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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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로 시작해야 하나. 이 느낌을 언어로 정확히 전달하기엔 내 표현이 한참 모자랄 텐데. 황정은 작가를 알게 되고 팬이 되었다. 애정하는 작가들이 여럿 되지만 그 중에서도 아마 오랫동안 우위를 차지하게 될 것 같다. 두 주인공이 정말 청순하고 착하다. 착해서 싫고 답답하고 짜증나는 게 아니라 착해서 예쁘고 사랑스럽고 보는 사람까지 덩달아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그런 착함이다. 착한 것이 이 정도로 강한 매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뜻밖이다. 배우고 싶어졌다. 그런 마음을. 그런 시선을.

현실은 점점 더 잔인해지고 난폭해졌고 사람들은 밀려나고 상처 입고 잊혀져 사라진다.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와 닿은 것이겠지. 소박한 사람들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만 읽어도 무방하다. 감동은 결코 적지 않다. 소설이 짚고 있는 윤리성에 눈이 번쩍 했다.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던 것에 눈을 맞추게 한다. 그림자가 일어선다는 은유엔 깜짝 놀랐고. 인간성의 균열이나 무너짐으로 인해 생겨난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본다. 자꾸만 두 사람의 대화와 모습이 가만히 떠올려진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가까워지는 그 모습에 내 맘이 다 설렜다.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같이 걸어가는 게 사랑이겠지. 험한 세상에서 작은 위로가 돼 줄 사람을 다들 갈망한다. 이해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애틋하게 서로를 쳐다보는 눈길을 나눌 수 있는 진실된 누군가를 꿈꾸게 만든다.

평생 살면서 누군가를 진짜 사랑하는 경험은 분명 드문 일이다. 의미 있는 일이고. 하지만 자주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내 삶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믿고 싶어졌는지 모른다. 이 이야기를. 보잘것없어 보여도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이 진짜배기다. 외적인 것에 흔들리고 혹하기 쉬운 세상이지만 그 대척점을 생각하고 바라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무엇이 궁극적으로 옳은 것인지 가리킨다. 나는 배웠다. 인물들의 정서와 태도를 통해서 드러난 감정과 나를 둘러싼 세상이라는 시스템의 폭력성이 과연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말이다. 역시 문학은 강력하다. 고작 느낄 뿐이지만 느낀다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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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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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이야기에 푹 빠져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겼다. 소설의 세계, 이야기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다. 그냥저냥 미루다 이제서야 뒤늦게 읽게 됐지만 더 늦었다면 큰 아쉬움으로 남을 뻔 했다. 진즉에 읽었어야 했다. 이 소설에 쏟아진 찬사에 충분히 공감한다. 강렬하며 촘촘하고 단단하다.

어떻게 7년의 밤이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이야기는 말한다. 살인자가 있고, 그의 어린 아들이 있고, 막강한 상대가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벌어진 명백한 실수가 있고 나약해서 고백할 타이밍을 영원히 놓쳐버린 한 사람이 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삶이 얽히고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그도 살인자 이전에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것이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밀려드는 후회와 자책의 시간 속에서 절망하고 불안에 떨며 괴로워한다. 그 기분이 어땠을지 감정이 이해가 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린 모두 비슷비슷한 존재들이니까. 때론 잘못인 줄 알면서도 저지르기도 하니까. 저지른 후에야 비로소 잘못이라는 뒤늦은 깨우침이 오기도 하니까. 슬펐지만 슬프지만은 않아서 좋았다. 그래도 몇몇 대목에선 울컥했다. 재밌다는 말이 너무 단순한 표현이지만 몰입도가 높고 흥미진진하며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정신 못 차릴 정도는 실로 오랜만에 만난 경험이었다. 꼼꼼하게 취재하고 공부해서 쓰는 소설은 아무래도 사실감이 더 부여된다. 아귀가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이야기에 감탄했고 작가님에게 경의를 바쳤다. 완벽하다. 어둡고 깊은 얘기에 맘이 대책없이 끌리는 걸. 여운이 길다.

