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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 ㅣ 테드북스 TED Books 3
해나 프라이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돈 많고 잘생기고 키도 크고 다정하며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한국남자만을 내 연인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연애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그러나 외모엔 크게 신경쓰지 않고 예의 있는 남자를 원하며 인종과 국적 나이도 별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이 연애할 확률은 전자보다 크다. 이건 똑똑해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는 거다. 조건이 많을수록 그 조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거니까. 그렇다고 아무나 다 괜찮다, 하는 건 아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나는 나와 사이좋게 지낼 사람을 찾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것이다.
또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다정하게 대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확률도 크다.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를'바라는 것보다 말이다. 나는 십오년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 하지만, 그 안에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는 빌딩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누군가로부터 '이 빌딩에서 당신이 제일 예뻐요' 같은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벤치에 앉아있어보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도 가보았지만, 여행지에서의 로맨스 같은 것도 생기질 않았다. 아무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무도...
그러나 나는, 내가 좋아해서 계속 좋아한다고 말한 상대와는 불타는 연애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너무 좋아해서 팔짝팔짝 뛰고 좋다좋다 이천오백번쯤 말했더니 어느 순간 그도 나를 좋아하고 있더라.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는 좀더 다정해져야 했고,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혹여라도 상대에게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될까봐 신경을 썼고,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했다면 바로 사과했다. 나는 상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기분에 내내 신경썼던 거다. 그래서 나는 그 연애를 그전의 연애보다 더 오래 끌고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상대가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기를 바라지 않고, 너무 좋다면 먼저 다가가서 관계를 시작하려하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내 신경을 쓴다면, 연애는 시작되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내가 그간 연애와 이별을 반복하면서, 그리고 그간의 시간들을 지내오면서 저절로 터득한 것들이다. 내가 깨달은 연애와 이별에 대한 것들이 유별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연애에 대해서 이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아주 많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역시 연애를 시작하고 끝내고 또다른 연애를 시작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중 일부는 원하는 상대와 함께 살고 있기도 할 것이고.
이 책, 『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은, 내가 위에 했던 얘기를 똑같이 한다. 이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그러나 수학적으로. 책장을 넘기다보면 이 당연한 얘기들을 하는데 확률이 나오고 그래프가 나오고 방정식이 나온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들은, 수학적 공식 앞에 더 설득력을 갖는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방정식에는 당연히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대입되는 모든 것들에 '행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자는 알고 있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숫자 대신 사람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수학적인 증명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이 책에 쓰여진 것들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이 나에게 딱히 쓸모는 없었다. 게다가 책 뒷부분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을 어떻게 앉혀야 하는지를 얘기하는 부분은 특히나 더 필요없었고, 그러나, 분명, 이 책은 어떤 사람들에게 반드시 읽어야할 책일 것이다. '왜 나는 연애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애인이 안생길까' 같은 생각으로 괴로운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연애를 하기 위한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으면서 '아 너무나 외로워 연애하고 싶다'만 하루종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남자든 여자든, 방 안에 가만히 혼자 앉아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만 강하게 한다고 해서 연애가 되는 게 아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움직여야 되는 거다. 내가 움직여야 우주도 나에게 반응한다. 일단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곳에 가서 나를 드러내는 게 우선이다. 그건 지하철이나 버스를 하루종일 타고 있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비행기 안에서 재벌2세인 남자나 여자를 만날 확률은 실상 제로에 가깝다.
매일 출퇴근하거나 등하교하는 곳에 이성이 별로 없다면, 동아리에 들거나 동호회에 나가든가 소개팅이나 미팅을 해야 한다. 직접적인 액션이 싫다면 자기계발을 위해 어학 공부나 댄스 공부등등의 학원을 다니는 것도 괜찮겠다. 그러니까 일단 누군가를 만나야 뭔가 될 게 아닌가. 로또를 사지도 않고 당첨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가 눈앞에 있다 싶으면, 혼자서 좋다좋다 초능력으로 세뇌할 생각하지 말고, 가서 말을 걸어야 한다. 이런 건 그냥 너무나 당연한 거다.
이 책의 저자 '해나 프라이'는 수학을 사랑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학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해 가끔은 흥분한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런 책을 굳이 쓴 까닭은, 사람들이 까다롭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수학을 조금 더 쉽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수학 너무 좋아, 수학 진짜 황홀한 거야, 얼마나 황홀한지 내가 알려줄게, 하는 뉘앙스가 계속 풍긴다. 그래서 너무나 기분이 좋다. 이 당연한 것들을 얘기하는 이유가, 그녀가 사랑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라서. 자신이 느끼는 사랑과 흥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그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물론, 그렇게 쓰여진 이 책이 '연애를 하고 싶지만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귀엽다는 생각을 마흔번쯤 한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책을 사랑해서, 그걸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재미를 알려주고 싶다. 아우, 이 좋은 거, 왜 몰라, 이거 정말 좋단 말이야, 하는 기분. 해나 프라이에겐 그것이 수학이었다. 수학 진짜 좋단 말이야, 수학 진짜 짱이야, 이거봐, 이렇게 사랑에 대한 것도 다 증명할 수 있잖아, 하면서. 음.. 그렇다면 나도 귀여운걸까?
무언가 강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랑하는 것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보는 것은 너무나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내가 사랑하므로 너도 사랑해야해! 라는 강압적인 뉘앙스가 아니라, 아, 이거 정말 좋단 말이야,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게 진짜 좋다. 내내 웃음이 난다.
뭐가됐든, 역시 사랑이 답인가....
그러나 이 수많은 확장 형태나 사례에서도 근본적인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가끔씩 맞닥뜨리게 되는 민망한 거절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앉아서 다른 사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먼저 다가가는 편이 낫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마음에 드는 이에게 다가가길. 그리고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길. 수학이 증명하고 있으니까. (p.66-67)
기간이 짧든 길든 싱글로 지내본 사람들이라면 특별한 인연을 찾는 일이 가끔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난제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몇 년 동안 연속해서 따분한 남자들이나 정신 나간 여자들과 연애를 하다보면 좌절하고 실망하며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반드시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싱글로 지내온 피터 배커스라는 수학자는 2010년에 자신과 데이트를 할 잠재적인 여자친구의 수보다 은하계에 존재하는 지적인 외계 문명의 수가 더 많다는 계산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p.15-16)
"사랑은 한 여성과 다른 여성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p.28)
개인적인 취향과 선호도 목록은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검색 결과를 걸러내기에 이상적인 요소다. 그러나 약 80년에 걸쳐 인간관계를 연구해온 과학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개인의 데이터를 사용해서는 커플이 얼마나 잘 어울릴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p.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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