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시간
파비오 볼로 지음, 윤병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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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을 샀는지 역시 모르겠지만, '파비오 볼로'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것 같은데, 하고 저자의 약력을 보니 [아침의 첫햇살]이 이 작가의 책이더라. 그렇다면 이 책은 아주 좋지는 않겠지만 뭐 딱히 나쁘지도 않은 책이겠구먼,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재미가 없었고......그래도 오랜시간 등돌려 지냈던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을 보고 싶었고, 헤어진지 1년쯤된 사랑했던 여자의 마음을 다시 자신에게로 돌리는 게 정말 가능한지 보고 싶었기 때문에 끝까지 읽고자 했는데...이야...세상에...병맛도 이런 병맛이 없다.


아버지가 변하고 움직이길 바랐으면서 막상 아버지가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 어쩔줄을 모르는 것도 찌질해보였는데, 이새끼가, 헤어진 애인이 한달 반뒤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1년만에 다시 전화를 걸고, 그녀를 사랑했었는데, 진짜 사랑했었는데 놓쳤다고 아쉬워하면서, 도대체 어떤 남자랑 결혼하나, 그 남자의 회사 앞에서 기다리다 그 남자를 보기도 한다. 아 진짜 짜증난다. 사랑한다고 여자가 말했을 때는 제대로 사랑도 못했으면서, 이제 자신 안에 그녀에 대한 사랑을 스스로 깨닫고서 하는 짓거리는 스토커 짓이다. 사흘 내내 여자 집앞에서 기다렸는데 여자를 만날 수 없자 '그녀는 그랑 동거를 하나보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와, 내가 여자였으면 무서워서 울었을 뻔. 이 작가의 전작 [아침의 첫햇살]을 읽을 때는, 어쩌면 남자 작가가 이렇게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잘 그렸을까, 감탄했던 기억이 나는데, 남자는 병신으로 그려놨네. 게다가 마지막에 우연히 옛 연인을 마트에서 마주치고 자신의 집으로 가서 아이스크림 먹자고 조를 때부터 뭔가 짜증났는데, 그 집에 가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집에 돌아가겠다는 여자에게 나는 언제나 너만을 사랑했다가 졸 고백한다. 너무 무서웠다. 여자는 자신이 곧 결혼을 할거고, 너의 이 고백은 너무 늦었다고 하는데, 남자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오천번 얘기하고, 그녀에게 키스를 시도한다. 여자도 키스를 거부하지 않아 그들은 섹스에 이르게 되는데, 여자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계속 애원하고, 여자가 말해주지 않자 뺨을 때린다.


막판에 토나오는 이야기였어..



"날 보내줘……."

"날 사랑한다고 얘기해."

"그만해. 날 내버려둬. 난 네가 미워. 밉다고 그랬잖아."

나는 그녀의 뺨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사랑한다고 말해."

"그만해……. 난 널 사랑하지 않아. 난 네가 미워."

나는 다시 그녀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그녀의 다리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따귀를 날렸다.

"다리 벌려."

"제발 그러지 마!"

또 한 번 따귀가 날아가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어느 순간엔가 그녀가 저항을 포기했다. (p.380)



결국 여자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참..좋기도 하겠다. 뺨을 날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서.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 사랑하는 동안 충분히 노력했었고,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었다. 그러나 남자는 그녀를 붙잡지도 않았었다. 이제 다른 사람과 살겠다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 그녀를, 한달반뒤에 결혼하겠다는 그녀를, 집에 보내는 대신 나는 너를 사랑해, 너도 나를 사랑하잖아, 윽박지르는 새끼를 보노라니.. 진짜 구역질이 난다. 참, 이걸 뭘 보자고 끝까지 읽었나 싶다. 다른 남자랑 결혼하겠다는 여자한테 계속 자기랑 살자고 말하는 남자라니...있을 때 잘할것이지....... 어휴.. 왜 남자랑 연애를 하는 것도 힘들고 헤어진 뒤에도 힘들어야 되는걸까. 헤어진 뒤에도 이렇게 다른 남자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아니 아니까 더 미쳐가지고, 연락하고 찾아가고 기다리고 .. 게다가 사랑한다고 울부짖고 너도 나를 사랑하잖아, 같이 살자, 이런 얘기를 하는 남자라니.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야?


뺨까지 때린 남자가 또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떻게 아나, 여자가 집으로 돌아가 접근금지 명령 같은 거 신청하고 스토커라고 경찰에 신고했으면 좋겠다. 개새끼. 헤어지고 나서까지를 걱정해야 하다니. 아, 사는 거 너무 힘든 것 같다. 저런 놈을 사랑했었다니. 한숨만 난다.



기분이 너무 나빠서 오늘 먹을 스테이크랑 와인만 계속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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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6-06-17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친 ㅅㄲ 네요!
제가 읽고 욕했던 필용이 보다 몇배 더 썩은 놈

루쉰P 2016-06-1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짜증나 날도 더운데 짜증나 토욜인데도 알바하고 있느데 짜증나 ㅋ 정말 지저분한 새끼에요 제기랄 기분 더러워졌어 주성치를 생각해야지

singri 2016-06-1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ㄱㅅㄲ 네요 . 수박 18통 ㅡ
 
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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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사람을 보고 이야기꾼이라고 하는구나, 라고 나는 스티븐 킹의 이번 소설을 보면서 생각했다. 출근하면서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내릴 역을 놓칠뻔했다. 잠깐 싸한 기분에 고개를 들어보니 양재에서 문이 열려있더라. 오오, 잽싸게 책과 가방을 들고 후다다닥 지하철 출입문으로 향했고, 그 잠깐동안 '나는 문에 끼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해서 쫄았다. 그러나 문은 좀 오래 열려 있었고 나는 무사히 내렸다. 이게 다 스티븐 킹 때문이야! 라고, 스티븐 킹을 원망했다.


