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티 제노비스 사건[*]의 시민이 되다 

일주일 넘는 강행군으로 녹초 상태였다. 잔업을 집에 가져 왔으나 책상과 의자가 지긋지긋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자고 일어나야지 하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사달이 나는 걸 늘 겪었으면서.

다시 눈을 뜨게 된 건 고성 때문이었다. 언젠가 들었던 목소리였다. 나는 또, 하고 생각했다. 사람의 인지능력은 참 신기하지.

이곳에 이사 올 땐 언덕 끝 외진 곳이라 조용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집에 살면서 시시때때로 괴성과 싸움과 실랑이를 듣고 봐야 했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인지 이 동네가 유독 그런 것인지 점점 가늠하기 어려웠다. 집 앞은 구석이면서 제법 넓어 쓰레기 수거차, 레미콘 차량들조차 공회전을 하며 대기하는 일도 잦았다. 도서관 5분 거리 외에 이 집의 장점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기 너무 힘들었으므로 누군가 나가 봐 주길 바랐다. 마침 옆집이 대문을 열고 나가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 해 주겠거니 하며 다시 잠들었다. 비명 소리가 1분 이내 내 의식에서 사라졌다.

 

 [*] 키티 제노비스 사건(Murder of Kitty Genovese)1964313일 뉴욕 주 퀸스에서 캐서린(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에게 강간살해당한 사건으로, 방관자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D%82%A4%ED%8B%B0_%EC%A0%9C%EB%85%B8%EB%B9%84%EC%8A%A4_%EC%82%AC%EA%B1%B4

 

 ※ boooo님이 <한국 스켑틱 2015 vol. 2>를 보고 이 사건이 기자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한 글이 생각났다.

 http://blog.aladin.co.kr/764863113/7607878

 

 

 

 

 

 

 

§§ 마봉춘 기자가 나타나다

역시 사달이 났다. 연신 시계를 봐가며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래층부터 또각또각 구두소리와 함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구두소리가 낯설었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신고 다니기엔 너무 굽 높은 구두소리였다. 어쨌거나 나는 매우 바쁘오. 제발 날 귀찮게 하지 마쇼! 오지마, 오지마…… 속으로 중얼대며 책상에서 안절부절이었다. 스케줄 펑크내서 죄송하다고 언제 전화로 알려야 하나 별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시계를 또 봤다.

. . .

(올 것이 왔군. 다 알면서) 누구세요?

마봉춘 기자입니다.

(의외의 답. 요즘 전도(傳道) 멘트가 색달라진 건가;) 네?

마봉춘에서 나왔는데, 간밤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혹 아시는 것 없나요?

(아, 어제의 비명소리가 …….)

취재를 나올 정도의 사건이었다면 내가 더 묻고 싶었다. 시계를 보았고 세수도 못한 몰골로 7센티 이상의 구두를 신은 마봉춘 기자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왜 하필 오늘! 모든 불운이 다 닥친 것인가! 물론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10시까지 밥도 먹지 못하고 책상에 코를 박고 있어야 하는 상황을 계속 겪는다.

나는 대문 손잡이를 잡은 채 마봉춘 기자를 정식으로 만날 기회를, 사건의 의문을 버렸다.

열린 창 너머 또각거리는 마봉춘 기자의 동태가 전해졌다. 낭랑한 목소리로 오가는 주민들을 붙잡으며 어제의 사건 소식을 묻고 있었다. 일이 잘 진척되지 않는지 푸념소리가 들렸고 조금 후 사라졌다. 나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곧 튀어나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봉춘에 복직하게 된 이상호 기자는 잘 지내고 있을까. 징계 처분 외에 무엇이 더 기다리고 있을까. 

광화문에서 이상호 Go발 뉴스 인터뷰 하던 때가 아주 오래 전 일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정원이 제일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 또 밤

하루 종일 복기한 어제의 사건을 급히 검색해봤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망사고는 아니었다.

요 며칠 계속 프로파일러 생각을 했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간밤의 지구대에 보고된 사건 사고 중 범죄성이 짙은 사건을 골라낸다고 한다. 트라우마 때문에 잦은 이직률에 자살까지 한다는 직업의 특수성을 전하는 전직 프로파일러는 결혼과 대인관계를 포기하는 말투였다. 꿋꿋한 표창원 씨를 떠올리고 있을 때 그도 표창원을 언급했다. 한동안 언론에 잘 나오지 못했던 표창원 씨가 요즘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자주 나와 반갑다.

지난주에 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 화재 현장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은 대번에 냄새가 난다고 한다. 사람이 탄 비리고 역한 냄새.

