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옮기려 해도 잘 되지 않는 것 중에서 죽음이 제일이지 않을까. 글로도 그림으로도. 그래서 그토록 많은 표현이 있는지도 모른다.

 


 

 ㅡ <운하> 中 ㅡ

˝그런데 저들은 행복한 표정이야.˝

˝그들의 얼굴은 영원히 공손한 표정으로 굳어져 있어서 그래. 하지만 그들의 기분이 어떤지를 누가 알겠어?˝

˝넌 알겠지.˝

˝나도 겉모습밖에 볼 수 없어. 인정해˝

˝뭘 인정한다는 거야?˝

˝또 하나의 포장으로 둘러싸인 겉모습은 곧 내면이 되고, 그것은 하나의 내면을 인정한 또 다른 내면이 겉모습으로 바뀌는 것만큼이나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거.˝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이건 중요하지 않아. 너도 죽을 것이고, 그러면 운하로 떨어질 것이고 이 도시 주변을 떠돌게 될거야.˝

˝아니, 난 난 말이야 죽으면 별들을 향해 날아갈거야.˝

˝새들도 죽으면 땅으로 떨어지는 법이야. 더구나 넌 날개조차도 없잖아.˝

˝내 아들은?˝

˝저기 있어, 네 뒤에. 저 애가 널 도와 줄거야.˝

아이는 가냘픈 손으로 그 남자의 등을 만졌고, 남자는 비명 한 마디 없이 쓰러졌다. 그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별들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운하의 물결에 몸을 맡겼다.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가버린다.

퓨마가 한숨짓는다.

˝대대손손 이런 식이야.˝

퓨마가 커다란 머리를 앞 발 위에 기대자, 그 거대한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ㅡ <어느 노동자의 죽음> 中 ㅡ

  네가 다니던 공장에서는 시계만 만든 게 아니야. 시체도 만들었지.

  공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병원에서도, 너희들은 서로 할 말이 없었어.

  넌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어.

  다른 사람들 역시 네가 자고 있거나 아니면 죽었다고 생각했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어. 너 역시도 그랬고.






ㅡ<나는 더 이상 먹지 않는다> 中 ㅡ

 나는 고향마을의 끝없이 펼쳐진 밭으로 감자를 훔치러 갈 때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요리들을 상상했다. 지금 나는 흰색 냅킨, 크리스털잔, 은식기를 가지고 있지만, …






ㅡ<선생님들> 中 ㅡ

… 선생님들과  분필에 대한 나의 애정이 두터웠으므로, 당시에 나는  칼슘이 부족해서 분필을 엄청 많이 먹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열이 나곤 했지만, …

그래서, 그의 어떤 시가 학생들에게 야유를 받은 이후, 이 가엾은 선생에 대한 동정심에 사로잡힌 나는, 정확히 낮 12시 30분에, 학교 옆 공원에서, 여자 아이들이 잊어버리고 두고 간 줄넘기를 가지고 그의 고통을 끝내 주었다.

   나의 이런 인간적인 행동은 7년의 감옥살이로 보상받았다.






ㅡ <집> ㅡ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Agalma)





ㅡ <잘못 걸려온 전화> 中 ㅡ

재미있을 거라고! 그런 말을 쉽게 하는 부류들이 있다. 나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쓸 수 없는 말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재미있다˝, ˝흥분된다˝, ˝시적이다˝, ˝영혼˝, ˝고통˝, ˝고독˝ 등등. 요컨대, 나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럽다. 마치 ˝빌어먹을˝, ˝개자식˝, ˝창녀˝, ˝구역질 나는˝ 따위와 같이 조잡하고 천박한 말들을 할때와 마찬가지로, …






ㅡ<거리들> 中 ㅡ

아이들에게는 그가 살아 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상관이 없었다.


 


 



신기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이 책 표지를 보니 내 그림의 손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색상 배치까지도! 역시 사람은 새보다 사람을 더 닮기 마련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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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3-25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밤잠을 잔 후 낮동안의 활동이 이어진다면 죽음 다음에는 무엇이 이어질까요? 이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여러 종교에서 내놓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Agalma님의 그림에 대한 영감은 정말 부럽습니다..

AgalmA 2017-03-25 17:02   좋아요 1 | URL
죽음 뒤에 우리가 낱낱의 물질로 흩어지든 이를테면 영혼같은 정신적 존재성으로 떠돌든 지금 생에서 골몰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 점점 강해집니다. 지금의 삶을 더 피곤하고 혼돈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을 좀 더 충실히 살지 않는다면 그때 가선 그게 또 미련으로 작동하겠죠. 밤잠에서 우리가 의식 속 삶의 잉여들을 계속 겪듯이 말이죠.
겨울호랑이님이 뜬금없이 이 얘길 꺼낸 건 아닌 거 같고 지금 읽거나 읽은 책 때문에 물으신 거 같은데... ˝지금˝을 잘 설명할 수 없다면 ˝이후˝는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이 많고 공부로 관심을 두고 있긴 하지만, 제 자신과 인간의 생각의 증식에 대한 혐오도 상당합니다. 즐기면서도 싫은 양가적 감정 땜에 늘 괴롭죠.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했지만 수학에 실망해 수학을 포기하고 최고의 수학자 상도 거부한 페렐만 심정도 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반감을 가진들 그의 머릿속에서 수학적 생각들이 떠도는 걸 막을 수는 없었겠죠.