일전에 『돌로레스 클레이본』을 읽으면서도 '아 이래서 사람들이 스티븐 킹, 스티븐 킹 하는구나' 했더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왜 그의 소설이 그렇게나 많이 읽히는지,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겠더라. 이야기꾼이다, 천상 이야기꾼이야.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게다가 스티븐 킹은 쓸데 없는 얘기를 하지도 않는다. 이야기 구석구석 할 말을 깔아 놓았다. 이번 책, 『별도 없는 한밤에』는 총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하나같이 다 기가 막혔다.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쓰게 됐는지, 영감이 떠올랐던 한 순간의 장면이나 기사들을 소설의 끝에 써놓았는데, 어쩌면 이야기꾼이라는 건 타고나는 게 아닌가 싶더라.



<1922> 는 가장 처음에 실린 소설이다. 한 남자가 유산으로 많은 땅을 물려받은 아내와 의견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그런 아내한테 짜증이 나서 '아내를 죽인다'. 아내는 말하는 폼이 상스럽고 그래서 열네살의 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했다. 남편과 자주 싸웠다. 그리고 이 시골이 아닌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어했고, 남편은 이 시골에 머무르고 싶어했으며, 이에 자주 말다툼을 했고, 남편은 '아내를 죽였다'. 남편과 아내가 의견이 안맞아 싸웠는데, 남편이 아내를 죽였다. 그는 아들에게 '네 엄마를 죽이는 걸 도와달라'고 말했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엄마의 목에 칼을 댔다. 그리고 죽은 그녀를 집의 우물 안으로 던져버린다. 아내의 시체를 커다란 쥐가 와서 뜯어먹는 것까지 목격한다. 그가 아내를 죽인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고 그가 아내의 살해범으로 잡히진 않았지만, 아내를 죽인 그가 평온하게 잘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내를 죽인 후 그의 삶은 엉망진창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로 지독해진다. 어쩌면 그의 주변에 '여자를 죽인 남자'를 반드시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범죄가 감춰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내의 실종을 조사하러 온 마을의 보안관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자네도 이미 알겠지만, 나는 직감만 믿고 찾아온 게 아니야. 부부 사이의 문제야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지. 당연한 거 아닌가? 성서에도 나와 있잖아,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니 여자가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남편에게 배워야 한다고. 고린도전서 말씀이지. 성서가 내 보스라면 난 성서 말씀대로만 행할 거야. 그러면 인생도 참 단순해질 테니까." (p.85)



"자네도 알겠지만, 여자들하고는 가끔 입이 아니라 손으로 대화를 할 필요가 있어. 그래야 정신을 차리거든. 세상에는 흠씬 얻어터져야 고분고분해지는 여자들이 있어. 그러니 잘 생각해 봐." (p.95)



저런 보안관이 엄청나게 수사에 집중해 남편이 범인임을 알아냈다해도, 저런 분위기에서 남편에게 어떤 벌이 내려지게 됐을까? 그리고.. 성서에 정말 저렇게 나와있는 걸까?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고? 대체 어떤 남자들이 여자의 머리일까? 왜 성서는 그렇게 말했을까? 알면알수록 성서는 신기한 것 투성이구나. 언제 한 번 정독해봐야 겠다. 어쩐지 반박할만한 많은 문장들이 그 안에 있을 것만 같다. 


소설 속에 임신한 소녀가 등장하는데, 이 소녀는 이런 말을 한다.



"보면 알겠지만, 내가 문제가 좀 있거든. 난잡한 계집애라나 뭐라나! 남자 친구는 도망쳤어. 걔도 난잡한 사내놈인데, 그 자식 욕은 아무도 안 하는 거 있지! 그래서 우리 꼰대가 날 감옥에다 쳐넣은 거야, 거긴 펭귄들이 지키는 감옥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세상에! 꼰대가 누구겠어, 우리 아빠지! 펭귄은 수녀복 입은 할망구들이고!" (p.179)



남자와 여자가 섹스를 했는데 여자가 임신을 했고 남자가 도망쳤다. 여기서 왜 갇혀야 하고 난잡하다고 욕먹어야 할 게 그저 여자 뿐인걸까. 게다가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또다른 소녀 하나는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것도 있는, 밝은 미래를 꿈꿔왔는데, 임신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고 그 상황에 주저앉게 된다. 



섀넌은 눈보라 속으로 간신히 몇 걸음을 옮기고 더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삼각법을 할 줄 알았던, 그래서 어쩌면 오마하 사범학교 최초의 여자 졸업생이 될 수도 있었던 그 소녀는, 어린 연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말했다.

"자기야, 나 더는 못가겠어. 땅에다 눕혀 줘."

"아기는 괜찮아?"

"아기는 벌써 죽었어. 나도 죽고 싶어. 아파서 더는 못 참겠어, 너무 아파서." (p.190)



남편이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일어나고, 그 모든 일들은 비극이다. 아내를 죽인 다음에야, 여러가지 불행들이 닥치고 또 닥친 다음에 '내가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해봐야, 아내는 이미 죽었다. 남편이 죽였다. 불행한 사건들만 닥쳐오는 게 아니라 남편 스스로도 불행해진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빅 드라이버>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죽인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여자는 남자와 다투었다거나 남자가 자신을 화나게 했더나거 자신을 무시해서 충동적으로 죽인 게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살해한 남자를 죽인다. 강간범은 여자를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여자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강간범이 자신의 시체를 던져 버린 곳에서, 그녀는 깨어나,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들의 시체가 그 곳에 더 있음을 자신의 눈으로 보게 되고, 만약 그 강간범을 살려둔다면, 이 곳에서 다른 여자들이 또 강간당하고 살해당할 것이라는 걸 짐작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강간당한 여자임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뉴욕 포스트》같이 저속한 신문들은 테스의 10년 전 사진을, 즉 뜨개질 클럽 시리즈가 처음 출간될 무렵의 사진을 실을 것이 뻔했다. 그때 테스는 이십대 후반이었기에 짙은 금발 머리를 길게 길렀고, 미끈한 다리를 뽐내려고 짧은 치마를 즐겨 입었다. 게다가 그 시절에는 저녁에 외출할 일이 있으면 뒤꿈치 부분이 끈으로 된 하이힐을 신곤 했는데 어떤 남자들은 그 구두를 '남자 꼬시는 신발'이라고 불렀다(물론 그 거인도 예외일 리 없었다.). 테스가 이제는 나이를 열 살이나 더 먹었고 몸무게도 9킬로그램이나 늘었고, 성폭행을 당할 때 거의 촌스러울 정도로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다는 사실 따위는 신문에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런 세부 사항은 삼류 신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기사의 문장 자체는 점잖을지도 모르지만(행간에는 선정적인 분위기를 살짝 흘릴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함께 실린 테스의 젊은 시절 사진에서 진짜 이야기를 읽을 것이다. 아마도 인류가 바퀴를 발명하기도 전에 만들어졌을 이야기를. 여자가 야하게 하고 다녔네……당해도 싸지, 뭐. (p.271-272)




