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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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을 거부하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할 것이다. 책을 읽고난 뒤, 그 생각은 더 뚜렷해졌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입으로, 글로, 영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전하고 소비하고 즐기는 행위는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그 매력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스토리텔링이 담당하고 있는 여러 유익한 기능들이 존재해왔기에 인류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양산하는 것이다. 단순한 재미만은 아니다. 모든 이야기엔 메시지가 담길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끝끝내 영향받길 바란다. 대다수 사람들은 책, 드라마, 영화보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간접체험이란 대리만족이기도 하며,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가닿을 수 없는 세계와 마음에 대한 공감이기도 하다. 불완전한 것들에 마음이 끌리고 기운다. 세상 속 만물이 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내가 처한 상황과는 상관없이 딴 세상으로 가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매혹적이다. 상상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 없으니까. 경계가 소용없으니까.

스토리텔링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책이다. 현학적이지 않게 적당히 분석적인 글이 장점이다. 어렵지 않아 술술 금세 잘 읽힌다. 다양한 사례를 제공하고 있어 주장을 뒷받침하고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그러라고 쓴 글이겠지만. 이야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니 새삼 이야기의 위대함에 그 힘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 가치를 비로소 알게 되었달까. 이야기가 사람들을 얼마나 쥐락펴락 하는지. 그러면서도 그 사실에 불쾌해하는 사람은 없으니 신기한 노릇이다. 날 혹하게 만드는 이야기에 깜짝 놀라고 정신 못 차려도 좋다. 약간은 감당하기 버거운 이야기로 날 여지없이 흔드는 이야기에 몰입하고 반응하고 싶으니까. 난 그걸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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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비행 - 생계독서가 금정연 매문기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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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책을 좋아하진 않았다. 반드시, 어쩔 수 없이, 꼭 읽어야만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책을 읽지 않았다. 솔직히 싫었다. 피했다. 읽는 재미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책이란 사물은 나와는 분명 상관없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변화가 생겼다. 그럴 만한 일이 일어났다. 그게 계기라면 계기. 결론적으로 나쁜 일이었는데 그로 인해 어쨌든 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크게 잃고 그 대신 작지만 새로운 재미를 얻었다. 그 재미가 상당하다는 걸 알아버렸다. 점점 좋아지는 게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큰 재미는 어쩌다 한 번씩만 있어도 족한 것. 작은 재미는 주로 책을 통해 얻는다.

안목도 없고 깊이도 없다. 아직은. 책을 읽는다 해서 삶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생기지도 않았다. 초창기 잠시 기대를 해본 적도 있었는데 헛된 바람이었나 보다. 바라는 것 없이 그냥 읽는다. 그냥 읽는 행위 자체가 좋은지 모르겠다. 소위 독서 내공 있으신 분들의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서평을 쓰며 밥벌이 하는 이의 고충을 느끼면서도 한편 글을 웬만큼 잘 쓰니까 그런 직업도 가능한 거지,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부러워하나 생각해본 적이 있다. 외모적으로 잘나고, 똑똑하고, 성격 좋은 사람도 물론 부러워하지만 곰곰 생각해본 결과 그중에 제일은 ‘표현력’이었다는. 말이든 글이든 언어감각이 좋은 분들이 마냥 좋아보이는 거다. 내 눈에는. 갖고 싶은데 없으니까 그런 거겠지. 나도 안다.

서평집이지만 시종일관 재미진 에세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가볍게 진지하다. 책에 관한 책이다. 나보다 책을 훨씬 많이 읽었고 아는 사람의 경험담은 언제나 꽤 재미있다. 배우는 것도 닮고 싶은 것도 자연히 생긴다. 덕분에 읽으면 좋을, 구미를 당기는 몰랐던 책을 알게 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아무래도 독서 자체에 대해 떠올려보게 되더라. 알고 싶고, 느끼고 싶고, 배우고 싶어서 책과 같이 하는 거다. 내겐 책이 필요하다. 내가 떠나지 않는 한 책이 날 먼저 배신하고 버릴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평등한 관계랄 순 없지만 나는 이 관계가 마음에 들고 오랫동안 원만하게 유지해나가고 싶다. 더 열심히 더 재밌게 읽어나가자고 스스로 다짐하게 만드는 이유는 뭘까. 알 수 없다. 책을 건지든 다짐을 건지든 자극을 건지든, 뭘 건지기는 건졌다. 두루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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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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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로 시작해야 하나. 이 느낌을 언어로 정확히 전달하기엔 내 표현이 한참 모자랄 텐데. 황정은 작가를 알게 되고 팬이 되었다. 애정하는 작가들이 여럿 되지만 그 중에서도 아마 오랫동안 우위를 차지하게 될 것 같다. 두 주인공이 정말 청순하고 착하다. 착해서 싫고 답답하고 짜증나는 게 아니라 착해서 예쁘고 사랑스럽고 보는 사람까지 덩달아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그런 착함이다. 착한 것이 이 정도로 강한 매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뜻밖이다. 배우고 싶어졌다. 그런 마음을. 그런 시선을.

현실은 점점 더 잔인해지고 난폭해졌고 사람들은 밀려나고 상처 입고 잊혀져 사라진다.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와 닿은 것이겠지. 소박한 사람들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만 읽어도 무방하다. 감동은 결코 적지 않다. 소설이 짚고 있는 윤리성에 눈이 번쩍 했다.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던 것에 눈을 맞추게 한다. 그림자가 일어선다는 은유엔 깜짝 놀랐고. 인간성의 균열이나 무너짐으로 인해 생겨난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본다. 자꾸만 두 사람의 대화와 모습이 가만히 떠올려진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가까워지는 그 모습에 내 맘이 다 설렜다.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같이 걸어가는 게 사랑이겠지. 험한 세상에서 작은 위로가 돼 줄 사람을 다들 갈망한다. 이해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애틋하게 서로를 쳐다보는 눈길을 나눌 수 있는 진실된 누군가를 꿈꾸게 만든다.