가령 꽃들은 잠을 자는 걸 까요. 계속 살아가는 상태이다가 어느날 툭 죽는 거 같은데 그렇다면 인간에게만 유독 죽음 이후가 중요할 게 무엇인가요. ˝죽음 이후의 어떤 상태˝를 생각한다는 건 다분히 인간의 생각 유희에 가깝지 어떤 본질도 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영감이라...다들 스쳐가는 건 있을텐데 어떻게 잡느냐 차이겠죠^^;

겨울호랑이 2017-03-25 17:40   좋아요 1 | URL
^^: 삶과 죽음은 쉽지 않은 주제라 생각합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여러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를 죽어간다는 말과 같은 의미인만큼 잘 사는 것과 잘죽는 것도 통하는 것 같네요.. Agalma님께서 죽은 새를 보셨다기에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5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젤 좋아하는 부사, ‘아무튼‘ 인데요.... ㅎㅎ
아무튼, 그림에서 이를 꽉 깨문 듯 느낌이 듭니다.
무엇에 대한 다짐을 하는 듯...

AgalmA 2017-03-25 18:33   좋아요 2 | URL
이빨보다는 한숨에 더 기까운... 담엔 표현에 더 신경쓸께요.
색감과 새에 정신이 팔려 인물은 신경을 덜 썼거든요.

‘아무튼‘ 없음 저도 문장 쓸 때 매우 적적할 겁니다. ‘여하간,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네들보다 ‘아무튼‘이 훨 깔끔하니까요.

2017-03-25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5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6 0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6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17-03-26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음은 산 사람은 영원히 모르겠죠 죽었다고 해서 그걸 알 수도 없겠습니다 그걸 바라볼 수는 있겠지만... 모르기 때문에 자꾸 말하기도 하는가 봅니다 어제 시인이 다친 새를 구했는데 어느 날 물에 빠져 죽었다는 시를 봤어요 겨우 몇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합니다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죠


희선

AgalmA 2017-03-26 00:28   좋아요 1 | URL
그렇겠네요. 죽었다고 본질을 알 수 있단 보장도 없을 듯^^ 우린 늘 미망 속에 있으니까. 죽었다 깨어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본다는 빛의 터널효과도 과학계에선 신경계 오류나 집단무의식 같은 현상으로도 보잖아요. 그 경험 땜에 종교를 맹신하는 어떤 분도 봤어요. 자신에게 신이 보였다고 철석같이 믿더라는.

저도 순식간에 새가 죽는 걸 목격한 적 있어요. 진짜 이상한 경험이었죠.

페크pek0501 2017-03-26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는 너무 큰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을 그릴 땐 - 예를 들면 자식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얼굴 -을 그릴 땐
얼굴을 푹 숙이게 그린대요. 큰 슬픔은 어떤 표정으로도 그릴 수 없음을 나타내는 거라고 하더군요.
님도 입 하나로만 표현하고 눈과 코는 가림으로써 그 효과를 보고 있는 듯해요. 나머지는 보는 사람의 상상에 맡기겠노라. 하는 것도 되겠지요. 훌륭한 솜씨입니다. 좋은 감상 하고 갑니다.

AgalmA 2017-03-26 17:39   좋아요 0 | URL
이 그림 그리기 전에 스케치를 몇 개 더 했었는데 다 고개를 어떻게든 숙이게 되더라는...결국 얼굴을 제일 가린 이 컨셉을 채택하게 됐는데 이런 건 역시 계산보다는 자동적으로 그리 되는 거 같아요.
섬세한 평 감사합니다^^
 

프랑스에서 내게 에드가 드가 서거 100주년 기념우표를 붙여서 보내줄 친구가 없는 게 안타깝다. 바랄만큼 노력한 게 없지. 친구는 없고 우표는 아름답다.
여행 가서 편지 보내는 걸 늘 잊곤 했다. 하지만 그걸 챙겨준 친구도 있었지. 미국에서 잭슨 폴록 no 5 우표 같은 거 붙여서 왜 안 보내 준 거야? 물을 수 없는 게 일단 그런 우표가 있는지도 몰랐을 거지만 내가 그렇게 요구할 만큼 친구다웠나 자문해보면...... 우리는 정녕 누가 누구의 친구인가. 자기 얘기에 귀 기울여 줄 상대를 원할 뿐. 내 말을 경청해주시는 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진정한 친구로 신을.... 호기심으로 다가가긴 쉽지만 친구로서 성의를 다하긴 너무나 부족한 우리. 사실 거의 대다수 서로에게 친구가 아니다. (아주 조금) 아는 사람. 대화라도 오가면 다행이고. 수많은 대화가 오가도 더 아무것도 아닌 관계로 끝장나는 것도 감당해야지.
공동체는 더 큰 상상체. 현재 거대한 공동체가 유지되는 건 그래서 놀랍다. 개인 간엔 상상을 공유하고 유지하기 어려운데 더 큰 범주로는 그게 쉽다니!
이건 단지 내 생각의 단편일 뿐이고 모두 좋은 친구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자. 생각이라도 덜 외롭게.