그래서 경찰에 신고를 하진 않으려고 했는데, 그냥 뒀다가는 또 다른 여자들이 강간당하고 살해당할 걸 생각하니 그대로 둘 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여자는 강.간.범.을 죽인다'.


몇차례나 강간당하고 두드려맞고 스스로도 죽었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깨어난 여자는,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온 몸의 힘을 끌어모은다. 



또다시 의식이 흐려지려고 하자 테스는 손으로 자기 뺨을 후려쳤다. 일단 집에만 도착하면, 프리츠에게 밥을 주고 침대에 눕기만 하면(문을 모조리 잠그고 불을 모조리 켠 후에), 기절 같은 건 원 없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럴 수 없었다. 결코, 절대로, 맹세코. 당장은 계속 걸어야 했고, 차가 다가오면 숨어야 했다. (p.268)



아.. 몇 번이나 기절하고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면서 그녀가 하는 생각이라는 것이, 집에 돌아가서 고양이 밥을 줘야 한다는 거였다. 아, 이 여자들은 정말 얼마나 위대한지. 자신의 고통과 아픔과 두려움앞에 다른 존재를 걱정하고 염려한다. 남자가 무참하게 여자를 짓밟을 때, 여자는 그 상황에서도 다른 존재를 신경 쓴다. 자신이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할까봐 걱정되는 존재를. 아아 진짜.. ㅠㅠ 눈물이 난다. 


또한 이 소설에서 스티븐 킹은 강간당한 여자가 테스 하나뿐만이 아님을 말한다. 많은 여자들이, 대부분의 여자들이 강간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그녀의 복수를 알고도 입을 다물어준 조력자 역시 십대시절에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의붓아버지에게 여러차례. 얻어 터지고 맞고 강간을 당한 피해자들이 그것을 바깥으로 드러낼 수 없이 살아간다.



사람들은 두들겨 맞은 여자를 우습게 봤다. 특히 금요일 밤에는 더더욱. 아가씨, 누구한테 그렇게 얻어터진 거야? 뭘 잘못했길래? 남자한테 그 정도로 얻어터졌으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정도는 알 거 아니야?

그 생각을 하니 오래전 어디선가 들었던 농담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해마다 30만 명이나 되는 여자들이 얻어터지는 이유가 뭔지 알아? 왜냐면 여자들이……도대체가 …… 말을 들어 처먹질 않거든! (p.281)



그래서 여자는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강간범을 응징한다. 어두운 물속에서 썩어간 다른 여자들의 시체를 생각하며 그녀는 그 모두의 복수를 하면서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성폭행을 막았다. 만약 내가 그녀의 복수를 알았다면, 그래서 그녀가 남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 역시 그녀가 사람을 죽였다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세상에 성폭행범만 골라서 응징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성폭행 하지마, 강간하지마, 라는 말을 들을 생각도 안하는 남자들이라니 직접적으로 두려움을 안겨주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강남역에 포스트잇 붙이는 걸로 그렇게 빼애액 해대는 남자들이라니, 남자들은 도대체가 말을 들어 처먹질 않으니, 강간하고 살해하면 얼마만큼 처절한 응징을 당하는지를 몸소 보여줘야, 그때야 비로소 말을 들어 처먹질 않을까.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여자는 결혼 후 27년이 지난 다음에야, 남편이 범죄자 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도 여러차례 여자들을 강간하고 죽인 바로 그 연쇄살인범임을. 27년간 사이좋게 살아왔고 둘 사이엔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아들과 결혼을 앞둔 딸이 있다. 아내가 자신이 연쇄살인범임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남편도 안다. 내 앞에 앉은 이 남자가, 이제 드러났으니 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 알려줄게, 라고 말하는 이 남자가, 나랑 27년간 함께 살아왔던 남자라는 사실에 여자는 앞이 깜깜해진다. 이걸 어쩌나 싶다. 경찰에 신고하게 되면 남편 말대로 자식들의 미래에 큰 장애가 될 것이다. 아이들이 평생을 강간살인범의 자식으로 살아야 한다. 직업도, 결혼도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러니 경찰에 신고할 수가 없다. 일단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남편과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살겠다고 남편에게 다짐하긴 했지만, 그녀로서는 무.섭.다. 남편은 여자에게 사랑한다 말하지만, 여자가 그를 사랑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여자는 무섭다. 아내는 무섭다. 이 남자가 자신의 두려움을 눈치채고 언제고 자신을 죽일까봐 무섭다. 이 상황이 너무 답답했는데, 나는 계속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정체를 차마 밝힐 수는 없고, 그래서 경찰에 신고할 순 없고, 그런데 이 남자가 나를 언제 죽일지 몰라 너무나 무섭고...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도망쳐야 할까? 도망치면? 그 다음은?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겐 아빠로부터 도망친 원인을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이들에게 말도 하지 않고 다른 나라로 떠나버릴까? 남편이 아내를 찾아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를 보면 멀리 도망친 아내를 기어코 찾아내서 죽이는 남편도 나오던데,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잖은가. 


