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확 대실 해밋 전집 1
대실 해밋 지음, 김우열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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챈들러의 언급으로 대실 해밋이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됐다. 전집이 나왔을 즈음 기사를 접하고 내심 반가웠다.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드보일드를 많이 접해보진 않았지만 충분히 알 수는 있었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흥미를 느끼는지를 말이다. 의문의 사건이 느닷없이 벌어지고 그 사건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탐정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사실상 거부하기가 불가능하다.

붉은 수확을 통해 하드보일드의 원형을 보았다. 여기가 시작점이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단순히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흥미로운 게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기 전후의 사정을 밝혀내는 복잡한 과정 안에서 목격하게 되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흥미로운 것이다. 모두가 반듯하고 깨끗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현실에 전혀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야기의 바탕은 현실에서 기인한다. 각각의 욕망과 입장이 다르기에 충돌할 수밖에. 적나라해서 불편하고 혐오스럽지만 그런 세상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니까.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없으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추악하고 어둡고 비참한 세상 속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을 생각해본다.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잘 알기에 섣부른 기대나 희망은 전혀 없다. 적절히 사람들을 사용할 줄 알고 이용할 줄 안다. 감정이란 군더더기는 최대한 배제한 채 묵묵히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일을 진행시킬 뿐이다. 멋지다. 누굴 만나도 당당한 그 자신감과 그 재치 넘치는 말솜씨. 역시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말을 잘해야 해. 누군가에게 받은 진한 인상이나 영향 중에 '말'만큼 직접적이고 강력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소설 속 대화 장면을 보며 톡톡히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남자가 얼마나 배짱이 두둑하고 여유가 있고 안이 단단한 인물인지 대사를 보면 드러난다.

탐정 소설을 읽는 목적에 알맞은 책이었다. 내가 바라던 바를 충족시켜준 이야기. 간결한 문장이 포착한 세계와 인간은 냉담하고 거칠었지만 난 그런 세계 속 이야기가 전혀 싫지 않다. 세계와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들이니까. 이상한 위안을 얻는달까. 소설은 실제보다 더 도드라지게 그린다는 게 다를 뿐이다. 차이를 이용할 줄 아는 똑똑한 매력적인 탐정 사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신, 마음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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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
메이슨 커리 지음, 강주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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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를 막론하고 창작이라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늘 있어왔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싶었다. 하루라는 주어진 시간을 어떤 일상으로 사는지 엿보고 싶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일상은 반복이다. 획기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적다. 그동안 살았던 대로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관성의 법칙이 존재하니까.

책을 보며 자주 들었던 생각은 여기 있는 이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상을 확실히 가진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래서 휘청거리고 잠시 정체되더라도 이내 방향을 찾고 끊임없이 노력이란 열정을 쏟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게 진짜 부러운 거다. 뭔가에 미쳐서 매일매일 충실하게 보내본 적이 지금껏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 많은 시간동안 난 무얼하며 산 걸까. 해놓은 게 없다. 그럭저럭 시간만 축내며 살았다. 특별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대체적으로 특출날 것 없는 일상사였다. 그 점이 되려 감명을 주었지만.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한편으론 편안함을 제공하는 일상이 쌓여서 시, 소설, 그림, 음악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힘과 재능이 먼저 있어야 실천력도 따라주는 것도 같고. 관심사라 아무래도 글쓰는 작가들 내용에 눈길이 더 갈 수밖에 없었는데, 조언일 수도 있고 힌트일 수도 있는 경험담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실천까지 간다면 더 좋겠지만. 흥미롭고 간결해서 시종일관 읽기 편했다.

거창한 게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건 없었다. 역시 꾸준히 하는 게 장땡이다. 이제부터라도 시도해보는 게 중요할 텐데. 이런 글을 접하고 좋은 걸 느끼면 뭐하나. 실천이 안 되면. 자신을 속이는 기분이 든다. 분명 배운 점도 있고 내 삶의 방식에 대해 반성도 했다. 좋은 건 내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테니까 괜찮은 습관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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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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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문학을 사랑하고 연구하며 긴 시간을 보내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글과 사람이 반드시 같으란 법은 없건만 글을 마주하며 들었던 생각은 이 글은 그 사람을 순전하게 나타내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생각을 갖기가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우리말과 문장의 아름다움, 그 문장이 표현하는 깊은 식견들을 값없이 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마냥 어렵지도 쉽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묵직함이 느껴지는 이런 글이 좋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지만 아무나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느끼지 못했던, 배우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되니까 새로워지는 기분이다. 한마디로 배울 점이 많다는 소리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 좋은 느낌을 제공하는 자극이 책을 덮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금세 사라진다는 아쉬움이 벌써부터 떠올랐다. 필사를 해야 몸에 더 오래 기억되려나. 게을러서 필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글쓴이의 인격과 관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글이다. 뽐내지 않고 겸손하게 문장으로 뜻을 전달한다. 아는 것도 필요하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고스란히 전하려고 문장들을 닦고 또 닦았을 그 노력, 그런 자세가 필요하겠다. 생각 자체가 다르고 깊어서 감정이 사정없이 움직였다. 지혜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맥락을 짚어내고 꿰뚫는 시선은 밤의 시간들을 통해 키웠을 것이다. 나를 가르쳐주고 키워준 것은 무엇일까. 아니, 무엇이 될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문장이란 없다. 알고 있지만,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그런 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밀려오고 흘러가는 수많은 것들에서 건져내고 간직하고 예측해보는 것.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아마도 이 책을 꺼내보고 싶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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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거짓말쟁이들 - 누가 왜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가
이언 레슬리 지음, 김옥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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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란 주제에 흥미를 느낀다. 도대체 거짓말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역사를 거듭 해온 것일까. 집단이든 개인이든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흡사하다. 거짓말에 대한 본질을 알고 싶어서 고른 책인데 결론부터 말한다면 만족스럽다.