오늘 짧은 꿈에도 친구가 나왔다. 오래된 친구와 가상의 도시에서 오랜 산책을 하며 도시에 대해 이야기했고, 오래된 경양식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 메뉴로 생소하지만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주문했다. 내가 메뉴를 오래 고르는 동안 친구는 낯선 사람에게 붙임성 있게 구는 습관대로 웨이트리스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그녀는 남자 친구에 대한 험담을 했다. 100% 꿈이었다.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걸었고 웃었고 바람을 느꼈고 이야기했고 먹으려고 했다. 한참 고르고 주문한 음식을 먹기도 전에 깬 것도 슬펐다. 비프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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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3-25 0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여행지에서 보낸 편지 한 통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특히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내는 일본문화가 참 부럽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 우표는 직접 모으신거예요?

AgalmA 2017-03-25 02:55   좋아요 0 | URL
출처를 다 표기해야 하는데 북플로 써서 출처를 표기하지 못했어요. 제가 가진 우표는 하나도 없어요ㅜㅜ 이런 우표를 챙겨 보낼 친구를 일단 해외로 보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해피북 2017-03-25 03:00   좋아요 1 | URL
우표를 붙여 보내줄 친구가 없는걸 아쉬워하는건 알았는데 우표에 직인이 찍혀있어서 제가 살짝 오해를 ㅎ 우표가 정말 멋지네용^~^

AgalmA 2017-03-25 03:02   좋아요 0 | URL
잘 물어 보셨어요. 다른 분들도 그렇게 오해할 소지가 있었으니까. 저작권 때문에 요즘은 그런 거 잘 따져야 하니깐요.

겨울호랑이 2017-03-25 0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예전에 Pen Pal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우표가 모이더라는..ㅋㅋ 요즘은 거의 안하겠지요? ㅋ

AgalmA 2017-03-25 12:58   좋아요 1 | URL
저도 딱 한 번 펜팔 한 적 있습니다. 편지지랑 편지봉투를 어떻게 더 기발하게 만들어 보내는가에 더 심혈을 기울였던ㅎ;
요즘은 펜팔보다 온라인댓글을 쓰겠죠. 지금처럼ㅎ;

2017-03-25 0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5 13:00   좋아요 1 | URL
한국우표도 저런 식으로 한국그림(웹툰까지ㅎ) 이용하던데 제 눈엔 그닥..... 제가 모르는 좋은 게 있는지도 모르지만^^;

있을 때 잘해 주는 것. 그게 최선인 듯^^;

희선 2017-03-26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디에 거의 가지 않아서 다른 곳에서 편지나 엽서를 보낼 수 없군요 다른 나라에서 나오는 기념우표는 살 수 없지만 한국에서 나오는 기념우표는 사기도 해요 바로 쓰지 못하지만... 언젠가 써야지 합니다 우표를 쓰려고 편지를 쓴 적도 있군요 가까이에 있어서 자주 만나면 친구를 더 생각하겠지만, 멀리 있다면 어렵겠죠 연락은 못해도 친구가 자신을 가끔 떠올릴지도 모르죠 제가 그러는군요 연락이 끊긴 사람을...


희선

AgalmA 2017-03-26 00:22   좋아요 1 | URL
편지는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죠. 전화로라도 안부인사를 먼저 해오는 친구는 고맙죠. 사는 게 팍팍하고 아이 키우기 여념없는 나이대엔 더 힘든 일인지도. 그게 아니더라도 서서히 세상을 보는 시선,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갈라지게 되는 친구도 많고. 어찌 보면 끝까지 함께 가는 친구는 운명적인 뭔가 있나보다 싶긴 합니다...
 

