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에 관한 영화로 기억에 남는 작품에는 “알카트라즈 탈출”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외딴 섬 알카트라즈에 감금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낡은 콘크리트 벽을 손칼로 긁어서 구멍을 낸 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밤마다 구멍 뚫는 작업을 하느라 침대를 비울 수 밖에 없는 이스트우드는 배개를 여러 개 집어넣어서 마치 사람이 자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루는 순찰 돌던 간수가 이스트우드의 두툼한 침대를 보고 수상히 여겨서 이름을 부른다. 대답없는 주인공. 감방동료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입만 다물고 있을 뿐이다. 화가 난 간수가 침대보를 열어젖히려는 순간, “왜 불러?” 하고 얼굴을 내미는 주인공. 정말 짜릿했다.
또다른 작품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나온 “락업 Lock Up”
80년대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열띤 경쟁을 벌였던 근육 액션스타 스탤론이 주연한 영화로, 전형적인 ‘감방부수고 탈옥하기’ 다. 감옥에 갇힌 스탤론이 동료 죄수들과 함께 폭동을 일으키고 교도소장을 인질로 잡아 탈출에 성공한다는 스토리. 죄수들끼리의 다툼, 간수와 죄수들 간의 싸움이 주된 내용인 치고받는 액션 영화.
마지막으로는, 탈옥에 대한 가장 유명한 영화라고 해도 좋을, 스티븐 킹 원작,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주연의 “쇼생크 탈출”. 화이트 컬러버전 탈옥스토리라고 해도 좋을 이 작품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팀 로빈스가 치밀한 계획을 세워,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굴을 파내고, 돈을 모두 마련한 뒤 탈옥에 성공한다는, 휴먼스토리이다. 제목이 The Shawshank Redemption 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탈옥을 통해 한 인간이 다시금 태어난다는, 그리고 그의 동료 모건 프리먼 역시 용서를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감동적인 영화였다.
Fox의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는 위 세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모두 빌려왔다. 그리고 두 개를 더했다. 하나는 감옥에 갇힌 형을 구하기 위해 동생이 직접 감옥으로 들어간다는 역설적 상황설정과 다른 하나는 누명을 쓴 형을 구하기 위해 감옥 바깥에서 목숨을 걸고 정부와 그 뒤에 숨어있는 비밀음모와 싸우는 변호사들의 이야기가 병렬진행된다.
처음 프리즌 브레이크의 DVD 표지를 봤을 때는 사실 조금 망설였다. “겉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 는 격언이 있다하더라도 휴대용 DVD 플레이어를 갖고다니면서 에피소드 하나만 돌려본뒤 모두 빌려볼 수도 없는 노릇. 시즌 1 DVD의 겉모습은 쓰는 이에게 실베스터 스탤론 류의 탈옥스토리를 떠올리게 했다. (쓰는 이가 그다지 점수를 주지 않는 장르인)
주변에서 프리즌 브레이크를 말하고, 한국사이트에서도 ‘석호필’이니 ‘프리즌 브레이크 폐인’ 이란 말이 나돌아도 표지에서 본 인상은 끝내 커다란 편견으로 자리잡았다. (좀처럼 다른 사람들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옹고집도 있거니와,,,)
그러다가 우연히 디스크 6장을 손에 넣게 되었고, 스캇필드가 온 몸에 문신을 새기고 거짓으로 은행을 터는 순간, 프리즌 브레이크의 감옥 안에 이틀 동안 꼼짝없이 갇혀버리고 말았다.
알고 보니 이 TV 드라마는 ‘알카트라즈 탈출’의 서스펜스와 ‘락업’의 액션, ‘쇼생크 탈출’의 감동을 모두 갇춘, 지금까지 본 미드 중 최고작에 꼽을 수 있는 대단한 작품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다음 회가 기다려져서(DVD로 시즌 하나를 통째로 연달아 봤기 때문에 이건 좀 과장된 표현이다 ^^)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최고의 미드 중 하나였다.

주인공 스캇필드의 쿨한 캐릭터는 멋있었다.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녀석, 모든 복잡한 계획이 머릿 속 안에서(그리고 온 몸에 그려진 문신을 통해) 하나로 반듯이 정리가 되고, 그다지 떠벌이지 않으면서도 한마디 할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녀석. 천재라고 주변에서 떠들어대지만 정작 자신은 그다지 관심없다는 듯이 형을 빼낼 계획 하나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는 녀석. 교도소 의사 새라와의 로맨스조차도 탈옥계획의 하나로 이용하는 녀석. 모든 걸 다 가졌지만, 형을 위해 모든 걸(두뇌 하나만 빼고) 포기한 녀석. 한국에서 왜 석호필 열풍이 부는 지 알것도 같았다.