오늘도 내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 자신도 겨우 구해냈다. 11시에 밥을 먹고 있었다. 머리 위 형광등에서 벌이 마치 어떤 의식처럼 붕붕거리고 있어 어떡해야 하나 생각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벌의 날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벌은 영영 멈춘 것 같았다. 그 잔해를 찾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잔해는 꼭 찾아야 한다. ■

 

 

 

ㅡAgalma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슬비 2015-07-17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같은일들이 실제에서도 일어나고있다는것이 소름돋아요. 괜찮으신가요?

AgalmA 2015-07-17 02:23   좋아요 0 | URL
저도 도울 수 있었을 일이었는데, 제 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던 게 내내 맘이 걸렸습니다...이리 반성문 비스무리하게 쓰고 있는 정도면 괜찮다고 봐야겠지요ㅜㅜ? 정말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안부 인사 감사드립니다

2015-07-17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7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궐 2015-07-17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경험으론 벌은 자기가 들어온 구멍을 알고 있습니다. 놔두면 알아서 나가더라구요. 힘드신 일도 그럴 거에요.

AgalmA 2015-07-17 11:44   좋아요 0 | URL
그 벌이 저 벌이 아닌 것일텐데 일순간 착각ㅎ;;....헌데 벌이 들어올 때 소리도 들었던 터라 다시 날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형광등에서 그쳐서 말이죠. 어쨌거나....

에이바 2015-07-1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그동안 바쁘셨군요.. 식사는 하셨나요? 포스팅은 반갑지만 마음은 무겁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AgalmA 2015-07-18 00:37   좋아요 0 | URL
비빔면 먹었습니다~^^...바빠도, 돈이 적어도 감안하겠는데 책 볼 시간이 없다는 게 가장 화납니다ㅡㅜ 일하며 온종일 생각만 하다보니 책 얘긴 쥐꼬리고 생각만 잔뜩 입니다;

cyrus 2015-07-1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나올법한 일이지만, 정말 영악한 놈은 사건 취재 오는 기자나 사건 증인을 확보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찰로 가장해서 증인으로 여길 만한 사람들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AgalmA 2015-07-18 00:39   좋아요 0 | URL

삶처럼 아무리 대비해도 무언가 온다면 기습적이겠죠...
cyrus님은 이제 하드보일드 SF 소설을 쓰시면 되겠습니다! ^^

CREBBP 2015-07-1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습작 소설 정도로 알았는데 실전 얘기였군요. 그 방면으로도 소질 있으신듯.. 묘사가 묘하게 재밌어요. 아 재미있으라고 쓴 건 아니라는 건 알지만..

AgalmA 2015-07-18 01:27   좋아요 0 | URL
소설쓰기를 즐깁니다만 이런 소재와 방식은 제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ㅜ 겪는 일화들이 이렇다보니~_~);

2015-07-18 0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7-18 0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일 없었다면 되었습니다. 병나지 않도록. 잘 챙겨 먹고 다녀요.
 

 

 

 

 

 

 

 

 

 

 

 

 

 

 

 

§

론스타가 한국정부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5조다. 서울시 한 해 사회복지 예산에 육박하는 금액이자 대구시 한 해 총예산에 맞먹는다. 슈킹 할 만큼 해 놓고도 한국의 빈틈을 남김없이 공략하는 론스타의 꼼꼼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나꼼수부터 지금 그알싫, 기타 유사 언론들에서 이 문제의 중대성을 논하지만 자꾸 묻힌다. 여전히 사태에 대해 `내 일 아니니까`, 늘 하던 대로 `나라꼴....` 툴툴대며 에이 소주나 한 잔, 어, 이거 살까? 하는 상황...

[그것은 알기 싫다]-이슈대이빨:내 돈 30만원은 어디로
http://www.podbbang.com/ch/7585?e=21739328

론스타가 이 조정건에서 이기면, 다음 만수르, 그리고 더더 얼마나 나올 지 모른다. 막을 능력이 없다는 게 더 무력하지.
대부분 멍하니 자기 앞만 걱정하는 동안 이런 정부의 실책을 견제하지 못해 매년 휘청휘청이다. 그러면서 국민 세금 타령 소리가 나오나?
욕을 하며 해마다 4대강 녹차라떼 뉴스를 계절 풍경처럼 본다.