그러자 어쩔 수 없는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아내가 되었고, 여기에서 기어코 벗어나서 남은 삶을 살아내야 했으니, 도망치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걸로는 답이 나오질 않으니, 어느 순간, '죽이자' 라는 생각이 든거다. 이 남자를 죽여야 한다. 이 남자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고, 다른 여자들이 죽는다. 죽이는 게 답이다. 그러자 또다시 『이웃집 살인마』에서 본 구절이 떠올랐다.



남성들이 자신을 버린 배우자를 살해한 반면, 여성들은 살인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될 만큼 심하게 자신을 격리하고 학대하며 위협한 배우자를 살해했다. (이웃집 살인마, p.174) 


간략히 말해,여성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살인의 주된 동기는 자기 보호와 위험한 결혼으로부터 도망치려는 필사적인 욕망이다. (이웃집 살인마, p.171)



스티븐 킹이 써놓은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남자들은 자신의 기분을 거스른다고 여자들을 죽이고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여자들을 죽인다. 그러나 여자들은,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다른 여자들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 남자를 죽인다. 


스티븐 킹이 이런 얘기를 해주어 얼마나 다행인가 했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사건이 왜 일어나는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이렇게 지명도 있는 '남자'가 이런 얘기를 해주다니. 곳곳에서 여자들이 얼마나 차별을 받고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으니까. 똑똑하고 많이 배웠다는 남자들이 종종 여자들에게 '더 넓게보라'고 훈장질 해대는 걸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왔는가. 고종석과 김광진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는데, 스티븐 킹은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 스티븐 킹은 다르다. 훈장질 하려는 남자가 아니다. 그는 알고 있다. 현실이 여자에게 어떤지를. 『돌로레스 클레이본』에서도 스티븐 킹은, 여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못된 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가끔은 살아남기 위해서 거만하고 못된 년이 되어야 해. 가끔은 여자가 자기를 지탱하기 위해 못된 년이 되는 수밖에 없어.˝ (돌로레스 클레이본, p.212)



스티븐 킹이 우리 편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든든해졌다. 세상에 훈장질 하는 남자들과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것은 기쁘다. 우리는 두렵고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소리치는 약자들의 편에 서는 것은 편가르기가 아니다.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도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스티븐 킹이 원하는 것도 지금보다 나은 세계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이 고마웠고, 또 다행스러웠다. 앞으로도 계속 스티븐 킹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완벽하고 재미있는 소설에서 별 하나를 뺀 건, 이 소설을 다 읽고 자던 밤, 악몽을 꿨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위도 눌렸어. 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제일 처음의 단편 <1922>는 건너 뛰는 게 좋을 것 같다. 스티븐 킹을 다 읽고 자니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렸다고 말하자,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남동생은 내게 말했다.


"스티븐 킹 읽고 자면 안돼.."



스티븐 킹을 읽고 자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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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6-05-2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었을때 왜 번역을 안해주지 했어요. 지금이라도 번역해주어 얼마나 반갑던지...^^
그나마 스티븐킹이 예전보다 한국에 인지도가 높아져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냥 재미있다라고만 표현할줄 모르는데, 역시 다락방님 글은 스티븐 킹의 글만큼이나 재미있어요~~~^^

다락방 2016-05-23 16:29   좋아요 0 | URL
이 책 너무나 재미있었어요, 보슬비님. 스티븐 킹이 괜히 킹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인지도가 높아지는 게 당연한 작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가 다른 소설들에서는 어떤 얘기를 했는지 막 궁금해지더라고요.

히힛. 재미있다고 해주시니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열심히 읽고 열심히 써야겠다고 다집해봅니다. 불끈!!

에이바 2016-05-24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1922에서는 발등 위를 타고 오르는 음습한 어둠을 느꼈는데 몇 번이나 구역질이 일더라고요. 대단한 사람 무서운 사람... 다락방님 혹시 타란티노 데쓰프루프 보셨어요? 빅 드라이버 보고 나니까 그 영화 생각 나더라고요.

다락방 2016-05-25 08:50   좋아요 1 | URL
아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스티븐 킹 아저씨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도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해줘서 참 좋더라고요. 데쓰프루프는 안봤어요. 빅 드라이버는 참 좋았어요. 결국 다 죽여버리는 게 좋았어요. 죽여버리는 게 더 좋다는 말은 참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빅 드라이버가 살아서 다른 여자들을 또 강간할 걸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한 거에요. 어휴.. 저는 <행복한 결혼생활>도 너무 무서웠지만 그런 의미에서 좋더라고요. 내가 아내의 입장이라면..하고 해결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결국 죽이는 것 밖에 답이 나오질 않았어요. 스티븐 킹을 죄다 읽어봐야겠어요. 어떤건 특히 더 무섭겠지만요 ㅠㅠ

버벌 2016-06-07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티븐킹을 너무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다치지 않고 오래오래 계셨으면 해요. 최근에 스티븐킹의 it이 영화화 된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입니다아~~ 아마도 내년이후에 개봉이겠지만요. ㅜㅠ

다락방 2016-06-10 13:40   좋아요 1 | URL
아아, it 도 읽어봐야겠는데 말입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하나씩 차례대로 다 읽어봐야겠어요. 킹 아저씨 짱이에요 ㅠㅠ
 
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 테드북스 TED Books 3
해나 프라이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돈 많고 잘생기고 키도 크고 다정하며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한국남자만을 내 연인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연애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그러나 외모엔 크게 신경쓰지 않고 예의 있는 남자를 원하며 인종과 국적 나이도 별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이 연애할 확률은 전자보다 크다. 이건 똑똑해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는 거다. 조건이 많을수록 그 조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거니까. 그렇다고 아무나 다 괜찮다, 하는 건 아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나는 나와 사이좋게 지낼 사람을 찾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것이다. 


