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로 핵가족은 생산 노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는가정주부·노인과 아동들을 사회의 핵심적 변화가 일어나는 영역에서부터 격리하여 소외시키고 있다. - P212
가족에 관하여 마르크스, 엥겔스, 베벨, 레닌, 체트킨, 콜론타이 등이 공유한 의견은 혁명이 성공하여 여성의 경제적 예속이 종식될 때 이상적 가족 형태, 즉 프롤레타리아 동지애적인, 진정한 애정에 기반을 둔, 따라서 이혼이 용이한 일부일처제proletarian heterosexual serial monogamy (Barrett and McIntosh, 1982: 18~19)가 저절로 실현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상황에서 매우 진보적인 것이었으나 지금의 상황에서 볼 때는 한계를 갖는다. 즉, 이들은 가족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구속력, 특히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관한 문화적 구성을 간과하고 여전히 이성간의 소유적 사랑에 대한 낭만적 인식을 고수함으로써 가정내의성 역할에 관한 고찰이라든가 성 관계 sexuality와 부모됨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질 여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 P213
버나드Bernard (1971)가 말하고 있는 자의식이 얕을수록 행복한 아내가 될수 있다는 ‘행복한 결혼의 패러독스‘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바쁘게 지낼 수 있는 주부가 바로 ‘행복한 주부‘인 것이며, 끊임없이 집안 소제를 하는 경우라든가, 에어로빅·계모임. 꽃꽂이 · 박물관 대학 등의 여가 선용 활동이 주부의 삶에 큰 비중을 갖게 되는 연유도 이와 관련된다. - P231
실제로 낭만적 사랑이란 실체라기보다는 산업화와 더불어 대두된 이데올로기이며 배우자의 경제적 의존성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샐스비 Salsby (1985)는 밝혀내고 있다. 한국과 같이 남녀 교제의 역사가 짧은 사회에서 낭만적 사랑의 환상에서 생기는 문제는 심각하다.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 인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사랑을 하는 것, 그리고 서로 연애의 상대가 되기 위해 남성은 더욱 ‘남성적‘으로, 여성은 연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서 스스로를 부각시키려는 것은 그들이 이룰 가족 관계 형성의 토대를 허약하게 하고 있다. - P232
남편의 사랑에 매달리는 현상은 또한 남편의 역할 과중 내지 소시민화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된다. 실제로 "남편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것이 비취업 주부들이 남편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불만 중의 하나로서, 직업이 있는 여성에 비해 직업이 없는 여성을 아내로 삼은 경우, 남편은 아내의 삶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의 소시민화와 탈정치화 현상은 이러한 단란한 핵가족에 대한 환상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 P233
비취업 주부의 삶의 형태가 갖는 또 다른 사회적 비중은 (1) 그것이성에 따른 역할 분담을 구조적으로 지속시킨다는 것과: (2) 과잉소비와 과시 성향의 증가 그리고 (3) 계층간 격차를 심화시킨다는점에서 찾아진다. 가정일을 전담하는 직업이 여성의 지배적인 삶의 형태인 한, 성역할 고정 관념은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주부는 바로이 고정 관념을 구체화시키는 주요 집단인 것이다. 또한 상업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여유 있는 층의 주부의 삶은 마치 ‘여가‘의 상징인듯 간주되고, 많은 여성들에게 일을 하지 않고 사는 삶이 바람직한 삶인 듯한 가치를 심어주고 있다. 여성의 삶의 최대의 목표는 남편을 잘 만나는 것이며 그래서 큰 집에서 고급 의상을 걸치고 ‘일‘을 하지않고 오직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하나의 이상적 삶의 양태로 비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 P233
즉 치열한 학력 사회에서 한칸 방에 살면서 부모가 모두 노동을 나가야 하는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동과 자신의 공부방을 갖고 있으며 자주 학교를 방문하는 여유를 가진 어머니의 세심한 관심과 지도 속에서 자라는 아동이 벌이는 경쟁이 공평한 것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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