사실 제대로 알지도, 알아보려 시도하지도 않은 채 그동안 거짓말을 통념으로 받아들여 왔다. 금기시 되는 일이자 행위로 교육받았다. 거짓말을 떠올리면 불편하다. 거짓말에 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행위 속에 담긴 의미를 얼마나 해석할 수 있을까. 편견을 깨뜨리는 데 도움을 준 이 책을 통해서 거짓말의 유용함이나 당위성을 알게 됐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판단해버리기가 쉽다. 그것에 대해 모르고 있을 때일수록 그렇다. 정말 무엇에 대해 안다면 오히려 판단하기가 더뎌진다. 인류에 삶에 필요했기에 남은 것일 테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살 순 없다. 남을 속이는 것보다는 나를 감추는 것으로, 말을 하기보다는 침묵으로 거짓말을 하며 살아왔다. 솔직함이 이해보단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많은 게 말인 것 같다. 아는 게 없어서 좁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책을 통해 여러 전문가들의 흥미있는 실험과 설명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모르던 것들이라 내겐 참신함이었다. 견제와 균형을 유지한 채 거짓말을 받아들여야겠다. 거짓말을 안 하면서 살 자신은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하게 되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말이다.

인간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막연히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탐구정신을 가지고 한번 파헤쳐보면 얻는 것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이 용기가 된다. 잠시나마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느낌이다. 저자가 여러 내용을 잘 엮어줘서 질리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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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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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이야기에 푹 빠져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겼다. 소설의 세계, 이야기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다. 그냥저냥 미루다 이제서야 뒤늦게 읽게 됐지만 더 늦었다면 큰 아쉬움으로 남을 뻔 했다. 진즉에 읽었어야 했다. 이 소설에 쏟아진 찬사에 충분히 공감한다. 강렬하며 촘촘하고 단단하다.

어떻게 7년의 밤이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이야기는 말한다. 살인자가 있고, 그의 어린 아들이 있고, 막강한 상대가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벌어진 명백한 실수가 있고 나약해서 고백할 타이밍을 영원히 놓쳐버린 한 사람이 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삶이 얽히고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그도 살인자 이전에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것이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밀려드는 후회와 자책의 시간 속에서 절망하고 불안에 떨며 괴로워한다. 그 기분이 어땠을지 감정이 이해가 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린 모두 비슷비슷한 존재들이니까. 때론 잘못인 줄 알면서도 저지르기도 하니까. 저지른 후에야 비로소 잘못이라는 뒤늦은 깨우침이 오기도 하니까. 슬펐지만 슬프지만은 않아서 좋았다. 그래도 몇몇 대목에선 울컥했다. 재밌다는 말이 너무 단순한 표현이지만 몰입도가 높고 흥미진진하며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정신 못 차릴 정도는 실로 오랜만에 만난 경험이었다. 꼼꼼하게 취재하고 공부해서 쓰는 소설은 아무래도 사실감이 더 부여된다. 아귀가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이야기에 감탄했고 작가님에게 경의를 바쳤다. 완벽하다. 어둡고 깊은 얘기에 맘이 대책없이 끌리는 걸. 여운이 길다.

커다란 마음의 상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된다. 감정을 숨기고 만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누군가를 감히 이해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만의 오해일 수도, 착각일 수도 있으니. 쉽게 손가락질 하고 외면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 들여다보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아들을 지켜내고 위험으로부터 막아내려는 아버지의 그 마음을 생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뜨거운 것이 솟구친다. 최현수, 최서원, 안승환, 오영제. 네 사람을 쉬 잊을 수 없다. 가슴에 콕 박혀버렸다. 각별하다. 왜 이 소설이 이 정도로 좋은지는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무엇보다 감흥이 컸고 진실한 감동이 와 닿았기 때문일 테다. 이 맛에 소설 읽는거지 하는, 바로 그 맛 말이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해가지고 소설의 이런저런 대목을 생각했다. 잔상이 금세 사라질 모양은 아니다. 이 느낌이 싫지 않다. 소설을 본다 해서 매번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 핵심이 살아 있고 쭉쭉 치고 나가는 글솜씨를 느끼실 수 있으실 터. 이건, 꼭 읽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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