금리 내려서 집 사게 해 놓았지만 세계불황의 계단에서 살짝 누군가 건드려도 곧 변동금리의 지옥을 맞보게 될 걸? 그리스 사태가 강 건너 불구경이 절대 아니라는 것.
최저임금 협의는 언제나 몇 십원 몇 백 원...구걸보다 못한 논의 수준이고, 15년을 일해도 깎을 수 있을 때까지 깎기 위해 `프리랜서 수위`라는 명칭까지 붙이는 비정규직 쇼크랜드는 재미인지 공포인지 연일 헷갈린다.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기는데 일조한 정부인사가 이번 론스타-정부 조정건에 참여하고 있는 건 역시나 한국답다.... `또 뵙네요~ 하하)) 잘 지내셨죠?` 이런 총체적인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쟁과 제 밥줄-연줄 찾기 바쁜 인사들을 정부로 보내놓고 국민의 삶을 잘 지켜줄 거라 생각하는 순진함은 생각의 기네스감이다. 그 국민의 그 정부 꼴....뭘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서 무관심한 이들은 이젠 욕 들어가며 배워도 시원찮을 상황이다. 자유? 네 자유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등짝 스매싱)))

박근혜 정부가`증세없는 복지` 맞추려고 온갖 것(교통벌칙금, 담배세, 연말정산 세금폭탄 등등...)에서 세금을 갈취하는 행태는 박정희 정권 때 증세 욕 들을까봐 부가세 도입한 것과 꼭 닮았다.
정책지원금 마련하고도 정작 제대로 된 정책이 없어 쓰지 않고 있는 육아지원금은 누구의 돈인가.
전염병 연구소를 300억 넘게 들여 지어놓고 방치하고 있다가 `메르스`, `홍콩독감`을 무력하게 맞고 있는 한심함은 끝이 없다. 연구도 안 되면 초기 방역이나 잘 해라! 무능을 가릴 재주도 없냐! 아 참참, 이 나라에선 그래도 되지~~
급[어떤 부패와 비리도 정부급이면 무마해 드립니다]

국민이 죽어나가든 말든 군기 잡고, 폼 잡기 바쁜 인간들이 만드는 지금 한국의 시간. 반쪽이 움직이는 이상한 세계. 세상의 움직임은 참 이상하지.

주름살과 뱃살 걱정, 맛있는 거!, 돈에 열광하는 게....생활 전반에 이렇게 뿌리깊게 깔려 있는데,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는 걸까. 저 무대 뒤편의 악취나는 거래를 커텐으로 덮으며 자기 고민에 빠져 뭘 하려는 걸까. 이미 검은 땅에 발목이 빠진 채.
정치에 관심 없다. 정치가 여기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말하는 사람은 심각하게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고상함도, 중도도, 현명함도 아니다. 사회 속에 사는 한 모든 인간은 정치성을 가진다. 자유를 추구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미 정치성이다.


참여정부 때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넘어가게 만든 건 성과주의의 실책이었다고 보지만, 그 뒤라도 한국은 외국기업계 제재 방안을 강화했어야 했다. 슈킹하기 바쁜 정치인과 정책 발의가 전무한(그나마 있던 국회법 발의도 골치 아파지자 본인 게 아니라 발뺌...)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아놓고 정상적이길 바란 게 비정상적이겠지만...설마 그 정도까지야 했던 것이 정확히 우리 뒤통수를 친다. 같은 한국인? 우스운 구분이 된 지 오래다. 한국에는 세계적인 구분이 있지. 갑이신지 을이신지~ 우유 쳐 안 받아? 땅콩 먹을래요? X, 땅콩 안 까 줬어!

정책이 아닌 정치인, 정치색을 따지는 문화. 연예인이든 작가든 정치인이든 대상을 경배하기 바쁜 나라.
작은 일엔 불같이 화내면서 큰 일엔 생각도 움츠러드는 문화. 얕잡아볼 대상을 찾아 억지 가득한 욕을 해대는 나라.
왜 이토록 기본적인 것 마저도 안 되는지 화가 난다. 이게 과연 교육과 언론과 경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걸까.

배달시켰던 수박이 깨졌다며 운송 기사분이 반품을 할 것인지, 다시 받을 것인지를 물었다. 더운 날 기사분이 왔다갔다 하는 게 고생스러울 거 같아 반품하기로 했다. 근본적으로 지금 내 형편에 수박은 사치인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작동한 거 같다.

내 일처리 능력은 예전보다 더디다. 자주 쉬었기 때문이다. 일이 밀리고 눈치가 보인다. 자고 싶다. 내 속에 스위치가 있다면 좋겠다.
007 같은 영화를 볼 때면 기상천외한 발명품이 한 번 사용된 뒤 얼마나 쉽게 버려지는지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 가난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ㅡAgalma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5-07-10 0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좋아요`보다는 `슬퍼요`를 누르고 싶습니다. ㅜㅜ

AgalmA 2015-07-10 22:23   좋아요 1 | URL
응원~응원~ 슬픔의 에너지로 발전소를!

