, 하면서 생각해낸 방법은 운동을 시작하자는 거였다. 강제로 시작하지 않으면 내가 완전히 부서져버릴 것 같았다. 일대일로 헬쓰를 시작해볼까, 아니면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요가를 시작해볼까. 


그전까지의 나는 돈을 내고 운동을 하는 것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운동이라는 건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 돈을 내는게 무슨 소용이람, 그건 돈을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않아, 나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내가 해낼 수 있는 거라굳!! 이렇게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그 때는, 너무나 하염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 때는, 내 혼자의 힘으로 나 스스로의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도움을 받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해, 지금은 도움이 없이 일어설 수가 없다, 라는 생각을 고민을 거듭하다 요가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헬쓰와 요가중 요가로 선택한 건, 그 때까지만해도 요가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내가, 요가를 단순히 마음 수양, 명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자. 누군가의 도움으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시작하자. 그렇게 집 근처의 요가센터로 찾아갔다. 상담을 받아보니 다소 비싼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데 들러가며 요금을 비교할 의지 같은 건 코딱지만큼도 없던 터라, 아 몰라 그냥 여기로 해, 하고 나는 등록을 하고 그렇게 처음, 요가수업을 받았다. 내 마음이 좀 다스려진다면 좋겠다. 가만히 눈을 감고 고요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요가에서 일어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요가는 그런게 아니었다.

아니, 요가가 그런게 맞는데, 그런데 그게 그게 아니었다.


처음 요가 수업에서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선생님의 지시에 맞추어 팔을 들어올리고 엎드리고 주저앉고 몸을 접고 뒤로 펼쳐가면서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빈야사'를 따라할 때, 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나 에너지 따위 전혀 존재할 수 없었다. 그 모든 동작들, 살면서 일상에서는 결코 해보지 못했던 그 모든 동작들을 따라하느라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 흘렀고 입에서는 연신 아이구야~ 아이구야~ 하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한시간을 정말이지 불살라 버려서 아.. 나 이대로 괜찮은가.. 하게 되었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수업을 마친 후 옆자리 수련생이 


"첫날부터 빡센거 들으셨어요"


하시더라. 아아... 이런게 .. 요가인가요? .......



그 날 집에 가서 진짜 양푼에 밥을 잔뜩 비벼먹고 엄마를 붙잡고 세상에 엄마, 이런게 어디있어? 하며 하소연을 늘어놓고 다음날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근육통에 시달렸다. 요가가 단순히 스트레칭과 명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들 모두를 줄세워서 어깨를 붙잡고 흔들면서 말해주고 싶다. 그게 그게 아니라니까? 너 빈야사 한 번 따라해볼래? 덕분에,


나는 끌어올려졌다. 밑바닥에서 철푸덕 젖은 휴지처럼 늘어져있다가, 끌어올려졌다. 끌어올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비크람 수업, 아쉬탕가 수업에서도 나는 비오듯 땀을 흘렸고 내 안의 노폐물들이 더러운 냄새들을 풍겼고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리면서, 나는 그런 내 몸을 가지고 다니느라 에너지를 발휘해야 했다. 내 몸이 탈탈 털린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또 땀을 흘리고 근육통에 시달리다보면 에너지가 샘솟기도 했다. 새로 시작한 요가의 동작들을 신기해하고 근육통에 몸부림치면서 어느순간 나는 다시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있었다. 



어제 인스타에서 한 요기의 짧은 영상을 보게 됐다. 헬쓰도 하고 다른 운동들도 한다고 했던 그 요기는, 그런데 요가를 시작하고 너무 좋다고 했다. 헬쓰장에 가면 덤벨이라는 기구를 들어올리는데, 요가는 내 몸 안의 덤벨을 들어올리는 일인 것 같다고. ㅋ ㅑ -



애나 칭의 물음,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 나는 요가를 했다고 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는 기꺼이 요가를 권하고 싶다. 작은 매트, 그 위에서만 펼쳐지는 그 일련의 행위들이 엉망이 되어간 삶을 어느 정도 정렬해줄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요가가 아직 힘들고 멀게 느껴진다면, 애나 칭이 했던 그것, 산책을 권하고 싶다. 이제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버섯을 발견하면서 걸을 수도 있겠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움직이는 것은 도움이 된다. 산책이든 요가든, 그리고 빵을 굽든.  반죽을 치대고 그 반죽의 감촉을 손으로 느끼고 반죽의 향을 느끼고 그것이 빵이 되어 나오는 순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엉망이 되는 느낌은 조금 잡아나갈 수 있다. 밑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다시 끌어올려질 수 있다. 몸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 그것이 버섯이든 매트 위로 떨어지는 땀이든 완성되어 나오는 빵이든, 그것은 엉망이 된 삶을 다듬어준다.


