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come to Jerusalem today as a novelist, which is to say as a professional spinner of lies.

오늘 저는 이 곳 예루살렘에, 소설가로서, 거짓말의 묘수라 할 수 있는 존재로서 와 있습니다. 
  
Of course, novelists are not the only ones who tell lies. Politicians do it, too, as we all know. Diplomats and military men tell their own kinds of lies on occasion, as do used car salesmen, butchers and builders. The lies of novelists differ from others, however, in that no one criticizes the novelist as immoral for telling them. Indeed, the bigger and better his lies and the more ingeniously he creates them, the more he is likely to be praised by the public and the critics. Why should that be?

소설가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정치가도 거짓말을 하며, 외교관도 군인도, 저마다의 상황에 맞춰 그들 고유의 거짓말을 합니다. 자동차 세일즈맨이나 외판원, 건축업자가 거짓말을 하듯이 말이죠. 그러나 소설가의 거짓말은 아무도 비도덕적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의 거짓말과 구분됩니다. 심지어 그들이 지어낸 거짓말이 크면 클 수록, 능숙하교 교묘하면 할 수록, 대중과 비평가의 찬상은 커져만 갑니다. 왜 그럴까요?
      

My answer would be this: Namely, that by telling skillful lies - which is to say, by making up fictions that appear to be true - the novelist can bring a truth out to a new location and shine a new light on it. In most cases, it is virtually impossible to grasp a truth in its original form and depict it accurately. This is why we try to grab its tail by luring the truth from its hiding place, transferring it to a fictional location, and replacing it with a fictional form. In order to accomplish this, however, we first have to clarify where the truth lies within us. This is an important qualification for making up good lies.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소설가는 효과적인 거짓말을 통해 진리를 재현하는 픽션을 만들어내고, 이로서 진실을 숨은 곳에서 이끌어내 재조명하는 작업을 해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진실을 원형 그대로 거머쥐어 묘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리를 픽션의 세계에 옮기고, 가공의 모습으로 바꾸어 진실의 끄트머리나마 움켜잡기 위해, 진실을 은신처에서 꾀어내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을 이루려 할 때에는 가장 먼저 우리 내부의 어느 곳에 진실이 내재하는지를 명확히 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좋은 거짓말을 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건입니다.
        


Today, however, I have no intention of lying. I will try to be as honest as I can. There are a few days in the year when I do not engage in telling lies, and today happens to be one of them.

그러나 오늘에 한해 말씀드리면, 저는 거짓말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솔직하고자 합니다. 제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날은 일 년 중 며칠에 불과하지만, 오늘이 바로 그런 날들 중 하루입니다.
    


So let me tell you the truth. A fair number of people advised me not to come here to accept the Jerusalem Prize. Some even warned me they would instigate a boycott of my books if I came.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많은 이들이 저에게 예루살렘 상 수상식에 가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제가 예루살렘에 갈 경우 제 책의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고까지 했습니다.
    
The reason for this, of course, was the fierce battle that was raging in Gaza. The UN reported that more than a thousand people had lost their lives in the blockaded Gaza City, many of them unarmed citizens - children and old people.

이러한 일들은 물론, 가자에서 벌어진 격전에 연유한 것입니다. UN은 약 천여 명에 이르는 인명이 봉쇄된 가자시에서 희생되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비무장 시민, 그 중에서도 어린이와 노약자들이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Any number of times after receiving notice of the award, I asked myself whether traveling to Israel at a time like this and accepting a literary prize was the proper thing to do, whether this would create the impression that I supported one side in the conflict, that I endorsed the policies of a nation that chose to unleash its overwhelming military power. This is an impression, of course, that I would not wish to give. I do not approve of any war, and I do not support any nation. Neither, of course, do I wish to see my books subjected to a boycott.

수상에 관한 공지를 받은 이후로 몇 번이고, 이러한 시기에 문학상을 받기 위해 이스라엘에 가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지 자문자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갈등을 빚고 있는 양자 중 한 편에 서는 인상을 주게 되는 게 아닐까, 압도적인 군사력을 남용한 정책을 묵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인상은 제가 의도하는 바가 전혀 아닙니다. 저는 어떠한 종류의 전쟁도 용납하지 않으며, 그 어떤 국가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책이 불매운동에 부쳐지는 것은 단호하게 원치 않습니다. 
  