2015-07-10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0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0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5-07-10 22:24   좋아요 0 | URL
내용이야 잔인해도 재미의 미장센 추구!

2015-07-10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0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0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0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우 존재하는 인간
정영문 / 세계사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

여름도 오기 전에 방역차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구에 이어 오늘은 제주가 뚫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길거리엔 사람이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한적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기이한 고요를 느꼈는데, 불안이었다. 사서들은 1회용 마스크를 어색하게 쓰고 있었다. 전쟁 때 파리에 남아 도서관에서 책을 봤던 발터 벤야민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조금 이해됐다.

병을 잡아야 하는 병원부터 뚫렸다.
바다에 빠진 국민을 구해야 했던 정부가 없었던 때와 마찬가지다.

잘못을 덮은 창비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면 어떻게 될까. 『공평한가』에서 소비자 불매운동도 고소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사람들을 게릴라로 만드는 이 시스템. 문단의 중심은 도대체 어디인가. 반성해야 할 자리에 공백을 두는 이 중심 없는 세계.
방금 jtbc 뉴스에서 창비가 다시 입장을 밝히겠다는 소식을 봤다. 두고 볼 것이다.

지방에 계신 내 어머니는 병원에서 근무하신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무턱대고 그만 둘 수도 없다. 조심하라고 내가 말한들 불운이 닥치면 우리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교수가 학생을 희롱하고
법조인이 법을 지키지 않고
정치인이 정치권력을 남용하고
자신의 중심을 지키지 않는 자들.

자신의 중심을 가차없이 버리는 자들.

 

내 중심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일주일이 넘도록 새로 바꾼 스마트폰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계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안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중심이다. 우리는 웃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곧장 침묵이 숨어 들었다.


팔기로 했던, 정영문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팔지 않기로 했다.

가장자리와 중심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 가장자리와 중심의 경계가 없는

내가 꾸는 꿈은 그것인가....

 

 


 

 



ㅡAgalma




 

 

 

 

 

 

 

 

 

 

야만적인 꿈은, 그것보다 더 야만적인 현실의 잠으로부터 나를 깨워준다. (p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오 2015-06-1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심과 가장자리라는 개념 장뤽낭시의 숭고한 봉헌에서 나오는 것 이닌가요? 탈경계테제 블라블라 했던것 같은데요,,

AgalmA 2015-06-19 22:25   좋아요 0 | URL
낭시 파악이 저는 아직 안 돼서 답변 드릴 게 없는데요^^; 참고 하겠습니다.
탈경계는 들뢰즈도 있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논하기도 해서...
 

 

 

 

 

 

 

 

 

 

 

 

 

 

 

 

 

 

 

§ 탐닉들

 

갤리온 출판사에서 펴낸 <작은 탐닉> 시리즈는 공감가는 게 많습니다.

22종이 거의 품절상태인 게 아쉽습니다.

 

 

 

 

 

 

 

 

 

 

 

 

 

 

 

 

 

 

 

 

 

 

 

 

 

 

 

 

 

 

 

 

 

 

 

 

 

 

 

 

 

 

 

 

 

 

 

 

 

 

 

 

 

 

 

 

 

 

 

 

 

 

 

 

 

 

 

 

 

 

 

 

 

 

 

 

 

 

 

 

 

 

 

 

 

 

 

 

 

 

 

§§ 천경환의 바닥

 

<작은 탐닉>시리즈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책은 『나는 바닥에 탐닉한다』였습니다.  

건축가인 천경환 작가는 블로그를 통해 일상과 여행에서 발견한 바닥 사진을 꾸준히 보여줬고 이 책까지 내게 되었습니다.

사진마다 건축을 전공한 사람의 취향과 눈썰미가 돋보입니다.

 

 

 

 

프랑스 앵밸리드 사진은 표지  사진이기도 한데,

빛이 만들어 내는 바닥 풍경을 천경환 작가는 "아름다운 양탄자"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에 모두 동감할 겁니다. 

 

 

 

[위키백과] 앵발리드(Invalides)는 파리의 역사적 건축물 중 하나이다. 1671년 루이 14세가 부상병을 간호하는 시설로 계획하고 리베랄 브뤼앙(Libéral Bruant)이 디자인을 지휘하여 1674년부터 부상병들이 간호를 받기 시작하였다. 교회의 건설은 1677년에 시작되었고, 1706년에 완성했다. 돔 교회의 지하 묘소에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의 관이 중앙에 놓여있다. 또한, 주위에 나폴레옹의 친족이나 프랑스의 유명한 장군의 묘가 놓여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된다.

