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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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서 맨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대박날 영화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한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접했던 이유로 영화에 대해 시시콜콜 너무 많이 알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탓에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내가 직접 보지 않은 영화고, 보고픈 마음에 뒤늦게 찾아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유쾌하고 따뜻한 코미디 영화였다. 무엇보다 아기자기함이 살아 있는 영화라서 보고 있는 동안 더 재밌고 즐거운 느낌일 수 있었다. 실상 어두운 소재를 코미디 장르에 맞게 밝고 명랑하게 그려내기에 역설적인 재미를 느끼게 만들고 가족애도 덤으로 챙겨주는 뭐 그런 영화에 속한달까. 내용은 다르지만 영화 [주노]를 봤을 때의 감상과 여러모로 비슷한 느낌이다. 그 영화도 소재는 심각해지려면 얼마든지 심각해질 수 있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영화는 굉장히 밝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 중 하나이니까. 이 점에서 [과속스캔들]도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과속도 유전이 된 탓인지, 어쨌든 간에 피는 못 속인다는 속담이 생각난다는. 삼대가 모여서 한집에서 복닥거리며 생활하는 모습이나 감칠맛 나게 주고받는 대사나 장면 등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박보영의 노래 실력이 뛰어나서 '노래, 진짜 잘한다. 완전 가수네~!!'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경이로운 노래 솜씨를 발휘했다는. 역시 배우들은 다양한 소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연출이나 연기도 나름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이 영화의 일등공신은 무엇보다 각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각본이 아니겠는가. 티격태격 싸울 때는 남보다도 더 신랄하게 치열하게 안 볼 것처럼 싸우지만 결국 '가족'뿐이다. 함께 사는 가족일 때만 느끼고 간직할 수 있는 감정들이 있는 것 같다. 분가해서 따로 떨어져 살면, 함께 살 때처럼 똑같은 정도로 감정이 유지되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유머러스하고 코믹한 대사 덕분에 여러 번 웃었고, 한 두 번 정도 울컥했다. 훈훈한 기운이 몸에 가득해진 기분이다. 보편적인 웃음의 코드로, 많이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달리 덧붙일 말 없이 기분 좋은 유쾌함을 선사해준 영화라서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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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의 질주 - Running on Emp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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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호감을 품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 누군가가 꼽은 영화가 내게도 동일한 정도의 깊이와 의미로 다가왔다면 그건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호감이 약간 작용한 이유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니까 알 것 같다. 왜 이 영화를 추천해주었는지를. 왜 이 영화를 마음에 들어했는지를 말이다. 

소위 '운동권' 부모가 등장한다. 미국사회든 한국사회든 분명 겉모습이야 다른 모습이지만 겪고 있는 상황이 같으면 하는 생각이나 사는 모습도 비슷해지나 보다. 도망자 신세가 된 부모들의 운명은 곧 아이들의 운명이 되었다. 가족이란 일정 부분 같은 운명을 타고 나는 사람들이니까. 기약없이 떠돌아다니며 살아야 하는 그 삶은 얼마나 고단할까.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 자식들의 삶마저 옭아매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부모가 겪을 마음고생은 또 어떠할지.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 느낌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영화는 충분히 그 생활의 어려움과 팍팍함을 전달한다. 

비밀과 거짓말의 차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난 아리송해진다. 비밀을 가지고 싶어서 가진 것도 아니고,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하기 힘들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도 분명 있을 테니까 말이다. 대니(리버 피닉스)의 이런 딜레마가 너무나 공감이 가는 건 나 또한 그런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대니는 줄리어대에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대학에 간다는 건 곧 가족과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접는다. 완강한 아버지를 설득시킬 수도 꺾을 만한 용기도 대니에겐 없다. 하지만 숨겨온 진심이 드러날 때, 그 마음을 따르지 않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  

가족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대니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선택을 처음으로 내렸다. 그 결정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지지만 별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겐 애당초 헤어짐이란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엔딩 신의 이별하는 장면을 보며 표현 못할 감정에 휩싸였다. 아아, 독립이란 저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이젠 서로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방향이 달라진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벌어지는 일 때문에 자신이 진정 원하는 소중한 무엇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이라면 깊은 관계를 맺으려면 진실해져야 하고 진실해지려면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대니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내가 가야할 길을 스스로 정했다면 어딘가로부터 떨어져나와 막막하고 답답한 감정에 빠져보는 경험을 피할 방법은 없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하나씩 배워나가야 하는 것이겠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영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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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 브로코비치 - Erin Brockov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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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작. 보고 싶기는 했는데 볼 기회가 없어서 못 봤던 작품이었는데 EBS 시네마에서 해준 덕분에 보게 됐다. 뭐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실화가 주는 감동도 있고 줄리안 로버츠라는 여배우가 가진 매력도 보여주는 영화였으니까. 연기를 잘한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평가도 달라지기 마련이겠지만 이 영화는 '에린 브로코비치'란 캐릭터가 어느 무엇보다 중요하고 강렬하기 때문에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면 연기를 잘했다고 말해도 무방할지 싶다. 

