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망고같은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자기를 버리지 않고 키워준 것에 굉장히 감사하고 있다고, 버리지 않아줘서 감사하다고. 그 날 보았던 티비 프로그램에 한 연예인이 나왔는데 자신이 가진 그 감정에 대해 똑같이 이야기해서 그 생각이 났다는 거다. 나랑 같은 마음을 갖고 있네, 하고.
그 친구로부터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그런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고 또 알고 있지도 않았다. 아, 엄마가 나를 버리지 않고 키워줘서 고마운 마음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구나, 누군가는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구나, 나는 그때야 비로소 알았다. 한 번도 나는 가져본 적 없었던 마음, 그 마음의 존재를 그제서야 알게된 거다. 엄마가 결혼해 우리를 낳지 않았다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다음 생애는 자유롭게 살아, 라고 종종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결의 마음이었다.
그 후로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그 마음에 대해 또 듣게 된다. 이번엔 나의 엄마로부터. 엄마는 외할머니의 삶은 아주 어릴 때부터 고통스러웠는데 그 시간을 견뎌내면서 본인을 키워준 것에 감사한다고 나의 엄마는 말했다. 버리지 않아줘서, 버리지 않고 키워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나는 몰랐던 마음이 그러나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존재하는 마음이었구나, 했다.
그리고 나는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최은영의 인터뷰를 통해 또 만난다.
손 작가님 소설 속 인물들은 거의 모두 마음속에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사랑을 받을까봐, 혹은 사랑을 받지못할까봐, 거절을 당할까봐, 혹은 거절을 하지 못하게 될까봐, 상처를 줄까봐, 혹은 상처를 받을까봐. 그런 두려움의근원은 무엇일까요?
최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 같아요.
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으로서의 두려움일까요?
최 사람마다 다 다를 것 같은데 저는 항상 가지고 있는 두려움 같아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버려질 것 같다는 두려움. 그게 강하고, 그래서 매사가 조심스럽고, 제가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건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제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거였어요. 어릴 때 어른들이 너 말 잘 듣는다. 착하다라고 말을 했고, 거기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보니까 그 기준대로만 살게 되더라고요. 뭘 원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뭘 원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는, 당신 좋을 대로 하세요.라고 일평생을 타인에게 맞춰주면서 살아왔어요. 그런 성격이 제 인생에서 많은 잘못된 선택을 하게 했어요. 왜 나는 나의 욕망을 모를까, 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모를까. 생각해보면 항상 남한테 맞춰주지 않으면 나는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남한테 잘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의 욕구에 따라주지 않는다면 나는 버림받을 거고, 나는 쓸모없어질 거고, 가치가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 무의식 안에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 P71
두려움은 모두에게 다르게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밤을 두려워할 수도 있고 귀신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내 친구중 한 명은 등산의 내리막길에서 혹여라도 미끄러지거나 구를까 봐 두려워하는 내 손을 거침없이 잡아 성큼성큼 내려가게 도와주지만 차도에서 차가 달리는 건 지독하게 두려워한다. 누군가는 날카로운 것을, 높은 곳을 두려워할 수도 있고, 낯선사람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나로 말하자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고 진한 것이어서 아무리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접해도 사그라들질 않는다. 이 두려움은 그냥 나와 함께 가는 것이려구나 한다. 두려움의 종류가 사람들마다 다른식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고 또 다른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중에 많은 것들은 내가 가지지 않은 두려움, 때로는 도대체 그게 왜 두려울까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두려움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는 최은영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두려움을 만났다. 버려질 것 같다는 두려움. 나는 버려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두려움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게 두렵겠구나, 하는.