 


˝난 영원이 뭔지 몰라. 하지만 널 생각할 때마다 느껴지는 느낌. 그게 바로 영원인지도 몰라.˝
노발리스 《푸른꽃》

 

˝인간의 육체는 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그 점에 있어서는 조각가들이 우리들보다 더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네. 자연의 실물은 일련의 둥근 형태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싸고 있다네. 엄격히 말하자면 데생은 존재하지 않아! .... 인간이 대상에 대한 빛의 효과를 이해하는 방법이 바로 선이라네. 하지만 모든 것이 가득 찬 자연에는 선이 없다네.
...아마도 단 한 선만으로 데생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고, 형상을 그릴 때는 우선 가장 밝은 돌출부에 몰두하면서 중간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다음에 보다 어두운 부분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이네. 우주의 신성한 화가인 태양도 그렇게 하지 않는가... 학문의 과잉은 무지와 마찬가지로 부정에 이르고 마네.˝
오노레 드 발자크 사라진느


모든 예술 가운데 아마 회화만이 필연적으로, <히스테리컬 하게> 자기 자신의 대재난을 통합하고, 그러고 나서 스스로를 앞으로의 도피로 구성한다. 다른 예술들에서 대재난은 단지 연상적일 따름이다. 그러나 화가는 직접 대재난을 통과하며 혼란을 껴안고 그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한다.
질 들뢰즈 감각의 논리


비현실적인 것들이 되돌아와 나의 현실이 되는 세계야말로 내가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영문 바셀린 붓다

 

 

 

 

 

 

 

 

 

 

 

 

 

 

 

 

 

 

 

 

 

정영문 오리무중에 이르다 읽고 싶다. 내 심사가 오리무중인 걸 또 어떻게 아시고 제목이 예술!
읽기 전에도, 읽으면서도, 다 읽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꽥꽥대겠지. 파랑으로 노랑으로 심연으로.

 

 

 

 

 

 

 

 

 

 

 

 

 

 

책 사는 김에 헤르만 헤세 연필세트도 장만! 아름다운 회색!

오리무중 읽으려다 정말 오리무중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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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4 1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술이여 영원하라~ ^^..

AgalmA 2017-03-24 11:46   좋아요 2 | URL
예술은 제가 걱정 안 해도 영원할 거 같고, 제가 예술보다 먼저 사라질 건 확실하고! 흐엉)

이름 2017-03-24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 <오리무중에 이르다> 읽고 있는데 예전에 <어떤 작위의 세계>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푹푹 빠집니다. 허허

AgalmA 2017-03-24 11:48   좋아요 1 | URL
그렇겠죠. 그렇지 않다면 저런 제목도 못 붙였을 것이고...˝작위˝만큼 ˝오리무중˝도 이미 뭔갈 상당수 전해 주고 있단 말이죠. 정영문 작가 소설 많이 읽어본 사람은 제목보면 사태 대략 짐작가지 않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지요.

단발머리 2017-03-24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앗!! 파랑파랑 이 아름다운 여인의 옆모습~~
너무 근사합니다.

AgalmA 2017-03-24 18: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가끔 색깔을 재현해보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는데, 발자크가 <사라진느>에서 그런 얘길 해주니 반갑더라는^^

겨울호랑이 2017-03-24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ㅜ. Agalma님의 좋은 작품을 잘 못 봤어요.... 소용돌이 치는 파란 바다에서 참치(?)가 탈출하는 장면으로....단발머리님의 해설을 보고 나서야 제대로 보였다는... 아... 당최 이 삐딱한 시선은 답이 없군요.

AgalmA 2017-03-24 18:06   좋아요 1 | URL
참치는 어찌 해야 보이는 겁니까ㅎ; 바탕의 티처럼 보이는 저걸 보시고 그런 건가ㅎ;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창작이나 예술의 원동력이라고도 하는데, 겨울호랑이님은 다른데다 그걸 열심히 쓰고 있는지도요^^

겨울호랑이 2017-03-24 18:09   좋아요 1 | URL
그게... 여인의 눈이요... 여인의 눈동자가 참치(물고기) 눈이고요... 에고.. 참 한숨이 나옵니다..ㅋ

희선 2017-03-25 0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어 본 적 없지만 <바셀린 붓다>에 쓰인 말처럼 생각하는 사람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한테 현실을 생각해야지, 하면 안 될 텐데... 그러고 보니 예전에 현실을 생각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조금 했군요 지금은 그런 것과 아주 멀어졌습니다 그림 멋지면서도 슬프게 보이기도 하네요 여자가 울어서...


희선

AgalmA 2017-03-25 02:07   좋아요 1 | URL
저 말은 정영문 작가 작품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어요. 항상 현실 위에 걸쳐진 줄 위를 스스로 올라가 걸으며 아슬아슬한 무언가를 말한다고 할까요.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래, 나도 그랬지, 그렇지, 그러고 싶었어 하며 슬프면서도 인정하게 됩니다.

여자를 울게 만들 건 저죠.
 