또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다정하게 대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확률도 크다.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를'바라는 것보다 말이다. 나는 십오년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하지만, 그 안에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는 빌딩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누군가로부터 '이 빌딩에서 당신이 제일 예뻐요' 같은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벤치에 앉아있어보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도 가보았지만, 여행지에서의 로맨스 같은 것도 생기질 않았다. 아무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무도... 

그러나 나는, 내가 좋아해서 계속 좋아한다고 말한 상대와는 불타는 연애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너무 좋아해서 팔짝팔짝 뛰고 좋다좋다 이천오백번쯤 말했더니 어느 순간 그도 나를 좋아하고 있더라.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는 좀더 다정해져야 했고,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혹여라도 상대에게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될까봐 신경을 썼고,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했다면 바로 사과했다. 나는 상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기분에 내내 신경썼던 거다. 그래서 나는 그 연애를 그전의 연애보다 더 오래 끌고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상대가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기를 바라지 않고, 너무 좋다면 먼저 다가가서 관계를 시작하려하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내 신경을 쓴다면, 연애는 시작되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내가 그간 연애와 이별을 반복하면서, 그리고 그간의 시간들을 지내오면서 저절로 터득한 것들이다. 내가 깨달은 연애와 이별에 대한 것들이 유별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연애에 대해서 이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아주 많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역시 연애를 시작하고 끝내고 또다른 연애를 시작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중 일부는 원하는 상대와 함께 살고 있기도 할 것이고.



이 책, 『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은, 내가 위에 했던 얘기를 똑같이 한다. 이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그러나 수학적으로. 책장을 넘기다보면 이 당연한 얘기들을 하는데 확률이 나오고 그래프가 나오고 방정식이 나온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들은, 수학적 공식 앞에 더 설득력을 갖는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방정식에는 당연히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대입되는 모든 것들에 '행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자는 알고 있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숫자 대신 사람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수학적인 증명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이 책에 쓰여진 것들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이 나에게 딱히 쓸모는 없었다. 게다가 책 뒷부분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을 어떻게 앉혀야 하는지를 얘기하는 부분은 특히나 더 필요없었고, 그러나, 분명, 이 책은 어떤 사람들에게 반드시 읽어야할 책일 것이다. '왜 나는 연애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애인이 안생길까' 같은 생각으로 괴로운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연애를 하기 위한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으면서 '아 너무나 외로워 연애하고 싶다'만 하루종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남자든 여자든, 방 안에 가만히 혼자 앉아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만 강하게 한다고 해서 연애가 되는 게 아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움직여야 되는 거다. 내가 움직여야 우주도 나에게 반응한다. 일단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곳에 가서 나를 드러내는 게 우선이다. 그건 지하철이나 버스를 하루종일 타고 있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비행기 안에서 재벌2세인 남자나 여자를 만날 확률은 실상 제로에 가깝다. 


매일 출퇴근하거나 등하교하는 곳에 이성이 별로 없다면, 동아리에 들거나 동호회에 나가든가 소개팅이나 미팅을 해야 한다. 직접적인 액션이 싫다면 자기계발을 위해 어학 공부나 댄스 공부등등의 학원을 다니는 것도 괜찮겠다. 그러니까 일단 누군가를 만나야 뭔가 될 게 아닌가. 로또를 사지도 않고 당첨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가 눈앞에 있다 싶으면, 혼자서 좋다좋다 초능력으로 세뇌할 생각하지 말고, 가서 말을 걸어야 한다. 이런 건 그냥 너무나 당연한 거다. 



이 책의 저자 '해나 프라이'는 수학을 사랑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학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해 가끔은 흥분한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런 책을 굳이 쓴 까닭은, 사람들이 까다롭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수학을 조금 더 쉽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수학 너무 좋아, 수학 진짜 황홀한 거야, 얼마나 황홀한지 내가 알려줄게, 하는 뉘앙스가 계속 풍긴다. 그래서 너무나 기분이 좋다. 이 당연한 것들을 얘기하는 이유가, 그녀가 사랑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라서. 자신이 느끼는 사랑과 흥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그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물론, 그렇게 쓰여진 이 책이 '연애를 하고 싶지만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귀엽다는 생각을 마흔번쯤 한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책을 사랑해서, 그걸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재미를 알려주고 싶다. 아우, 이 좋은 거, 왜 몰라, 이거 정말 좋단 말이야, 하는 기분. 해나 프라이에겐 그것이 수학이었다. 수학 진짜 좋단 말이야, 수학 진짜 짱이야, 이거봐, 이렇게 사랑에 대한 것도 다 증명할 수 있잖아, 하면서. 음.. 그렇다면 나도 귀여운걸까?


무언가 강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랑하는 것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보는 것은 너무나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내가 사랑하므로 너도 사랑해야해! 라는 강압적인 뉘앙스가 아니라, 아, 이거 정말 좋단 말이야,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게 진짜 좋다. 내내 웃음이 난다. 


뭐가됐든, 역시 사랑이 답인가....

그러나 이 수많은 확장 형태나 사례에서도 근본적인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가끔씩 맞닥뜨리게 되는 민망한 거절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앉아서 다른 사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먼저 다가가는 편이 낫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마음에 드는 이에게 다가가길. 그리고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길. 수학이 증명하고 있으니까. (p.66-67)

기간이 짧든 길든 싱글로 지내본 사람들이라면 특별한 인연을 찾는 일이 가끔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난제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몇 년 동안 연속해서 따분한 남자들이나 정신 나간 여자들과 연애를 하다보면 좌절하고 실망하며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반드시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싱글로 지내온 피터 배커스라는 수학자는 2010년에 자신과 데이트를 할 잠재적인 여자친구의 수보다 은하계에 존재하는 지적인 외계 문명의 수가 더 많다는 계산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p.15-16)

"사랑은 한 여성과 다른 여성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p.28)

개인적인 취향과 선호도 목록은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검색 결과를 걸러내기에 이상적인 요소다. 그러나 약 80년에 걸쳐 인간관계를 연구해온 과학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개인의 데이터를 사용해서는 커플이 얼마나 잘 어울릴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p.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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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05-13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처럼 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을 잘 알려줄 것 같네요ㅎ

다락방 2016-05-13 08:49   좋아요 0 | URL
재미있었어요. 방정식하고 그래프 나올 때는 역시나 멘붕이 올 것 같아 건너뛰었지만.. -_-

웽스북스 2016-05-13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연애할 일 없(어야하)는 유부녀는 읽을까요 말까요?