커다란 마음의 상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된다. 감정을 숨기고 만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누군가를 감히 이해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만의 오해일 수도, 착각일 수도 있으니. 쉽게 손가락질 하고 외면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 들여다보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아들을 지켜내고 위험으로부터 막아내려는 아버지의 그 마음을 생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뜨거운 것이 솟구친다. 최현수, 최서원, 안승환, 오영제. 네 사람을 쉬 잊을 수 없다. 가슴에 콕 박혀버렸다. 각별하다. 왜 이 소설이 이 정도로 좋은지는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무엇보다 감흥이 컸고 진실한 감동이 와 닿았기 때문일 테다. 이 맛에 소설 읽는거지 하는, 바로 그 맛 말이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해가지고 소설의 이런저런 대목을 생각했다. 잔상이 금세 사라질 모양은 아니다. 이 느낌이 싫지 않다. 소설을 본다 해서 매번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 핵심이 살아 있고 쭉쭉 치고 나가는 글솜씨를 느끼실 수 있으실 터. 이건, 꼭 읽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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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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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불편하고 아프다. 이야기의 느낌이나 생각 모두가 그랬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좋다는 느낌이 동시에 든다. 왜 그럴까. 아픈데 슬픈데 힘든데 좋을 수도 있다. 폭력은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앨리시어의 상처는 피할 수 없었다. 버젓이 집안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사람을 왜 때리는 걸까.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인생 제대로 망가지는 게 분명 확실한데. 들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는 시간이 지나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떤 나쁜 과거가 그저 과거지사의 일이 아닐 때. 삶에 연속적으로 등장해 지대한 영향을 미칠 때. 빠져나오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때. 그게 비극이다. 꼭 같진 않더라도 과거 폭력의 현장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앨리시어의 감정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찢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얄궂게도 더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내 안을 파고들면 어떤 기억이 가장 오랫동안 존재해 왔을까. 내가 선택해서 벌어진 일이라면 감당하기가 조금은 쉽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겪게 되는 끔찍한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해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 너무 많다. 함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쉬운데 그 여파를 곰곰 생각해보면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씨발이라는 욕이 대체 불가능한 언어로 문학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인상깊다. 욕은 강도가 센 언어니까 더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얇은 분량의 책이었는데 책장이 마냥 휙휙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 내용이 가볍지 않으니까. 좀 더 써줬으면 싶은 약간의 아쉬움도 들었지만 군더더기 없이 덜어낼 건 최대한 다 드러내는 게 작가의 생각인 것 같다. 없는 걸 억지로 끌어다 붙일 필요는 없지. 관심가는 작가가 한 명 더 생겼다. 이야기도 방식도 마음에 파문을 남겼다. 이제 이야기와 이미지로 남은 앨리시어. 내게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거북해지는 그 기억을 말이다. 말할 수 없는 기억은 말할 수 없는 기억으로 앞으로도 내게 남아 있을 것이다. 겹겹이 쌓인 채 작아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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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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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란 작가가 한국문단에 얼마나 독보적인 존재인지 소설을 보면 알게 된다. 아무리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이라고 해도, 이야기를 유독 더 맛깔나게 쓰는 작가라는 생각을 자연히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글솜씨를 지니셨다. 글을 보면 삶이 더해 질수록 박완서 문학도 함께 더해지는 격이다. 나이 드는 작가들을 보면 더더욱, 해마다 먹는 나이에 따른 노쇠는 어쩔 수 없을지언정 글을 쓰는 정신적인 면에선 전혀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만큼 여전하신 필력을 자랑하고 계신 듯했다. 내공이 느껴지는 노련함을 9개의 단편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에 따라 형식과 시선을 달리하며 제각각 재미와 깨달음을 동시에 독자에게 안겨주기가 어디 쉬운 말인가.

모든 문학은 일정 부분 자전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 개인이 나이듦에 따라 노인들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로든 등장시키는 이야기는 지극히 자연스러울 터. 내가 그 나이를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득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감정 이입이 잘 됐다. 아스라한 그리움도 이중성과 위선도 나이와는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모두가 똑같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어떤 면에서 도드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 대해서 쓰는 작가이기에 훌륭한 것이겠지.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잘 쓸까?' 연발하면서 읽었다. 유머와 재치, 삶에 대한 진한 시선 같은 건 분명 나이듦에서 얻어지는 것이리라.