 

 

 

 

 

 

 

옥외주차장에서 발견한 철제바닥판의 구조를 보고 에일리언을 떠올리는 대목

 

 

 

 

 

 

 

 

동경의 바닥 신호표시의 군더더기없는 날렵함과 지시성에 장인정신을 느끼며,

우리나라의 바닥 신호표시에 대해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행정 편의주의'가 공공물에 상당히 많다는 걸 우리도 알고 있죠.

 내 주위도 돌보기 바쁘지만 사물과 환경에 세심하지 못할 때 그 여파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옵니다.

이런 작은 것의 비교를 통해 천경환 작가는 좀 더 나은 환경을 꿈꿉니다.

이런 눈썰미 배울 점이죠 :)

 

 

 

 

 

 

 

일본 하수구 뚜껑의 아름다움을 발견~ 우리나라 비교 들어갑니다ㅎ

 

 

 

 

 

 

 

 

디자인이랄 것도 없이 통일성도 없고 흉물스럽게 박혀 있는 한국의 하수구 뚜껑들;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이런 환경이면 주변에 쓰레기를 쉽게 버리게 되고 더 망가뜨리게 되죠.

 

 

[위키백과]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 BWT)은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3월에 공동 발표한 깨진 유리창(Fixing Broken Windows: Restoring Order and Reducing Crime in Our Communities)이라는 글에 처음으로 소개된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나마 오래된 하수구 뚜껑은 단순미를 보여준다는 것을 발견~

저는 이런 탐구 정신 정말 좋아합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지나쳤을 흥미로우면서 아름다운 풍경들을 많이 보여 줍니다.

 

이참에 제 바닥사랑도 인증하고 싶습니다.

 

 

 

 

 

 

 

 

§§§ Agalma의 바닥

 

 

 

 

 

서대문 형무소의 빛, 얼마나 간절했을까.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물고기

 

 

 

 

 

 

 

 

 

 

나 두고 갔어 그릇 ...

지나가는 내가, 너 버려졌네 라고 말하는 게 미안했다

 

 

 

 

 

 

 

 

 

 

 

잎에게 잡혀갈 뻔한 시간

 

 

 

 

 

 

 

 

 

 

우산에게 사랑 고백하기 1초 전

 

 

 

 

 

 

 

 

 

 

 

전시장 그림자 감상은 덤~

 

 

 

 

 

 

 

 

 

오후 4시의 음모!

 

 

 

 

 

 

 

 

 

종묘 사건현장

 

 

 

 

 

 

 

 

 

 

종로 5가 사건현장

 

 

 

 

 

 

 

 

 

 

 

나는 여기 제목을 붙일 엄두가 안 난다

 

 

 

 

 

 

 

 

 §§§§ 탐닉 속 보물들

 

천경환 작가의 바닥 사진과 제 바닥 사진은 많이 다르죠.

저는 이 사진들을 찍을 때 천경환 작가의 작업을 전혀 몰랐습니다.

천경환 작가는 바닥과 환경의 구조성에 더 집중한다면

저는 바닥과 쌍을 이루는 사물들의 사건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르면서 각자의 시선으로 바닥을 보고 있는 게 재밌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천경환 작가가 책까지 내서 조금 부럽기도 합니다ㅎ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신경숙 작가의 표절은.....

 

열정과 탐닉의 세계에는 언제나 무궁무진한 보물이 있습니다.

우리는 찾는 자이지 도둑이 아닙니다.

자신의 열정으로 자신의 작업을 성취해가는 것,

그게 예술이라고 저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 세계는 비교도 경쟁도 마감도 없습니다.

오로지 세계와 자신의 대면입니다.

 

 

 

 

 

ㅡAgalma

 

 

 

 

 

 

 

바닥은 타임캡슐이다. 천장이 무너지고 벽이 쓰러진 한참 뒤에도 바닥은 홀로 남아서 우리에게 예전의 기억을 전해준다. 바닥을 파헤치는 것으로 우리는 과거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ㅡ 천경환 『나는 바닥에 탐닉한다』中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으른독서가 2015-06-17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수구 뚜껑의 아름다움이라... 생각지도 못했어요. 이것말고도 놓치고 있는 아름다움이 많겠죠? 또 뭐가 있을지 찾아봐야겠네요.