Finally, however, after careful consideration, I made up my mind to come here. One reason for my decision was that all too many people advised me not to do it. Perhaps, like many other novelists, I tend to do the exact opposite of what I am told. If people are telling me - and especially if they are warning me - "don't go there," "don't do that," I tend to want to "go there" and "do that." It's in my nature, you might say, as a novelist. Novelists are a special breed. They cannot genuinely trust anything they have not seen with their own eyes or touched with their own hands.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고 끝에 저는 이 곳에 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결정의 한 가지 이유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저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많은 소설가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하지 말라고 들으면 꼭 해 보고 싶어지거든요. 만약 사람들이 "거기 가지 말아요", "그건 하지 마요" 라고 제게 충고하거나, 심지어 경고 따위를 한다면, 저는 꼭 "거기 가고" 싶어지고, "그렇게 하고" 싶어집니다. 이는 제 본성이고, 어쩌면 여러분은 이를 소설가적 기질이라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가는 독특한 족속들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것이 아니고서는 쉽사리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And that is why I am here. I chose to come here rather than stay away. I chose to see for myself rather than not to see. I chose to speak to you rather than to say nothing.

그리고 바로 그러한 기질이, 제가 이 곳에 자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멀리서 경계하고 있기보다는 여기까지 올 것을 선택했고, 보지 않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것을 선택했으며, 침묵하는 것보다, 여러분께 제 목소리를 전하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This is not to say that I am here to deliver a political message. To make judgments about right and wrong is one of the novelist's most important duties, of course. It is left to each writer, however, to decide upon the form in which he or she will convey those judgments to others. I myself prefer to transform them into stories - stories that tend toward the surreal. Which is why I do not intend to stand before you today delivering a direct political message.

그렇다고 해서 이 곳에 제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소설가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의 판단을 타자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할지, 그 형식을 결정하는 것은 작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을 예로 든다면, 저는 저의 판단을 가상 속 이야기에 옮겨 담기를 선호하며, 그것이 바로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직접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삼가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Please do, however, allow me to deliver one very personal message. It is something that I always keep in mind while I am writing fiction. I have never gone so far as to write it on a piece of paper and paste it to the wall: Rather, it is carved into the wall of my mind, and it goes something like this:

그러나 제게, 단 하나, 매우 개인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제가 소설을 쓰면서 언제나 마음속에 두고 있는 그 무엇입니다. 종이에 써서 벽에 붙인 적은 없지만, 그러나 제 마음에 벽이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 이렇게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Between a high, solid wall and an egg that breaks against it, I will always stand on the side of the egg."

"만일 높고 단단한 벽과 그에 부딪히는 달걀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언제나 달걀의 편에 설 것이다" 
    
Yes, no matter how right the wall may be and how wrong the egg, I will stand with the egg. Someone else will have to decide what is right and what is wrong; perhaps time or history will decide. If there were a novelist who, for whatever reason, wrote works standing with the wall, of what value would such works be?

그렇습니다. 아무리 벽이 옳고 정당하며 아무리 달걀이 틀렸을지라도, 저는 달걀의 편에 설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다른 이들이 판단할 일입니다. 어쩌면 시간이, 혹은 역사라 불리우는 것이 판단할지도 모르지요. 만약 어떤 이유에서건, 벽의 편에 서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What is the meaning of this metaphor? In some cases, it is all too simple and clear. Bombers and tanks and rockets and white phosphorus shells are that high, solid wall. The eggs are the unarmed civilians who are crushed and burned and shot by them. This is one meaning of the metaphor. 

이 은유가 혼란스러우십니까? 경우에 따라 이는 매우 단순하고도 명료합니다. 폭격기, 탱크, 로켓과 백인탄은 높고 강고한 벽이며, 달걀은 그 무기들로 불태워지고 총격을 당한 비무장 시민입니다. 이것이 제 은유의 한 가지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This is not all, though. It carries a deeper meaning. Think of it this way. Each of us is, more or less, an egg. Each of us is a unique, irreplaceable soul enclosed in a fragile shell. This is true of me, and it is true of each of you. And each of us, to a greater or lesser degree, is confronting a high, solid wall. The wall has a name: It is The System. The System is supposed to protect us, but sometimes it takes on a life of its own, and then it begins to kill us and cause us to kill others - coldly, efficiently, systematically.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우리들 한 명 한 명이,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달걀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들 저마다가, 유일하고 대체할 수 없는 영혼을 약한 껍질 안에 숨기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 모두가,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각각 높고 강고한 벽과 직면해 있습니다. 그 벽에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스템, 이라고 하는 이름을요. 시스템은 애초에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때로 자가증식을 통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하고,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를 차갑게, 효과적으로, 조직적으로 죽이도록 유인합니다.  
   