 전출처 : 겨울호랑이 > 서재를 잠시 돌아보면서... : [페이퍼]와 [리뷰]

저도 리뷰 쓰며 공감하는 점인데요. 이 문제는 참 어려운 게요. 읽는 사람이 어느 정도 읽기 수준인가를 설정하기가 매우 애매하다는 겁니다. tv처럼 청소년 관람가 수준으로?(청소년 무시하냐!)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이미 나오는 ‘정의‘조차 <정의란 무엇인가>로 본격 풀어보기 시작하면 만만찮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개념과 용어들이 나오는 책들을 소개하자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다 설명해야 될까요(그걸 잘 아는 사람은 베스트셀러 작가-_-!). 모를 수 있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생각해서? 누군가 곡해해서 읽으면 그 가능성을 만든 단지 내 탓? 여긴 그나마 책 읽는 사람 모인 곳이니 ˝악의 평범성˝ 같은 건 그냥 써도 웬만하면 다들 파악하죠. 그 용어도 많이 알려져서 그런 것이지 대부분의 일상 장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음, 악의 평범성... ˝ 말하면 한나 아렌트를 떠올리고 그 용어의 의미를 생각해 맞장구칠 사람들은 별로 없을걸요? 유식한 사람이다 생각되기 보다 시니컬한 사람이다 눈총이나 받을 테니 잘 안 쓰겠지만ㅎ 한나 아렌트를 들먹이며 말하면 님, 좀 잘난 체👍되시겠죠.
어쨌거나 이곳 서재도 생소한 용어들이 나오면 글의 어려움을 호소, 지적하는 일은 대번에 발생합니다. 당연하죠. 평소 안 접하는 걸 대하는데요.
어딜 가나 글을 쉽게 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태도에 있어 중요한 것이지 글의 내용까지 맞추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학성, 추상성, 형이상학, 철학, 전문적인 이론들을 파고드는 일은 일정 부분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공장 기계 설비를 단추, 바늘 같은 단어들이나 좋다, 깔끔하다 같은 단순한 표현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생각의 세계에서는 그 단순한 표현, 기존의 것도 의심되고 논의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일일이 쉽게 알 수 있게 써 달라고 하는 것도 생각의 게으름 아닌지 고찰해봐야 할 겁니다. 입에 떠 넣어 달라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요.
또 쉽게 전달하려고 비유와 수사를 쓰면 맘에 안 든다, 질이 떨어진다, 문장력이 그게 뭐냐 온갖 품평ㅎ 아, 능력이 딸리는 건 참으로 죄이로다~~~
오늘도 어떤 책 리뷰들 훑어보다가 어렵게 썼다고 투덜대는 거 봤는데요. 난이도 있다는 책엔 늘 달리는 평이죠. 그 평이 온당하려면 그렇게 인상평 툭 던지지만 말고 뭐가 어떻게 어려웠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죠. 자기 앎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날 게 두려우니까. 그리고 제대로 규명하자면 귀찮으니까. 보통 투덜대는 글들이 100자 평인 게 왜겠습니까.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글은 100자 평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틀릴까 봐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내 속에서만 반추하는 앎은 밖으로 나오면 곧 문제점이 드러나죠. 그래서 우린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을 보완 수정해 나가죠. 대화와 논증 등 무수한 난관들이 있긴 하지만 이 전 과정이 담긴 언어가 인류 발전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죠.

그런데요. 친절히 설명하자고 길게 쓰면 또 길다고 난리ㅋㅋ 어렵고 길면....묵념(_ _)...
리뷰 쓰는 사람들 직원 아닙니다. 부족한 점을 조언하는 건 좋지만 부탁인데 서로에게 갑질하는 고객처럼 굴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얘기는 아무리 논의해도 끝이 안 보이는 논의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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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3-23 15: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무조건 정리할 수도 없고, 정리 또한 주관적인 내용 정리가 되겠지요. 그러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다른 생각도 한 편으로는 듭니다. 제 생각을 제가 잘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제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정리가 공유되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리뷰를 읽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어렵겠지만, ‘친절한 리뷰‘?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AgalmA 2017-03-23 15:05   좋아요 5 | URL
아마 글쓰는 모두의 바람이겠죠. 이심전심이 되기를.

2017-03-23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3 16:49   좋아요 5 | URL
구구절절 옳은 말씀^^ 이런 글을 왜 저만 보게ㅎ;;;
리뷰 잘 쓰지도 않는 사람이 품평 따진다는 것도 완전 공감요^^
리뷰를 열심히 써보면 그 과정의 어려움을 잘 알아서 다른 사람 글에 쉽게 감놔라 배추놔라 하기 어렵더라는^^;
좋은 글 쓰려 노력하는 사람 격려해줘서 더 좋은 글 쓰게 만드는 게 더 이득인데ㅎ 그건 공공의 영역인 거고 개인 대 개인 영역으로 오면 첨예하게 따지게 되는 거 같아요. 동물들의 서열 정하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ㅎㅎ

2017-03-23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23 17: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는 사람의 수준까지 고려하면서 리뷰를 쓰는 일은 힘듭니다. 어떤 이의 수준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썼는데, 그 사람이 제 글을 안 볼 수 있어요. 그냥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자연스럽게 쓰는 일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글 내용에 문제점을 발견하면, 고치면 되고요. 여러 번 읽어봐도 제가 이해하지 못한 책은 리뷰 쓰기를 포기합니다. 반쯤 읽었어도 ‘아예 읽지 않은 책’으로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