그러고보면 나는 한 번도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을 가져본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면 그건 내가 하는 일이다 생각하는 편이다. 내 경우에는 그런 두려움 보다는 오히려 나한테 들러붙을까봐 두려워하는 쪽이었다. 내 생각보다 훅 들어오면 어떡하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가까이 오려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데, 사실 이건 두려움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좀 어긋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거리를 두지 않을까봐 신경쓰는 것은 두려움과는 좀 다른 거 아닌가 싶으니까. 그런데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이라니. 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을 갖고 사는구나. 각자가 가진 두려움이라는 것은 대부분 그 전의 삶으로 인해 구성된 것들일테다. 어떤 일들이 내게 있었기 때문에 그 후에 이런 두려움이 생겼다, 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일 터. 그러니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은 기존에 그런 두려움을 갖게 한 어떤 사건이 있지 않았을까. 나의 경우 아이들이 폭력에 노출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돌봐주는 어른이 없는 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폭력에 노출될까봐 두려워서 이런 두려움이 너무 커졌을 때는 이런 두려움 갖는게 너무 싫어서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내가 생각하기도 했다. 죽어야 끝날테니까, 이 무서움이.
내가 가진 두려움은 내 성격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줄텐데, 다들 각자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사는 일이 매일 힘겹게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로구나 싶다. 두려움이 두려움으로 내 안에 있는 이상 그 두려움을 이겨내거나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을테니, 우리는 우리에게 이런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보아야 할것이다. 결코 두려움에 침몰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다른 일들로부터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면서.
그러고보면 <다시, 올리브>에서 올리브 키터리지가 말한것처럼 2월의 햇빛을 좋아하는 일이 살아가는데 확실히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물론, 꼭 2월일 필요는 없다. 4월의 햇빛이어도 좋고 9월의 햇빛이어도 좋다. 8월의 비여도 상관없고 11월의 구름이어도 좋다. 난 이맘때의 햇빛을 좋아해, 하고 그 햇빛을 가만 느낄 수 있노라면 삶은 좀 더 괜찮아질 수 있는 것 같다.
아아, 그리고 책 속에 길이 있고 책 속에 답이 있다.
언제나 말하지만 나는 오롯이 나 한명분의 생각만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두 명의 머리가 세 명의 머리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책이 그것을 해준다. 책도 어차피 사람이 쓰는 것이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머리에서 그리고 경험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지. 아아,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여태 살면서 알지 못했던 것을 최은영으로 인해 또! 알게 된다.
손 어떻게 몰타를 딱 찍어서 가신 거예요? 저는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를 진짜 진짜 좋아해서 책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읽고 영화도 찾아보고 그랬는데 어쩐지 몰타에 가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거든요.
최 제가 스물두 살에 처음으로 혼자서 유럽 여행을 했는데 40일 동안 혼자 다녀봤거든요. 그때 너무 안타까웠던 게 의사소통 문제였어요. 영어를 못하니까 너무답답한 거예요. 대화도 안 통하고, 제가 말하는 것도 엄청 좋아하고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나한테 말을 걸어도 내가 영어를 못하니까 말을 못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한 거예요. 그래서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실용영어 수업을 들었어요. 그 선생님이 남아공 선생님이셨는데 거기로 영어를 배우러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남아공으로 가볼까? 생각을 했어요. 검색해보니 남아공은 너무 위험하고 차라리 몰타로 가라. 누가 네이버 지식인에 그렇게 쓴 거예요. 그래서 몰타가 뭐야? 싶어서 찾아봤더니 예산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엄청 저렴하고, 한국에서 29만 원짜리 월세에 살고 있었는데 몰타에 가면 그게 10만 원으로 줄어드는 거예요. 한국에 사는 것보다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들고 괜찮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것만 믿고 갔었던 것 같아요.- P65~66
네?? 몰타요?? 몰타의 매의 그 몰타? 내가 몰타의 매 .. 대실 해밋 읽었는데 내용 1도 기억 안나고.. 근데 몰타의 매에 그 예시 나오지 않나? 공사 현장을 지나다가 바로 자기 앞에 뭔가 떨어져서 그 일로 인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인데 이렇게 살지 말자! 하고는 아내를 떠나는 남자... 가 나오는 예시가 몰타의 매에 나오지 않나요? 찾아보고 와야겠다.