I have only one reason to write novels, and that is to bring the dignity of the individual soul to the surface and shine a light upon it. The purpose of a story is to sound an alarm, to keep a light trained on The System in order to prevent it from tangling our souls in its web and demeaning them. I fully believe it is the novelist's job to keep trying to clarify the uniqueness of each individual soul by writing stories - stories of life and death, stories of love, stories that make people cry and quake with fear and shake with laughter. This is why we go on, day after day, concocting fictions with utter seriousness.

제가 소설을 쓰는 목적은 단 한 가지, 개인의 고유한 영성을 드러내고, 그것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입니다. 이야기는, 우리의 영혼을 시스템의 거미줄에 엮이지 않도록 보호하는 경고음이자 보조등이 되어 줍니다. 저는, 소설 쓰기를 통해 개인 영혼의 고유함을 명확히 하는 것이야말로, 소설가가 이루어내야 할 소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읽는 이로 하여금 울고 공포에 떨게 하며, 때로는 웃고 뒹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말이지요. 바로 그 소명이, 작가로 하여금 날마다 깊은 고뇌 속에 소설을 엮어내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 줍니다.  
 
My father died last year at the age of 90. He was a retired teacher and a part-time Buddhist priest. When he was in graduate school, he was drafted into the army and sent to fight in China. As a child born after the war, I used to see him every morning before breakfast offering up long, deeply-felt prayers at the Buddhist altar in our house. One time I asked him why he did this, and he told me he was praying for the people who had died in the war.

제 아버지께서는 작년에 9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퇴직 교사이셨고 불직에 몸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대학원에 재학중이었을 때 군대로 출병되어 중국 전투지에 보내졌습니다. 전후 세대인 저는 어렸을 적, 매일 아침 식사 전마다 아버지께서 길고 긴 경독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께 왜 그렇게 독경을 외우시냐고 여쭈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He was praying for all the people who died, he said, both ally and enemy alike. Staring at his back as he knelt at the altar, I seemed to feel the shadow of death hovering around him.

아버지께서는 희생된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적군도 아군도 관계 없이. 불상 앞에 정좌한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저는 아버지 주위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 듯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My father died, and with him he took his memories, memories that I can never know. But the presence of death that lurked about him remains in my own memory. It is one of the few things I carry on from him, and one of the most important.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고, 자신과 함께 기억도 같이 데려가셨습니다. 저로서는 알 길이 없는, 아버지의 기억들. 그러나 아버지를 둘러싸고 있던 그 죽음의 존재감만은 저 자신의 기억으로서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는 제가 아버지에 관하여 지닌 많지 않은 기억 중 하나이자, 가장 중요한 기억이기도 합니다.
  

I have only one thing I hope to convey to you today. We are all human beings, individuals transcending nationality and race and religion, fragile eggs faced with a solid wall called The System. To all appearances, we have no hope of winning. The wall is too high, too strong - and too cold. If we have any hope of victory at all, it will have to come from our believing in the utter uniqueness and irreplaceability of our own and others' souls and from the warmth we gain by joining souls together.


제가 오늘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씀은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인간이며, 국가 인종, 종교 등을 초월한 개별된 인격이며, 시스템이라 불리우는 굳은 벽을 마주한, 깨지기 쉬운 달걀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아서도 우리에게 승산이란 없습니다. 벽은 너무나 높고, 강고하고, 차갑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단 한 가지 희망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고유하고도 대체 불가능한 저마다의 영혼을 서로 공명하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온기, 그 따뜻함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Take a moment to think about this. Each of us possesses a tangible, living soul. The System has no such thing. We must not allow The System to exploit us. We must not allow The System to take on a life of its own. The System did not make us: We made The System.

부디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명백한, 살아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에는 그러한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이 우리를 착취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이며, 시스템이 멋대로 자가증식을 계속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스템이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그 시스템을 만든 것입니다. 
  
That is all I have to say to you.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I am grateful to have been awarded the Jerusalem Prize. I am grateful that my books are being read by people in many parts of the world. And I am glad to have had the opportunity to speak to you here today.