AgalmA 2015-06-17 03:56   좋아요 0 | URL
하수구 뚜껑 저는 유심히 보긴 했는데, 저렇게 옛날 것을 찾아 비교해 볼 생각까지는 못해 봤어요. 역시 대단한 열정!
게으른 독서가님도 이제 길을 걸을 때 눈을 부릅 뜨고 사방을 둘러 보세요. 찾기 시작하면 은근히 많더라고요 ^.^

Jeanne_Hebuterne 2015-06-17 0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옛날 오사카 가서 하수구 뚜껑 사진 찍어왔었어요! 히히 요즈음엔 해당 구 캐치프레이즈를 새겨놓기도 하던데 저 역시 옛날 디자인이 더 좋다는! 어쩌다 보니 agalma님 서재에서 하수구 뚜껑 이야기만 하게 된 것 같지만 정작 댓글 작성을 하게 된 계기는 자장면 그릇 사진이었어요!

AgalmA 2015-06-17 03:55   좋아요 0 | URL
저도 천경환 작가 사진 보니 일본 가서 하수구 뚜껑 좀 보고 싶어졌습니다ㅎㅎ; 아, 슬프게도 자장면 그릇이 아니랍니다ㅡㅜ좀 저렴한 카메라라 세밀하게 안 찍힌 듯...오래된 사기그릇인데 이사철 되면 저렇게 대문 밖에 그릇을 두고 가더라는...

Jeanne_Hebuterne 2015-06-17 03:58   좋아요 0 | URL
어이쿠 제가 머릿속에 음식 생각이 가득해서 그만..ㅠㅠ 오래된 그릇인데 제가 잘못 본 게 확실해요 죄송해요ㅠㅠ

AgalmA 2015-06-17 04:00   좋아요 0 | URL
저는 괜찮은데 그릇이 두 번 울겠습니다...😂

2015-06-17 0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7 0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병통치약 2015-06-1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 때 건축자재일을 해서 어디가면 한동안 타일만 쳐다본적이 있었죠. ㅋㅋ 바닥이 눈에 잘 보이지만 별로 티 안나는 곳이라 신경쓰기 쉽지 않죠. 진짜 멋쟁이가 바닥에 돈을 제대로 쓰죠.

AgalmA 2015-06-17 19:00   좋아요 0 | URL
멋쟁이가 속옷에 신경쓰듯 그런 거죠^^ 아무리 멋진 곳도 바닥에 쓰레기 보이면 금방 누추해지잖아요. 건축은 이러저러 제게 관심가는 분야기도 해요. 우리가 사유를 끌어올리듯 건축도 그런 양식이니까요.

[그장소] 2015-06-17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사진과 또 그 갈무리하는 통렬한 상징성! 우리나라에선 매년 길바닥을 일 굴 계획을 하니, 디자인을 할 턱이...ㅎㅎㅎ
어,그런데..신경숙 작가 표절은 ..무슨얘기인지..알려주면 ? 제가 정보에 둔..(뉴스,티브이 통 깜깜 했어요.)
궁금해요! 가감없이 알려주시길! 애작가 인거 아시죠..그러니 더 잘 알아야 해요.통 글이 안보인다 싶은 작가였는데

AgalmA 2015-06-17 19:5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생각 했어요ㅎ 매일 바닥을 뒤집는데 몇 백 년 넘게 같은 바닥을 유지보수하는 해외 따라갈 리 만무하고 보수를 잘 할 거란 기대도 없고ㅎ; 국보 1호도 저 지경인데.....
사진에 대해 공감 감사^^)

그리고 신경숙 작가 얘긴...안 그래도 그장소님 사연을 알아서 엄청 속상하시겠구나 생각했어요. 서재 이곳저곳에서도 관련 글들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죠.
명확히 사건을 적시한 이응준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글 읽어 보세요. 신경숙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 작품을 표절한 게 명백하더군요. 그간에도 유야무야 넘어간 표절도 많았고...표절을 조금 했다 많이 했다 문제가 아닙니다. 작가로서의 인식도, 양심도 없다고 밖에 볼 수 없어요. 좋은 글을 아무리 많이 썼어도 이런 상황이면 그 글의 핍진성이건 작품성이건 말할 전제부터 걷어치우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 경우는 정말 나라망신까지....휴.
이 페이퍼가 바닥에 대해 말하고 있듯이 그런 바닥으로 한국문단의 기둥처럼 굴었다는 게 역겨워요. 신경숙 작가의 문제만이 아니죠. 이 한국문단의 여러 썩은 행태들에 늘 머리가 절레절레...제가 한국문학 꺼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좋은 작품에 대한 응원은 합니다. 관심가지는 작가들도 더러 있고요.
이응준 작가는 이 문제와 제반한 한국문단 전체의 심각성을 통합해 고발하고 있는 거고요.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 이응준>
www.huffingtonpost.kr/eungjun-lee/story_b_7583798.html