AgalmA 2017-03-23 22:46   좋아요 4 | URL
쉽게 쓴다는 건 어떤 기준이 필요한데 가장 보편적인 게 타겟층을 정하는 거죠.
동화도 아이 상대, 어른 상대가 있잖아요.
대부분의 글은 SF 판타지류 같이 마니아층이 확연히 있다거나 문학에서 작가들이 흔히 하듯 상상의 독자를 두긴 어렵죠.ㅎ
이제껏 한국 마케팅의 문제점은 이 타겟층 설정의 엉성함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흔히 수백억 들여놓고 망하는 영화들이 좋은 예죠. 상영관 많아도 많은 공감대 얻지 못하면 소용없죠ㅎ
책 내서 팔아야 하니까 뜻에서 이런 얘길 하는 게 아니라 sns와 인터넷문화 속에서 글도 이런 읽는 이를 고려한 상황에 민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요즘 글을 읽는 사람들의 환경은 2차원의 책읽기 문화와 많이 다릅니다. 즉각적 정보를 원하는 추세는 더 확산될 겁니다.
요즘은 내용을 더 압축해 보여주는 ˝카드리뷰˝까지 등장해서 리뷰 쓰기 더 어려워졌죠.
더 짧게! 더 눈에 띄게! 더 재미있게! 어휴ㅎㅎ

cyrus 2017-03-23 18:24   좋아요 3 | URL
저는 글을 짧게는 못 쓸 것 같아서, 책의 특징을 소개하거나 글의 핵심 내용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넣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밑줄 긋기’ 같은 인용 기능은 북플에서 보면, 본문과 구분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인용문을 jpg 파일 형태로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지 파일을 넣게 되면, 제가 원하는 크기의 이미지가 나타나지 않아요. 아무리 적합한 크기의 이미지로 저장해도, 한 번 올려놓으면 생각보다 크게 나옵니다. 파일 크기를 줄일수록 글자 형태가 흐릿하게 나옵니다. 이 문제는 예전에 유레카님이 언급했습니다. 알라딘 서재가 사진 리뷰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

AgalmA 2017-03-23 19:09   좋아요 3 | URL
cyrus님이 말씀하시는 형태는 이미지와 글이 모두 합쳐진 형태의 jpg여야 할 거 같은데요. 그 정도면 이미 책 편집 툴 수준이죠. 분량도 적지 않은데 그 정도로 만들면 책 낼 땐 편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수정하거나 추가할 내용이 생기면 더 피곤해질테니 완벽을 기하려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시간 소요가 많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플래쉬로 제작한다고 해도 그것도 시간소요... 이 시간에 책을 더 읽으면 하는 생각이 계속 날 거 같은...
사람에 따라 일의 진척은 분명 다르겠지만^^;
저도 요즘 1일 1그림 그리면서 그림 독서일기 추진하려고 맘 먹어놓고 막상 책 다 읽고 그리려면 어찌나 귀찮은지ㅋㅋ

달걀부인 2017-03-23 22: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박 공감! (지금은 버스안, 흔들흔들거리면서, 고개도 끄덕끄덕)

AgalmA 2017-03-25 11:13   좋아요 3 | URL
서재와서 이 얘기는 계절 바뀔 때마다 늘 하게 되는 거 같은데요ㅎ;; 역사가 왜 반복되는지 살짝 이해도 된달까요. 같은 고민, 같은 불만이 늘 반복되니까요.
사람들이 편하고 자유롭게 글 썼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은 장문의 어려운 글 쓸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짧은 평, 우스개 소리 그런 거 위주로 쓸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서재라고 해서 누구나 다 프로페셔널하게 글 써야 한다면 부담스러워서 어디 글 쓰겠나요. 양적 풍요 속에 질적 풍요가 더 생산적으로 나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구나 좋은 글 쓰고 싶죠. 그건 무수한 과정 속에서 나오는 것이죠. 다들 나름의 목표는 가지고 있겠죠. 서로를 격려해주며 좋은 환경 만들어 가면 좋은 글 쓰는 사람들도 더많이 모일 거고 그런 분위기에서 서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에서 또 이런 글을 써 봤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17-03-24 13:54   좋아요 3 | URL
대박 공감 2!!

위의 글도 좋지만, 위의 아갈마님 댓글에도 공감합니다.
서로를 격려해주며 좋은 환경 만들어 가면 좋은 글 쓰는 사람들도 더 많이 모일 거라는 말씀에도요.
글이 어렵네, 쉽네, 길이가 기네, 짧네, 감상이네 생각이네... 아이구야...

[그장소] 2017-03-28 0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리뷰쓰는 사람은 직원이 아니란 말에 풉~ 웃고 가요 . 그 말이 젤루 공감!!