예루살렘 상을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세계 각처에 제 책을 읽어주신 분들이 계신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말씀을 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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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상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당연히 하루키의 수상 소식도 몰랐다.
일요일 저녁, 즐겨듣는 클래식 FM에서
우연히 하루키 관련해서 귀담아 듣다가
구글 검색창에 한번 쳐봤다가
블로그에 누가 해석해서 올려놨기에 조용히 퍼왔다.

하루키를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디까지나 그냥. 보통의 관심은 있다.

달걀의 편에 서 있겠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수상을 두고 좀 시끄러웠었나보다.
그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난, 그저 수상소감이 궁금한 마음에 퍼온 것일뿐.
lalameans.egloos.com/407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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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수는 2년 전에 발표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1인칭. ‘나’. 내 눈으로 바라본 세계. 이제 안녕이다. ‘나’로만 구성된 소설집을 한 권 쓰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거짓말쟁이가 돼버렸으니까. (중략) ‘나’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좀 어렵게 됐다. 그 생각을 하니 배가 고프다. 이 책의 제목을 빌리자면, ‘나’는 유령작가가 됐다. 더 많은 이야기. 내게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의 체취가 그리워서 잠도 안 온다.」

“글을 이십 대 때부터 썼지만 서른 살 넘어서부터 소설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나의 당면 과제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란 사람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었어요. 소설을 쓰면서 돈을 벌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이십 대에 등단해서 원고료를 받고 ‘공돈’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처음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심심해서, 시간이 많아서’였으니까. 그런데 그 소설로 돈을 받는다는 게 참… 건방진 소리긴 한데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쓸 때까지 독자는 알 바가 아니고, 내 소설이 안 팔리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소설책들은 많이 나가야 만 부 가량이었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삼십 대 초반에는 힘만 넘쳐서 독자들이 이해하든 말든 그랬어요.(웃음) 독자를 위해 쓴 소설이 아니니까 안 팔리는 게 당연하죠. 독자도 아니까.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죠.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후기에 ‘이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라고 썼는데, 다른 사람 이야기를 쓰려면 어떤 식으로도 소통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독자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렇다고 내 소설이 백만 부, 십만 부씩 팔려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독자가 이해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연수, 독자와의 소통을 꿈꾼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선언한 김연수는 사이렌처럼 왕왕 울리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짓눌린 개인의 목소리를 소설로 썼다. 《문학동네》에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소설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으로 출간됐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계획에 없던 소설이었지만 그의 첫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와 묘하게 이어지면서, 삼십 대에서 사십 대로 넘어가는 한 작가의 변화를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91년 5월의 일을 돌아가서 다시 보겠다고 쓴 소설입니다. 그렇다고 회고는 아니죠. 처음엔 후일담 비슷하게 되어버렸는데 가다가 이야기가 바뀌었어요. 그때의 관점이 아니라 지금의 관점으로 소설을 썼으니까요. 예를 들어, 프락치에 대해서도 그때의 관점으로 썼다면 절대로 여기 나오는 식으로 쓸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 한국 현대사를 알 필요도 없어요. 이 소설은 개인의 이야기니까.”



 


김연수의 첫 장편 소설은 1994년에 발표한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다. “91년 5월 전까지는 거대한 진리의 세계가 있었어요. 그런데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세계가 와장창 무너졌죠. 그리고 94년쯤 되어 세계가 엄청나게 바뀌었지만 우리는 레닌과 마르크스를 통해 그것을 가짜, 곧 붕괴될 세계라고 배웠어요. 그런데 그것을 진짜라고 믿어야 하는 시대가 온 거죠. 그때가 되어서야 ‘나’라는 것을 찾아야 했죠. 뭐가 진짜고 가짠지 알 수 없는 세계에 던져져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데 한 번도 그렇게 사는 걸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찾기 위해 글을 썼고, 첫 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의 주제는 ‘진실이 뭔가’가 됐습니다.”

그에 비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그때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되묻는다. 복원은 하지 말고 지금의 눈으로 ‘해석’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쓴 소설이다. “내가 소설을 쓰는 원동력은 첫 소설을 쓸 때는 굉장히 격렬한 감정들이 있었지만, 지금 그 감정들을 돌아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사람이 됐죠. 그때는 우리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몰랐으니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그래서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죠.”