다락방 2016-05-13 09:00   좋아요 0 | URL
귀여운 소품같은 책이라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뭣보다 작가가 수학에 대해 흥분하는 게 초귀여움 ㅋㅋ 그렇지만 이 책의 내용상으로 보면 웽님은 이미 다 터득한 것들입니다. 성숙한 여자니까요.. ㅎㅎㅎㅎㅎ

수퍼남매맘 2016-05-13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딸에게 읽히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중3이 읽어도 될 만한 책일까요? (수위가 걱정되어서)

다락방 2016-05-13 23:13   좋아요 0 | URL
수위 걱정은 전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읽게하셔요!!
 
그가 그립다 -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유시민.조국.신경림 외 지음 / 생각의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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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모든 글들이 다 좋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몇몇 글들만이 좋았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글, 이 책을 읽고자 했던 나의 의도에 부합했던 글은 '정주영', '신충진', 그리고 '노항래'의 글이었다. 정주영(전속 이발사)과 신충진(전 청와대 요리사)이 가까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시간을 회고해서 울림을 주었다면, 노항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뒤에, 스스로 싸움을 지속해 나간 것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노항래는 검찰청에 있을 노 전대통령을 작게나마 위로하고자 검찰청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경찰들에게 잡혀갔고 다음날 풀려났는데, 다음해에 집시법 위반으로 30만원의 벌금을 내라며 검찰이 기소를 한거다. 이에 노항래는 정식재판을 청구한다. 



재판을 받으며 나는 거듭 "그날 '집회'에 참석한 바 없다."라고 주장했다.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고, 주관적으로 집회에 참석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나는 그냥 팬클럽 회원 같은 사람이었다. 이런 주장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검찰을 비난했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세력이…….", "석고대죄 드려야 할 집단인데…….", 뭐 이런 주장들이었다. 이런 말을 내뱉으면 공판검사는 제지하려 하고 판사는 흥분하지 마시라고 훈계했다. 그러나 나는 공판 때마다 거듭 검찰을 비난했다. 그것이 내가 내 수고를 스스로 위안받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p.214-215)



30만원의 벌금을 내는 것이 재판을 청구하고 재판을 받는 것보다 훨씬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신 싸움을 택한다. 2심 판결에서 벌금은 10만원까지 내려갔지만,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아내고 싶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30만원 내고말지' 할 일에 맞닥뜨렸을 때, 그는 두 해동안 그 재판을 받는다. 그는 이 과정을 스스로 '이건 내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의로운 항거'(p.216) 라고 명명하는데, 나는 이 일을 대하는 그의 고집이 무척 좋았다. 이런 고집이 더 많아져야 된다고도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알게되고 그리워하게 된 것은, 그의 서거 직후가 아니라 지금이다. 나는 무지했고, 무관심했으므로, 그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를 지내고 박근혜정부를 보내고 있는 지금,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자꾸만 언급되는 노무현을 알고 싶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이제는 잘 알것 같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잃은 건지도. 그리고 그의 살아생전 그를 알지 못했던 나도 그가 그립다.






저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자폐증에 걸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작은 커뮤니티 안에 웅그린 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또한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지 않기를 빌며 조용히 엎드려 살아야지 했습니다. 그 변명의 끝에는 항상 이런 문장이 있었죠. 나는 소심하니까, 나는 겁이 많으니까. 하지만 `겁 많고 소심하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자기변명 속에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남보다 더 잘 상처받고, 남보다 더 자주 겁에 질리는 저 같은 사람에게야말로 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세상이 무서울 때마다, 사람들이 무서울 대마다, 더 깊이 저만의 누에고치 속으로 숨었던 저는 잊고 있었지요. 겁 많고 소심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민주주의,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 지켜야 할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 저는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 내기 위해 아주 작은 용기부터 내 볼 작정입니다. (정여울, p.20-21)

우여곡절 끝에 당신은 대통령 후보가 되셨고 이때는 저도 이발사로서 당신에게 도움을 준 것 같아 무척 기뻤답니다. 그리고 진짜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그 이틑날 오셔서 "사장님 덕분에 됐습니다."라고 하셨을 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져 본 감정 중에 감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처음 느껴 본 순간이었습니다. (정주영, p.107)

"선거철이 되면 `이번에는 누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자리가 나오잖아예. 그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예. 옛날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말하더라. 우리도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면 투표를 잘해야 한다. 그러면 내 자식이 좀 수월케 살고 내 손자가 수월케 산다 하더라. 그러니까 앞에 있는 것만 보지 말고, 정치인 싫어서 투표 안 한다 하지 말고 먼 날을 생각해서 조금 더 좋은 사람에게 투표하러 가야 한다. 그렇게 말을 하고 싶습니다." (김상철, p.121)

그녀와 나는 부부이고 매우 친한 사이지만 함께 살지는 않는다. 바퀴벌레처럼 엉켜 사는 것이 피차 취향에 맞지 않아서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자 우리는 거처를 따로 두기로 결정했다. 나는 `작업실`이라는 공간에서 밥 해 먹으면서 따로 산다. 주말이면 아내와 아이가 사는 집에서 가족 상봉을 하는데 날마다 비비적대는 것보다 낫거니 싶은 때가 많다. 서로 반가워하니까. (김갑수, p.140)