AgalmA 2017-03-28 00:23   좋아요 2 | URL
자기 생각, 감정, 표현 중요한 건 알겠는데 우선주의는 워워~

[그장소] 2017-03-28 12:09   좋아요 1 | URL
음음 .. 그 말도 공감 요! 우선 주의는 우산 주의 . ㅋㅎㅎ

AgalmA 2017-03-28 22:27   좋아요 1 | URL
핵우산 주의되시겠죠ㅎ;;

[그장소] 2017-03-29 00:00   좋아요 1 | URL
우산으로 핵을 막앗~ 그 우산 비싸겠죠? ( 아...필요 없음 만들어 질 일도 없구나..) 그럼 비싸고말고 할게 없나...^^;;
우선 주의 ㅡ 경고 , 취급주의 ㅡ ㅎㅎㅎ 비슷한 걸까요?

AgalmA 2017-03-29 00:06   좋아요 1 | URL
뭔가 지키려고 하면 뭔가 내치게 되어 있잖아요.
우산은 뭐랄까. 그만큼의 공간 속에서 나도 보호하고 세상도 그저 비내리게 하는 아담한 도구 같아요.
대상이 핵이면 정말 슬픈 일이지만ㅎㅎ;

핵우산의 실질적인 뜻은 좀 비굴하죠. 핵이 없는 나라가 핵있는 나라의 보호를 받겠다는 뜻이니;;

[그장소] 2017-03-29 00:10   좋아요 1 | URL
아..진짜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음..슬슬 정치 쪽으로 이야기가 기어가는 것 같네요 .
지키려면 내치게된다ㅡ 끄덕끄덕~
 

가난해서 중학교도 중퇴하고 하인, 사무보조, 사서, 은행 사무원, 공장노동자로 살았던 그가 작가라는 소위 지성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하인... 그래서 그가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썼던 거구나 생각했다.

1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자살에도 실패하고, 정신병원에도 입원해 봤지만 사는 건 녹록지 않았다. ‘쓰기‘와 ‘걷기‘는 그의 일상, 그의 친구, 그의 안식. 그의 죽음은 쓰기와 걷기 사이에서 마침내 벌어진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56년 크리스마스 아침 산책을 나간 길에서 홀로 눈밭에 쓰러져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 문장에서 저절로 묵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소설들, 어쩌면 산문에 더 가까운.
첫 단편은 시인에 대해서.
두 번째는 죽음에 대해서.
세 번째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이나 한 듯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모자와 외투는 순식간에 눈으로 하얗게 변했다. 주변의 모든 사물도 사람도 다 마찬가지였다. 천지는 소리가 없고 불빛만이 반짝였다. 마치 지금 이 세상에는 오직 정겨운 집만이,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온통 즐거운 기분만이, 오직 다정한 대화만이, 말할 수 없는 행복만이 넘치는 것처럼.
그 지식인은 지금 분명 눈이 소담스럽게 쏟아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리라. 그도 눈을 보고 기뻐할까? 분명 그렇겠지! 이렇게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내리는 눈에 기뻐하지 않을 인간이 어디 있겠나. 눈 내리는 광경을 보면 누구나 다 그 아름다움에 탄복한다.
그 순간 나는 여러 아이들의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다시 한 명의 아이로 돌아갔다. 나는 아이를 가슴에 껴안은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아직 말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나는 상상 속에서 집을 갖고 있었다. 집 앞에서 개가 짖었다. 명랑한 여인이 착한 남편을 기다렸고 아이는 책상에 앉아 학교 숙제를 했다. ‘눈이 내리면 내 마음은 행복한 시민계층, 행복한 가장의 심정이 되어버리는구나. 무의식중에 아몬드, 오렌지, 대추야자를 먹으며 크리스마스트리의 전나무 가지가 촛불에 타들어가는 소리를 듣는구나. 온 세상의 축제의 향기가 내 앞에서 넘실거리고 나는 기꺼이 한 명의 착실한 남자가 되어버린다. 튼튼하고 강직한 가장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늑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집으로 돌아갈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눈으로 덮인 채, 눈 속에 파묻힌 채 온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여. 비록 전망은 앙상했지만 그래도 생은 아름답지 않았는가.‘
나는 바닥에 앉아 잠들 때까지 그대로 있고 싶었다. 그러면서 눈 위에 뭔가를 써보기로 했다. 여기 자연상태와 마찬가지로 내 시에도 눈송이들이 어지럽게 흩날리기를 바랐다. 여기서 내가 느끼는 그리움이 표현으로 나타나기를 바랐다.」


 

아, 그는 크리스마스 아침 죽어가면서 바닥에 시를 쓰고 죽어 갔을지도 모르겠다. 슬펐겠지만 그 순간 스스로를 위로할 방법을 이미 생각해 봤잖은가.