그때와 지금의 사람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때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이타적이고, 윤리적으로 행동하려고 했죠.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도 있었고. 지금은 남을 위해 헌신한다는 경험이 사라졌죠. 연애 정도가 남았을까.(웃음) 누군가를 위해 죽을 일이 거의 없지 않나요. 민족을 위해 죽는 그런 세상은 끝난 거죠. 그리고 내 생각엔 다시 오지도 않을 것 같아요. 옛날이 좋았다는 건 아니에요.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가고, 그때 대학생이었던 사람들도 변해간다는 거죠.”

24시간이 작업 시간

소설 쓴 지 12년째. 그는 근성 있는 프로 작가다. 단편 위주의 한국 문단에서 묵직한 장편을 발표하는 몇 안 되는 귀한 작가다.

“제가 힘이 좋아요.(웃음) 등단할 때도 장편으로 했고. 24시간이 내겐 작업 시간이에요. 글 쓸 때는 작업실에 처박혀 나오지도 않고 밥도 잘 안 먹어요. 그렇다고 글을 열심히 쓰는 건 아니고. 잠을 많이 자요. 글이 막혀도 자고, 생각이 안 나도 자고, 마감이 오면 못 자니까 미리 자 두고.(웃음) 보통 원고지 40매 쓰는 데 일주일 정도 걸리고, 단편 하나 쓰는 데 2주 정도 걸려요.”

“주로 작업실에 처박혀 글을 쓰는 타입인가요?”

“그렇죠. 아,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좀 달랐어요. 그 소설은 카페나 지하철에서 썼어요.”

“번역 일은 어떤가요?”

“번역은 좋아하는 일이에요. 돈 버는 일. 큰 고통 없이 할 수 있어서 많이 하는 편이죠.”

“무라카미 하루키 식은 아닌 거네요.”

“일이니까.”

“하진의 소설 『기다림』을 번역했는데 어땠나요?”

『기다림』은 번역하기 쉬웠어요. 소설가 하진의 매력은 정확한 문장이죠. 이 작가는 먼저 중국어로 생각한 다음에 정확한 영어 단어로 문장을 써서 애매한 구석이 없죠. 그대로 번역만 하면 완벽한 문장이 나오죠. 소설도 재미있었고, 마지막 반전도 마음에 들었어요.”

“동시대 소설가들의 작품에 자극을 받나요?”

“소설을 많이 읽어요. 소설 보는 게 재밌고, 소설 속에서 비슷하게 공유되는 시대감각도 읽죠. 그런데 일본소설은 잘 안 봐요.”

“의외네요.”

“일본소설은 문장 읽는 맛이 없어요. 대화는 있지만 지문을 최소화시켜서 방송극 대본처럼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이야기는 살지만 작가의 스타일이 안 살죠. 미국 소설, 영국 소설을 많이 봐요. 프랑스 소설도 잘 읽지 않아요. 노통브 같은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같은 프랑스 작가라도 『플랫폼』『투쟁 영역의 확장』을 쓴 미셸 우엘벡은 좋아해요. 작가가 자기 색을 드러내는 소설이 좋아요.”

“그럼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같은 소설은 어떤가요?”

“소설 문장은 『보바리 부인』처럼 쓰는 게 맞다고 봐요. 그렇지만 그렇게 사회를 반영하는 건, 글쎄요. 나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보바리 부인』은 최고의 소설이고, 무척 아름다운 문장이죠. 내가 아름답다고 하는 건 좀 다른 감각에서 하는 말이에요. 사실 플로베르의 문장은 지금 읽기엔 버거울 정도예요. 예를 들어, 설탕이라고 쓰면 될 것을, 어디서 수입한 원료로 만들었고, 그 성분은 뭐고, 상표는 어떻게 생겼고 하는 식으로 원자의 단위까지, 최소한의 단위까지 단어를 찾아 쓰는 식이니까요. 나는 그 틀이 마음에 들어요.”

“소설에 어울리는 문장이 따로 있을까요?”

“소설용 문장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예쁘게 쓴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간략하게 쓴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뭐랄까, 기능적으로 작용하는 문장이 소설의 문장이죠. 스토리에, 전체 이야기에 공모하는 문장이죠. 이야기에 필요 없는 문장은 다 뺀다는 게 나름의 원칙이에요. 전체적인 생각이 있고, 그 생각에 맞춰 장면을 찾아내고, 그것을 글로 쓰면 책이 되죠.”