토론은 길어졌다. 그리고 찬성 일곱 표, 반대 두 표로 반전 의견서를 채택했다. 당연히 파란이 일었다. 민주당 여러 의원이 인권위원회를 비난했다. 다음 날 <동아일보>는 의견서 채택 과정을 자세히, 그리고 가장 크게 보도했다. 나는 책임을 추궁당할 것을 각오했다.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여기저기 방송에도 나가 반전 의견서의 내용을 되풀이했다.
"가령 큰 댐을 건설하려고 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적극 추진하겠지만 환경부는 반대할 수도 있지 않나요? 인권위는 헌법 가치를 지키고자 합니다."
한바탕 회오리를 각오하고 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예상 외 반응에 크게 허를 찔리고 말았다. 그는 평상시 어조로 지극히 낮게 말했다.
"인권위원회, 그런 일 하라고 있는 거 아닙니까?" (유시춘, p.168)

제가 3년간 국정원 안에 설치된 위원회에서 일했기 때문에 잘 압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단 한 번도 국정원을 자신의 개인적 이해 때문에 이용한 일이 없습니다. 대통령과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관계로 본다면 더할 수 없이 바람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관계라 한다면 양측의 손발이 맞아야 하는데 대통령만 그랬지, 국정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을 변하게 하려면 제도의 개혁과 사람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해외 정보와 국내 정보의 분리, 대공 수사권 폐지와 같은 제도 개혁의 중요성을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기에 사람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은, 그리고 그가 지휘했던 과거 청산은 사람의 개혁에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한홍구,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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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도 괜찮을까?
게일 브랜다이스 외 지음, 정미현 옮김 / 문학테라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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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읽지 않았을 때는 유머도 없는 이 책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딱히 재미있는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에 더 집중하게 됐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아니 이렇게 다를 수도 있나, 하고 들여다보는 일에 내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거기에 있다. 결혼이 좋다 혹은 나쁘다, 라고 어느 한쪽으로 결정하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 이 책에 글을 쓴 이들은 각자의 결혼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 글은 행복과 안정감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불화하고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결혼을 한 번 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심지어 다섯번 이혼한 남자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다섯 번 이혼한 남자와 교제중인 여자는 다섯 번 결혼한 아버지의 딸이기도 하다. 또한 여성과 여성이 결혼해서 사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든든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굳이 책을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이 책에서 역시 근사한 동반자를 얻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난 뒤, 함께 살아가는 시간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말해준다. 누군가는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고 얘기하고 그때는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얘기한다. 다른 누군가는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얘기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경우들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알게됐는데, 그건 인간이 저마다 얼마나 다른 인간인지를 증명하는 바와 다름없다. 누군가에게는 아기가 절실해서 섹스가 단지 수단이 될 수있고, 누군가는 더 큰 쾌락을 위해서 성을 사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인간 둘이 만나 커플이 되었을 때 당연히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마찰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일 테다. 우리는 모두 기쁨이 다르고 괴로움이 다르고 고민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스무살에 결혼한 사람이 있고 쉰이 넘어서 양욱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 나이는 '앞으로 이걸 할 것이다' 라는 걸 단정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결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동거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으로의 내 미래에 어떤 일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무엇을 결정하든, 그 안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면, 그 결정을 한 이후 우리가 서로에게 다정하고 든든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앞으로 길어지게 된다면, 그때는 이 책의 누군가가 언급한것처럼 고독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주 부정적인 생각도 커다란 단점도, 반드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우리는 모두 다르니까,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해결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내가 바람을 폈을 때 한 번 뿐이니까 흔들릴 수 없다고 결심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도 인상깊고, 남편은 러시아에 살고 자신은 미국에 살면서 일년에 반 정도만 만날 수 있는 커플의 이야기도 인상깊다.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낯설었는데, 그래서 좋았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독서였다. 읽기를 잘했다. 그러니까 뭐랄까, 이별과 고통에 관련된 이야기도 많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일종의 희망 같은 것이 내게 자라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 지 10년이 넘었다. 그 옛날 언젠가 나는 그에게 내 번호를 적어 주었다. 그가 전화를 걸었다. 나는 뭘 하느냐고 물었다. "저녁 만드는 중."이라고 그가 대답했다. "파이 굽고 있어. 버섯 치즈 파이." 나는 파이 굽는 남자를 원했다. 그가 해동하고 있는 게 실은 그의 어머니가 만든 파이였다는 걸 알게 됐을 땐 이미 우린 셔츠를 같이 입는 사이가 된 후였다. (펀 쿠퍼,p.55)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는 그녀의 고운 마음씨를 가장 높이 산다. 그녀가 자기 엄마한테 휴가가 꼭 필요하다면서 이번에 휴가 보내드린다는 얘기를 하거나 도시의 보행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법률 제정에 애쓴다는 얘기를 할 때면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 세포 하나하나가 사랑에 겨워 팔딱대는 기분을 느낀다. 내 연애사를 차지한 몇 번의 기나긴 짝사랑을 거친 뒤 정말 굉장한 누군가를 만났는데 이번엔 내가 그 사람과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늘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이 결혼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할 생각이다. (린다수전 울리히, p.131)

나는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단순히 이번 한 번의 실수로 우리 둘 사이를 규정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의 역사에 포함되는 이 한 조각에 비한다면 지금껏 쌓아온 우리의 관계는 더 크고 깊고 중요하다. 살다가 어느 시점에 혹시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할지라도, 그게 싫다고 마냥 이상적인 다른 누군가와 함께 그림책에 나올 법한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진 않다. 나한테는 에밀리가 필요하다. 음정이 안 맞지만 열심히 노래 부르는 모습, 바겐세일에 목숨 거는 모습, 사용설명서 독해 장애는 아닌가 의심되는 헐렁한 모습, 심지어 나를 상처 입히는 능력까지 나는 다 원한다. 왜냐하면 그런 모습이 그녀의 아찔한 미소와 영성, 총명함, 열정, 그리고 우리의 깊은 유대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을 함께하겠다고 내가 선택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아주 잘. (린다수전 울리히, p.140-141)