「그 남자한테 일어난 일은 이런 겁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사무용 건물을 짓는 공사장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건물은 아직 골격만 있었죠. 그때 빔인가 뭔가 하는 게 10층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서 플릿그래프트 앞의 보도를 박살냈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지만 플릿크래프트에게 직접 닿지는 않았어요. 깨진 보도 조각이 튀어 올라 뺨을 강타했을 뿐이죠. 피부만 약간 까진 건데도 나와 만났을 때까지 흉터가 있더군요. 그 사람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 흉터를 손가락으로‥‥‥뭐랄까 사랑스럽다는 듯이 ‥‥‥만졌습니다. 플릿크래프트는 당연히 머리가 쭈뼛 섰지만, 경악했다기보다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누군가 인생의 어두운 문을 열고 그 안을 보여 준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플릿크래프트는훌륭한 시민이자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주변 환경에 맞추어 사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주변 사람들도 그와 같았다. 그가 아는 인생은 공평하고 정연하고 이성적이고 책임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철제 빔의 추락이 인생은 본래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훌륭한 시민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도 사무실에서 식당에 가다가 떨어지는 빔에 맞아 즉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죽음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찾아오며, 사람은 눈먼 운명이 허락하는 동안만 목숨을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p.85)
몰타의 매 책 한권 읽고 기억나는 건 저 예시뿐이다. 아니 그런데 페이퍼 뒤져보니 2013년에 읽고 썼던데 저 예시가 저기에 나오는 걸 기억하다니.. 세상 천재 되시겠다. 그렇지만 저거 빼고 아무것도 기억 안나다니.. 어쩌면 똥멍충이일까?
아무튼, 그 몰타가! 세상에 어학연수... 갈 수 있는 곳이라고? 게다가 저렴해? 왓????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갑자기 나의 인생, 미래의 계획을 변경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학연수도 유학도 가본 적이 없고 그리고 그런 일은 내 삶에서 아마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외국에 나가는 일은 여행으로만 가능할거라고 생각해왔다. 어학연수라니, 그건 대학생들이 가는거잖아? 나는 이미 대학 졸업한지 몇십년(응?) 되었다고. 그런데 가만있어봐, 몰타... 어학연수.... 저렴하다고??? 도대체 몰타가 어디 붙어있는데? 나는 검색 들어가고, 이탈리아 옆의 아주 작은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유럽이었다. 몰타의 면적은 우리나라 강화도의 세 배 정도라고 한다. 왓???
아아... 최은영 님. 내게 길을 알려주시는 분.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문학잡지든 뭐든 잡지 잘 안읽는데 이거 읽고 넘나 반한 공쟝쟝 님의 리뷰를 읽고 내가 왜왜 뭔데뭔데 이러면서 생애 처음 악스트를 샀고(처음인가? 아닌가?), 최은영 인터뷰를 보다가 뜬금 몰타 어학연수를 알게 되었으니... 아아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내 친구가 누구이냐에 따라 내 삶은 달라진다. 이것봐라 나는 이제 어학연수의 꿈을 꾼다. 나는, 가겠다, 어학연수를, 몰타로! 고고씽!!
어제 집에 가서 잠들기 전 동생들에게 말했다.
"나 퇴사하면 몰타로 어학연수 다녀올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퇴사만 해봐라 어디. 내가 베트남 한달살기(혹은 두달 살기)하다가 들어와서 다시 짐 싸가지고 몰타에 어학연수 간다. 여러분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지중해 섬나라 몰타는 세상 아름답다. 나는 이정도의 직장 경력과 나이도 있으니 최은영의 20대 젊은 시절처럼 세 명이서 한 방 쓰고 이런거 안해도 된다. 나는 혼자서 방 잡아가지고!! 좋은 방 잡을거고!! 거기에서 먹고 마시고 영어를 공부한다!! 배움에는 끝이없고!! 공부는 계속되어야 하고!! 내가 젊은 시절에 가보지 못한 어학연수를!! 내가!! 내돈으로!! 중년에 가버리겠어!! 뿡뿡!!
미래 계획이 이렇게 하나 더 늘었다. 몰타 어학연수 가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젊은이들 틈에서 공부하는거 넘나 낯설고 또 두렵기도 하지만 .. 크리스토퍼 혹시 몰타에 영어 배우러 오지 않을래? 그러면 나랑 소울메이트 할 수 있어.
아무튼 나는 여러분 몰타로 간다.
몰타에서 소식 또 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