“시로 먼저 등단을 했는데, 소설 쓰면서 시적인 것에 영향을 받거나 하진 않나요?”

“시를 읽는 걸 좋아하고, 세상 모든 시인들을 존경해요. 시인은 모국어를 제일 잘 다루는 사람이죠. 시를 읽다 보면 이것을 이렇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구나 감탄하죠. 그런데 시적인 것은 소설에 들어오기 힘들어요. 시적인 것은 뜬금없잖아요. 소설은 시적인 문장으로 쓸 수 없어요. 소설의 문장은 보여주거나 글이거나 대사이기 때문에 은유를 쓰면 헷갈립니다. 가급적 은유를 안 쓰는 게 좋죠. 소설은 소통의 문제니까요. 예를 들어 (테이블 위의 설탕통을 가리키면서) ‘이것은 설탕이다.’라고 하면 되는데 ‘염전에서 삼일 된 소금’ ‘이별하고 나서 본 아침 하늘빛’ 이렇게 하면 소통이 안 돼요. 대부분 소설에 나오는 사물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지시만 해 주면 됩니다. 그런데 은유가 들어가면 헷갈려요. 특히, 개인적인 은유, 원관념이 사라진 은유는 쓰지 않아요.”

오래된 것 속에 이야기가 있다

김연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직접 듣는 것보다 한 다리 건너서 듣는 ‘그랬더라’ 식의 이야기를 더 선호한다는 점.

“어떤 사람이 내게 직접 해 준 이야기는 글로 못써요. 누가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면 정보가 매우 부실해요. 굵은 이야기 줄기 하나만 남아 있어요. 거기에다 상상을 채워 넣으면 그 사람하고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제일 좋아요.”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지만 소설가 김연수가 쓸 수 있는 세계는 그다지 넓지 않다. “나는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정체성을 넘어가는 이야기를 쓰긴 힘들 것 같아요. ‘나는 누구인가’까지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늘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가 궁금하거든요.”

다르게 표현하면 김연수는 사진첩의 작가다. “내가 궁금한 걸 다르게 표현하면 이런 거죠. 집집마다 가면 사진첩이 있잖아요. 다들 웃고 있는 사진들이 꽂혀 있는…. 그 시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진만 남아 있어요. ‘촉감’이나 ‘감정’ ‘소리’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가 궁금해요. 그게 내가 누군지 궁금하다는 의미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보통은 없어지는 거죠. 기억에 저장이 돼도 정확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 사라지죠.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조건이에요. 그래서 내가 누구냐고 한다면 그런 감각들로 이루어진 시간을 지나오는 존재라는 거고, 그 감각들은 찰나의 것으로 존재하죠. 남는 것은 사진 같은 흔적이고, 그런 것들은 몇백 년을 가잖아요. 그런 흔적들 속에 인생이 깃들여져 있고, 거기에 이야기가 있어요.”

오래된 것 속에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거리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오래된 거리, 손때가 묻은 물건에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의 페이지가 몇 페이지 찢겨 있다. 그러면 정말 쉽게 이야기를 쓸 수 있어요. 왜 찢었을까, 상상을 하는 거죠. 복원은 불가능하지만 소설가가 자신의 역량과 지식을 동원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실제 일어난 일과 최대한 비슷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소설가라고 생각해요.”

프로 소설가, 소설 쓰기의 비결을 말하다

김연수는 상복이 많은 작가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휩쓴 그에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는지’를 물었다.

“소설 쓰기의 비결을 묻는 사람이 많은데… 비결이 뭐 있겠어요.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 초반이 제일 힘들죠. 그때 회의도 들고, 다른 거 해 보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고. 그 시기를 지나오는 게 막막해 다들 비결을 찾는데, 그 비결이라는 건 시간을 견디는 거라고 봐요. 소설을 쓰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하니까.”