돈도 많은 거대기업이면서 왜 이런 꼴사나운 짓거리들을 하는 걸까. 영화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소위 대기업들이 앞에서나 청렴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뒤에서는 호박씨 까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윤을 목적으로 돌아간다지만 엄연히 사회를 대표하는 대기업이라면 당연히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크롬이란 발암물질 중금속의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방출시켜 주민들을 각종 병에 걸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 밝혀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시작점이 된 인물이 법적지식으로 똘똘 뭉친 변호사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뛰어난 능력이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다는 게 놀랍다. 이런 큰일의 시작도 역시 작은 관심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 같다.  

이혼 후 아이들과 먹고 사는 일이 절실한 에린이었기에, 어려움이란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었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달려서 막대한 보상을 받아내는 데 한 몫을 담당할 수 있었으리라. 소송 걸고 재판에서 상대방의 죄를 밝혀내기 위해서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여러 수고를 한다. (정작 자신의 가정을 못 보살폈던 기간이었지만) 끝끝내 노력한 만큼 보람도 얻었고 결과적으로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질 수 있었으니까 그 만족감이 대단했으리라. 영화을 보며 대리만족으로 예상된 행복감이 이 정도인데. 인생이 완전 바뀌게 된 주인공들 영화를 보면 막연하게 행복해지는 느낌이 든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2000년 트래픽으로 감독상 수상하고, 이 영화도 연출했는데 잘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다 잘하나 보다. 어쨌든 괜찮게 본 영화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잘못하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 억울한 사람들이 보상받는 것도 당연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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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퓨 굿 맨 - A Few Good 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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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를 뒤늦게 알게 된 것은 유감이다. 휼륭하고 잘만든 재미있는 영화는 두 번을 봐도 처음의 감동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법정영화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진실과 거짓이 맞서는 그 팽팽한 긴장감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법정영화만의 매력. 

1992년작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된 작품이다. 영화속 주연배우들의 싱그럽고 팽팽한 얼굴들을 보면서 새삼 흘러간 시간을 빠르기를 여실히 느끼게 만든다. 사실을 그야말로 사실로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과 군이라는 특수상황이 겹쳐지면서 벌어지는 되는 사건의 관계들이 이야기를 더 극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믿고 그 사람을 변호를 맡는다는 것,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대책과 전략을 짜는 모습들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자신이 맡은 일인 동시에 남을 돕는 일이기도 하니까. 재판에서 필수적인 진술과정에서 나타날 상대방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심리나 성격까지 헤아리면서 치밀하고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재판에 임하는 모습들에서 역시 재판은 순전히 머리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속에서 군인들이 신봉하는 가치들. 가치들이 틀렸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너무나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모습들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다. 군대란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임무가 되는 탓에 불복종하기란 거의 불가능할지 싶다. 그것이 부당하고 잘못된 지시라는 것을 생각하고 안다고 해도 굴복하기 편이 쉬울 것이다. 군 시스템에서 탄탄하게 지켜지는 성역 같은 법칙이란 것이 있을 테니까.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의 압권은 라스트 씬이다. 사실을 입증시키기 위해서 상대방의 성격적 결함을 건드려가며 몰아붙이고 그 덫에 보기 좋게 걸려든 제섭 장군이 그렇게나 부인하던 사실을 제 입으로 버럭하며 인정하는 꼴을 보면서 얼마나 통쾌하던지.  

마침내 진실 싸움에서 승리한 결과로, 잘못을 범한 죄지은 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영화적 결말도 결말이지만 영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약자를 보호하지 않은 것도 유죄라고 말한다. 직무유기라고. 용기를 냈다면 보호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드문 경우에 속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다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배우들 연기나 영화가 말하는 이야기 모두 마음에 꼭 드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가운데 하나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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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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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란 작가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은 가지고 있었다. [율리시스]를 읽을 엄두는 좀처럼 나지 않는다. 꿩 대신 닭이라고, 이거부터라도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이 생겨 읽게 된 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더 집중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스토리만 따라가면서 이해한다면 매우 어렵게 느껴지는 작품은 아니겠지만 절대 쉬운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복잡하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대목들은, 글을 눈으로 쫓기만 했지 아직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싶다. 즉, 깊이 있게 읽어내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 스티븐 디덜러스 자신이 진정 원하고 뜻한 바를 이룩하기 위해서 떠나야 할 길의 종착지는 예술가가 되는 길이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와 그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직간접적으로 쏟아내는 영향력에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예술가는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 자유로움으로 인해 다양한 아름다운 예술들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옭아매려는 여러 가지의 속박을 벗어나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아내고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야할 바를 깨닫는 과정이란 것이 쉽지가 않다. 스스로 뜻을 정하기까지 수많은 혼란과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야 할 테니까. 서투른 탓에 고민도 아픔도 많은 경계의 시기에 의식이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의식이란 게 간단명료하지도 않고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정신인 탓에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다는 행위의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비로소 알 것 같다는 느낌이다. 

꼭 성격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가 되려면 예민함은 필수적인 것 같다. 예민하지 않으면 그만큼 공들여서 창조하는 작업에 매진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소설을 이해하기에 이해력을 부족한 이유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정신적인 면에 있어선 확실히 자극받은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은 버거운 소설에 가깝다. 하지만 읽어내기 어려웠다는 이유만으로 싫다고 말할 수는 없는 소설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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