[그장소] 2015-06-18 04:55   좋아요 0 | URL
음, 읽어 봤어요. 그 나름 밥줄(시인 밥줄이 얼마나한다고,,에휴~)걸고 하는 일인데, 좌시할 일이 아니고
문장 하나가 아닌 전체가 통하던데, 상관없다는 식도 말안되고. 표절은 도둑질 이예요. 안됩니다. 저도
그 점에 분명 한 의견이 있어요.싫거든요. 차라리 필사 평생 하며 그 글 보고 만족하며 글씨만 느는 한이
있어도 표절은 반대 ! 그,,그런데.. 신경숙 작가 기둥이긴 했나요? 워낙 소리도, 활동도 조용 조용, 그래서
없는 사람 처럼 살지 않았어요? 공식활동도 많지않고, 난 무슨 문단 위원 이라고해서 아주 놀랐잖아요...
그 이번 젊은 작가상 심사에 이름이 있어 보이긴 하는데, 다른 작가심사평들에 비해 뭐랄까..틈에 조금
비치는 것같아 보였어요. 알라딘엔 그 책 베너에 신경숙 추천 하고 올렸지만..정작 책에선 힘 없는게 ..느껴
지는데. 나만 그리 느낀 건가..글이 맥락없이 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으니..그 사람은 수더분하니 그런
자리 못(? 안) 할줄 알았지..난 너무 맹탕인가봐요..

AgalmA 2015-06-18 05:40   좋아요 0 | URL
은희경, 공지영과 함께 신경숙 작가가 90년대 여성 문학 포문을 열었으니 연예계처럼 문단에서 스타만들기 한 여파도 있겠죠. 자리가 사람만든다고 신경숙 작가가 정말 아무 욕심도 내진 않았을 거 같고요.

cyrus 2015-06-17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수집의 즐거움》을 읽게 되어서 수집과 관련된 책을 조사하고 있어요. 아갈마님의 글 덕분에 탐닉 시리즈를 알게 되었어요. ^^

AgalmA 2015-06-17 23:05   좋아요 0 | URL
cyrus님도 수집의 일가를 이루는 분 아닙니까ㅎ; 탐닉 크로스 ((~~챙챙~~))
탐닉 시리즈 동네 도서관에도 몇 권 없어서 쫌 아쉬워요.

[그장소] 2015-06-18 0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우상도 만들어지는 존재임이 분명한 ,가짜 이다. 신이 아니니까.. 그러니 얼른 회개(? 회계)하고 진실도 밝히고..
문학의..타락..이 아닌, 쉬운 길로 가려하는 출판업계의 타락이..맞지 않나? 누가 먼저 했든지 최초의 고발자가있고
그것이 통하는 사회이기만 했어도 그 긴 시간 그대로 굴러왔을리 없는 일.. 문학? 아,,어쩜 일본 문학의 자연스런 국내
시장 확대를 위한 초석 마련..이라고 해야 겠다.

AgalmA 2015-06-18 05:42   좋아요 0 | URL
문단도 사람사는 데 아니랍니까...그런 거죠 뭐...
˝일본 문학의 자연스러운 국내 시장 확대를 위한 초석 마련˝ㅋㅋㅋ
 

§

사랑하는 고양이가 있었다 왜 이제야 찾은 거야 이 고양이는 말이 없다 앞으로도 영영 종이에 담았으니 평생 간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려 두지 말 걸 거기 둘 걸 잊은 것도 잃어버린 것도 나였다

고양이를 찾으며 넘긴 페이지들에는 죽은 신해철, 헤어진 연인,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 꿈속의 폐허, 내가 만들다 만 괴물과 인형, 끊어진 이야기들이 무섭도록 살아 있었다

상을 받아 액자까지 했던 그림도 어머니가 버렸지 삶의 중요도는 누구에게나 일정하지 않다 늘 지키지 못하면서 늘 아파한다 그런 거지 어리석어서 아파서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무는 게 죄는 아니잖아
내 종이 고양이 기억 속 고양이

슈뢰딩거 고양이보다 내겐 이 고양이가 더 중요해 이게 인간이지 부정할 수 없이
그러나 이 고양이 때문에 나는 다른 고양이를 또 사랑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ㅡAgalma