그 역시 그와 비슷한 막막한 터널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소설을 쓰면서 헤매지는 않아요. 헤매기에는 나이가 많죠(웃음). 창작은 영감과 노력의 문제인데 소설은 노력에 가까운 것 같아요. 노력을 투여하면 소설이 나오고 투여하지 않으면 소설이 안 나와요. 아무리 영감이 있더라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죠. 이십 대에 좋은 소설을 쓰기가 어려워요. 삼십 대 후반, 노력과 영감이 절정에 이르는 단계에 제일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지금 제게 ‘절정기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오십 대에도, 육십 대에도 소설은 쓸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영감은 쇠퇴하지만 몸에 밴 노력이 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쓰고 있지 않을까요.”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1&cont=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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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접 낭독한 시·소설… 이메일로 독자들에게 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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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스트의 즐거움을 위하여… 두 文人의 새로운 디지털 실험.
  • 글=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사진=이태경 객원기자 ecaro@chosun.com
    입력 : 2007.04.29 23:59 / 수정 : 2007.04.30 00:00
    • 안도현
    • “시가 재미 없다구요? 확실한 감동을 선사하는 시가 무엇인지 보여드리죠.”(시인 안도현)

      “드라마처럼 웃음과 눈물을 주는 문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겠습니다.”(소설가 성석제)

      시와 소설 분야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려온 스타 시인 안도현 씨와 소설가 성석제 씨가 문학을 배달하는 집배원으로 나선다. 문학 전문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김치수)로부터 최근 문학 집배원 위촉을 받은 두 작가는 오는 5월부터 1년간 각각 ‘안도현의 시 배달’과 ‘성석제의 문장 배달’ 코너를 운영한다.

      두 작가의 주된 임무는 독자에게 들려줄 시와 산문을 고르고, 짧은 촌평을 곁들이는 것. ‘문학나눔’(www.for―munhak.or.kr)은 이 문장들을 토대로 그림과 사진, 애니메이션 등을 활용해 독자들이 시각과 청각으로 즐길 수 있는 시 편지를 만들어 매주 월요일(안도현의 시 배달)과 목요일(성석제의 문장 배달) 아침 이메일로 전국의 회원들에게 발송한다. 시와 소설 문장은 주로 전문 성우들이 낭송하지만 두 문인도 낭송자로 나서 월 1회씩 각자의 육성을 들려준다.

    • 성석제
    • 시와 소설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랑을 받는 두 작가가 인터넷 초인종을 누르겠다고 나선 것은 영상문화에 치여 위축되고 있는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등으로 해학 넘치는 특유의 문학세계를 구축해 온 성석제 씨는 “5월 한 달은 독자의 배꼽을 빼는 것으로 시작하겠다”며 “최근 한국문학전집을 새로 장만해 독자에게 들려줄 문장을 고르고 있다”는 말로 각오를 과시했다.

      5월 3일 첫 배달을 하는 성 씨는 “단오가 가까웠으니 먼저 춘향전에서 성춘향이 그네 타는 대목부터 들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유정의 ‘봄봄’, 이문구의 ‘우리 동네 김씨’, 이기호의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등을 발췌해 들려준다. 이미 5월분 녹음을 마친 성 씨는 “전문 낭송자들조차 웃느라 NG를 여러 차례 냈을 만큼 배꼽 빠지는 문장들”이라는 말로 흥행을 자신했다.

      육성으로 시를 녹음하기 위해 매달 한 번씩 전주에서 서울로 상경하게 된 안도현 시인은 지난해에도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라는 애송시 선집을 냈을 만큼 독자들과 함께 시를 나누는 작업에 관심을 보여 왔다.

      7일 첫선을 보이는 안 시인은 주로 감동에 호소한다는 전략.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눈물과 국밥의 짠맛으로 절묘하게 형상화한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를 첫 배달 작품으로 골랐다. 이어 14일에는 헤어진 애인이 결혼하는 날 한쪽 눈썹을 밀어버린다는 재미있는 발상이 돋보이는 송찬호의 ‘찔레꽃’을 배달한다. 안 시인은 “쉽고 비유가 절묘해 무릎을 치게 하는 시들로 독자들의 시심을 자극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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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이 니체는 ‘여성의 위대한 재능은 거짓말이고 최고의 관심사는 외모’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분명 여성비하적인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모든 비난은 언제나 자기가 비난하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고 있다. 거짓말하기와 외모 꾸미기가 여성의 본질이라는 비난 뒤에 있는 것은, 그래서 도대체 여자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체념 섞인 두려움이다. 여성은 심지어 완전히 발가벗었을 때조차 언제나 무언가를 입고 있다.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인가? 그 무언가마저 끝내 벗긴다면, 그때 여성은 ‘본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까? 그래서 완전히 이해될 수 있을까?