지난 1년 반 동안 나는 딸과 함께 코네티컷에서 지냈다. 나는 거기서 글을 쓰고 근처 대학 두 곳에서 강의를 할 수 있어서 좋다. 더군다나 내가 소중히 여기는 뉴잉글랜드식 가치관을 지닌 나의 부모님, 그러니까 딸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가까이 살면서 내 아이를 키울 수 있다. 댄은 그의 주 거처를 모스크바로 삼기로 했다. 자기 일에 진심으로 매진할 수 있는 곳이 거기니까. 딸의 방학 기간과 우리 부부의 각자 작업 일정을 요리조리 맞춰서 우리 가족은 1년에 반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
댄은 사랑하는 이들과 부대끼고 사는 일상을 그리워한다. 나는 매일 감당해야 하는 자녀 양육의 책임을 나눌 사람이 절실할 때가 많다. 우리 딸은 확연히 다른 두 문화를 접하는 혜택을 누리지만 일상의 연속성이 끊기는 경험을 자주 해서 힘들어하기도 한다. 양쪽 집안 모두 우리 가족의 삶을 지지해줘서 참 다행이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살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만족스럽다. 좀 희한한 방식이긴 해도 우리 부부는 마침내 결혼 생활에서 평등을 이뤄 냈다. (팡 메이 나타샤 창, p.188-189)

나는 결혼 경험이 많다. 말하자면 꾸준히 배필을 물색하는 연속일부일처주의자(*일정 기간마다 배우자를 바꾸는 연속 단혼의 결혼 형태를 유지하는 사람)이다. 인간이 욕정부터 죽음까지 같이 짊어지고 갈 수 있다고 꾸역꾸역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조이스 톰슨,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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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2-17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표지에 한껏 끌리네요. 다락방님 리뷰 읽고나니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던지고 바로 읽고 싶네요^^

밑줄문장도 좋아요~~ 그건 냉동파이였고 우리는 이미 ㅎㅎㅎ

다락방 2016-02-17 16:52   좋아요 1 | URL
이미 가정을 이룬, 혹은 이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분명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걸 들었다고 해서 제가 더 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다른 방식으로 살고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음, 제가 `이렇게 사는 건 어떨까` 하고 혼자 생각하던 게 있었는데, 그렇게 사는 사람이 실제로 있어서 참 희망차게 여겨졌어요. 으하하하핫.


밑줄긋기는 몇 개 추가했습니다.

mira 2016-02-17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생에는 남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책 읽고 희망을 가져볼까요 ㅎㅎ

다락방 2016-02-17 16:52   좋아요 1 | URL
미라님은 희망을 가지시게 될지 혹은 역시 없어 없어, 하시게 될지 모르겠어요. 사실 결혼하고나서 우울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나오거든요. 행복했든 우울했든 그리고 이미 끝나버렸든 계속 진행중이든, 미이 해보았던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읽는 것은 제게 유익했습니다. 흣 :)

[그장소] 2016-02-17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읽고 싶어요.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드네요.^^
남자도 필요하지만 역시 ㅡ다함께 책임을 나누고 함께 행복할 가족이란 단위가 필요하구나..가끔은 생각해요.
그런데 일반적 가정은 아니예요.
제가 꿈꾸는 가정은요..파괴적인 가정이랄까..지금으로썬.ㅎㅎㅎ

다락방 2016-02-18 09:43   좋아요 1 | URL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파괴적 가정에 대해 조금쯤 짐작이 되네요. 가족이란 게 구성원들 사이엔 가장 친밀함을 나눌 수 있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구속력이 어마어마하기도 하죠. 또한 타인에게 가장 배타적인 집단이기도 하고요. 일전에 [준벅]이란 영화를 보면서 그런 걸 느꼈거든요. 아, 가족이란 게 이렇게나 배타적이구나, 하고요. 그러니 그장소님이 생각하신 파괴적인 가정이란 건, 제게는 긍정적으로 다가옵니다. 하핫

[그장소] 2016-02-18 16:21   좋아요 0 | URL
베타 ㅡ적이고 말고요. 그래서 집안 일 이라며
공공연한 폭력이 자행되기도 하는 집단이기도 하고 말예요.
뭐, 같은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아마도 비슷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ㅡ합니다.
구상은 ㅡ^^ 다락방 님과..
멋진 ㅡ신세계 ㅡ랄까..
아님 막장 신세계랄까..ㅎㅎㅎ

네꼬 2016-02-1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좋습니다. 다락님 글이 좋아요.

저 역시 희망을 가져보았고 그게 저를 결혼하게 만들었어요. 누구나 다른 종류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락님 좋아요.


다락방 2016-02-18 15:37   좋아요 1 | URL
저는 계속 혼자 생각하던 게 있었는데, 이 책에 제가 생각하는대로 사는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 음.. 좋았어요. 그래, 거봐, 이렇게 살 수 있잖아,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고통과 배신 체념등으로 결국 돌아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았는데도 희망적인 느낌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좋았어요. 헷.

오늘 네꼬님 글 되게 좋았어요. 제가 좋게 읽은 책을 네꼬님도 좋게 읽어서 막 신나고 뿌듯하고 그랬어요. 게다가 네꼬님은 글을 참 재미있게 써서, 아 참 좋으네, 하면서 읽었어요. 고마워요. 히죽히죽 ^_____^

moonnight 2016-02-18 17:36   좋아요 0 | URL
와 다락방님 글도 좋고 네꼬님 댓글도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저 역시 희망을 가져보았고 그게 저를 결혼하게 만들었어요. 라니요@_@;;;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희망을 가지길♡♡♡♡

다락방 2016-02-19 09:24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댓글도 좋아요. 알라딘에서 오래오래 문나잇님을 알고 지내는 거 참 만족스런 일중에 하나입니다. 히힛

네꼬 2016-02-19 17:26   좋아요 0 | URL
뭐죠 이 살랑이는 댓글의 물결. 달달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