결코 소멸되지 않을 문학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작가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건 지난 세월동안 많은 작품을 쓰셨던 것처럼 현재도 현역으로 활동하시고 날카롭고 유쾌하고 명쾌한 재미난 이야기를 집필하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야기 읽는 재미에 정신 팔려서 막 읽다가도 어느 한 문장에 꽂혀서 잠시 책에서 시선을 떼고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하게 만든다. 막힘이 없다고 할까. 편하게 술술 쓴 것처럼 술술 읽히지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정 수준의 무게를 유지하는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훌륭하다. 멀리 있어 아득하게 느껴지거나 인위적인 면이 전혀 없는 이야기를 보며 새롭게 박완서란 작가의 진가를 다시금 발견하고 탁월한 서사에 감탄했다. 다만 바라는 것은 작가의 건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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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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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공지영의 소설을 읽었다. 작가 공지영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여러 난관과 희망들이 이런 소설을 집필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혼이란 한마디로 깊은 상처같은 것이다. 이것은 자명하다. 사람에 따라 이 상처를 끝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한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한 가정이 모두 같은 아픔과 슬픔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니 말이다. 부모라서 '더' 많이 아프고, 자식이라서 '덜' 아픈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이 고통받는다. 실제 작가 개인이 살아왔던 혹독한 지난 삶과 현재의 삶의 모습들이 일부 언뜻언뜻 비춰지고 있는 이 소설을 보며, 많은 부분 공감했고 동시에 내 자신의 상처도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가정사가 원만했다면 이만큼 마음으로 읽을 순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예쁜 자식들을 낳아 오순도순 알콩달콩 원만하게 살아간다면 그만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가끔은 흐리고 좋지 않은 날도 있을 거다. 자신의 앞날에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며 기대하는, 대책없는 순진한 사람들이 아직도 있으려나. 이혼이란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쉽게 내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쉽게 '보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여러 번 시도했으나 전혀 관계 회복이 불가능하며 남은 건 서로에 대한 혐오와 당사자들의 불행뿐만 아니라 그 불행이 자식들까지 영향을 끼쳐 내적으로 모두 심한 상흔을 남긴다면 '이혼'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충분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부정적인 이혼이 있다면 긍정적인 이혼도 있는 법이다. 아무리 예전보다 이혼하는 사람들이 늘어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나 냉대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나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이혼을 원하지만 이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내지 못하는 이야기 중에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도 꽤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일상적인 가족이 제일 말하기 어렵고 꺼려지는 화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세 번의 이혼을 한 엄마. 성이 다른 두 동생을 가진 위녕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보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다름만 있을 뿐 실상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다시 배웠다. 누구나 희망하듯 자신의 인생이 평탄하고 순탄하게만 흘러간다며야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런 일들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인생중엔 운명이란 이름으로 받아들여야 편한 것들도 있기 때문에. 엄마와 살게 되면서 비로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배우는 위녕. 함께 하면서 또 함께 하지 않아도 서로는 하나도 묶일 수밖에 없는 가족이란 운명이 아니던가. 서로의 상처에 내가 아픈 듯 괴로워할 수 있는 사이, 쉽게 부딪치는 만큼 쉽게 풀리는 그런 사이. 진짜 불행은 가정이 불화하고 좋게 않게 깨져서 관계가 끝나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진짜 불행이라 해도 영구적이진 못하다. 변화가 가능하니까 말이다. 스스로 어떤 생각과 방식으로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중요한 가르침을 위녕은 엄마를 통해 자신이 속한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귀중한 가르침을 기반으로 세상속으로 첫발을 막 떼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이란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까먹고 지내기가 쉽다. 남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고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싫기에 내 스스로도 더더욱 조심하며 살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혼이라는 것도 피할 수 없었던 하나의 선택이자 과정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야 할 것이다.  

세 번의 아픔을 겪었을지언정 쓰러지지 않았고 자신의 삶과 엄마로써의 삶에 애정을 갖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모습이 기실 작가 공지영의 실제 삶과 다르지 않기에 감명 깊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부모 잘못 물고 늘어지는 자식들도 많고, 필요 이상의 죄책감으로 속앓이 하는 부모들도 많다. 완벽하지 않아도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서로가 있기에 '즐거운 나의 집' 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을 깨달을 수 있도록 생각하도록 만든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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