    정이현은 오래 전부터 남성 철학자와 예술가들을 매혹시킨 여성이라는 알 수 없는 물 자체에 대해 말해왔다. “아니, 20, 30대 싱글 여성들의 재치 발랄한 일상을 그린 트렌드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그 정이현이?”하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첫 단편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실린 단편들을 보자.

    소설 속 여성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순결한 처녀, 무지하고 가련한 가정주부, 깔끔하고 지적인 커리어우먼, 세련된 프리랜서, 발랄하고 순진한 소녀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녀들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힌, 속물적 계산법에 철저한 존재들로 판명된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거짓말은 당연하고 심지어 살인과 시체유기까지 서슴지 않는다. 겉으로는 가부장제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연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가장(假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발칙한 여성들. 한 마디로 그녀들은 배우다. 그녀들의 순진함, 순수함, 우아함, 섬약함, 섬세함 등이야말로 가장 그럴듯한 연기이자 가면이다. 그렇다면 여성다움이라는 가면 뒤에 가려진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진실된 본질이라는 것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서둘러 말하면 ‘아니오’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찾아본 단서는 다음과 같다. “솔직히 나도 가끔씩 내가 ‘오은수’를 흉내내며 사는 건 아닐까 궁금해요. 내 이름이 오은수가 맞는지, 내 이름과 진짜 나 사이에 뭐가 있는지.”

    가면을 벗긴다고 해서 그 속에 맨얼굴의 진실은 없는 것이다. 가면 속에는 또 다른 가면이 끝없이 포개져 있을 뿐이다. 소설 속 ‘오은수’가 평균적인 삼십 초반 싱글녀를 흉내 내며 사는 것처럼, 그러다가 실연한 여주인공을 흉내내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흉내 내며 산다. 그렇다고 해서 어딘가에 본래의, 진실한 ‘오은수’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오은수’의 원본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특히 상품들이 내쏘는 인공조명으로만 간신히 자신을 비추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아란 바로 그렇게 조각난 상품의 그림자들로 이루어진 투명한 그림자일는지도 모른다. 그림자 바깥은 없다. 그러니 실체도 없다. ‘오은수’가 합리적인(?) 계산을 통해 “부유하는 먼지처럼 하찮은 자신을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줄” ‘기준점’으로 선택한 ‘김영수’가 사실은 실체 없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현실은 가장 진짜 같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정이현의 소설은 그런 진짜 거짓말의 세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컨대 번쩍거리는 상품들로 가득 찬 삼풍백화점이거나(‘삼풍백화점’), 거짓말로 꾸며낸 상품사용 후기로 도배된 인터넷쇼핑몰(‘1979년생’)과 같은 곳 말이다. 과장된 꾸밈과 거짓말로만 이루어진 바로 그곳, 영혼 없이 그림자놀이를 하는 그곳, 아케이드 서울이야말로 우리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표지에 그려진 붕 뜬 싱글녀는 오늘도 아케이드 서울을 유영한다.

    〈심진경|문학평론가〉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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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e…EBS 지식채널e|북하우스

    2005년 9월, TV에는 이상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광고인가? 다큐멘터리인가?’ 갸우뚱거리다보면 5분 간의 꽉 짜인 서사와 이미지가 이미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가슴으로 읽는 지식’을 표방한 EBS의 5분짜리 동영상 프로그램 ‘지식채널e’ 얘기다.

    그간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5분짜리 미니 영상다큐들이 책으로 묶였다. 과학, 사회, 인간, 자연, 문화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21세기식’ 영상시들이 종이 위에 펼쳐진다. 책 안에는 우리가 지금 시대에 ‘진짜’ 알아야 하는 지식들이 가득하다. 우리의 일상이 돼버린 ‘햄버거’가 단순히 고기를 넣은 빵이 아니라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주범임을 환기시키거나, 우리가 월드컵에 환호하는 동안 파키스탄의 어린이 노동자들은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 하루 일당 300원을 받고 1620회의 바느질을 해야함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외에도 매맞는 여성·혼혈인·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된 이들에 대한 세밀한 시선, 호찌민과 지미 헨드릭스 등 인물을 통한 역사의 반추 등으로 여러 가지 성찰 거리를 던진다.

    형식도 프로그램이 가진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감각적 영상을 효과적으로 활자화했다. 이에 더해 동영상을 통해 설명할 수 없었던 각 키워드에 대한 해설도 곁들였다. 1만2800원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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