카프카가 발저를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 거 같다. 두 사람의 글은 마치 쌍둥이 같다. 교육을 혐오하는 것까지도.

한겨울 이 책이 나왔으면 좋았을걸. 겨울이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리기엔 글이 너무 아름다워 참을 수 없다. 방법은 간단해. 지금 읽고 겨울에 또 읽으면 되지.
산책자가 걷는 숲의 줄기 하나를 가져온 듯한 연두색 끈, 이제껏 본 책 끈 중에 가장 아름답다. 눈이 시릴 정도로.
상처 난 손가락이 쿡쿡 쑤신다. 눈이 쌓이듯.

 

 

 

 

 

Matthew Bourne - Menis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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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2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3 13:40   좋아요 2 | URL
요즘은 배수아 작가 자기 책보다 번역서가 더많이 보여요ㅎ; 이러다 자기 본업을 넘어서겠음ㅎㅎ 이미 넘어섰나a 배수아 작가가 번역한 게 다 제 취향이라 얼마나 좋고 감사한지^^

2017-03-22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3 13:44   좋아요 2 | URL
죽음을 특히 비장하거나 더 과장되지 않게 사실적인 느낌으로 담고 싶었는데 확실히 어렵습니다... 장식적인 걸 제거하기가 어려워요.
음악은 재고 따지고 할 거 없이 걍 제 취향;

달걀부인 2017-03-23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승원과 그림느낌이 비슷해요. 서정성 같은거요

AgalmA 2017-03-23 14:01   좋아요 0 | URL
문득 생각난 일화가 있는데... 지인에게 제 1일1그림 그린 거 보여주니까 대뜸 ˝만화잖아˝ 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서 참 많은 걸 생각했어요. 순수예술과 만화를 구분하는 차이에서 반드시 나오는 어떤 격하, 세대에 따른 문화를 대하는 차이, 그 사람이 (어떤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있는가에 따른) 그림을 대하는 자세 등등...
암튼 요즘 자주 하는 고민과 또 엮입니다. 나는 만화적인 그림 외에 다르게 표현할 수는 없나.

말씀하셔서 그런가 한승원 그림체 느낌도 받을 수 있겠습니다^^ 한승원 작가는 누구 영향을 받은 걸까요.
제 그림체 영향은 <올훼스의 창>을 그린 이케다 리요코를 빼놓을 수는 없을 듯;

이러저러 그림에 대해선 글만큼 고민이 많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3-23 0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델센의 성냥팔이 소녀도 그처럼 추위에 떨다가 죽어갔지요... 동화 속에 나오는 몇 안되는 죽음이긴 합니다만, 소녀는 크리스마스에 죽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역시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여 동화에서 감정을 끌어다 쓰는 겨울호랑이입니다.ㅋ ^^:

AgalmA 2017-03-23 13:57   좋아요 1 | URL
<성냥팔이 소녀> 책 작년에 구입해놓고, 지난 겨울 너무 정신없어 못 읽고 지나갔네요ㅎ;
옛날 읽었던 기억으론 성냥을 켤 때마다 따뜻한 집, 음식 그런 게 나왔던 걸로 아는데 마지막이 뭐 였는지 가물가물...다 읽고 나면 알려 드릴께요ㅎ

모든 걸 완벽히 아는 사람은 없잖습니까. 저는 요즘 겨울호랑이님께 제일 부러운 게 그많은 책읽기가 아니라 연의를 통해 배우는 게 뭘까...하는 거임ㅎㅎ 각자 그런 부족함을 느끼고 사는 거죠. 뭐ㅎㅎ

겨울호랑이 2017-03-23 14:02   좋아요 1 | URL
^^: 저도 연의를 통해서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연의가 아플 때는 ‘아, 엄마도 내가 아플 땐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하는 공감도 배우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것을 연의한테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지?‘ 하는 고민을 던져주지요.. 그런 면에서 ‘딸‘이지만, ‘선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2017-03-23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23 17:16   좋아요 1 | URL
아뇨. 제가 저 일화를 얘기한 건 달걀부인님 평이 그렇단 소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볼 때 각자의 생각을 가져오는 게 흥미롭다는 뜻^^
혹 제가 불편을 드린 거면 죄송요^^; 불쑥 떠오른 생각인데 어쩌다 달걀부인님 댓글로 엮이게 된 건지도요^^

AgalmA 2017-03-24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고 나니까 발저 핀 배지 주는 행사에, 한 권만 사도 알라딘 굿즈 주는 행사도 하고 너무하잖아!
알라딘, 진짜 이러기야!!! 왕왕!!!
그러게. 좀만 참지 그랬어. 후후)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웃겨지는 나. 현명은 내 거울은 아닌 것이다. 지켜주는 나와 망치는 나 속에서 무수한 왕복운동. 독서도 그림그리기도 글쓰기도 사실은 나를 보지 않기 위한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소비는 이미 그렇다고 증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