여름이 남기고 간 선물


그 해 여름 우린 어딘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오누이 같았다

섬은 목책 없이 이어진 산책길, 새벽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생령들은 소근대며 피어올랐다 이파리가 물속에 잠겨 있는 버드나무 밑동을 파헤치고 늙은 개가 새끼를 낳고 있었다 다가가면 백합조개 깨진 껍질들만 가득했다

무너진 집 돌담 밑에서 이름이 지워진 수첩을 발견했다 엑스표는 많았지만 동그라미는 없었다 십 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가묘를 파헤치고 육탈이 끝난 아이들의 뼈를 옮겼던 날에는 섬사람들을 따라 해안가를 걸었다 제를 올리고 우리는 기름이 적은 육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씹을수록 너의 옷섶으로 뿌옇게 배어 나왔던 젖물

바람이 불고 배를 띄우고 물속에 뛰어든 네가 다시 돌아와 웃고 있었다 우린 손을 잡고 간수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세워둔 소금자루처럼 앉아 있었다

촛불은 흔들리고 꽃등은 밤마다 위를 둥실둥실 떠가고

깨진 거울을 주워 모았고 수은을 벗겨내 서로의 얼굴에 고운 가루를 발라주었던 날, 마호병에서 온수를 따라 세 번 나누어 마셨다 폭풍 치는 마지막 밤에도 서로의 귓속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었다 사랑하는 일만 남아 있다고 믿기엔 우린 어딘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詩 박상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5-06-14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4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6-15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간 신경숙작가의 글 속에서 요란하지도 않고 조용하니 괜찮겠다 싶어 들인 고양이가 구석만을 찾아 다니는 문제점이 있다는 걸 간과했었다는 그래서 이사를 하려는데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던 그 녀석,상자며 서랍이며를 다 뒤져도 찾을 길 없어 포기..나~아중에야..서류 봉투 속에 들어가 납작해진 채 말라버린 고양이를 발견하곤 그 부피 없음에 놀랐던 얘기가..문득 떠올라서..목 뒤에 털이 오소소 돋는 시간...종이에 그려진 고양이 그림과 같을 순 없겠지만..그리움이나 안타까움이나 시간을 헤 칠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라..하염없는 생각을 떨구고 갑니다.. 저 푸른 계단을 보면 영화 블루˝ 속 수영장이 그 물이 자꾸 넘치는 환상이 보이는 듯 ..그럽니다...

AgalmA 2015-06-15 01:16   좋아요 0 | URL
신경숙 작가 이야기는 포 <검은 고양이> 처럼 서늘하네요. 저는 살아있는 동물은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요. 트라우마가 깊어서. 무슨 트라우마가 이토록 많은지...하아...
영화 <그랑블루>, <디 아워스>도 그랬죠... 그 차오름...
저 사진 찍을 때, 내가 떠오르는 건지 가라앉는 건지 분간이 안 됐는데, 지금 봐도 역시 헷갈려요.

[그장소] 2015-06-18 05:20   좋아요 1 | URL
아, 그 역시도 이제 누군가의 글을 뺏은게 아닐까..싶어져..와~ 만 하루 사이에 저 위에 어제의세계 라고
쓰신 제목은 정말 선견지명...에..그래드 부다페스트호텔 -은 좋아하는 영화라 몇번씩 반복해 봤는데, 그럼에도
Agalma님은 따라 갈 수없는 이야기 꾼, 아니 엮자.
랄프 파인즈 좋아해요. ㅎㅎㅎ, 저도 살아 있는건 못 키워요. 안쓰러워서.. 잘 되지도 않고말이죠. 저 사진 필터
쓴거죠? 어디서 찍은 거예요? 아니야..당신 정체가 뭐예요? 척척박사..? (이건 어디서 나오더라? 영화,애니,책?)
아,,이제 여러권을 한꺼번에 읽는건 그만둬야겠어요. 손으로 쓰며 정리를 하는 건 기억이 오래 가는데.놓치는 부분은 기억을 더듬어야한다는..

AgalmA 2015-06-18 05:36   좋아요 0 | URL
우리가 신경숙 얘기한 지 하루만에 신경숙 난파 얘기가 전달되니 정말 이상하죠...참 사람 일이라는 게....
예, 저 이제부터 엮자주의자 할랍니다ㅎㅎ 한 권씩 차례로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돼요^^;; 그래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랑 어제의 세계 비교분석 시기를 놓쳐 버렸죠ㅎㅎ; <공평한가> 정리하느라고ㅋ
사진은 아이패드로 찍은 건데 콘트라스트를 조금 강하게 준 거 외에 크게 변화를 준 거 없어요~ 원본에서 너무 다른 것도 사기니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