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존재하는 인간
정영문 / 세계사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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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여름도 오기 전에 방역차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구에 이어 오늘은 제주가 뚫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길거리엔 사람이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한적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기이한 고요를 느꼈는데, 불안이었다. 사서들은 1회용 마스크를 어색하게 쓰고 있었다. 전쟁 때 파리에 남아 도서관에서 책을 봤던 발터 벤야민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조금 이해됐다.

병을 잡아야 하는 병원부터 뚫렸다.
바다에 빠진 국민을 구해야 했던 정부가 없었던 때와 마찬가지다.

잘못을 덮은 창비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면 어떻게 될까. 『공평한가』에서 소비자 불매운동도 고소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사람들을 게릴라로 만드는 이 시스템. 문단의 중심은 도대체 어디인가. 반성해야 할 자리에 공백을 두는 이 중심 없는 세계.
방금 jtbc 뉴스에서 창비가 다시 입장을 밝히겠다는 소식을 봤다. 두고 볼 것이다.

지방에 계신 내 어머니는 병원에서 근무하신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무턱대고 그만 둘 수도 없다. 조심하라고 내가 말한들 불운이 닥치면 우리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교수가 학생을 희롱하고
법조인이 법을 지키지 않고
정치인이 정치권력을 남용하고
자신의 중심을 지키지 않는 자들.

자신의 중심을 가차없이 버리는 자들.

 

내 중심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일주일이 넘도록 새로 바꾼 스마트폰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계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안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중심이다. 우리는 웃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곧장 침묵이 숨어 들었다.


팔기로 했던, 정영문 [겨우 존재하는 인간]을 팔지 않기로 했다.

가장자리와 중심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 가장자리와 중심의 경계가 없는

내가 꾸는 꿈은 그것인가....

 

 


 

 



ㅡAgalma




 

 

 

 

 

 

 

 

 

 

야만적인 꿈은, 그것보다 더 야만적인 현실의 잠으로부터 나를 깨워준다.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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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5-06-1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심과 가장자리라는 개념 장뤽낭시의 숭고한 봉헌에서 나오는 것 이닌가요? 탈경계테제 블라블라 했던것 같은데요,,

AgalmA 2015-06-19 22:25   좋아요 0 | URL
낭시 파악이 저는 아직 안 돼서 답변 드릴 게 없는데요^^; 참고 하겠습니다.
탈경계는 들뢰즈도 있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논하기도 해서...