어쩌면 정신질환의 하나일수도 있지만, 높은 IQ가 뒷받침되서 건물의 구조를 환히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스캇필드는 그러나 수퍼맨 같은 초인은 아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모든 준비를 갖춘 뒤(위장결혼까지) 교도소로 들어오지만,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열심히 굴을 파서 탈옥에 성공하려는 순간, 병실로 이어진 쇠파이프는 굵은 철근으로 대체되었고, 주변의 동료들은 스캇필드의 두뇌 속에 만들어진 계획을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형의 사형집행일을 의식하면서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교도소 안의 상황 속에서 때론 울먹이고 주먹에 피가 나도록 벽을 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스캇필드에게 어느 누가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밤마다 감방 뒷통로를 돌아다니던 스캇필드가 간수의 눈을 피하다가 뜨거운 파이프를 건드려 살이 타들어가던 상황에서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서 손을 이빨로 뜯어가면서 입을 막는 장면과(살이 그정도로 타들어가면 분명 냄새가 심하게 날 텐데, 왜 간수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술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일까?) 없어진 문신을 기억하고 있는 정신질환에 걸린 옛 감방동료를 찾기 위해 미친 척하다가, 정신병동에 들어온 순간 눈빛이 싹 변하는 장면(대단했다. 움찔 소름이 돋을 정도로…)이었다. 스캇필드와 새라의 로맨스도 재미있었다. 쉽사리 상대의 매력에 항복하지 않고, 한 편으론 관심을 보이면서도 한 편으론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들, 시즌 2에선 해피엔딩으로 맺어졌으면 좋겠지만,,, 워낙 뒤통수를 치는 작가들이라서…
사랑과 불륜, 간통이 드라마를 이어가는 주된 몸통이 되는 한국드라마에 비해 미국드라마에선 (어떤 형태로든 변형된 여러 종류의)사랑이 전반에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국드라마에서 사랑은 사이드잡으로 양념치기식으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자주 묘사된다. 사랑과 비즈니스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걸까? (그렇담 그레이즈 애너토미는 이 공식을 깨뜨려서 성공한 케이스가 되는 걸까? ^^; 일하는 직장이 온통 연애장소로 돌변하니 말이다.)
Have a little faith 를 가지고, 예상못했던 난관이 발생하면 계획을 수정하고, 이미 물건너간 플랜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Plan B를 재빨리 생각해내서 목적지인 교도소 담장 바깥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스캇필드와 동료죄수들의 자세가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잠시라도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교도소 안의 탈옥과 병행해서 진행되는 교도소 바깥의 음모파헤치기 스토리 역시 흥미진진했다. 형의 살인혐의가 에너지 대기업의 돈과 관련된 정부 최상층으로부터 만들어진 음모임을 목숨을 걸고 밝혀가는 베로니카와 닉과 LJ가 Secret Service로만 알려진 정부비밀조직으로부터 누명을 쓰고 쫓기는 부분에선, 교도소 안보다 바깥이 더 위험하고 못된 인간들로 우글거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파워를 갖고 있다는 미국의 대통령과 정부도 이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대기업들의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일까? 민주주의와 정의가 돈과 권력 앞에서 맥을 못추는,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민주주의와 정의를 두 손에 쥔 달러와 총으로 갖고 노는 세상에서 과연 사법정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뒤통수를 치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프리즌 브레이크를 본 이틀동안은 근래들어 가장 짜릿한 TV와의 만남이 지속되었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소파 위에서 온 몸에 잔뜩 힘을 주고 TV에서 나오는 대사 하나하나, 등장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드라마 앞에 두 손 두 발 다든채로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말 그대로 폐인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그것이 그리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 쏠쏠한 재미와 감동을 보는 이에게 선사하는 드라마였다.
시즌 1의 후반부로 갈수록 LOST를 연상케하는 플래쉬 백과 등장인물들의 현재를 있게한 과거의 사건들과 과거의 인물들(스캇필드와 링컨의 아버지의 등장, 역시 비밀요원 출신, 그래서 아들들이 다들,,,) 이 등장하면서 점점 드라마는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두번째 임기가 저물어가는 늙은 레임덕 대통령은 모든 음모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부통령에 의해 독살되고, 음식조리하는 부엌 안에서 헌법에 선서를 하면서 여자 대통령이 탄생한다.(힐러리를 풍자한 것일까?)
파워게임, 두뇌게임, 유혹게임, 탈옥게임
이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 1.
최고다.
뭐니뭐니해도 프리즌 브레이크의 메시지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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