평생 살면서 누군가를 진짜 사랑하는 경험은 분명 드문 일이다. 의미 있는 일이고. 하지만 자주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내 삶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믿고 싶어졌는지 모른다. 이 이야기를. 보잘것없어 보여도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이 진짜배기다. 외적인 것에 흔들리고 혹하기 쉬운 세상이지만 그 대척점을 생각하고 바라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무엇이 궁극적으로 옳은 것인지 가리킨다. 나는 배웠다. 인물들의 정서와 태도를 통해서 드러난 감정과 나를 둘러싼 세상이라는 시스템의 폭력성이 과연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말이다. 역시 문학은 강력하다. 고작 느낄 뿐이지만 느낀다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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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인 가의 저주 대실 해밋 전집 2
대실 해밋 지음, 구세희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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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실 해밋의 전집이라 해봤자 꼴랑 다섯 권밖에 안 되는 탓에 부담없이 순서대로 한 권씩 읽어나가는 중이다. 여지없이 사건은 벌어진다. 일련의 일어난 몇 개의 사건의 전말이 모두 어떤 공통점과 연관성을 가진 것인지는 끝내 밝혀지고 처리된다.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에 매혹되는 이유는 인간과 세상의 어둡고 잔혹한 면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난 그 점에 가장 마음에 든다. 명쾌히 사건이 종결된다는 점도 좋고. 현실 세계에선 시끄럽기만 하고 해결되지 않는 사건이 얼마나 많은가.

이야기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은 인간의 정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욕망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 욕망에서 비롯된 수많은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잘못된 행동들을 가능하게 만든 그 욕망이 새삼 서늘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욕망이 있지만 그 욕망이 악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 확신하고 장담할 수가 없다. 어떤 일에 대해서든. 아차 하는 순간 경계를 넘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게 인간이니까. 강해서 저지르는 범죄도 있겠지만 연약해서 저지르는 범죄도 있을 테니까. 한 개인의 뒤틀린 탐욕이 오염된 생각들과 많은 살인을 가능하게 했다. 미친 생각을 실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사건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고, 사건 해결을 위해 행동도 적극적이지만 동시에 하드보일드적 태도를 지닌 그런 모습이 표현될 때 한층 매력적이다. 그는 이런 일을 잘 알고 있고 익숙하다. 탐정이란 전문가가 매우 특별나 보이는 것이 사실이나 그도 결국 생활인이긴 마찬가지다. 상황이 어렵게 흘러가더라도 그 안에서 다른 뭔가를 읽어내고 파악하는 능력을 보는 재미와 위트 있는 대사를 만날 수 있다. 안목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대실 해밋 식의 대사 치는 스타일이 몹시 마음에 드는데. 왜일까. 말하는 방식이 맘에 든다. 1권보다는 좀 덜 좋았던 게 사실이지만. 뭐, 매력이 다른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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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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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람 마음과 정신을 뒤흔들 줄이야. 소설을 읽는 이유야 여럿이겠지만 글을 읽음으로써 나는 보다 감정적으로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진다. 이 기분이 싫지 않다. 내게 낯선 곳과 익숙한 곳, 모르는 세계와 아는 세계. 그 어느 곳이라도 우리는 갈 수 있기에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만나야 할 자기 자신에 대해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만난 적이나 있을까. 이제껏 정말 자신과 마주하며 보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 많은 시간동안 난 대체 뭘하며 지낸 걸까. 의미 있는 시간을 추구해보지도 못한 채 이렇게 나이만 꾸역꾸역 먹었단 말인가. 한심하다.

어떤 우연한 계기를 통해 주인공은 자신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실체를 비로소 알게 됐을 때의 그 충격과 당혹감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용기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난 그런 용가가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는 것 같다. 불현듯 떠오른 어떤 생각과 기억을 통해 뒤늦게 진실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불편하기에 꺼려진다. 난 내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었다. 나를 잘못 알았다. 이제 심각해질 일만 남았구나.

가식과 위선으로 위장한 삶이 깨어지고 무너질 때의 공포감이란 대단할 것이다. 제정신을 못 차릴 만큼.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자꾸만 자문해보게 한다. 긍정적인 답변이 쉽게 안 나온다. 진실은 고통을 동반한다. 아프니까 우선 피하고 맘대로 왜곡시킨다. 그래야 내 맘이 편하니까. 남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진짜는 알지도 못하면서. 알아보려 시도하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나부터 제대로 알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우선인데 나부터가 거꾸로 살고 있다. 남의 이목이 여전히 신경쓰여서 머뭇대고 망설이는 일이 많다. 그러지 말아야지 만날 입으로만 그런다. 입만 살아서.

배우자도 자식도 없어서 모르겠지만 애정으로 선의로 잘 꾸려온 삶이라 자부한 자신의 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도 모자라 사라져버릴 순간에 놓여 있다면 나도 조앤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덜컥 겁이 날 테니까. 내면의 목소리 얘기를 자주 하지만 정작 듣기는 힘든 게 그 목소리다. 내가 먼저 들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하니까. 감춘다고 숨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침묵해버리는 내가 있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나는 나를 얼마나 잘못 알고 있을지. 또 얼마나 알고 있을지에 대해.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 이해받고 싶은 심리가 있다. 너무 타인 중심의 사고를 지향했던 오류가 있었지 싶다. 후회되고 바로잡고 싶은 오류들이 생각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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