애나 칭의 저 첫문장이 너무 좋았다. 물어주어서 좋았다. 새삼 내가 앞으로 또 찾아오게 될지도 그 어떤 나락의 순간에, 끌어올릴 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인지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를 단단하게 다지는 일이다. 


너무너무 좋은 첫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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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4-10-23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첫 문장 정말 좋았어요. 저도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무조건 걷던 사람이라. 독버섯 밖에 발견하지 못했지만^^

다락방 2024-10-23 09:20   좋아요 1 | URL
악 저 문장 좋았다고 하시다니, 너무나 반갑습니다, 햇살과함께 님! 저 문장이 어제따라 정말 너무너무 좋더라고요. 저에게도도 걷는게 좀 더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한 방법이긴 해요. 그동안 버섯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요. 후훗.

바람돌이 2024-10-23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에 이어 다락방님도...
첫 문장에 저는 감흥이 다락방님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읽어보고싶네요.

다락방 2024-10-24 07:55   좋아요 1 | URL
네, 아직 몇장 안 읽었지만 이 책 참 좋아요, 바람돌이 님. 후훗.

독서괭 2024-10-23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도 삶이 엉망일 때(체력은 바닥을 치고 남편과 관계도 나빠지고 등등) 달리기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요가가 참 좋다고 하던데(특히 다락방님이 ㅋㅋ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가> 저자도 요가 예찬하더라고요) 저도 언젠가..^^
버섯 책 의외로(?) 명문장으로 시작하는군요? 뭔가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기에 의외입니다 ㅎ

다락방 2024-10-24 08:02   좋아요 1 | URL
다른 어려운 책들을 너무 많이 접해봐서인지 버섯 책은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한 번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읽고 계신 다른 분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잘 읽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두려움없이 시작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뭔가, 뭐랄까, 색다른 내용과 전개라서 너무 좋아요!

몸을 움직이는 것은 더 나은 마음 상태를 만드는데 분명 도움을 주는것 같아요. 어차피 그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독서괭 님 댓글 읽으니 달리고 싶네요. 이번주는 아직 달리지를 못해서요. 아.. 시간은 왜이렇게 빠르게 흐르는건지.. 오늘이 금요일 같은데 목요일이라 초큼 슬프지만, 그래도 내일 금요일이니까 다시 즐거워해야겠어요. ㅋㅋ

자목련 2024-10-23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첫 문장이네요 👍

다락방 2024-10-24 08:03   좋아요 0 | URL
저 처음 읽을 때도 저 문장을 좋은 문장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이번에는 너무 좋네요!! >.<

단발머리 2024-10-23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첫 문장 좋았거든요. 와아~~ 하면서 딱 끌어당기는...
근데 저는 그 방점이 어디에 찍혔냐면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였어요. 제게는 산책도 아니고(사실이 그렇습니다) 버섯도 아니었어요(송이버섯 맛 모르는 사람)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우리가 사는 삶이 그럴 때가 있잖아요. 어쩌면 계속 그럴지도 모르구요. 하나 해결되나 싶으면 그 다음 파도가 밀려오고...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그럴 때 도망가고 싶고 막 원망도 되고 싫은 마음 뿐이지만, 그렇다는 걸 안다는 게... 전 그게 좋더라구요. 삶은 자주, 엉망이 되지... 하면서요. 전 그랬어요 ㅎㅎㅎ 그래도 그럴 때 산책을, 요가를 한다는 건 참 좋은 거 같아요. 곧... 돈을 내며 운동을 배워봐야겠다 싶어요.

다락방 2024-10-24 08:06   좋아요 2 | URL
맞아요. 삶이 엉망이 되어가는 건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순간들이지만, 그런데 내가 삶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건 아닌 것 같아요. 내 스스로가 삶이 엉망이 되어간다는 걸 인지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것을 끌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테고요. 그런데 그걸 자각하지 못하면 계속 그 안에서 허우적댈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꾸만 나 자신을 그리고 내 주변을 돌아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겠네요.
다른 얘기지만, 저는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내 삶이 엉망이 되어가는지 어떤건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첫문장을 만났다면, 그들중 누구 하나라도 ‘어?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가만...... 어..... 지금 내가 그런건가?‘ 하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책 읽는 건 참 좋아요, 단발머리 님. 그 좋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잇다는 것도 너무나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